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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서른, 자신 있게 사랑하고 당당하게 결혼하라

최재경 지음 | 디자인하우스
늦기 전에 미련 없이 버려야 할 13가지 익숙한 것들



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남자는 없다

미끈한 남녀가 등장해 반드시 사랑에 빠지는 할리우드 영화들, 멋진 왕자가 둘씩이나 등장해 여주인공이 고민 끝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삼각관계를 그린 드라마들. 이런 매체들 덕분에 우리는 왕자의 모습에 너무나 익숙하다. 그래서 왕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당장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고 전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우리 곁을 찾아오기엔 너무 바쁜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백마 탄 왕자는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외계인일 확률이 크다. 여자들의 환상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완벽한 남자'인 왕자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하기까지 하니 현실적으로 더욱 존재 불가능한 인물이 된다. 즉 외롭고 허전할 때는 다정하고 자상한 모습으로,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용맹하고 리더십 있는 모습으로, 금전적으로 궁핍할 때는 백만장자의 모습으로, 영혼이 피로할 때는 성인군자로 변모한다.



눈이 높은 여자들은 자신에 대해 파악하기 전에 일단 객관적으로 완벽한 남자, 남들에게 과시하기 좋은 남자를 꿈꾼다. 그래서 계속 불가능하거나 일관성 없는 조건들만 내세운다. 어쩌면 그녀들은 영원히 싱글로 살면서 자기 환상을 깨지 않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왕자'를 향한 기다림이 강렬해질수록, 현실은 그와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왕자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만은 버리기 싫다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욕구를 충족하면 된다. 비록 대리만족이긴 하지만, 별 볼일 없는 '삼순이'가 멋진 '삼식이'를 만나 기적처럼 가슴 벅찬 사랑에 빠질 때 나도 함께 그 감정을 누리면 됐지 않은가.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무작정 기다려봐야 느는 것은 나이뿐

나도 한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내 애인이 외계인이거나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불가능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름답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다. 현실은 내 마음속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인정해주기보다는, 잔인하리만치 나의 현실들을 까발리며 도무지 낭만이라고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늙수그레한 아저씨들을 신랑감이라고 들이댔다. 집안의 재산부터 나의 연봉, 외모, 학벌 등 수십 개 조항을 조사하고, 그에 따라 점수를 매겨 한정된 범위 안에서 데이트 상대를 지정해주는 결혼정보회사의 비정함이야 말할 것도 없다. 주변 친척들은 내 성격, 기호 등과 상관없이 '총각'이라면 무조건 만나보라는 식의 강요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환상 때문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남자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흔드는 싱글 여성들은 알고 보면 만화나 영화에 심취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그들은 늘 환상 속에서 이상형을 구축해왔던 것이다. 인생에 사랑이 단 한 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사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 또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적극성을 추구하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만은 수동적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오래 기다려야 했던 건, 또 진짜 사랑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놓쳐버린 건 모두 그들의 '수동성' 때문이다.



그들은 그 누군가가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하고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심리나 공주병과도 연관이 있다. 누군가 다가와서 내 인생을 구원해주기를,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곤 기껏해야 '그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일'뿐이기를 바라는 이상, 그 사랑은 영원히 다른 시공간대를 살고 있는 남자와의 불가능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현실이 된다면 정말 '이보다 더 잔인할 수는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외모는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읽은 동화들은 거의 전부가 여자아이들에게 '세상이 나의 착한 행동을 알아줄 때까지 꾹 참고 계속 착한 행동만 하면 언젠가 복을 받는다'라는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가치관일까? 왜 여자들만 착하고 예뻐야 하고, 남자들은 왜 인어공주의 왕자처럼 무정하게 굴어도 벌을 안 받을까? 아무리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실 '싫다'고 말하는 순간 주어질 무형의 형벌이 무서워서였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벌을 줄까 겁내면서도 이기적인 본성을 억누를 수는 없다 보니 돌아서서 억울해하고 원망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그게 굳어져서 피해의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정작 스스로 난관을 타파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게 바로 '착한여자 콤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나이가 들어서였다.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여자들은 연애를 할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착하고 예쁘게 보임으로써 사랑받으려 한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고집이 세 보이면 남자가 자기를 떠날까 봐 욕구를 억누르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화낼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 남자에게 결정권을 내주는 것이 착한 행동이며 그것이 자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아프지 않을 줄 아는 상대방은 점점 더 악랄하게 군다. 그게 착하기만 하고 자존감은 낮은 여자들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이유다. 사람들은 자기를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존중하지 않는다.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여성들은 오랜 세월 남의 욕구에 부응하는 일에만 익숙해서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상대방에게 맞추려고만 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금방 질려버리고 만다. 남자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아니기에, 자기 마음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만족시켜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이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라거나 거절을 하지 못해서, 혹은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인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진정한 동기를 물어보아야 한다. 베푸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지만 자신의 기력을 소모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베풀자.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자. 이제는 남을 대접하는 만큼 자신을 대접하자.

