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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장 가는 날

박영택 지음 | 마음산책
그 작가 그 전시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 역시 어떤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란 존재 역시 그저 주어진 삶을 자신의 일을 통해 열심히 살아낼 뿐이다. 그저 내가 보고 느낀 바로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 작가들은 한결같이 특정한 형태로 굳어진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과 감각으로 늘상 미술을 새롭게 사고해보려는 존재, 자신의 일 이외에는 완전히 무심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조차 극구 두려워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작업에 완벽하게 자신을 던지지만 동시에 그 모든 일을 무(無)로 돌려버릴 줄 아는 그들은 낙관도 절망도 없이 그 경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좋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 역시 주어진 삶에서 잠깐 인연을 맺는 일에 불과하지만, 그것밖에는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무심함과 겸손함 속에서 결국 과하거나 넘치지 않고, 신비주의나 허황한 예술지상주의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고 예리하게 작업에 몸을 내밀고 있었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생을 바치는 각오이고 생에 대한 치열함이다. 사실 작가란 존재는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지껄이는 자들이다.



불가피하게 미술은 '물질'을 빌려 관념을 시각화한다. 미술의 몸을 빌려 정신과 마음의 사유를 드러내고 반성하는 일이다. 아울러 이들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작업으로 자연스레 표출되는 그 무엇이다. 결국 작업은 살아 있음의 증거, 그리고 사회와 역사 속에 포함된 나의 존재와 인간의 생명이 진화되어온 모든 시간이 농축된 집적소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작업은 사는 것에 다름 아니며, 자신과 삶을 온전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다름 아니다. 내가 만난 좋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인맥이나 경제력, 미술계 제도권의 권력에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체득해내려는 노력을 작업의 관건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깨달음에서 길어 올려진 모종의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해내고 이를 일상의 자신의 삶으로 되돌려 반추하면서 어떤 정점을 향해 육박해나가는 작가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삶이 진정 예술가로서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전시장을 가다



전시장 관람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다닌다. 대개 전시는 수요일 오후에 오픈을 하지만, 가능하면 오픈 날은 피한다. 너무 번거롭고 소란스러워서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기회가 지워져버리니까. 그리고 전시장은 거의 혼자 간다. 무엇보다도 혼자 은밀히 마음속에 가두고 곱씹으면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서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다음 그림으로 넘어갈 때 동행인을 챙기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보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림 앞에서는 하염없이 서 있기도 하는 그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능하면 전시장은 혼자 다닌다.



전시를 보러 다니는 궁극적인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간혹 아득해질 때도 있다. 전시를 보러 다니는 일이 형식적이고 겉치레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슬쩍 지우고 나면 나는 이렇게 전시장에 와서 하나의 작품 앞에 섰을 때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그곳이 바로 작품과 내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기묘한 체험이 이루어지고 미묘한 만남이 형성되는 자리임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전시를 보러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고 체험이다. 내가 알지 못하고 부재했던 시간을 만나는 일이다. 그런 기묘한 흥분이 전시장 가는 길을 재촉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을 다니는 일은 사실 무척 힘이 들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자신이 직접 작품 앞에 서서 온몸의 감각밸브를 죄다 열고 반응하고 기다리며 읽고 느끼고 생각에 잠겨야 하는 일이다. 전적으로 자신과 작품이 만나서 파생되는 사건이 작품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시간을 요하는 동시에 여유로움과 풍만한 감성으로 찰랑거리는 몸이 유지되어야 한다. 전시란 우리들이 눈으로 보고 관찰하고 살필 수 있는 구체적인 미술작품 혹은 사물(오브제)을 보여주고, 눈과 가슴으로 그 대상을 조응하는 일이다. 좋은 전시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거리를 던져줌으로써 대단히 복잡하고 미세한 차이들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적인 작업이다. 전시는 궁극적으로 '유희의 과정',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보는 일'이다. 한편의 논픽션 영화를 만드는 일이자 세계에 대한 무수한 정보가 들어 있는 작품을 갖고 노는 행복한 놀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며



