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학생은 지금
레베커 네이던 지음 | 다산미디어
제1장 모모대학으로 초대합니다대학에서 가르친 지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학생들을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왜 학생들은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면담시간에 내 연구실로 찾아오지 않을까? 내가 강의 이외에 특별한 연구 지도를 해 주겠다고 해도 왜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일까?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학생 중심주의를 외치는 오늘날의 대학이란 관점에서 볼 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보직자들이 마치 기업의 경영자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대학이 학생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교육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바람과 이해는 대학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학생으로서의 일상생활에 좀 더 깊이 빠져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강의도 정식으로 듣고 기숙사에도 입주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비록 나이는 많지만 동료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다른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학생 생활을 시작한 것은 모든 신입생이 참여해야 하는 여름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2002년 6월이었다. 이 행사는 이틀 동안 진행되는 집중적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신입생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다음 이틀 동안 나는 우리 대학에 대해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입생으로서의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고, 교수로서는 우리 대학에서 동아리, 종교, 상업적 서비스라는 세 특정 분야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느꼈다. 나는 인류학자이면서도 그 동안 우리 학생들의 세계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고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대학의 교수 생활을 14년이나 했고 교수평의회나 다른 대학 조직에도 널리 참여해 왔기 때문에, 나는 우리 대학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또한 캠퍼스 안의 모든 지름길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 조직을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숙사로 이사 온 후 엄청난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 스스로 매우 큰 놀라움을 느꼈다. 학생이 된 나는 학생용 주차증을 얻었는데, 이것으로는 기숙사 부근의 주차장 한 곳만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걷거나 캠퍼스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 결과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캠퍼스를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보니 건물들과 주변의 광경이 무척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찾아야 하는 빌딩이나 입구를 찾기 어려운 것은 고사하고, 내가 지금 정확히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생소함을 느꼈다. 심지어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서점이나 보건진료소 같은 건물조차 찾기 어려웠다.
내 학생 생활은 한 해 동안 계속되었는데, 이 책은 바로 그때 내가 참여하고 관찰한 대학생의 생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점만은 분명하게 해 두자. 나는 18세의 젊은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느끼는 충동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그들의 사교적인 교류에 은밀하게 끼어든 것도 아니었다. 인류학자가 해외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알게 되듯, 우리는 정말로 원주민처럼 될 수도 없고, 또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경험을 짐작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러나 생동하는 마을 생활의 경험은 적절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신입생이 됨으로써 얻기를 희망했던 결과였다.
제2장 기숙사 생활기숙사의 같은 복도에서 사는 학생들에게 나를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한 것은, 그 학기에 첫 번째로 열린, 누구나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복도 모임이었다. 같은 복도에서 사는 모든 학생이 그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참석한 50명이 넘는 남녀 학생을 수용하기에는 라운지가 너무 비좁았다. 소개가 끝난 후 우리는 기숙사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조교 이외에 기숙사 모임에서 권위를 가진 존재로 언급된 것은 사감이었는데, 학생은 그가 개입해야 할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만 사감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학생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거나 운 나쁘게 들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학생 생활은 대학 당국의 감시를 피해서 이루어졌다. 그 첫 번째 전체 기숙사 모임은 상당한 수의 학생이 참석한 마지막 모임이었다. 그 뒤에 열린 모임의 경우에는 절대로, 반드시, 꼭 참석해야 한다고 말해도 얼굴을 내비치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아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친목 관계를 맺기도 하면서, 새로운 현실과 일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생활 리듬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동에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양상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대학생들이 어떻게 낮과 밤 시간을 보내는지를 알아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것은 학생으로서의 생활이 갖는 특성 때문에 성취하기 어려운 과제임이 드러났다. 수많은 책들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숙제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많은 학생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고사하고 내 생활을 제대로 추스르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바뀐 강의실을 찾고, 교수를 만나고, 과제의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동료 학생들과 똑같은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으로서의 내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고 다른 학생들을 면담하기도 하고 그들의 시간표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학생 생활의 전형적 양상과 그 독특한 변형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형적 양상의 배후에 작용하는 힘들을 이해하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학생들이 공부를 약간 덜 한다면, 그들이 더 많은 휴식을 취하고 더 많은 파티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내가 우리 대학에서 조사한 결과는 학생들이 대학 안과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데 그 시간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팻 교수는 그가 조사한 학생 여덟 명 중 한 명이 일을 한다고 보고했지만, 내가 조사한 학생의 경우에는 반 이상이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당 6시간에서 25시간까지 일하고 있었으며, 그 중위수는 15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자세히 관찰한 10명의 학생 전부가 너무나도 다른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어떤 스케줄을 서로 겹치게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정도였다. 너무 많은 선택 가능성을 제공하는 우리의 주립대학 체제와 관련해 두 가지 함의를 찾아낼 수 있다. 하나는 똑같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라도 대학 생활 중 자동적으로 공유하게 되는 부분은 지극히 작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리 생각하고 노력해야 다른 학생들과 일정이 겹치게 만들거나 사교 서클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똑같은 선택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함께 만나는 사람들은 취향이 아주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두 번째 함의는 공동체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에서 나가는 것, 강의를 중도 포기하는 것, 전공을 바꾸는 것, 클럽에서 탈퇴하는 것 등을 쉽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지 못한 사회적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대학 공동체란 것은 실현되기도 힘들고 신뢰하기도 힘들다.
