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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희망으로

존 파피 지음 | 골든이글
당신은 감정보다 행동이 앞서는가?



어머니는 내 바로 위로 형을 낳고 임신했으나 유산했다. 이후 나를 어렵게 임신하였다. 그 당시 어머니는 이미 세 명의 아들을 돌보느라 지치고 쉴 틈이 없었다고 한다. 나를 낳으실 때쯤엔 그저 모든 것이 힘들어 빨리 해산하기만을 바라셨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번이나 심한 복통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고통 속에서 나를 낳으셨기에, 무언가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 하셨다. 산모회복실에서 아버지의 표정을 본 순간, 어머니는 자신의 불안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여보… 아이한테 팔이 없소, 우리 아이한테…." 어머니는 넋이 나간 채 있다가 천천히 기도문을 꺼냈다. 그리고 몇 장을 뒤적이시다 마로닉 신부님께 전화를 했다.

20분 뒤, 신부님이 병실로 오셨고, 이어서 간호사가 나를 어머니께 데려왔다. 어머니 팔에 내가 조심스레 놓여졌을 때, 어머니는 포대기를 들춰 팔이 있어야 할 매끈한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가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아이에게 다리를 주셔서!" 어머니는 나를 싸서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어머니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점점 통곡으로 이어졌다.



부모님이 내가 가진 장애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을까? 물론이다. 임신 2개월 째 어머니는 지독한 홍콩 독감을 앓았었는데, 의사들은 아마도 그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부모님은 처음엔 '왜'냐고 거듭 물었지만, 곧 '왜'라는 질문에 대해 의사들은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병원 요람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본 순간,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아나 숨고 싶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양 팔이 없는 데다, 엉덩이 양쪽은 심하게 기형이였으며, 척추 이상으로 휜 등에 눈동자는 흐릿했다. 어머니는 심적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은 후 사랑과 애정으로 나를 대해 주었지만,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모든 상황을 원망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마로닉 신부님을 찾았다. 그리고 신부님께 자신의 고통과 상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신부님은 어머니를 감싸 안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캐롤,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아라." 두 분은 하느님께 나를 통한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후 어머니는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에 세 가지 중요한 지침을 깨닫게 되셨다. 그것은 첫째, 감정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인식했다. 둘째,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느님이 뜻하신 대로 살되, 또한 동시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자로서 자기 인생을 이끌어야 함을 자각했다. 셋째, 어머니가 내게 가졌던 기대보다 내가 앞으로 나 자신에게 가져야 할 기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셨다.



당신은 어떤 제약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형을 가진 사람을 부를 때 일관성이 없다. 장애인, 불구자, 장애우 등등. 개인적으로 호칭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 단어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제약을 가진' 사람을 택하겠다. 사실, 누구나가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제약을 갖고 있다. 그 중 신체적인 제약만이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당신의 특수한 제약이 주는 시련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당신이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경험하고 싶은 일들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가진 제약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선택에 매일 직면한다. 회피하거나 굴복하거나 또는 조절하기, 아니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이다.



'회피하기'는 지극히 수동적인 선택이다. 이런 유형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태만한 정신 상태를 즐긴다. 극단적인 회피는 자기 인생에 있어 어떠한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남이 대신 결정을 내려주고, 보살펴주고, 자기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길 바란다. 금전적으로, 감정적으로 자신이 짊어진 짐을 타인에게 떠넘긴다. 회피하기는 자신의 제약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이다.



'굴복하기'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제약을 인식하기는 하지만 그 무게에 압도당한다. 이 유형의 사람은 마치, 수컷 사자 앞에서 무조건 공포에 떠는 동물 격이다. 이것은 자신의 제약에 부정적인 반응부터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번 부정적 반응이 시작되면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길들여지고 만다. 제약에 종속당하고 마는 것이다.



'조절하기'에 속하는 사람은 솔직하게 자신의 제약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자신에게 해결할 능력은 있는지 가늠해 본다. 그런 다음 해결책이나 대안, 창의적인 방법에 자신을 맞추고자 한다. 바로, '초점'을 맞추어 전체를 살피는 것이다. 초점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어떤 조건들을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의 첫 단계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택한 방법을 초지일관 밀고나가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기에는 특히 '몰입하기'라는 부차적 행동이 필수이다. 몰입하기란 어떤 때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풀이해야 하는 심리학적 선택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런 소리를 혼잣말하듯 중얼댄다. "나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을 경험하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진 제약을 극복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회피하기를 선택한 사람에게 발전은 없다. 굴복하기를 택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제약에 맞서 조절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가능한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그 해결책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때론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도 할 수 있는가?



