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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지음 | 갤리온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듣기 싫지만 많이 하는 말 '나잇값'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을 날마다 조금씩 먹어치운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는 그동안 먹은 시간의 무게가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이 무게를 나잇값이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나에게 먹은 밥값을 하듯 나잇값을 하라고 독촉한다.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세월은 자기 멋대로 내 안에 들어와 놓고 이제 그 값을 내라고 나를 옥죈다. 마지막에는 그 나잇값을 대신 내놓으라는 듯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간다. 그러고 보면 세월은 참 매정하고 잔인하다.

어른은 자기에게 짐 지워진 나잇값에 짓눌리고 당혹해한다. 우리는 흔히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둘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자기중심적인가, 현실중심적인가 하는 행동방식에 있다. 다시 말하면 쾌락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아이이고, 현실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현실의 이모저모를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애늙은이'라 부른다. 반면 어른이 현실은 제쳐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들면 '철이 덜 든 사람'이라 부른다.



나잇값에 대한 기대치도 막중하다. 어른이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명제는 어른이 된 순간부터 자타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하나의 짐이 된다. 어른이라면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잘 벌어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결혼도 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른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쉽게 동요되거나 흥분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이성을 유지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해서도 안 되고, 사소한 일로 너무 좋아하거나 화내서도 안 된다. 어른이면 자고로 진득해야 한다. 감정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며, 아무리 슬퍼도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어른은 모든 일에 있어 이래서도 안 되고 저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많은 규제가 뒤따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른이라는 게 뭘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어른에게 이토록 많은 것을 기대하고 짐을 지우는 것일까?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짐은 무겁고 힘들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그 짐을 내가 드는 순간,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거나 시냇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오솔길로 가도 되고 큰 길로 가도 된다. 가다가 낮잠을 잘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것을 주울 수도 있다. 물론 그러다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독특한 영혼을 가진 존재다. 그래서 각자의 얼굴에는 자신만의 역사가 쓰여 있다. 내 맘과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이 얼마나 있을까?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그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것들로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서로를 발견해 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보완하고 충고하면서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 안에서 인생을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내 세계는 넓어진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세계가 더 넓어지고 더 유연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한다.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해보는 것, 그러면 이제껏 나를 불안하게 만든 요인들이 사라진다. 사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 살아가기. 그것은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나이들어간다는 것의 묘미이고,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일 것이다.



왜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는 걸까?

어른이 된 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갑자기 엄습해오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불안장애는 가장 흔한 심리적 문제다. 시험이나 면접 같은 불안 요인이 뚜렷한 경우도 있지만 별 이유 없이 막연히 불안해질 때도 있다. 불안은 정신분석으로 보면 대부분 '예기불안'이다. 이러다가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문제는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치는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다. 이런 불안은 특히 젊은 성인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성인은 그동안 성장하며 수많은 갈등을 추스르고 해결하면서 정신구조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균형을 이룬 상태다. 그런데 왜 성인이 되어 이런 일이 생기느냐 말이다.



살면서 우리가 받는 상처는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다. 어른에게는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갈등이 있는데, 거기에다 현재에 부딪치는 현실적인 갈등이 더해지면 더 많은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어른이라서 어른답게 흔들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잘 견디고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은 갈등을 마음놓고 드러내지 못하며, 따라서 슬픔이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어른이 된 뒤 불안장애 같은 신경증적 증세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어른이라고 항상 강한 것은 아니다. 어른도 쉽게 상처받고 슬퍼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불안을 억지로 막으려 하면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불안은 어느 정도까지 점점 강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그러든다. 대부분 불안은 오래가지 않는다. 걱정하는 것처럼 무슨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불안의 근원은 분명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그것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어릴 때의 창피하고 무서웠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불안과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 된다. 그러면 불안은 멀리 흘러간다.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불안을 달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사랑, 노력해도 맘대로 안 되는 이유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 말은 우리 가슴 밑바닥 속에 잠자고 있는 어떤 열망을 깨워 놓는다. 스탕달의 말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우선 경탄과 환상 그리고 적어도 한 가닥의 희망이 일어나고 곧 의심이 뒤따르게 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사랑은 모순덩어리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시험하는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를 여는 작업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서로의 내면에 좀더 깊이 다가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가까워지면 자신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상대에게 속할 것 같은 두려움과 함께, 상대에게 조종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자율성을 지키고 싶은 욕구 등이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상처가 복병처럼 숨어 있는 계곡들을 거쳐야만 한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을 유지하려면 나와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신뢰란 내 마음 안에 어떤 위험한 것이 있든 나는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비록 그런 요소들이 있다해도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실망스러운 면을 발견해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인격과 사랑에서 변하지 않는 감정을 확신하는 것이다. 배려란 상대가 나와 다른 인간임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을 말한다.



