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기술 Simple Life
이름트라우트 타르 지음 | 미래의창
1장 이해하기와 놓아버리기몇 가지 질문*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게 언제입니까?
* 단식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 당신이 옳다는 생각이 중요합니까?
* 자신의 실수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 기도를 합니까?
* 당신 없이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습관을 버려본 적이 있습니까?
*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 그들이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습니까?
* 커피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 현재 그대로의 당신 모습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떤 대답을 하게 되는가? 놓아 버릴 준비가 된 사람들, 집념과 초조함에서 자유로워지기로 결정하고, 상처와 질병을 극복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놓아버리기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별 이유 없이도 떨쳐 버리기 힘든 관계나 사물, 습관들이 있다. 크든 적든 각자의 이유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놓아버리기에도 저마다 다른 색깔이 있다. 우리가 사람, 상황,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의 정도에 따라서 놓아버리기의 농도도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에 따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울 수도 혹은 더 쉬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잔의 커피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것이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텔레비전 없이 하루 저녁을 보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또는 그런 모든 것들에서 아주 쉽게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마련이다. 왜 그냥 그렇게, 계속 유지될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내 아이들, 내 가정, 내 직장, 내 습관에 그토록 심하게 의존하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물러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걸까? 도대체 놓아버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왜 나는 놓아버리는 것을 손실이라고 느끼게 되는 걸까? 왜 나는 새로운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일까?
당연한 것도 한번쯤 다르게어떤 상황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과 다르게 행동해 본다면, 앞에 언급한 문제들을 좀더 가까이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기존의 것들을 완전히 부정하고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활동 범위를 조금만 넓혀 본다면, 더욱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아주 작은 발걸음 하나로도 커다란 효과를 갖게 된다. 놓아버리기는 그저 좋은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일단 실천에 옮기면 예상하지 못했던 크고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다음과 같은 작은 '중단'으로 자신을 한번 시험해 보라.
*매일 다니던 출근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 보자. 아니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봐도 좋다.*일단 일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일 경우, 어떤 일을 반만 끝낸 채로 내버려두자.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어느 날은 왠지 모르게 내키지 않는 일부터 처리해 보라.*무언가를 찾을 수 없을 때 그냥 포기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돌려보자.
*전화벨이 울릴 때 전화를 받지 말아 보자.
이런 작은 실험 등을 통해서도 이미 호기심은 번쩍 깨어났을 것이다. 무언가를 놓아버렸을 때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놓아버리기는 변화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놓아버리고 나면 손이 자유로워진다.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습관에서 벗어나면서 얻는 것이 한 조각 자그마한 자유라 하더라도 이미 그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발견에 이르게 된다.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 우리가 그 선택에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그리고 그 작은 모험으로 인해 이미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풍요로워 지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놓아버리기는 이어져 있는 끈을 끊는 것이다. 더 이상 잡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무언가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뛰쳐나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다.
놓아버리기가 아닌 것놓아버리기는 포기와 다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놓아버리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일종의 포기를 생각한다. 삶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엄숙하게 운명에 몸을 맡기는 모습, 어떤 저항도 어떤 반항도, 아무런 호기심도 허락하지 않은 숙명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포기는 사람을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그런 관념은 삶에 대해 적대적이기에 모든 감동을 그 싹부터 질식시켜 버린다. 포기는 말하자면 놓아버리기의 정반대인 셈이다. 포기하는 태도에는 참여의 의미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미로 놓아버리는 사람은 거리를 두기는 하나 절대 감정까지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곧바로 희생자의 역할이나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놓아버리기는 자포자기, 자기 동정 혹은 자기 부정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수동적이고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그런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런 성질이 얼마나 쉽게 전염되는지를 알고 있다. 사랑의 기쁨과 생활의 재미가 덧없이 스러진다. 자신이 지녔던 생명력과 탄력을 잃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놓아버리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놓아버리기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에게 불쾌한 일을 그냥 잊어버리고 다시 이해해 보자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슬쩍 감추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놓아버리기는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다. 자기 역시 어쩔 수 없이 상처입고, 고통을 받고,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련의 충격적인 경험들을 한 후에야 미몽에서 깨어나 이런 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잡기와 놓아버리기'의 절묘한 균형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 넣어주고,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진정으로 놓아버리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놓아버리기란 무엇인가놓아버리기는 우리가 가진 종속성, 두려움 그리고 공격성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처리해 나가면서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삶의 자세라는 의미에서 놓아버리기는 지배의 자세, 집착하고 부인하고 착취하는 자세와 정면으로 맞선다. 우리는 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하거나 소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존재하고, 느끼고, 생겨나게 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놓아버리기는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피아노를 배울 때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놓아버리기 역시 연습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투자해야 하고, 언제나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놓아버리기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과나무는 잘 익은 사과들을 그냥 편안하게 떨어뜨린다. 양귀비꽃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꽃잎을 떨군다. 동물들은 털갈이를 하고, 피부색을 바꾼다. 그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아낌없이 놓아버리는 피조물들이다.
'놓아버리기'가 어려운 까닭왜 우리는 때가 되면 자기 잎을 떨어뜨리는 접시꽃처럼, 혹은 잘 익은 열매를 땅에 떨어뜨리는 배나무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그렇게 애쓰지 않고 놓아버릴 수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놓아버릴 생각을 하면 으레 고통, 손실 혹은 포기를 떠올리는 것일까? 인간은 식물과는 달리 놓아버리기를 익히고 연습해야 한다. 이것은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과 비교할 수 있다. 근육은 지속적인 운동 없이는 유연하고 강하며 탄력 있는 모습이 될 수 없다. 삶에 대해 자신 있게 긍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훈련과 자기 이해가 필수인 것이다.
