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부모를 열받게 하는 10대 자녀와 행복해지는 법
루이즈 펠튼 트레이시 지음 | 글담
아이의 성장을 인정하고 부모도 변하라과거에는 청소년 문제의 초점이 고등학생들에게 맞춰져 있었지만 이제는 중학생 이하로까지 내려가 있다.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청소년들이 술과 담배를 처음으로 접하는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말경이다. 부모와 교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결석하고, 거친 말을 해대고, 담배를 피우고 개중에는 절도 등의 범법행위를 저질러 소년원에 가게 되는 아이들도 나온다. 우리의 아이들은 너무도 빨리 자란다. 부모들은 자녀 문제를 놓고 학교 선생님과 상의하고, 공부 시간을 정해 놓고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인다. 자녀의 전화 통화를 엿듣고 감시를 더한다. 부모란 으레 안달복달하며 훈계나 늘어놓는 존재처럼 되어 버린다.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눠보자고 모처럼 자녀와 마주 앉은 자리는 언쟁과 규탄, 징벌로 마무리되고 만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만 해, 말 들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그럴수록 자녀들은 흘려듣기만 할 뿐이다.
부모들이 아무리 자녀들을 사랑하고 지혜롭게 키우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해도 자녀들은 부모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10대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라면 "내가 과연 제대로 된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자주 느낄 것이다. 또한 '아이를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자녀와의 일체감을 안겨 주기는커녕 상처만 초래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왜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성장한 뒤 어릴 때 자신들이 받았던 벌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자신들이 당시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부모 가슴에 꽂는 비수를 그대로 맞을 수만은 없다. 우리 부모들은 더 나은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 가족에게도 유난히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남편 건강이 나빠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던 시절, 우리 집 여섯 아이들은 초, 중, 고, 대학생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협박도 했고 강제로 끌어오기도 했고 외출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소리 지르고 명령하고 요구하고 때로는 체벌도 가했다. 우리들은 점점 더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걱정근심이 끊이지 않았다.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의 행동도 미웠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내가 취하는 행동들이 더 싫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던 시절 우리 부부가 느꼈던 안일한 자기만족감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지저분하지 않을 정도로 집정리하고 가족들이 각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조차도 일일이 신경 쓰며 잔소리를 해대야 했다. 이런 상태는 우리 부부를 화나게 만들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우리 부부는 낮에 자식들과 싸우며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지역 상담실 상담원에서 공립학교의 상담교사 자리로 옮기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수개월 동안 교육을 받게 되었다. 하루는 커뮤니케이션 수업에 들어갔는데 칠판에 '판단'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강사는, "여러분들이 누군가에 대한 판단 행위를 할 때마다 이를 적어 두세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소신을 피력하거나, 제안을 하는 행위 등이 모두 판단 행위에 해당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과제를 받아온 나는 그 뒤 며칠 동안 집에서 가족들에게 한 말들을 모조리 적어야 했다. 내가 개입하는 범위는 광범위했다. 나는 여섯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나가야 하는 바쁜 엄마였기에 매사가 제대로 빠르게 자리잡혀져야만 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생각했고, 훌륭한 부모라면 으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커뮤니케이션 수업의 과제물이 나로 하여금 여태까지 해 왔던 방식을 중지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간 우리는 아이들에게 옳고 좋은 것만 알려줬으며 실패, 곤란, 병, 고통 같은 안 좋은 경험들은 아이들이 겪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임에도 많은 부모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려고 애쓴다. 아이들에게는 신체적, 사회적, 감정적으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연신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각종 매스컴에서는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는 부모에게 있다.'라고 떠들어대니, 부모들로서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라는 믿음은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자라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감정 성장의 기회를 제한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실수를 저지를 권리가 있고, 실수들을 통해 배울 권리가 있다.