하루 종일 다녀도 인사동, 사간동, 광화문 일대의 전시를 모두 둘러보기란 어림없다. 이곳저곳 떨어져 있기에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도 만만치 않고 막상 전시장에 가서도 단 몇 분만에 둘러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아침 10시 반 정도부터 오후 6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웬만한 전시는 볼 수 있다. 강의하고 원고 쓰는 나로서는, 일주일에 하루 이상을 내어 전시를 보러 다니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마로니에 미술관>, <가나아트센터>, <김종영 미술관>, <토탈 미술관>, 강남에 있는 <카이스 갤러리> 및 홍대 앞에 위치한 <쌈지 스페이스>나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영은 미술관> 등은 비교적 자주 가는 곳이다. 사실 대부분 일주일 단위로 전시가 바뀌는 우리네 형편에서는 이 모든 전시를 빠짐없이 본다는 것은 일주일 내내 전시장을 다니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을 할애해 미리 선별한 전시를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보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친다. 조금은 게으르고 느긋하게 한 전시장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작품을 보고 생각에 잠기고 상상도 해보고 다른 것에 눈길도 주어보고 작가가 있으면 함께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전시관람일 것이다. 나는 작품을 보면서 '이 작가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생각해본다. 즉 그림 혹은 조각, 사진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우선 읽는 편이고, 주제라든가 방법론은 차후로 잠시 미뤄둔다. 대개는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의 주제에 관심을 많이 표명하지만 나로서는 그것은 작품의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회화작품이라면, 그 안에 깃든 작가의 회화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추상작품이라면 작가가 이해하고 있는 추상미술이 무엇일까, 또한 그렇다면 물감과 붓질, 색채들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를 엿본다. 나는 좋은 작품이란 드라마가 없고 주제를 지나치게 강변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주제를 명확하고 날카롭게 드러내고 한 개인의 고유한 감성과 기질, 그만의 성향 아래 뿜어져 나오는 화풍을 보는 일은 중요한 그림 감상의 포인트이다. 사실 전시장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일은 동시대, 나가서는 미술사 전체의 모든 작가와 작품을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일이다.



인사동



인사동 - 내 실존의 장소

전시장 기행은 언제나, 변함 없이 인사동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나는 거의 그곳에서만 약속을 하고 사람을 만났었다. 인사동이란 지명은 한국미술계의 심장부를 호명하는 소리와 동일하다. 물론 지금은 이전에 비해 그 명성이 많이 떨어졌지만 전시에 대해 말할 때 인사동을 제외시킬 수는 없다.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1910년 즈음 조선말 세도정치의 근거지인 이곳에서 거간상들이 조선시대 전통적인 사대부들의 주거지였던 북촌마을 부자들의 골동품과 민예품을 취급하면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는 골동품 매매가 많아지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통 미술품을 모아다가 길거리에 내놓고 팔기 시작했다. 1970년 4월에는 박명자 씨가 서울 관훈동 7번지 '관훈치과' 건물을 개조해 화랑을 열자, 당대 동양화가 풍곡 성재휴가 <현대 화랑>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현대 화랑>을 시작으로 인사동에 화랑이 생겨나기 시작해 현재는 서울시내 화랑의 약 40%가 이곳에 몰려 있다.



80년대 말만 해도 한적하고 운치 있었던 인사동은 지금은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하고 무척 많이 변질되었으며 이전에 비해 그 매력이 상당부분 약화되었다. 전시장은 줄어들고 볼 만한 곳도 점점 사라지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인사동을 빼고 한국미술이나 전시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이곳에서 상당수의 전시가 소화되고 있고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미술담론들이 생산되고 있다. 가장 번성했던 80년대는 미술에 관한 가장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고 기획전시와 큐레이팅이 본격화되었던 시기였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80년대 말부터 인사동에서 생활해왔다. 나의 삶은 인사동을 빼고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사아트센터 - 그의 조각은 육체에 감겨든다

윤이 나는 검은 화강석과 유리로 외관을 장식해 차갑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인사아트센터>는 문화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카페테리아와 같다. 인사동 거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 이곳의 여러 전시실은 한곳에서 많은 전시를 볼 수 있는 편리한 공간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전시장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는 인사동에서 가장 활기찬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곳에서는 <가나 화랑>이 기획, 초대하는 전시 및 대관전시가 열리기도 하는데, 무엇보다도 <가나 화랑>과 관련된 작가들의 전시가 볼 만하다. 고영훈, 임옥상, 전병헌, 사석원, 오치균, 이상국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본 전시 중 김정헌, 권오상, 홍경택, 한애규 등의 전시가 좋았고, 최근 본 전시로는 '권진규의 30주기 회고전'이 압권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일호의 조각 전시가 마음을 흔들었다.



이일호의 조각은 말하는 조각이다. 조각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바람과 온도를 견디고 수많은 변화를 자신의 육체 안으로 껴안는다. 조각의 피부 위에 서식하는 시간의 자취와 흔적들은 상처와 같다. 조각은 그 상처와 함께 자신의 생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일호의 조각은 언제나 인간의 육체를 형상화해왔다. 육체는,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이랄까 몸에 대한 집요하고 곤혹스러운 물음들이다. 결국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나 욕망의 관능, 성 등 인간 육체가 지닌 치명적인 부분들을 건드리는 조각이다. 이일호는 내용과 그 내용이 담길 조각적 틀을 단단하게 구축한다. 그 결과 그의 조각은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내용이면서도 그 형식은 견고한 구성으로 지지되는 편이다. 그리고 이일호의 조각은 자기 생애의 모든 것들이 뒤섞여 나온 삶에 대한 깨달음에 가깝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다분히 자기모멸과 허무, 자학에 가깝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약하고 비겁한 혹은 지독히 동물적인 부분에 대한 자조에 근접한 인식인데, 그런 것들이 얼핏 불가적이고 선가적인 뉘앙스로 치닫는 동시에, 인생의 절망과 환멸의 끝을 본 자의 다소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선의 자유로움도 바람처럼 감긴다.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로 형태의 본질을 간결하게 압축한, 소박하면서도 강한 느낌과 전통조각에서 보여주는 관념성과 종교성, 정신성이 서구 현대조각과 맞물려나온 조각어법으로 생에 대한 인식을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그는 한국 조각사에 무척 특이한 작가로 존재한다.



