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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최영미 외 지음 | 책이있는마을
1장 가족으로 산다는 것



내 생에 최고의 이벤트



"엄마하고 장보러 갈래?"

"전 바빠요. 혼자 다녀오세요."

컴퓨터 모니터에 코를 박은 채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애써 서운한 마음을 털어 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들은 집을 떠나 하숙생활을 시작했다. 객지에서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얼 먹고 사는지, 잠자리는 편한지, 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지만 농사일이 바빠 가 볼 수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집에 오는 아들에게 물어서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는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아들은 점점 품에서 멀어지고 있고, 이젠 마주하고 있어도 나눌 이야기가 한정되어 있다. 내가 요즘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며칠 후면 아들이 군에 입대하기 때문이다. 입대를 한 달 앞두고 아들이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장도 보고, 자잘한 농사일도 도움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벌써 많은 날들이 아무것도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처음 며칠 동안 아들은 내리 잠만 잤다. 잠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을 반복하다가 일주일쯤 지나자 이번에는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일손이 모자라서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보면 폭탄 맞은 집처럼 늘어놓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하고 싶은 짓 맘껏 하게 내버려두자던 남편도 더는 참고 보기 힘들었는지 아들을 불러 언성을 높였다.

"이눔아, 하는 꼬라지가 그게 뭐냐? 뼈 빠지게 일해서 가르쳐 놓았더니 겨우 배운 것이 게임질이야? 엄마가 니 용돈 한 푼이라도 더 보내려고 하루 종일 밭에 엎드려 두꺼비 손등 되게 일하는 거 안보여? 군대 가기 전에 아들 노릇 좀 하고 가면 좀 좋아? 철딱서니 없는 놈 같으니라구! 어서 날짜가 되어 군복이나 입어야 정신 버쩍 차리지…."



며칠 후면 입대할 아들놈 속 긁어 보내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 참던 남편이었다. 가슴속의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고개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아들놈 보며 벌써 마음 아프던 중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냉장고 앞으로가 소주병을 꺼내들더니 글라스에 부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녁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삼겹살이나 구우면서 한 잔 하려고 준비해두었던 술이었다. '나는 입 뒀다 뭣에 쓸려고 아들 녀석에게 아무 말도 못했을까. 입대하기 전에 엄마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자고 했으면 들어줬을 텐데.' 슬그머니 회한이 밀려왔다.



서로 반성하는 가운데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드디어 입영날짜가 되었다. 논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번갈아 가며 당부의 말을 쏟아냈다.

"밥 잘 먹고, 깨끗이 씻고, 부지런히 훈련해라. 고참들 눈 밖에 나서 얻어터지지 말고."

"좀 얻어터지면 어때. 그러면서 군기가 드는 거지. 어리버리하게 굴다가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인 게야."

"걱정 마세요. 다 잘할 수 있어요."

자신감에 넘친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와 남편은 걱정스런 눈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연무대에 도착하자 '입대 환영'이라고 쓴 현수막과 군악대의 연주가 우리를 맞았다. 대기중인 예비 훈련병들과 배웅 나온 사람들 틈에 섞여 입 속에 맴도는 말들을 차마 다하지 못하고 아들을 연병장으로 내려보냈다. 어서 가라고 등 떠밀어 보내고 돌아서려는데 몇 발짝 걸어가던 아들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아들은 흙먼지 피어오르는 운동장에 넙죽 엎드리더니 절을 올렸다. 남편과 나는 누르고 있던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다가가 녀석을 덥석 부둥켜안았다.



40여 분에 걸친 입소행사를 마치고 훈련소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자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도 슬금슬금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뭘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니 막상 연무대를 떠나 집에 돌아오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어차피 치러야 할 일을 끝마친 기분이었다. 나는 한 달 동안 철없이 빈둥거리며 속을 긁던 아들 녀석 방이나 청소하기로 작정하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어수선한 마음도 정리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들의 방이 완벽하게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방바닥은 반짝반짝 하고, 잡동사니들도 서랍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심지어 옷장 속까지 야무지게 정리되어 있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이것이 내 아들이 한 짓이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일었다.



나는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아들이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컴퓨터 앞에 앉아보았다. 이틀 전쯤에 컴퓨터와 노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던 아들 생각이 났다. 깨끗이 먼지를 닦아낸 모니터 귀퉁이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전원을 켜세요.' 나는 호기심에 전원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후 화면 가득 아들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사진 밑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엄마! 지금 울고 있지? 에이, 울보 엄마. 내 걱정말고 이렇게 웃으며 지내요. 하하하. 군대생활 잘하고 건강하게 돌아올게요. 돌아와선 효도할 거예요. 충성!'



아들 녀석의 익살스런 얼굴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입으로는 삐어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야단쳤던 것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마음 써준 녀석이 대견하기도 해서 한동안 컴퓨터를 끄지 못하고 울고, 웃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아들 녀석의 입대 이벤트는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버지에게 야단맞고 의기소침해져 있는 줄 알았더니 꿍꿍이가 있었던 거였다. 녀석이 남긴 편지는 곳곳에서 시간차로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옷장 속에서였다. 빨래한 옷을 넣어두려고 옷장을 열었다가 가지런히 쌓인 옷 틈에서 빨간 쪽지를 발견했다.



