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마의 작은 방
이루마 지음 | 명진출판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그것만으로 충분해요몇 년 전에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에겐 첫사랑이었지만, 그녀에겐 다른 사랑이 있었기에 여자친구라기보다는 그저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해야 옳겠죠. 그녀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인상적인 주제 음악을 피아노로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어떤 충동이 가슴에서부터 일어나서 그 마음을 샘물처럼 퍼주고 싶을 때, 그렇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온 몸이 요동칠 때. 어떤 유명한 무용가가 길거리를 지나는데 레코드점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더래요. 그 음악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춤이 터져나와서 한동안 레코드 가게 앞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고 해요. 도저히 춤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그녀 주위에 빙 둘러서서 춤을 감상하고 있었고 그녀가 춤을 멈추자 박수를 쳐주었답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저도 그 친구에게 영화 주제가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마땅히 피아노를 칠 데가 없어서 백화점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 친구한테는 뭐 좀 사러 가자는 핑계를 댔죠. 백화점 제일 위층에 악기 파는 곳이 있잖아요. 그 친구 손을 잡고 무작정 제일 위층 피아노 매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곡을 쳐줬습니다. 피아노를 치느라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모습을 보고 발길을 멈추고 구경을 했나봅니다. 친구가 "야, 사람들 모였어"라고 말해주었을 때야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오시더니 음악 하는 사람이냐며 관심을 보이시는데 도저히 더 이상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서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단둘이 있었으면 더 많은 곡을 연주해줬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살짝 남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얘기해보니 그 친구는 그 일을 기억조차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겐 정말 소중한 추억인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기억이 되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억을 하든 그렇지 않든 소중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하는 것, 그건 참 멋진 일이 아닐까요? 그를 위해 시장을 보고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만들거나 오랜 시간 공들여 따뜻한 스웨터를 짜주거나 아니면 매일 매일 편지를 써서 책 한 권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거예요. 하지만 음식은 먹고 나면 없어지고, 스웨터도 못 입게 되는 날이 올 것이고, 또 편지로 만든 책도 언젠가는 낡아버리겠지요. 그렇게 먼 훗날 그 선물이 상대방에게 전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걸 준비하고 만들고 연습하던 순간의 자신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가슴 한 켠에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사랑은 식탁 위에 놓인 소금과 설탕처럼제가 받았던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사랑에게 받았던 모자와 목도리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 선물이 너무 좋아서 겨울 내내 그것만 하고 다녔더랬습니다. 또 한 번은 팬이 손수 떠준 머플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참 동안 그것만 하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그 선물 자체보다 선물을 받았던 기억이 더 오래 가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아닐는지.
저는 아직까지 '너는 내 운명' 그런 걸 믿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했던 사람 모두, 항상 만날 때 그 사람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났고 항상 그들과 결혼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족한 탓인지 잘 안 됐어요. 아직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운명의 그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도 작년에 환갑을 넘기셨고 누나들과도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편이라 제가 일찍 결혼하기를 바라고 저 또한 영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하기 때문에 항상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손 꼭 잡고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저는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믿고 따라주고, 때로 떨어져 있더라도 그 믿음 변치 않고 배려하는 것.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믿음을 계속 간직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헤어진 적도 있답니다. 어떤 분들은 사랑은 표현해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저는 사랑을 할 때 그 마음을 조금 아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나눌 땐 매일 붙어 다니고 항상 만나야 되고 어딜 가나 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다 보면 금방 지치고 자기 시간을 갖고 싶어지니까요.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일궈왔던 자기 생활이 있잖아요. 사랑을 한다고 해서 그 시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홀로일 때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어야 둘이 만났을 때 그 시간 또한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사랑은 어쩌면 식탁 위에 놓인 소금과 설탕 같아요. 항상 똑같은 양으로 유지할 수는 없는 거니까. 때로 한 쪽이 더 많을 때가 있고, 한 쪽이 적을 때가 있지요. 그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조금 더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의 감정에 밸런스가 맞춰지고 서로의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랑이 크다고 힘들어하고 더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면 그때부터 서로를 향한 마음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 간격을 자로 잴 수는 없지만 그리고 사랑의 방식이 한결 같지도 않은 거지만,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적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 여유와 배려가 있을 때 그만큼 더 소중하게, 오래 멋진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스런 나의 동거녀, PIANO어떤 때는 첫사랑 그녀의 검은 눈동자처럼 새초롬하게 저를 바라보다가도, 또 어떤 때는 평생을 백년해로한 노부부처럼 자글자글한 눈빛으로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나의 연인, 피아노. 그러고 보면 피아노는 정말 여자 같아요. 그냥 손을 뻗어 건반을 누르기만 해도 반응하는 단순함이 있는가 하면, 제 손끝의 미세한 감각을 읽고 그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음을 들려주는 섬세함도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피아노를 '나의 동거녀'라고 불러요. 그녀 앞에 앉으면 연주가 잘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럴 땐 그녀가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때로는 야속할 만큼 밉기도 합니다.
