민사고 부모들의 특별한 자녀교육법
민족고사랑회 지음 | 책이있는마을
1장 부모는 복잡한 춤을 추어야 한다
부모는 복잡한 춤을 추어야 한다
명지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던 11월의 어느 날,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던 나는 먼발치로, 우리 집 앞에서 어떤 아이가 추운 날씨임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애가 바로 우리 아들이었다. "엄마, 저것 좀 보세요. 거미가 집을 짓고 있어요." 거미 한 마리가 대문과 전깃줄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거미가 집 짓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정말 신기해요." "그래. 아무리 하찮은 곤충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신비한 세계를 간직하고 있단다." "엄마 올 시간이 다되어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려는데, 거미가 저기서 집을 짓고 있는 거예요. 거미가 집 짓는 걸 본 사람은 우리 반에서 나 혼자뿐일 걸요." "네 덕분에 엄마도 귀한 구경을 했구나." 그날 이후 명지는 대문을 지날 때마다 그 거미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는데, 훗날 명지가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날의 추억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흔히 사람이 삶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잃게 마련이고, 세상은 점점 빠른 속도로 변해가기 때문에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다간 낙오되기 십상인데, 이것은 어른들의 세계다. 그리고 학원 같은 곳에는 속성반이라고 해서 몇 년씩 학습하고 훈련해야 할 것을 3~4개월 안에 후다닥 끝마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는 이 속성이 통하지 않는다. 성장이라는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야지, 두세 개씩 건너뛸 경우 인생의 어느 한순간 훌쩍 건너뛴 그 계단이 반드시 아이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빨리 먹어라, 빨리 끝내라, 하고 다그치지 말라. 왜냐하면 그건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와 이야기하거나, 아이의 일을 결정할 때는 잠시 속도를 늦추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의 뜻이 보이고, 말이 들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핸들과 아이의 손을 양손에 쥐고서 복잡한 춤을 추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살이의 빠르고 숨 가쁜 박자에 맞추어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느긋하고 편안한 아이의 박자에 맞추는 것, 이 상반된 두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부모 노릇의 어려움이다.
의리를 아는 인간으로 키워라
"동윤이 어머니, 동윤이 어드바이저입니다. 오늘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 올라가는 길에 아이들끼리 눈싸움을 하다가 동윤이가 좀 다쳤습니다. 눈가가 좀 찢어져서 병원에 데리고 가 꿰매고 왔어요." 눈을 다쳤다는 말에 더럭 겁부터 났다. "눈이라면…… 시력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다행히 눈 위쪽이라 시력에는 문제가 없답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동윤이를 바꿔주셨다. "엄마, 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안경알이 깨지면서 다친 모양이구나." "예, 그래서 안경 새로 해야 돼요." 동윤이는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일단 안경점에 전화를 걸어 아이 시력에 맞는 안경 두 개를 주문해 놓고, 다음 날 안경을 찾아 학교로 달려갔더니 동윤이는 한쪽 눈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동윤아, 집을 떠나 있을 때는 네 몸을 더 소중하게 아껴야 돼." "애들끼리 놀다 다칠 수도 있고 그런 거죠, 뭐." "흉터가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찢어진 상처 때문에 며칠 동안 통원치료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가정관에 머물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는데, 그동안 아이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한편으로는 누가 던진 눈에 동윤이가 맞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녀석은 그 사실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고,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고 실밥만 뽑으면 된다기에 나는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래서 동윤이 어드바이저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모 녀석이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 선생님 말씀을 듣고서야 눈을 던진 아이가 누군지 알았다. 그제야 동윤이와 선생님, 그리고 동윤이에게 눈을 던진 아이 모두 적지 않게 긴장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윤이는 친구를 위해 엄마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춘기 아이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하고 챙겨주시는 선생님과 친구를 감싸는 아들 녀석이 새삼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중학교 3학년 때, 동윤이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다리에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 받고 오는 길에 퇴근하던 남편과 합류를 했는데, 무슨 얘기를 나누던 중에 동윤이가 남편에게 불손하게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아이를 안방으로 불렀다. "너 아까 차에서 아빠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그렇게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는 엄마가 용서 못해." "엄마, 잘못했어요.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말했는데……." 나는 한쪽 발에 깁스를 해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녀석의 다른 쪽 종아리를 독하게 때렸다. 생전 처음 아이에게 대본 매였다. 나는 아이를 자기 방으로 보내고서 소리 죽여 울었다. 자식을 때리면서 가슴 아프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아이에게 주는 '마지막 회초리'라는 사실이, 이제는 아들이 다 자라 내 손으로 매를 때려가며 가르치고 바로잡을 일이 없을 거라는 자각이 가슴을 때렸다.