나를 지키다 보면 결국 평생 혼자다

공주병의 핵심은 '난 공주다'라고 믿는 것보다, '누군가가 주변에서 먼저 날 챙겨주고 받들어주어야 한다'는 의존성에 있다. 공주병 그녀들은,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의 일에 '내 맘처럼' 나를 챙겨주고 후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나를 좋아해야지 한 두 명이라도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공주병'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선 '철부지'라는 말과 동의어로 들린다. 이런 여자들은 공주의 삶 치고는 실패가 너무 많은데도, 공주병을 벗기보다는 공주를 받쳐주지 않는 세상만 원망한다. 한마디로 망한 나라의 공주들이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 공주병은 큰 걸림돌이 된다. 왕자병이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 이내 '시녀' 대우를 받듯이 공주병이 있는 여자는 남자를 푸대접하기 일쑤다. 그녀는 상대 남자가 '왕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남자'인 것에 불만을 표한다. 게다가 수동적인 자세는 극에 달해서 자기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을 만큼 강렬한 프러포즈나 선물 공세가 있어야만 마음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인생이 피곤해지는 것'을 피하는 일에 민첩하기 때문에 이런 조짐을 감지하게 되면 지레 발걸음을 돌린다.



일부러 못난 척하거나 섣불리 허점을 내보일 필요는 없지만, 남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나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가 먼저 존중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는 필요하다. 내가 좋아서 먼저 다가가는 행동은 '시녀 같은'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이고, 쉽게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기어이 성공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의연한' 공주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공주병에서 비롯된 너무 강한 자존심은 결국 외로움만 돈독하게 한다. 나중에 가서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싱글 생활은 인생 최전성기, 결혼 대기상태가 아니다

5년마다 조사하는 전국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2000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백22만여 개로 전체 가구의 15.4%에 이르고, 이 가운데 미혼인의 1인 가구가 43.5%나 차지한다. 그런데도 여성이 혼자 산다고 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취'한다고 생각하지, 정상적인 싱글 생활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여성의 독신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학생도 아니고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독립공간을 확보한 여성의 생활에 '자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혼 전 '비정상적'인 '임시적' 삶에 불과하다는 규정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야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 해도, 싱글 여성 본인이 자기 삶을 '임시적'인 것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자기 인생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게다가 스스로를 '노처녀'로 규정하며, 이 시기를 '탈출'해야 할 상태로 여기는 것은 중범죄에 속한다. 우리 인생에 '임시'의 날은 없다. 하물며 인생의 전성기가 되어야 할 싱글 시절을 결혼을 위한 예비 단계로 취급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혼을 해야만 완벽한 여자가 되고, 대접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날을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현재의 자기에게 투자하자.



결혼한 친구들의 새 집이 부럽다면 나도 열심히 돈 벌어서 먼저 새 집을 구해 살자. 그게 부러워서 자기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남자에게 선물을 받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스스로 사서 선물하라. 현재 소중한 내 삶에 투자하면 결혼을 하든 말든 상관없이 늘 현재를 즐길 수 있는 법이다. 현재를 즐기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미래를 현명하게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이끌리는 것은 모두 사랑이 아니다