김영섭 화랑 - 본질을 꿰뚫는 시선

<김영섭 화랑>은 사진 전문 갤러리다. 3층은 카페 겸 전시장이고, 4층이 본격적인 사진전시 공간인데 그동안 홍순태, 김대수, 그리고 고와바라 시세이, 으젠느 앗제, 만 레이, 로버트 프랭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전시를 연이어 열어왔다. 여러 전시 중에서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들이 새삼 반가웠다. 20세기 후반부의 현대사진은 그를 접어두고는 언급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랭크의 사진은 순간의 인상이라기보다는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을 담고 있다. 그의 사진은 현대문명이 몰고 온 인간의 소외와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여 자아와 대상과의 인식체계가 굴절되거나 단절되는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같은 부조리 현상은 과잉된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방황과 우울한 자폐증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의 사진은 자신의 테두리 안을 맴도는 독백의 형식을 따른다. 자신에 대한 존재의식 자체가 복합적이고 불안하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의식이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괴리되어 홀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확고히 한 것은 1950년대의 사진집 『미국인들』이다. '내가 어딘가에 있을 때 그곳은 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그의 표현대로, 프랭크는 자신과 세계를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192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대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직후 뉴욕으로 갔다. 그의 눈에 미국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개인이 희생되고 있는 사회, 신흥종교나 사이비 종교가 난립하는 암울한 사회로 비쳐졌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시각을 사진으로 형상화시켜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만들어냈다. 2년여에 걸친 그의 여행은 2만 8천장에 달하는 사진으로 남았으며 이는 어떤 사회사적 연구나 인류학적 객관보다 미국 사회의 인종적, 사회적 분리를 분명하게 관찰해낸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대한 사진들 중 83장의 사진을 담은 사진집 『미국인들』은 후에 프랑스와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이 책은 로버트 프랭크의 이름을 현대사진사에 굵게 새기는 대표 작품집이 된다. 프랭크의 사진집은 현대사진의 고전이며, 사진사의 새로운 분수령이라는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다.



갤러리 아트사이드 -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것

현재 <아트사이드>는 1,2,3층 전시공간을 운영하면서 재미난 작업들을 많이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원석연의 연필드로잉 전시와 중국 현대작가 및 오윤 30주기 전시, 신하순, 윤종석 등이 떠오른다. 나는 원로작가 원석연의 고독한 생애가 드리워진 전시를 떠올려본다. 근대기에 일본에서 그림을 수학한 그는 전적으로 종이 위에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는 고집스러운 집착을 보여준다. 특별한 화면구성보다는 단독으로 사물과 대상을 설정해서 그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호젓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짙게 우러나온다. 특히나 작은 화면에 정교하게 그려진 연필화의 흑백대비, 무심하게 텅 빈 화면의 하단이나 중심에 선명하게 올려진 대상, 간결한 이야기의 압축들에서 문기(文氣) 짙은 동양화나 선화의 한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힘은 감상적인 것보다는 즉물적인 것에서 잘 드러난다. 도끼나 가위, 호미를 그린 그림이 그렇다. 금속성과 나무의 질감과 표면 처리는 연필의 경계 없는 표현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단호하고 힘이 있다. 한 원로작가의 일관된 연필화의 세계는 우리 화단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이기적이면서 소중하고 낯설다. 그 세계가 다소 한정된 편이라 아쉬움도 남지만, 습득된 역사적 체험 속에서 동양화적인 세계를 수용하는 원석연의 연필화는 우리 미술사에서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지닌다.

원석연의 전시를 보고 그의 삶을 돌아보다가 문득 우리 화단의 원로작가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90년대 중반 어느 여름이었다. 뉴욕의 한 화랑에서 열린 백남준의 근작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한구석에 자신의 얼굴을 떠서 시멘트로 발라놓은 거뭇거뭇한 라이프캐스팅이 놓여 있었다. 그 캐스팅을 보는 순간 나는, 당뇨가 심해 거동이 불편해 보였던 그가 치열한 경쟁과 냉혹하게 날카로운 눈(비평)이 살아 있는 뉴욕 소호에 살면서 버티는 힘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예술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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