동윤이가 민사고를 졸업하던 날, 우리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날이 어두워서야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교문을 지나 소사리 고갯길로 접어들자, 우리는 차를 세우고 차가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동윤아, 너 여기 입학하기 전에 다리에 깁스했던 생각나니? 그때 너 종아리 때리고 엄마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네. 생각나요." "앞으로 공부하느라 지쳤을 때, 어른이 되어가면서 힘들 때, 네가 자식 낳아 기르면서 어려울 때, 엄마가 왜 종아리를 때렸는지 생각날 때가 있을 거야." 그 후 동윤이는 IT연수차 미국으로 떠났고, 나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엽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엄마, 건강하세요. 그리고 엄마답게 사세요."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녀석이 엄마 마음을 다 알아버린 것일까? 나는 한동안 아들의 엽서를 자랑스럽게 책상 앞에 붙여두고 지냈다. 나는 아직도 내 아이들이 부모 마음을 다 안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느덧 성장한 제 아이들을 바라볼 때,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처럼 부모 가슴으로 파고드는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에게는 도구가 필요하다
민재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제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민재가 책을 들고 있지 않을 때는 몸이 아플 때뿐이었다. 민재는 일상적인 질문에는 건성으로 반응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만 꺼냈다 하면 막힌 둑이 터진 듯 술술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침대 머리맡에도, 화장실에도, 식탁에도, 텔레비전 앞에도 책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재는 학교 성적이나 생활태도, 교우관계 등에서는 모범생이었지만, 성격이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서 자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무척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게 하려고 친구들을 불러 함께 야유회를 간다든지, 집으로 초대해 같이 놀도록 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는지 사람들 앞에만 나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음은 날로 더 심해졌다.
민사고에 입학하고 난 뒤 우리는 민재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하면서 사진 홈페이지를 만들어볼 것을 권유했는데, 2개월 뒤 민재는 사진 500장이 담긴 CD를 집으로 보내왔다. 거기에는 기숙사, 교정 친구들, 선생님들, 학내행사, 체육시간, 동아리 활동 등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장면마다 재기발랄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아이의 내면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카메라를 잡고 나서부터 민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말도 좀 많아지고 낯가림도 훨씬 줄어들었다. 카메라 3대를 망가뜨린 민재는 민사고에 사진 동아리를 만들고 교내 사진전을 열더니 거리사진전까지 기획하고 개최하는 열성을 보여 우리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때 우리는 아이의 약점을 보완해줄 만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했다. 누군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웅변을 시켜보라고 권해서 학원에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민재에게는 맞지 않았다.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했고, 민재는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가 있을 것이다. 망원경, 현미경, 그림, 글, 말, 노동, 학문, 연구……. 사람들은 이런 도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를 만나고, 돈을 벌고, 자존심을 건다. 일과 여가의 구분이 날로 흐려지고 있는 요즘은 소통을 위해 선택한 도구가 직업이 되기도 한다. 어떤 아이에게나 도구는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거나 사회성을 기르기 힘든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이는 그것을 통해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2장 아이들은 부모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자란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보답한다
"여보, 지민이 중간고사가 다음 주 월요일부터니까 이번 주말에 가봅시다." "그럼 우리 아들 맛있는 거 사 주고 응원이나 하고 올까?" 대구에 사는 우리 부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이를 보러 갔다. 민사고 아이들은 1학년까지 광범위한 내용의 교양을 공부하다, 2학년에 올라가면 본격적인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한다. 2학년 유학반 아이들은 SAT(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와 AP(대학과목 선이수제도) 준비에 들어가야 하므로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는 매우 중요하다. 조기졸업 제도가 있어서 빠른 아이들은 1학년 말부터 대학입학 준비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학교에 도착하니 역시 모두들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지 학교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기숙사 지민이 방으로 올라가 보니, 뜻밖에 방에는 수십 장의 사진들이 펼쳐져 있었고, 지민이는 방바닥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 졸업 앨범 편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민이가 민사고 영자신문 편집장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너, 공부하기 싫어서 이런 일을 떠맡았니? 