언젠가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면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혹은 '첫눈'에 상대를 모조리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걸까? 물론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버리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런 경우 그 대상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연인의 모습에 가깝다. 한마디로 이것은 익숙한 것을 향한 '회귀 본능'과 통한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사랑은 위험하다. 첫째, 그 감정에 대한 지나친 신비화로 인해서 당연히 뒤따라야 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켜 상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상대를 전적으로 이해했다고 믿게 된다. 상대의 실제를 잘 모르는 이상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환상에 가까우며, 결국 그 사랑은 상대의 진실된 됨됨이보다는 내가 바라는 환영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내게 친숙한 종류의 사람들이나 나 자신과 공통점을 발견해서 무의식적으로 끌린 경우, 처음엔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더라도 곧 그것의 실체는 익숙함, 친숙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는 '연인'보다 '친구'가 되는 게 더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모 결혼정보업체가 벌인 설문조사에서 86.4%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응답했으나 그런 경우의 교제 여부에 대해 94.6%가 '사귀기는 했으나 현재 헤어진 상태'나 '교제로 이어지지 않았다'로 대부분이 부정적인 결말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가장 먼 곳으로 떠나지만, 거기까지 가서도 결국 가장 익숙한 것을 건져오기 일쑤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가장 낯설어 보이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라면, 그 속에 가장 익숙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첫눈에 반했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이라고 우기지는 말자.

나쁜 남자가 멋있는 건 드라마 속에서나

착하고 자상한 남자들은 남성적 매력이 덜하다. 배에 왕(王) 자가 새겨진 근육질 남자나 어딘가 껄렁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남자가 남성적으로 보인다. 내게 차갑게 굴거나 제멋대로 구는 남자가 싫어지기는커녕, 그런 남자가 접근할 때 맥을 못 추고 넘어간다. 만나고 헤어지면 집에 잘 들어갔냐고 전화해주지도 않고,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기기도 한다. 기껏 기다리게 만들어놓고 막상 주말에 다른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펑크낸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기적인 그가 싫기는커녕 더 보고 싶어지는 걸까? 그러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상처받고, 그게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애쓴다.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마야 스토르히)에 보면 왜 강한 여자들이 하필 그런 유형의 나쁜 남자들에게 필(feel)이 꽂히는지를 설명하며, 그런 유형의 남성이 "'감정을 억압하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상'을 대변하며 우리 여성 안에 자리 잡은 '부재하는 아버지'의 조각들"이라고 썼다. 전통적인 아버지들은 하루 종일 집을 떠나 있으며 약한 마음을 숨기려고 아이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자제한다. 그 결과 강한 여성들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비롯된 '부재하는 남성'이라는 내면의 남성상 때문에 곁에 있는 다정다감한 남자 대신 방랑자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여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 것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얼마 전에 히트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삼식이'에게 반하는 과정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삼식이'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 부류다.



남자들과 당당하게 겨뤄 사회적인 성공을 쟁취할 정도로 현실적이며 강한 싱글 여성들이 사랑에서만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내면의 여성은 여전히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딸'의 형태로 성장이 멈춰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좋다는 괜찮은 남자를 다 물리치고, 결국 바람둥이에다 무능하거나 가부장적인 성격을 지닌 남자에게 혹해서 자기 어머니처럼 남자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역할까지 떠맡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보다 강하지도 않은 그에게 기대려 애쓰고, 또 그 사랑이 실패하고 나서도 다음번 사랑에서 비슷한 과정을 다시 되풀이한다.



그러므로 강한 여성이 되려면 내면에 깊이 각인된 아버지 세계의 규범을 스스로 깨뜨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 내면의 남성상과 외부 세계의 실제 남성상을 구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 더 이상 방랑하는 고독한 늑대를 사랑할 필요가 없어지거나, 그런 늑대를 보면 미리 피해 갈 줄 알게 된다. 더 이상 남자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강요하지도 않게 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제야 항상 곁에서 다정하게 챙겨주는 남자의 진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다른 사랑을 찾으면 된다

내 주변의 싱글 친구들을 보면 도피의 귀재들이 많다. 그들은 애정결핍을 일중독이나 쇼핑중독, 아니면 영화중독이나 드라마중독, 소설중독, 건강식품중독, 다이어트중독 등으로 끊임없이 뭔가 다른 것에 몰두함으로써 해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행위를 통해 괴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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