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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정승희 지음 | 사군자
아마존에서 '나'를 발견하다



인디오들은 나를 '충'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마존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도전 지구 탐험대>이다. 도전, 지구, 탐험. 내가 좋아하는 세 단어가 함께 모여 있는 프로그램 제목이다. 이 세 단어의 매력에 빠져 도전하지 않는 자는 자신과 소통할 수 없고, 탐험하지 않는 자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나는 남미 출장만 120번 이상을 다녔고, 해발 6,000미터 이상의 고산을 산악인도 아닌데 9번이나 올랐다. 이젠 꿈을 꿔도 남미 어느 지방이나 아마존 정글이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한 발짝 떼기도 힘든 정글로의 막막한 행군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의 공포조차 둔감해졌다. 그렇게 내 여권이 몇 개째 너널너덜해지는 동안 나도 변해갔다.



처음에는 '남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방송가에서 나름 '남미통'이 되어보자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가져보자는 야심찬 포부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는 아마존에서 '남미통'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카메라 속에 '사람'과 '문화'를 담아 가는 내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존 부족들이 사는 모습을 찍으면서 말을 배우게 되고, 말을 배우니까 마음이 보이게 되고, 마음이 보이니까 그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한 대상'이 아니라, 사람으로, 친구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좋아지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자꾸 가게 되고, 그들의 뒷모습에 묻어나는 감정까지 보일 때가 되니 이제 멈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전, 탐험 그리고 아마존을 통해 조건 빼고, 배경 빼고, 진짜 사람을 보고 진짜 사람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 세상 누구의 눈보다 정직한 카메라 렌즈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디오들과 친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인디오들은 나를 '충'이라고 부른다. 까마라그라포(카메라감독), 충. 벌레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내가 성인 '정'을 영어로 'Chung'이라고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이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택한 것은 라면이다. 사실 아마존 인디오들에게 라면은 먹는음식 이상이다. 그들에게는 라면 봉지는 굉장히 유용하게 쓰인다. 크기 면에서나, 밀봉 면에서나 라면봉지는 작은 열매들을 집어넣거나 코카차가루를 담아 걸어두기에 안성맞춤이다. 해서 나의 목표는 십수년 전 일본 취재진이 스쳐간 부족마다 걸어 놓여져 있는 이찌반라면 봉지를 모두 삼양라면으로 바꾸어 놓는 것. 다행히 부족들은 우리 라면의 맛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여럿이 모여 앉아 라면을 끓여 먹으며 대화를 하고 난 후 다음날엔 어김없이 끓여먹은 라면 개수만큼 집집마다 라면 봉지가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몇 년 후 다시 그 부족들을 찾아갔을 때, 집집마다 '삼양라면' 봉지가 여전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뉴욕의 타임스퀘어 중앙에서 LG나 삼성 로고를 발견했을 때 큰 감동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지에서 내가 남긴 우리나라 라면봉지를 발견하는 감동보다 더할까.



지난 120회 오지촬영 동안 매 회 라면 100개씩은 족히 먹었으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촬영 때에만 무려 12,000개의 라면을 먹어 치운 셈이다. 이 정도면 라면 홍보대사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라면으로 국위선양하고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디오들과 둘러앉아 먹는 그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것. 그 나라의 맛을 알리는 것이 그만큼 사람을 가깝게 하고, 서로 이해하게 만드는 큰 힘이라는 걸 나는 아마존을 촬영하면서 절감했다. 세상엔 값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내겐 역시 아마존 정글 속에서 김치도 없이 인디오들과 낄낄거리며 나눠먹던 그 라면의 맛이 최고다.