제3장 공동체와 다양성대학과 관련된 표현에서, '공동체'(community)와 '다양성'(diversity)만큼 널리 사용되는 다른 말은 찾기 힘들다. 대학생이 되면 바로 어떤 그룹에 가입하고, 현실에 참여하고, 모모대학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자각하라는 말을 듣는다. 모든 일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주에 시작되었다. 입학식에서는 강의 관련 통계수치의 소개와 재미있는 파워포인트 설명이 있었다. 그 비교적 짧은 설명회는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공동 유산을 압축해서 보고 어떤 새로운 것의 출발선에서 함께 자리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상당히 즐거워 했고 또한 힘을 얻어 그 자리를 떠났다. 공동 유산, 즉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구성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정말로 한데 묶은 것은 그들의 젊은 나이, 대중문화, 몇 가지 역사적 사건, 그리고 학위를 따는 일이었다. 그 뒤로는 어느 누구도 우리 대학의 제도적 역사를 기억하지 못했고, 교가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매주 기숙사 게시판에는 참석해야 할 새로운 행사, 새로운 음악 그룹, 혹은 공개 행사 참여를 권하는 공고로 가득 찬다. 학생들은 그들의 시간을 요구하는 수없이 많은 활동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겠다는 결정은 '학생의 무관심' 혹은 '프로그램의 부적절성'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행사가 계획된다. 어떤 새로운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결정은 또 다른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학생들은 더 넓게 흩어지는데, 이로 인해 사람뿐 아니라 공동체까지도 흩어지는 결과가 빚어진다. 학생으로서의 내 생활에서 이와 같은 선택적 참가를 통한 공동체 건설의 과정은 대학 안의 여러 곳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보호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의무감과 속박감을 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대부분의 미국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큰 공동체'라는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측면과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을 갖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 됨', '함께 함', '공동의 목적' 같은 것은 공동체의 긍정적 측면이 될 수 있지만, 정부 규제라든지 '큰 형님'의 이미지 혹은 복종에 대한 공포 같은 부정적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학생들이 그들의 교육 공동체에 대해 얘기할 때 이와 같은 공동체의 상반된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공동체는 사랑과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자 동시에 자유를 억압하고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의 공동체는 역설적이게도 사적이며 개인적인 결정의 산물이다. 퍼트넘(Robert Putnam)이란 사람이 『혼자서 볼링하기』(Bowling Alone)라는 책을 통해 미국에서의 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있듯, 최근의 미국 역사에서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려는 사적인 결정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종교적인 생활로부터 정치적 참여와 비공식적인 사회적 연결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학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는 것처럼 미국인의 생활에서 개인주의가 계속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와 같은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기숙사 생활에서 관찰되는 경향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집단적인 생활의 낡은 청사진은 더욱 개인적이며 풍족한 성격의 계획으로 대체되었다. 학생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개인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그들이 우리 대학에서 '공동체'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이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친구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였다. 나는 학생들의 일기와 면담을 통해 많은 학생들의 경우 대학에서의 사회생활은 자신의 개인적 네트워크에 속하는 똑같은 사람들과의 반복적인 접촉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개 1학년 말쯤이면 네트워크가 형성되는데,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과 계속 함께 지내는 경향을 보였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강렬하고 잦은 교류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학생들의 사회생활이 형성되는 방법은 다양성의 문제에 필연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제4장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 비친 우리나이 때문에 대학의 주류에 끼어들지 못한 나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 끌리는 것을 발견했고, 그들도 나에게 끌리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든 주류에서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무언가 공통점이 있음을 인식하고 서로를 찾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수줍은 농촌 출신의 학생들과 가까워졌고, 신입생 세미나에서는 홀로 있던 흑인 학생과 친해졌으며, 같은 기숙사에 살거나 같은 강의를 듣는 외국 유학생들과도 많이 사귀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의 대화는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인류학자들이 알게 된 것처럼, 어떤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나머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과 얘기하면 할수록 미국 문화와 대학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느꼈다.
미국 대학에서 공동체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단지 학생이 되고, 기숙사 동료가 되고, 같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음을 이내 깨달았다. 많은 외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이 그들을 그다지 반겨하지 않고 그들의 경험이나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학과 미국 생활의 표면적인 개방성이 종종 대학 생활의 초기 단계에서 형성되고,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소수의 관계에 대한 폐쇄적인 애착과 짝을 이룬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외국 유학생들도 미국 학생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른 외국 유학생들과 사귀게 됨으로써 똑같은 구조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친구에 대해 묻는 나의 질문에 또 다른 유학생은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친구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거지요? 내가 생각하는 친구 말입니까, 아니면 미국 사람이 생각하는 친구 말입니까?" 프랑스에서 온 학생은 친구에 대해 묻는 나의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난 친구를 갖고 있지요. 여기서는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이 너무 쉬워요."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실 진정한 친구는 아니죠. 바로 그거예요. 여기서 우정이라는 것은, 아주 표면적으로 정의된 개념이에요.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쉽지만, 우정은 매우 피상적일 뿐이지요. 우리라면 그걸 아예 우정이라고 얘기하지도않아요. 프랑스에서는 한 번 친구가 되면 일생 동안 친구가 되는 겁니다." 그들이 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다. 그들은 미국 사람들에게 우정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교수들과 수업이 개방적이며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지만, 강의 내용이나 평가 방법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한 인도 학생은 다음과 같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수들은 내가 책을 읽을 때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때때로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해 줌으로써 내가 어디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알게 해 줍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미국 대학의 강의가 너무 억압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들은 학생들이 얼마간의 자료를 읽고 강의를 들은 다음 시험을 치고, 또 얼마간 읽고 강의를 들은 다음 또 시험을 치는 반복적 과정을 지적했다. 한 학생은 그것을 '강요된 공부'(forced study)의 체제라고 묘사했다. 대부분의 외국 유학생들은 교수들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게 가르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외국 유학생들은 자기네 나라에서는 전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전공과 관련 없는 과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을 뿐더러, 복수전공이나 복수부전공 선택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유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일단 선택하면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유학생은 심지어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