사랑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점점 더 깊어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이때 사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원하며 배려할 수 있고 서로 신뢰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상처가 두려워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는 사람,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중요한 건 사랑의 치명적인 상처를 어떻게 피해가며,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이다.





혹시 당신도 어른으로 사는 게 두려운가?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상처받은 아이가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분노하며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면, 그건 대부분 그 아이의 분노와 슬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자꾸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어떤 특정한 시각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그 아이가 사람을 보는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거라고 보면 틀림없다.



우리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발달하고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인생이란 평생을 걸려 '나'라는 집을 짓는 과정과도 같다. 살면서 삶의 방향을 교정하고 수정할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상처 없는 삶은 없다는 데 있다. 아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아무도 알아차려 주지 않고 치료해주지 않으면 그 상처는 깊은 상흔을 남기고 마음 안으로 숨어 버린다. 그리고 더 이상 발달을 멈추어 버린다. 물론 어느 한 부분이 발달을 멈추었다고 그 아이의 전체적인 발달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은 부분을 제외한 다른 곳들은 발달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 결과 지적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서적으로는 매우 미숙한 사람이 되는 등 불균형한 발달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상처 입고 안으로 숨어 들어간 아이의 시간은 과거에서 정지되어 버린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는 살면서 과거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엄마와 떨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청소년기 때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이때는 심한 성장통을 앓게 되는데, 정상적인 성장통에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성장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내 마음속 상처 입은 아이도 고통에서 벗어나 자라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만일 당신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혹시 그 고통이 내 마음속 아이가 몸부림치면서 내는 소리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성장하고 싶어서 내는 소리라면 우리는 그 아이가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먼저 울음을 참고 있던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어디가 아팠는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가 자기의 상처를 내보이고 그것을 도려내거나 약을 바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의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제2의 성장통을 겪는다.



제2의 성장통이 어떤 특정 시기에만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순 살이 넘어서도 올 수 있다. 우리가 그 아이의 아픔을 보길 원하고, 상처가 치유되길 원한다면, 고통을 이겨낸 아이가 더 이상 밤마다 울지 않을 수 있다면, 밝게 웃으며 잠들 수 있다면, 그래서 멈춰있던 성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제2의 성장통은 충분히 겪을 가치가 있다.



왜 떠올리기 싫은 과거와 만나야 하는가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닌게 아니라 바람 부는 날에는 그 동굴에서 흐느끼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되면 시커먼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도 그 동굴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안에 있는 샘물이었다. 날이 가물어 먹을 물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괴물이 무서워서 아무도 선뜻 동굴 안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유명한 동굴 탐험가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가 앞장서서 비추는 불빛을 따라 동굴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니 어디선가 사각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탐험가가 등불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작은 쥐 몇 마리가 과일을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닌가. 동굴 안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저 조그만 쥐였구나. 쥐가 과일을 갉아먹는 소리가 바람에 울려 그렇게 크게 들렸고, 동굴 반대편으로 들어오는 달빛 때문에 쥐의 그림자가 그렇게 크게 일렁거렸던 거구나.' 이후 사람들은 안심하고 샘물을 길어다 먹을 수 있었다.



정신분석은 바로 이런 과정과 같다. 동굴은 우리의 무의식이고 그 안에 있는 쥐는 과거의 무섭고 힘들었던 기억이다. 동굴 안의 샘물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창조성이자 참된 자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에 상처받고 무서웠던 기억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보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작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건강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한다. 여기서 동굴탐험가는 바로 정신분석가를 말한다. 정신분석가는 환자와 같이 그의 무의식을 함께 탐험하며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의 실체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언제인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과거와 화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적을 알아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말처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과거와 화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제 그만 떠나보내라

슬픔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게 마련이다. 강물이 모난 돌을 부드러운 조약돌로 다듬어 주듯이,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어루만지며 다듬고 희석시켜준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그 통렬한 슬픔도, 붉은 핏빛의 원한도 시간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모두 다듬어지고 희석되어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들은 과거에 정지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는 그 대상을 마음속에 간직한 뒤에야 비로소 그를 완전히 떠나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대상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이 심할 때는 그를 마음속에 담아둘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상처가 있을 경우 무의식중에 과거로 돌아가 그 상황을 반복하되 다르게 재현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떠나가 버린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다시 붙잡아 두려는 시도는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우리가 감정의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잃어버린 것들의 실체를 분명히 보려면, 상실한 것들에 대한 절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극복하고, 과거의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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