나는 언제나 노팬티로 돌아온다

한때 유행했던 대중가요 가사 중에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을 건졌으니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존을 여행할 때의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긴 아마존 탐험 여정의 끝 무렵이 되면 항상 나는 노팬티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원래 속옷 입기를 싫어하는 에로틱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마존의 무지막지한 더위를 참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노팬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아마존 정글은 '덥다'는 말로는 결코 설명이 불가능한 천연 야외 사우나이긴 하다. 하루 종일 물을 4리터 이상씩 마시고도 한번도 소변을 안 봐도 될 만큼 땀으로 몸의 수분의 배출되어 버린다고 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시라도 쉬는 틈에는 땀이 벤 속옷을 빨아서 햇볕에 널게 되는데, 바람에 나풀대는 속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라도 한가치 피우다보면 어느새 꼭 지나가던 누군가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다.



지나가던 인디오는 내 작은 옷가지가 정말로 가지고 싶은 것이다. 남이 입었던 것이라서 내키지 않는다거나 하는 속옷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관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실은 나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속옷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입던 속옷을 남이 입는다는 생각을 하면 맘이 편치 않다. 하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내 팬티를 가리키고 있는 모양을 보면 도저히 안 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가져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옆을 둘러보면 스텝이나, 리포터도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 두 개씩 팬티를 나눠주다보면 돌아올 때쯤 나는 어느새 팬티는 한 장도 남지 않는 신세가 된다. 왜 아마존 사람들은 유독 팬티를 좋아할까? 그렇지만 아마존 사람들은 팬티 이상의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물론 워낙 더운 지역이라 인디오들이 갖고 싶은 문명의 옷가지라고 해봐야 팬티 정도가 가장 알맞다는 생각도 든다. 그 더운 곳에서 거추장스러운 꽉 끼는 청바지며 알록달록 예쁜 티셔츠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연유로 아마존에는 아직도 내가 준 팬티를 즐겁게 입고 다닐 부족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내가 입던 팬티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머릿속에 상상해 보니 조금 우습다. 솔직히 티셔츠 따위를 나눠 입은 것보다 팬티를 나눠 입는 것이 더 끈끈한 형제애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항상 돌아올 때마다 팬티가 십여 장씩 없어지는 통에 아내는 늘 팬티 값 때문에 등골이 휘어진다고 야단이다. 나는 웃어 넘길 뿐이다. 바람났다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입던 팬티까지 나눠 입을 수 있는 가족같은 인디오 친구들이 있는데, 그깟 팬티 값이 문제이며, 그깟 노팬티 신세가 문제겠는가. 단지 귀국 길에 좀 끼는 청바지를 입었을 때, 어느 방향으로 정리할지 조금 고민이 될 뿐이다.

'죽음'을 뛰어넘으면 '삶'이 남는다

아마존을 촬영하며 나는 정확하게 세 번 '죽음'을 눈앞에 마주 했다. 한번은 모이나부족 촬영을 끝내고 아마까자꾸 강을 역류해 되돌아오는 밤중에 칠흑 같은 강물에 빠져 1시간을 떠다니다 피라냐의 밥이 될 뻔 했고, 샤마꼬꼬 부족을 촬영하러 갔다가 추장아들의 칼에 찔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어차피 태어났으니 삶이라는 게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겠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살짝 비켜가는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도 아니고, 그저 잊혀지는 일상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 눈앞에서 오재미 던지듯 툭툭 죽음의 공포를 던져놓는 그 아마존에 자꾸만 간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물었고, 이제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해답을 나는 그돈느족을 촬영하러 가면서 세 번째 죽음의 문턱에서 얻었다.