'엄마, 안뇽? 내가 다 정리했지롱. 우리 엄마 너무 좋아하는 얼굴 다 보인다. 엄마 사랑해요! 용감한 육군 아들 물러갑니다. 충성!'

어디에 이런 재치가 숨어 있었는지 나를 울리고 웃기다 못해 녀석이 그립기까지 했다. 다음날은 개 밥그릇 밑에서 쪽지가 발견되었다.

'엄마, 개밥만 주지 말고 엄마도 식사 거르지 마세요. 충성!'

녀석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했고, 편지의 모양과 색깔도 다양했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종이배 모양, 딱지 모양, 종이학 모양, 포스트잇 등등. 나는 아들의 편지를 발견할 때마다 녀석이 앞에 있는 것처럼 대답할 말을 중얼거렸다. 발견되는 장소도 냉장고 속, 싱크대 서랍, 외투 주머니, 핸드백, 곰솥, 창고의 연장통 속, 화장실 수납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한 달 분량의 보물찾기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우리 부부 밭에 나가고 없는 동안 어지간히 바빴을 터였다.



남편은 술병 아래 숨겨진 쪽지를 보고, "그래 이눔아, 술 그만 먹을란다."라며 웃었다.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 놓고서 내색 안 하느라 어지간히 뱃속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어쩌면 한 달 동안 유난스럽게 게으름 피우고, 부모에게 무관심한 척 행동했던 것도 극적인 이벤트를 펼치기 위한 작전이었는지 모른다. 남편과 나는 매일매일을 소풍나온 애들처럼 보물찾기에 열을 올렸다. 편지를 발견하면 서로 읽어주고, 아들의 재치에 감탄하고, 녀석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식 키운 보람을 새록새록 맛보고 있었다.



아들을 보낸 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어는 토요일이었다. 사촌조카의 결혼식에 가려고 모처럼 화장하고, 아껴두었던 투피스를 꺼내 입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먼지 앉지 않도록 비닐에 꽁꽁 싸서 신발장에 넣어둔 구두를 꺼내 신으려는 순간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화들짝 놀란 나는 구두를 내던지고 뒷걸음질을 쳤다. 잠시 후, 납작 엎드려 있는 개구리를 자세히 들여다본 나는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그 또한 아들 녀석의 편지였던 것이다. 녹색 색종이로 접은 개구리 등에는 얼굴무늬까지 그려 넣어 언뜻 보면 진짜 같았다.



하도 많은 편지들을 찾아낸 후여서 내성이 생겼음에도 또 깜빡 속고 말았다.

'어? 우리 엄마 어디 좋은데 가시나? 꽃단장하고 예쁘게 차려입었네. 엄마, 너무 이뻐요. 새색시 같아. 충성!'

아들 녀석의 칭찬에 기분이 한껏 부풀은 나는 일 년에 몇 번, 그것도 특별한 날에만 신는 뾰족구두를 또각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정말 새색시가 된 기분이었다. 이벤트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나중에 아들이 휴가를 나왔을 때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가 22년 동안 아들 키우면서 잡혔던 얼굴 주름이 한 달 사이에 모두 펴진 것 같으니 말이다. 역시 아들 녀석은 나를 닮은 것 같다. 내가 요즘 밭고랑에 앉아 가끔씩 멍해지는 이유는 아들을 놀래게 해줄 아이디어를 궁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녀석은 분명 내 속으로 낳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왜 기발한 이벤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2장 어머니로 산다는 것



나도 컴퓨터 세대



"전기세 많이 나오는데 그 놈의 컴퓨터는 노다지 켜놓고 사냐?"

"곧 끌게요. 이번 게임만 끝나면…."

어머니의 야단을 듣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도 시간 죽이며 게임에 매달려 있는 것이 한심스럽게 여겨지던 참이었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인터넷 고스톱이 벌써 몇 시간째였다. 쉬는 날엔 말벗이라도 해줬으면 싶었던 딸이 컴퓨터와 마주하고 한나절을 보내고 있으니 어머니로선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평소에도 전기세나 잡아먹는 컴퓨터를 탐탁해하지 않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 게임이라는 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시작하면 끝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마지막으로 꼭 한 번 승리를 거둔 후에 끝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게임은 자꾸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훈수가 날아들었다.



"아, 그 쓸데없는 풍 껍데기는 왜 들고 고민 하냐? 버려!"

언제부터였는지 어머니가 내 등뒤에서 뚫어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뜬 화투패가 어머니의 관심을 끈 모양이었다. 고스톱이라면 어머니도 일가견이 있었으니 펼쳐진 화투패를 보고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어머니의 지시대로 풍 껍데기를 버렸다.

"거봐라, 쌍피가 나왔잖냐. 쌍피를 먹어!"