한껏 토라진 애인처럼 내 맘 몰라주고 연주가 따라주지 않을 때 말도 안 되는 혼자만의 오해와 착각들로 그녀를 미워하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녀가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거예요. 맑은 날과 궂은 날, 그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그래서 지금은 말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동거녀가 정말 사랑스러워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고락을 같이 할 나의 동거녀. 고마워요, 정말.
소년, 피아노에 반하다우리 어렸을 때 집집마다 피아노를 배우지 않는 애들이 별로 없었잖아요. 누나들도 피아노를 배웠는데, 누나들이 피아노 칠 때 옆에서 페달도 밟아주고 흉내도 내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사실 피아노는 제게 악기이기 전에 장난감이었답니다. 심심할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쳤고, 장난감을 가지고 그 위에서 놀았고, 피아노와 피아노 의자 사이에 담요로 텐트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그러다 피곤하면 피아노 의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저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같은 아파트 단지의 한 아주머니셨는데, 레슨을 받으러 가면 레슨보다는 그 집 형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형들이 보는 만화책이나 잡지를 보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그러다 여덟 살 쯤 되니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도 지긋지긋해지고 정말 레슨 받기가 싫어졌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레슨 안 받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쳤지요. 항상 제 방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오래된 피아노였지만 소리가 아주 예뻤어요. 좋은 멜로디가 떠오르면 오른손으로 연주하면서 왼손으로 코드를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뭘 쳐도 재미있고 그냥 소리 하나하나, 코드 하나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더라고요.
아주 흔한 멜로디에 반주를 붙이다가 코드법을 혼자 터득한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피아노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혼자 코드법을 터득해버렸던 거예요. 나중에 영국에서 피아노를 배울 때도 음악적인 테크닉은 따로 배워야 했지만 코드법만큼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숙달이 됐고, 혼자서 피아노에 열중하면서 저절로 음악적인 자질이 키워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어떤 분야에서 장인이 되려면 정말 성실하게 레슨을 빼먹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깊이 침잠해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그것을 가지고 놀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지만 어차피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수없이 반복해가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레슨을 안 받고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쳤던 그 시간이 저에게 참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구수한 된장이나 김치가 발효된 만큼 깊은 맛을 우려내듯 무엇이든 자기 안에서 발효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퍼셀 스쿨, 나의 최초의 오디션 모르겠어요. 좋은 것도 같고…. 몸이 뻣뻣해 지지만 한번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어 버려요. 모든 게 사라져 버리죠. 그런 다음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게 느껴져요. 몸에서 불 꽃이 일어서 전 그냥 거기서 날아가요. 새처럼요. 마치 전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요. 꼭 그런 기분이에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가 춤을 출 때의 느낌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가난한 탄광촌 광부인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에게 권투를 권합니다. 하지만 빌리는 이미 춤에 미쳐버린 상태예요. 결국 아버지는 빌리의 국립발레학교 오디션을 허락합니다. 오디션 날 빌리는 잔뜩 긴장해 자신의 실력을 다 보여주지 못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심통이 났죠. 그래도 나머지 시험을 치룹니다. 빌리의 열정적인 춤을 인상적으로 보던 한 시험관이 오디션장 문을 나서는 빌리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합니다.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이 장면은 저의 최초의 오디션을 떠오르게 합니다. 유럽에서도 음악이라면 한다하는 애들이 다니는 퍼셀 스쿨의 오디션을 보러간 저도 빌리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으니까요.