그 날 나는 새벽 6시 50분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세관을 통과하니 시간은 이미 오전 여덟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 때의 촬영일정은 콜롬비아의 초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는 거였다. 한국에서 미국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콜롬비아까지 가는 비행기편이 없는데, 당시 촬영에 참여하는 리포터가 미국비자가 없는 바람에 우리는 캐나다를 경유해 페루로 그리고 인접국인 콜롬비아로 가야했다. 그래서 우리는 페루 리마에서 이키토스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다시 수상 경비행기를 타고 산타로사(페루의 국경지역으로 이곳을 넘으면 콜롬비아)까지 이동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복잡한 만큼 우리는 1분 1초라도 아껴야 했다. 왜냐하면 해외 촬영에서의 시간은 바로 제작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도에 이른 시간에 도착하게 되면 그 날 무조건 국내선을 타고 목적 도시에 들어간다. 어차피 이동하는 날은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움직일 때는 무조건 몰아서 움직이는 게 몸은 죽이 나든 말든 시간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다. AD를 시켜 이키토스행 국내선 스케줄을 알아보도록 했다. 리마에서 이키토스로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세 번 있는데, 아침 8:00, 그리고 12:45, 16:30이라고 한다. 다행히 푸갈파를 경유하는 12시 45분 이키토스행 비행기가 있어서 표를 사오도록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피곤이 몰려온다. 마치 지금까지 내 인생의 무게가 모두 눈꺼풀로 내려 앉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다.



아까 타고 온 비행기내에서도 꿈인 듯 생시인 듯 몽롱한 내 눈앞에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나타나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어머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어머니, 뭐라고요?" 명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언짢으신 얼굴로 내게 호통을 치고 계시다는 느낌만이 생생했다. 막연하게 어머니가 뭔가를 만류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줄을 서 있는 AD를 불러 출발을 내일로 미루자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카메라를 들 힘만 있으면 내 몸을 이유로 촬영일정을 미룬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이 움직여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AD는 촬영에 지장이 있다며 이키토스에 가서 쉬자며 몇 번이나 나를 설득한다. "내일 출발한다." 누구에게도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단호하게 말했다. 이동을 미룬 건 단순히 어머니 때문만이 아니다. 내 전신을 누르는 묘한 느낌이 내 다리를 붙잡고 몸을 움직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여섯 시,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호텔을 잡고 수년간 거래하던 여행사의 난시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뚜 에레스 무쵸 수에르떼!(정말 행운이야!)" 어제 내가 타려다 포기한 그 비행기가 경유지인 푸칼파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총 100여 명이 탑승했는데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는 대형 사고였다. 흥분된 목소리로 난시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동안 난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었다. 살아있지만, 몸은 붕 떠있는 듯한 느낌. 온몸은 후들후들 떨리는데 정신은 이상하게 명료해지는 느낌이 이어진다. '죽음'이 눈앞에서 스쳐 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면, 사람은 '나는 절대 죽지 않아'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게 된다. 다만 왜 죽음의 신이 나를 자신의 손아귀에 잠깐 쥐었다 놓아줬을까. 내가 그 비행기에 탄 1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살아있는 것일까?" 그 물음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한 채 촬영을 하는 동안 나는 점점 해답을 찾아간다. 아마존 인디오들. 몇 컷만 찍는데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아마존의 정글을 헤치며 못 먹어서 한번 촬영할 때마다 몸무게가 쭉쭉 빠지는 데도 인디오들의 웃음과 슬픔, 무욕과 무소유, 자유와 평화, 자연과 생태를 담으며 내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나를 보며, 나는 아마존 인디오들의 삶을 통해 문명의 치유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바꾸는 다큐멘터리나 퓰리쳐상에 빛나는 한 컷의 사진은 아닐지라도 문득 보는 화면으로 내가 여기서 느끼는 상쾌함을 나눠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죽음의 선을 넘나들면서도 내가 아마존의 정글을 다시 찾는 이유는 그곳이 내가 죽어야할 이유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할 이유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 번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한 이후, 나는 매일 내가 죽음의 선을 폴짝폴짝 줄넘기하듯 넘어간다고 느낀다. 인생이란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지만, 죽음의 고비를 폴짝폴짝 줄넘기 넘듯 넘나들면서도 중력의 법칙 때문에 내 몸이 다시 땅으로 내려오듯 또 살아남아 다시 아마존을 갈 수 있는 오늘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워진다. 무더위와 수억 마리의 모기떼가 우글거리는 아마존 밀림마저 껄껄 웃으며 즐기게 되는 것이다. 살아남을 이유를 알게 되면 삶을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방향이 떠오른다. 이것이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아마존에 중독되다