어머니는 어느새 의자를 끌어다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냐, 그게 아니야! 그건 초짜라 지금 먹으면 싼다니까. 거봐라 쌌지. 넌 왜 말을 안 듣냐?" 그리하여 어머니가 게임을 주도하고 나는 시키는 대로 마우스만 조작하는 로봇이 돼버렸다. 어머니의 고스톱 노하우는 결국 나를 승리로 이끌었다. 어머니는 컴퓨터와 고스톱을 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몹시 신기해했다. 나와 함께 고스톱 게임을 하고 난 후 어머니는 새삼 컴퓨터라는 기계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게 되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컴퓨터 앞에 가서 앉더니 나를 불렀다.

"이리 와서 이거 좀 켜봐라."

내가 달려가 전원을 켜자 어머니는 초기화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고스톱이 안 나오냐?"

"고스톱 치게요?"

"어제 잃은 거 따야지."

그렇게 해서 컴퓨터와 친해진 어머니는 매일 한두 시간씩 게임을 즐기더니 나중에는 사이버머니를 두둑이 따서 쌓아놓게 되었다. 내가 기껏 모아놓은 재산을 축내고 있으면 어머니는 나를 컴퓨터 앞에서 몰아내려고 야단이었다.

"어허, 그리 방정맞게 클릭하면 에러난다. 기계란 건 다 다루는 요령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너는 왜 니 아이디 놔두고 내 아이디로 게임을 해서 돈을 날리냐?"

바야흐로 기계 다루는 법을 터득하더니 이젠 당신의 사이버머니까지 챙기려 들었다.



하루는 모임에 다녀온 어머니가 친구 분의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면서 메일 쓰는 법까지 배우겠다고 나섰다.

"얘, 이메일이라는 게 뭐냐? 나 그거 좀 가르쳐다오."

어머니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게 된 것만도 스스로 대견해서 은근히 자랑삼아 말을 꺼냈다가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바람에 스타일 구기고 돌아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날부터 나의 고달픈 나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쉴 새 없이 나를 불러댔다. 모처럼 휴일이라서 늦잠 좀 자려고 하면 어머니는 우당탕거리며 일부러 소란을 피워 깨운 다음, 눈도 못 뜬 내 손을 이끌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가뜩이나 새벽잠 없는 어머니고 보면 아무 때나 반겨주는 컴퓨터란 친구가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어째서 내가 하면 이메일이 안 나오지? 여봐라, 아이디 치고 비밀번호 치고…."

"엄마도 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고 나면 엔터를 누르든지, 아니면 로그인을 클릭 하라니까요. 그런 다음 여기, 메일이라고 써 있잖아요. 이 글씨를 클릭해야죠."



수도 없이 반복해도 여전히 길을 잃어버리는 어머니 때문에 내 목소리에는 어느새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컴퓨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중단 없는 노력 끝에 어머니는 드디어 첫 편지를 날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편지를 받을 사람은 언니였다. 내가 언니에게 메일을 날려서 깜짝 놀라게 해주자고 했을 때 어머니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뭐라고 쓰지?"

"그냥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들을 써요. 언니 주려고 김치 담근 것도 알려주고, 왜 편지 쓸 때 하는 말들 있잖아요."



어머니는 키보드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는 더듬더듬 글자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게 손을 휘휘 저으며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드디어 쉴 짬을 얻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상기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보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나는 손에 쥔 리모컨을 던져버리고 박수를 쳤다.

"우리 엄마가 드디어 컴퓨터 세대로 편입하셨네."

"뭘, 생각보다 쉽더라."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보낸 메일 잘 받았냐고 물었다.

"무슨 메일이 그래? 달랑 김치라고만 써 있더라. 근데 그거 엄마가 보낸 거 맞니?"



언니의 물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한 단어 속에는 '김치는 담갔니? 요즘처럼 날씨 따뜻할 때는 말린 고춧가루를 쓰는 것보다 물고추를 갈아서 담그는 게 시원하고 맛있다. 젓갈은 너무 많이 쓰지 마라. 묵히는 김치에나 젓갈을 많이 쓰는 거다. 양념은 아직 안 떨어졌지? 내가 싱싱한 열무 사다가 네 것까지 담갔는데 작은애 직장 쉬는 날 보내마. 김 서방과 애들은 잘 있지? 나는 요즘 컴퓨터 배우 고 있단다. 이렇게 메일도 보낼 수 있고 참 좋은 세상이다. 이 메일 보내면 답장 보내라.' 하는 당부의 말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자판에 익숙지 않은 데다가 눈도 침침한 어머니가 그 많은 말들을 모두 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언니는 '김치'라는 단어에 담긴 내용 설명을 듣더니 한참을 웃었다. 나는 답장을 부탁했고, 언니는 꼭 써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어머니의 컴퓨터에 대한 열정이 그 정도에서 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어머니는 다시 인터넷 쇼핑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5만원이 넘는 물건을 구입할 때는 미리 의논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어머니에게 신용카드 한 장을 건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일하는 직장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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