내가 태어난 지 일 년 반 정도 지나자, 살던 집이 좁다고 느끼셨던 부모님은 새 집을 알아보시다가 마땅치 않자 고향에서 십 마일쯤 떨어진 팀버랜드의 사과 농장을 택해 그곳에 터를 잡고, 언덕 옆 잔잔한 호숫가 근처에 집을 지으셨다. 집안 창문은 모두 내가 어깨로 여닫기 쉽게 현대식 미닫이 유리문을 달았다. 집안의 모든 스위치는 평균보다 낮게 90센티미터쯤으로 낮춰 달았다. 내가 어깨로 켜고 끌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에는 레버 손잡이를 달아서 턱이나 어깨로 실내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부모님은 나를 위해 집안의 모든 장치나 구조를 꼼꼼하게 개조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나도 조금씩 걸음마를 배워 나갔고, 마침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과수원 안에 지어진 우리의 새 집 마당은 넓었다. 부모님은 내 밑으로 론과 짐 두 아이를 더 낳으셨다. 그래서 모두 합해 여섯 명의 사내아이들을 키우게 되었다. 형들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숲길을 달리거나, 나무에 오르거나 연못에 있는 조각배를 타고 뱀이나 개구리를 잡기도 했다. 이런 바깥 놀이는 형제애를 돈독히 했지만, 동시에 나는 점점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자전거를 탈 수도, 나무에 오를 수도, 노를 저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는 반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문을 받아야 했다. 나는 어색해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네나 철봉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운동장 구석에 앉아있을 때면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만 집착해서 생각했는데, 그 목록은 끔찍하게도 많았다.

- 나는 옷을 입거나 단추를 풀 수 없다.

- 나는 혼자서 화장실 볼일을 볼 수 없다.

- 나는 자전거, 야구, 가위질을 할 수 없다.

- 나는 신발 끈을 맬 수 없다.

이러한 부정적 생각에 한 번 빠지자,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점점 더 좌절감을 느꼈다. 그리고 좌절감은 분노와 자기 연민으로 이어졌다. 드디어 난 얼마 지나지 않아 뭐든지 "난 못해." 소리부터 내뱉는 어둡고 고집스런 아이가 되었다. 일단 이런 상태까지 가면 자존심은 실질적으로 사라져버린다. 아닌 것, 할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가치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자기존중감을 잃어가고 있다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당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들, 당신의 좋은 친구들을 제쳐놓고 부정적인 면에만 집작하는 것은 아닌가? 좌절과 분노가 쌓이면 결국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에 직면한다. 너무나 다급하고 광분한 상태로 폭발하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를 포함하여 심지어는 자기 인생마저도 파괴된다. 그러나 좌절과 분노의 부정적인 힘을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면 역설적으로 좋은 결과가 생긴다. 그것은 사랑의 문제이다. 자신을 사랑하는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가? 신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승화를 주는 변화를 선택할 것이다.



변화할 만큼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는가?



부모님은 자립심을 길러 주고자, 내 옷을 혼자 입고 벗기 편하게 고쳐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옷들은 모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난, 그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변형된 옷은 결국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5학년이 되자 난 거의 모두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부정적인 태도는,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집에선 부모님께 거칠고 버릇없는 말을 내뱉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날 오후 교장 선생님은 고학년 학생들을 강당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어떤 강사분이 나와 여름 캠프 일정을 소개했다. 일정은 통나무집에서 자는 것, 말 타기, 심야 등반, 캠프파이어, 개척자와 인디언 게임 등 말만 들어도 흥분이 되는 것들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날듯이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니께 캠프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식사 후 부모님이 커피를 들고 뒷마당으로 나가자 나는 얼른 뒤따라가 캠프 참가 동의서에 서명해 달라고 말했다. 두 분은 흔들의자에 앉아 어둠을 바라보며 커피만 마실 뿐이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여셨다. "얘야, 넌 캠프에 갈 수 없단다." 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왜죠?" "네 자신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넌 혼자서 화장실도 못가잖니." 어머니의 목소리엔 실망이 섞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린 널 도우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넌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잖니."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그날 내가 잠이 들자, 어머니는 나를 제외한 모든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어느 누구도 존을 도와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을 스스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고나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날 아침도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론을 불렀다. "야 뭐해, 빨리 입혀줘." 난 발목에 바지를 건채 동생을 재촉했다. 론은 슬며시 내 눈을 외면하면서 말했다. "안 돼, 어머니가 못하게 하셨어." 그 말에 난 너무나 화가 났다. 어머니가 캠프에 못 가게 한 것은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옷도 입지 않은 채 어머니 방으로 갔다. 그리고 울며불며 소리쳤다. 울부짖다 내가 지칠 대로 지치자, 어머니는 말없이 방을 나가셨다.