어느 가정이나 부모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장애물들이 있다. 우리 부부도 자문해 보았다. "엄마가 전업주부로 계속 집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돌봤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을까? 아이들을 좀더 적게 낳았더라면, 아이한테 알레르기가 없었더라면, 아빠에게 청각장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장애물들은 부모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것들 때문에 근심하고 자기 탓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에 대해 부모는 이를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유별나게 더 신경을 쏟아 붓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을 더 많이 쏟아 붓는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로 바뀌지는 않는다. 부모들은 불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자녀의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이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한시적으로 자녀의 특정 행동을 바꾸어 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들이 내세우는 기준을 아이들이 동의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는 볼 수는 없다.
아이들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부모들의 자녀교육방식도 거기에 맞춰나갈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학생 자녀들은 신체적으로 성숙해지고 사회적으로 성숙해지는 속도에 맞추어 감정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필요했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시키지 않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아이들에게 대화하도록 가르쳤는가, 언쟁하도록 가르쳤는가?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커나갈 수 있게 이끌었는가, 단순히 복종하도록 만들었는가?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은 대수롭게 보이지 않는 상황도 장차 많은 문제들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우리 부부가 도달한 결론은 '바꿔 보자'였다. 항상 그렇게 해 왔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문제는 자녀에게 맡겨라그간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인생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간섭했음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과연 우리가 정말 바뀔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난 18년간 자녀들을 키워오면서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의 케케묵은 양육 방식이 아이들을 위해서도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라는 새로운 증거들이 매일매일 보여짐으로써 우리 부부를 반성할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등교한 뒤 나는 아이들과 관련해 걱정하고,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일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았다. 그런 다음 내 자신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ㆍ이 사태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ㆍ문제해결 방법을 누가 생각해야 하는가?
ㆍ해결해 나갈 힘은 누가 지니고 있는가?
몇몇 문제에는 아이들 이름을, 몇몇 문제에는 내 이름을 적었다. 물론 모든 문제들이 한 사람에 의해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직접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확실히 구분짓기로 마음 먹었다. 위에 세 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니 우리 부부가 주로 나서는 부분은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담교사 교육에는 저명한 상담가 칼 로저스가 자신에게 상담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 주었는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있었다. 내가 특히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칼 로저스는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자신의 판단, 느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성인 피상담인들을 대할 때 해오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 먼저 나는 아이들이 말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들어준 뒤 내 입을 통해 다시 요약하여 말해보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했음을 말로 표현하거나 보여주기로 했다. 그런 다음 이해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확인받고 원할 경우 주제와 관련된 정보를 더 주거나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경우 고치기로 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한다면 단정적 발언을 바로 내뱉는 것과, 아이들과 언쟁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서둘러 나서던 습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화로의 첫걸음은 무엇을 변화시킬지를 아는 것이다.
그날은 저녁 모임이 있어 나는 늦게서야 집에 왔다. 식탁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6학년 지니가 나를 보자 일침을 쏘았다. "엄마, 너무 끔찍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상상도 못할 거야. 엄마 방에 가서 얘기할래요?" 지니의 친구 하나가 다음 주 주말에 자기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함께 놀고 자고 가는 파티에 지니도 부를 것인지를 놓고 친구들과 얘기했는데, 그 결과 파티에 부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아이에게 내가 내린 판단을 말해 주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을지를 코치해 주었을 것이다.
"글쎄 엄마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너는 그 문제로 하루 종일 고민했으니 무언가 생각해 본 게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입술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내일 학교에 가서 평상시처럼 행동할래요. 미소도 보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겠지만 걔네들하고 함께 어울리진 않을래요." 아이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는 덧붙였다. "걔네들은 이제 내 친구가 아니야. 다른 친구들을 사귈 거예요." 일단 아이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놓아두면 아이들은 부모가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지게 풀어간다.