보기에 너무나 쉬울 듯한 놓아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다지 큰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손에 쥐고 있는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이제 그 연필을 놓아 버리자. 당신의 반응은 어떠한가? 힘들이지 않고 그냥 쉽게 손가락을 벌리는데 성공했는가? 혹시 경련을 일으키진 않았는지? 연필을 그냥 내던졌는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가? 어디엔가 꽂아 놓았는가? 아니면 서랍에 잘 넣어 두었는가? 이 과제는 너무나 뻔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결정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손가락을 펴고 놓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행동마저 혼돈을 일으키거나 적어도 서투르게 보일 정도로 우리는 무언가 잡으려 애를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잡기와 놓기,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된 장비들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이 놓기보다는 쥐고 있기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다. 나는 여기에 우리의 교육과 사회화 과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벌을 준다거나, 사랑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어 아이에게 복종심을 심어 주는 교육은 아이들을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주어진 규범을 어길까, 실패의 불행에 빠져 들까, 끊임없이 두려워하게 된다. 각자 자신에게 가장 정확하게 어울리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규칙과 규범, 그리고 이상에 대해 의무감을 느끼고, 그런 것들에 적응하려고 애쓰게 된다. 잡기의 장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적응하는 사람은 두려움, 갈등, 그리고 사랑의 허무함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확실하고 더 편안한 길이기는 하지만, 더 크게 긴장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놓아버리기도 배울 수 있다놓아버리기는 '미루기'가 아니다. 미루기 위한 전략은 벌써 오래 전부터 현대인의 재산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전략들은 대개 속도를 줄이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다중 선택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이다. 흔히 사람들은 미루기와 관련해서 음식 보존 방법, 얼굴 주름개선 관리법 또는 내키지 않는 요구들이 저절로 수그러들게 하기 위한 정치가들의 전법 정도만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놓아버리기는 어떻게 익힐 수 있을까? 가장 좋은 것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다.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물건을 잡아보자. 공이나 털실 뭉치 아니면 작은 조약돌도 좋겠다.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손을 펼 때 이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주로 사용하는 손에 선택한 물건을 쥐고 다른 손에는 '놓아버리기'의 신호를 만들자. 엄지와 검지의 끝을 누르는 것으로 신호를 삼을 수 있다. 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물건을 놓아보자. 이런 단순한 엄지와 검지의 접촉이 놓아버리기의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이 신호를 짜증이 밀려오게 만드는 다른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작은 것들, 짧은 순간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어쩌면 의미 없어 보일수도 있는 그 작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놓아버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우리는 이른바 커다란 것들에 대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커다란 가치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평화를 찾자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비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마음에 담아 둘만한 최고의 명답이었다. "넘치는 것을 없애 버려라." 그는 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예술 작품을 자유롭게 풀어놓기 위해 조각 작품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것이 없어질 때까지 돌을 쪼고 또 쪼았다. 물론 우리의 삶은 돌 속에 숨겨져 있지 않다. 우리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서 있고, 따라서 끊임없는 변화에 내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아니오"를 말하는 힘, 지나친 것, 잘못된 방향으로 휘어진 것, 불필요한 것을 놓아버리는 힘, 우리는 본래 우리에게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잘라버리는 연습을 함으로써 이런 힘들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본질적인 것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자동적으로 이런 의문에 부딪힌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치료했던 한 환자는 그 대답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했다. "나는 내 곁에 있고 싶어요." '자기 곁에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평화를 찾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평화를 안겨주기 시작하면, 우리 곁에는 단순함이 자리 잡게 된다. 점차 삶의 열매들을 공연히 금빛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실과 함정, 그리고 유혹들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부를 통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점 더 자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자기중심주의, 즉 우리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수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에 유연함을 부여한다. 우리는 삶이 해치워야 하는 일들로 짜여진 목록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몇 가지는 해결하지 못하고 남게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직시한다면, 아마도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놓아버리는 데에 내딛는 걸음을 즐기면서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걸음, 큰 효과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몇 년에 걸쳐서 사람들이 실패하는 주된 이유가 말도 안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를 위해 전력을 기울여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발전은 오직 세심하고 주의 깊은 균형 잡기 속에서만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비판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게 이루어진다. 사실 그것이 상당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 세상을 바라보기에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자기를 비판하고 질책하면서 동시에 동정심을 갖게 된다. "제대로 했다면 혹은 더 굳은 의지만 있었다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가 실패에 이른 진정한 이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따라 목표와 방법을 수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질책과 정당화에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다.
너무 높게 세워놓은 이상을 포기하고 그 결과 변화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해도, 삶의 현실과 친해지는 데 성공하면, 멈추지 않던 긴장이 드디어 잦아들고 오히려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그것이 모든 문제들이 눈 녹듯이 해결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잘못과 실망들에도 불구하고 좀 더 견딜 만하고, 좀 더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적당히 긴 시야를 가질 때 무언가 단순한 것, 다시 말해 다른 누군가가 제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을 더욱 성공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너무 멀리까지 바라보는 사람은 불필요한 긴장을 갖게 된다. 다른 쪽으로 한 걸음 비켜서서, 그 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목표로 가까이 접근하는 길임을 깨닫는 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추구하는 목표가 있는가? 사실적인 계획들을 세워보는 것이 어떨까? 실현 가능한 작은 걸음은 성공의 기회를 높여주고, 준비가 되었을 때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힘과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