달콤 쌉싸름한 애벌레

"에구머니나, 어떻게 벌레를 먹는대?" TV를 통해서 애벌레를 너무나 맛있게 먹는 아마존 부족들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첫 번째 반응이다. 아는 주변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도 벌레를 먹어봤다고 하면 그들은 또 백발백중 묻는 것이, "그래서 어떤 맛인데?"라는 것이다. 참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과일이라고 해도 딸기와 포도와 복숭아가 그 맛이 다르지 않은 가? 벌레들도 역시 달콤한 것, 새콤한 것, 고소한 것 등 모두 맛이 다르다. 이해하기 쉽게 개미를 예로 들자면, 개미를 입에 넣고 와작 하고 씹으면 꼭 오렌지 주스를 먹는 것 같은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리고 이맛 저맛 틈새로 분명히 매콤한 맛도 분명히 섞여 있다. 이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어느새 인디오들 틈에 앉아 개미의 허리 뒷 부분을 '콕'하고 씹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개미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애벌레들은 그 맛이 더 환상적이다. 인디오들의 최고 간식인 '모호이'라는 애벌레는 말랑말랑한 촌따나무의 속을 파먹고 사는 녀석인데, 토실토실한 게 입에 넣고 씹으면 물컹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씹는 맛에다가 고소하기까지 하다. 인디오들은 깨끗한 나뭇잎이나 나무 속을 먹고 자라는 애벌레나, 이슬을 먹고사는 곤충들을 아주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모호이는 먼 길을 갈 때마다 나뭇잎에 10마리씩 나란히 싸서 끈으로 딱 묶어 도시락으로 만들어 간다. 아무리 애벌레로 만든 거라지만 겉보기에는 고급스러운 일식 도시락 저리 가라다. 이 모호이 도시락을 허리춤에 차고 배가 고파지면 서로 갖고 있는 모호이를 땅콩 던져 먹듯이 휙휙 던져주면서 깔깔대며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릴 적 봄 소풍 때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모호이 말고도 많이 먹는 애벌레가 '구산요'라는 것인데, 구산요는 돈벌레 정도의 크기로 박달나무 같은 껍데기를 갖고 있는 피나무 속을 파먹고 자란다. 이 피나무는 장정들이 팔을 한껏 벌려 안으면 세아름 반 정도의 굵기나 되는 굉장히 큰 나무인데, 이 나무의 껍데기를 벗기면 구산요가 한번에 한 되 정도 잡힌다. 모호이는 씹어서 먹지만, 한 되씩 나오는 이 구산요는 꼭 아이스크림을 떠먹듯이 손으로 퍼먹는다. 구산요 역시 깨끗한 나무 속껍질을 파먹고 자라는 녀석이라 말 그대로 유기농 건강 웰빙식품이다. 대신 구산요는 잔 다리가 많아 씹기가 좀 불편한데, 대충 씹어서 넘기면 위 속에서 한참 구산요가 돌아다닌다는 인디오들의 말을 들은 후로는 아무리 귀찮아도 구산요만큼은 꼭꼭 씹어서 먹는다.



애벌레 중에 제일 큰 놈인 '모뻬이다'는 거의 15센티 쯤 되는 소시지 크기인데,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애벌레다. 나무 꼭대기 위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살기 때문에 쉽게 발견하기도 어렵고 잡기도 쉽지가 않다. 이 모뻬이다는 워낙 그 크기가 커서 이빨에 힘을 꽉 주지 않으면 한 입 크기로 베어 물기도 쉽지 않지만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육질이 쫄깃쫄깃해서 인디오들이 정말 좋아하는 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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