밤늦은 시각, 열세 살의 테레사가 욕실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우는 아이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엄만 중학교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예요. 내게는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요." 이 무렵 나는 애들 페이퍼와 엘레인 매즐리쉬가 쓴 『해방된 부모, 자유를 찾은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하임 지놋 박사의 주장이 문득 떠올랐다. 지놋 박사는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아이에게 이미 행동을 변화시킨 것처럼 대할 것을 제안했다. 내가 정한 가이드라인은 간단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인기 많은 언니 델라를 대할 때처럼, 테레사를 대하는 것이었다. "너는 그간 무척 노력해 왔어. 엄마가 제안한 것 훨씬 이상으로 말이다. 지금 당장은 확실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구나. 어쩌면 지금 이 시기는 외로움을 타게 되는 시기일지도 모르지. 이럴 때 네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그로부터 며칠 뒤, 테레사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차고 뒤에 빈터 있잖아요. 내가 그곳을 치우고 일궈서 화초를 심고 보도블록을 깔아 놔도 될까요?" 우리의 얌전한 딸은 그 뒤 10여 분 간 자신이 얼마나 화초를 잘 가꾸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이후 편물가게, 취미공방, 골동품점 사람들은 테레사의 관심과 노력을 알게 되었고, 색채 감각과 디자인 안목과 꼼꼼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테레사의 관심 분야는 단체 활동이나 경쟁성, 사회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것은 테레사의 개성을 만들어 주었다. 장점으로 확실하게 키워 주었고,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성장, 자신감, 자긍심은 모두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 테레사는 가족과 일과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재능 있고 다채롭고 행복해 하는 성인이 되어 있다.
해결해주지 말고 도와주어라당신은 자잘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이와 관련하여 자녀들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를 감수하도록 마음먹었다.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많은 선택 경험을 거쳐 그 결과를 체험함으로써 배우게 되는 복잡한 기술이다. 따라서 부모들이 위험 부담이 없고 치러야 하는 대가가 크지 않은 것만을 배우게 한다면 자녀들은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소중한 경험을 놓치게 될 것이다. 먼
저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발 벗고 나설 때 자녀들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런 다음 부모가 문제 해결 역할에서 발을 빼고 자연적 귀결을 허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자.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 1년 동안에 부정적 반응 패턴이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학부모 호출이 있을 때 부모들은 즉각 거기에 대응한다.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공부 시간을 정해 주고,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를 검사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아이는 점차 거기에 길들여진다. 일단 아이의 성적만 잘 나온다면 특별한 문제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 부모의 자녀 행동 조절 능력은 아이에게도 의지가 있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거의 모든 부모의 훈육은 아이의 행동을 어느 정도 바꿔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①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인이 믿을 때, ②아이가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얻고 잃고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에 대한 가치를 파악하고 있을 때, ③부모의 통제로부터 자유를 원할 때 성공이 이루어진다.
자녀는 부모가 가치 있다고 여기고 바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부모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아야 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아이 스스로 가치를 두는 것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성취를 이루기 위해 아이가 기꺼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부모들도 이것이 진리임을 안다. 하지만 바로 두려움이 인다. "그릇된 선택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 스스로 내린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면, 입시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문제라면 스스로를 안심시켜라. 충분한 준비도 없이 자녀를 세상에 내몰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믿어야 한다.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세웠고 자신들을 위한 가장 절실한 목표를 알고 있다. 자녀들이 지혜롭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적 귀결이 그들을 가르칠 시간이 아닐까?
나는 자연적 귀결을 '아이들이 일상생활을 통해 자신이 취한 행동의 직접적 결과를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 쉽게 풀어보자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실패와 좌절, 기쁨과 환희를 직접 겪어 보는 것'이라 정의한다. 부모가 훈계하고, 충고하고, 협박하지 않고, 화내거나 벌주거나 비난하지 않고 결과를 수용할 때 자연적 귀결은 가장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생을 체험할 때 보듬고 기운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아이는 당황할 것이다. 부모의 비난이나 간섭 없이 자기 스스로에게 실망해 보는 자리도 갖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는 그런 모든 것들을 성장의 디딤돌로 이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부여하라. 자녀들은 힘을 기를 필요가 있고, 또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자. 전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