오디션에 참석했던 거의 모든 아이들은 전공하는 악기 외에도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았어요. 일찌감치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퍼셀 스쿨의 오디션을 준비해왔던 아이들이고요. 그 아이들에 비하면 저의 오디션 준비는 정말 초라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것은 고작 피아노 연주 녹음 테이프 달랑 하나. 게다가 피아노 실력마저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니 초보 중에 초보나 다름없었습니다. 오디션 날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심사위원들은 누구 하나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오디션장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죠. 그런 분위기를 깨고 심사위원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니?" 그 질문에 저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피아노 외에 제가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하나도 없었거든요. 다른 심사관들은 더 볼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고, 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배웠던 '갈매기'라는 노래였죠.
그렇게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와 온가족이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저 또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몸살을 다 앓았을 정도였답니다. 오디션을 본 후 딱 2주 후에 학교에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큰누나는 편지 봉투의 두께가 두꺼운지 얇은지를 제일 먼저 물어봤어요. 합격일 경우 통지서와 구비서류가 함께 동봉되기 때문에 봉투가 두껍다는 것이었죠. 제 앞으로 온 봉투는 분명 두꺼웠습니다. 아마 피아노 실력만으로 평가했으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을 텐데 저의 '갈매기'가 심사관들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영화 속 심사관들이 빌리의 춤출 때 기분에서 빌리의 가능성을 알아보았던 것처럼, 심사관들은 제 노래에서 저의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내가 얼마나 음악과 피아노를 좋아하고, 퍼셀 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마도 '갈매기'를 부르는 것으로 저의 의지를 전한 것 같아요. 어딘가 부족했지만, 그래도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은 저의 음악에 대한 열정 같은 것도 함께 말이죠.
우연한 만남, 우연한 기회, 우연한 귀향숲 속에 있는 작은 음악 학교 퍼셀 스쿨을 졸업하고 런던대 킹스 컬리지에서 현대음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한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 공연을 통해 제가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인연이에요. 학교 한인학생회에서 운동회를 한 후에 교내에서 뒤풀이 파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그 일과 상관없이 강의실을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한국 남자가 저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한국인 파티가 있으니까 당연히 저를 한국 학생이라 생각했던가 봐요. 그렇게 말을 트고 나서 제게 전공이 뭐냐고 묻더군요. 제가 '작곡'이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그분 얼굴에 화색이 싸악 돌면서 잘 됐다고, 자기는 그래픽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며칠 내 공연을 한 편 해야 되는데, 음악감독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하게 됐다고, 지금 그 일을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숨돌릴 틈도 없이 묻더군요.
원래 음악을 맡기로 하셨던 분이 다른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 하게 되어서 샘플 시디만 엄청나게 보내놓고 그 중에서 알아서 골라 쓰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얼마나 급했으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한테, 그것도 제 음악은 들어보지도 않고 부탁을 다 했겠어요. 워낙 다급하게 부탁하기도 하고 또 재미있는 일이겠다 싶어서 그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공연은 세조의 왕위찬탈사건을 소재로 한 <태>라는 연극이었어요. 영국과 한국의 예술인들이 함께 하는 한영문화교류 형식의 공연이었답니다. 뮤지컬 배우 이정화 씨가 주연을 맡았고 개그맨 홍록기 형의 연극 데뷔작이기도 했지요. 지금은 한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가 되신 오만석 형도 그때 처음 인사를 나눴답니다. 저는 늦게 투입된 터라 짧은 시간 동안 음악을 편집하고 노래를 만들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지금 들어보면 음악이 완전 드라마 <여인천하> 같은 느낌이에요).
그때 공연이 런던에서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이듬해 봄에 서울 대학로에서 앵콜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배우들이 상당 부분 교체되어서 주연배우의 노래가 이전 배우의 톤과 맞지 않았어요. 곡도 다시 써야 했고 여러 모로 제가 할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꼭 제가 한국에 가야 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한국에 무지 가고 싶었고,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거였죠. 당시 부모님은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에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시고 한국행을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온통 한국에 가 있었던 터라 결국 연극을 핑계로 부모님을 설득하고, 2000년 겨울에 대학 졸업시험만 보고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11살에 영국 유학길에 오른 후 장장 12년 만의 귀향이었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불러준 우연한 기회, 그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