이럴려고 민사고 온 거야?" "엄마, 무조건 화만 내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다 필요 없어! 편집장이란 게 결국 지 공부는 팽개치고 졸업 앨범이니 영자신문이니 하는 것들 만드는 데 시간 다 쓰는 거였어?" "엄마, 졸업 앨범 편집 작업을 마쳐서 보내야 될 날짜는 이미 정해졌는데, 중간고사까지 겹치니까 제 힘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어요. 저도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제 성적보다 졸업 앨범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엄마는. 상황이 이렇게 될 것 같았으면 되도록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앨범 편집 일을 빨리 끝냈어야지."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됐어요. 아무한테나 맡길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모든 애들이 다 내 일처럼 나서서 해주지도 않고……. 엄마, 중간고사를 망치면 내신은 당연히 타격을 받죠. 하지만 난 유학반이니까 내신 비중이 국내 대학처럼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선배들이 앨범을 못 받은 채 졸업하는 장면을 상상하니까, 이건 영 아니더라구요. 난 형들이 졸업식 날 앨범을 들고 가게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하냐구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위로했다. "여보, 너무 속 끓이지 마. 애를 저렇게 반듯하게 키운 건 우리야. 안 그래?" 하긴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1등 하라고 아이를 다그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낼 것을 주문했다. 실패는 인정할 수 있지만 포기는 용서할 수 없다. 아마 그런 훈련이 지민이를 앨범 편집에 끝까지 매달리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부모가 그렇게 키워놓고는 도리어 혼을 내다니…….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시험 결과가 나오고 영자신문도 발간되었으며, 졸업앨범 편집도 무사히 끝나 지민이 말대로 선배들이 앨범을 들고 졸업식을 마쳤다. 그 대신 지민이의 성적은 엉망이었다.
아이는 3학년이 되어서야 모든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고 영자신문 편집장직을 후배에게 넘겨주더니 읍내에 나가 머리를 박박 밀었다. 아이는 나에게 휴대폰도 반납했다. 지민이는 내신 성적을 위한 공부와 유학준비를 동시에 해나가기 시작했고, 결국은 목표를 이루었다. 아마 남들이 3년 동안 공부한 것을 1년 만에 해치웠을 것이다. 부모의 눈에 아이의 행동이 불안해 보여도, 아이를 다그치고 잔소리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설령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믿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나는 우리 아이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70%? 50%? 그렇다면 이 퍼센티지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 성적? 혹시 거기에 나의 일방적인 평가라는 위험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보답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자란다
준이는 타고나기를 흥이 많은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노래 소리만 들려오면 흥얼거리고 춤을 추어야 직성이 풀렸다. 이렇게 흥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공부만 하라고 가둬둔다면 아이도, 나도 못 견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웬만한 일이 아니면 일일이 간섭하거나 말리지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준이는 제 방을 가수의 브로마이드로 도배를 하고, 음악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듯 귀에서 이어폰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가수가 달라질 때마다 브로마이드가 바뀌었는데, 이적이라는 가수만은 예외였다. 다른 가수들과 달리 이적의 사진은 벽에서 내려진 적이 없었고, 악보를 사다 피아노를 치며 〈달팽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팬클럽에도 가입해 열심히 활동했다.
하루는 준이가 왜 그렇게 이적이란 가수를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여성학자였다. 내 생각에는 아들보다 어머니가 더 대단한 사람인 듯했다. 그분 역시 아들이 검정 가죽바지에 번개 맞은 머리로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하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의 교육방법은 간단(첫째, 아이를 그냥 놔두기. 둘째,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믿고 기다려주기)했다. 이는 과외 한 번 시키지 않고 아들 셋을 모두 서울대학교에 보낸 대선배의 충고였는데, 그분은 내게 '아이들은 부모가 보지 않는 사이에도 자란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흔히 전문가들은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때까지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다. 그럼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과 방치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차이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결국 어머니 자신이 스스로를 믿어야 아이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도인이 되어야 한다. 아이가 가진 힘을 믿고 아이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스스로를 믿고 인정해야 한다. 이지러지고 찌그러진 내 안의 미운 점들을 어루만지면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아이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자신의 상처와 허물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덧씌우게 되어 있다. 부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