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은 채 혼자 남겨졌다. 하루 종일 벌거벗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바짓가랑이에 발을 넣고 바닥에 누웠다. 그런 다음 발을 쳐들자 중력의 도움으로 바지가 엉덩이까지 흘러내려왔다. 재빨리 일어나 무릎을 구부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바지는 엉덩이 근처에 걸려 있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엉덩이의 바지를 올리는 동안 바지허리를 잡아 줄 것이 없나 방을 둘러보았다. 서랍장 손잡이가 눈에 띄었다. 발끝을 세워 손잡이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서랍장이 움직이면서 스탠드와 장식품들이 흔들렸다. 벨트 고리를 손잡이에 걸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땀만 비 오듯 하고 소용이 없었다. 짠 땀방울이 눈에 들어와 몹시 따가웠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몇 차례를 시도하다 탈진한 나는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입이 마르고 콧물까지 흘렀다. 시간은 정지된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채 혼자 남겨지고 나니, 내게 내 자신이 보였다. 냉정해진, 그리고 또렷해진 의식 저편으로 연민과 안타까움과 고통이 가물가물 스러져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역설적으로 난 나를 감싸고 있는 어떤 존재를 느꼈다. 내면으로부터 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 나를 받아들인다면 내가 널 돕겠다." 난 대답했다. "네, 받아들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내 문제에 있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고집을 버리고 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에게 화를 내면 부정적인 태도에 종속당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을 존중하면 스스로 강해져 제약에 맞서 싸우게 된다. 감정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다음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셔츠를 고쳐 주셨다. 나는 멜빵바지를 입고 발가락 양말도 신었다. 아버지는 벨트 고리를 걸어 바지를 올릴 수 있도록 손잡이를 내 키에 맞춰 달아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난 다음 해에 여름캠프에 갈 수 있었다.



그날 어머니의 행동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어머니는 매순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모진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마음이 아픈 법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진 사랑을 받는 것에만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자신에게 모진 사랑을 줄 때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인 모진 사랑은 자신을 추켜세우는 채찍질 같은 것이다. 모진 사랑은 객관성과 이성을 가지고 주는 사랑이다. 우리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기 위해서는 모진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야 한다. 당신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가?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인가?



지금도 난 다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나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나도 내 침대를 스스로 정리한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서서 발가락으로 이불을 펴면 끝이다. 면도도 한다. 낮게 달린 거울 앞에서, 발로 면도기를 들고 쓱쓱 문지르면 되는 것이다. 머리 빗는 것도 쉽다. 발가락 사이에 빗을 끼워 머리까지 올리고 빗는데, 왼발 오른발 번갈아가며 양쪽 머리를 빗어 내린다. 나는 요리하는 일도 아주 좋아해서 주방 정리라면 일가견이 있다. 당신은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을 때 손을 씻겠지만, 난 발을 씻는다. 팔목에 시계를 찰 순 없지만, 대신 발목에 찬다. 나는 팔을 벌려 당신을 안을 수는 없지만 당신을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단점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나면 변화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자신을 부정하는 싸움을 멈추면, 우리가 가진 제약과 발전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의 대처, 조절, 보상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 '각자에게 맞는 해결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난 다른 사람들이 디자인하고 건축한 오래된 집에 산다. 다만, 이전과 다르게 실내장식과 가구배치를 바꿨다. 그래야 내 삶의 방식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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