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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고든 리빙스턴 지음 | 리더스북
이 세상에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서른네 살 때입니다. 당시 나는 레지던트 수련의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소파에 누워 '자유 연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정신분석의로부터 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친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아내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심리치료사에게 했고, 그녀의 심리치료사는 나의 정신분석의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당시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변호사를 고용해 나의 입양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친부모를 찾게 되면,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실이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다고 확신했습니다. 결국 나는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아파트 문이 열렸을 때,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왜 이제야 왔니?" 그녀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 교사로 일할 때 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불법 유산을 하라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거절했고, 멤피스로 가서 출산한 뒤 아기를 입양기관에 두고 왔습니다. 그후에 그녀는 스스로 결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순간에 충실하게 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잘 자란 것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낳아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식도 들었는데 딸 하나를 입양했다고 하며 몇 년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잠시라도 그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의 정열이 빚은 실수에서 뭔가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 평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진실과 맞서는 것은 그래서 종종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두렵다고 해서 진실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누군가의 눈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살아나기 때문에 진실인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맞서는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 진실이 현재의 모든 안정과 평안을 흐트러뜨릴 만큼 무섭고 엄청난 것이라 해도, 일단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가혹한 현실과 싸워 나갈 힘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진실과 마주하십시오. 그리고 기꺼이 정면승부를 펼치십시오. 당신은 더욱 강해지고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비상한 용기 없이는 불행의 늪을 건널 수 없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생활태도를 바꿔보라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절망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우울증을 질병이라 여기고 약에만 의존하려 듭니다. 그러니 증상이 호전될 리 없습니다. 이때 희망을 다시 불어넣어주는 것이 심리치료사가 하는 일입니다. 나는 종종 내담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살아가는 데 희망이 있습니까?"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이런 질문에 대답할 리 만무합니다. 오로지 그들은 삶을 마감하는 것에만 골몰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살은 오로지 자신에게 몰두해 있다는 증거지요. 나는 자살자들에게 동정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대신, 그러한 자기파괴 행위에 함축된 이기주의와 분노를 직시하도록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살을 단념하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는 못합니다.



정신의학자로 33년 동안 일해오면서 나는 불행히도 이러한 신념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두 아이를 둔 어느 젊은 여인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혼한 뒤 우울증을 앓다가 병원에 입원하기로 한 날에 권총자살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서 시신을 확인하면서 그때까지 내가 품고 있던 오만한 생각들을 버렸습니다. 절망한 사람의 생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환상이 그날로 날아가버린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후, 나는 소중한 아들 앤드루를 잃었습니다. 그 아이 역시 조울증으로 3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앤드루는 당시 스물 두 살이었습니다. 앤드루의 일을 통해 나는 아비가 자식을 땅에 묻는 슬픔이 이 세상의 어떠한 슬픔보다 크고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한탄하면서 지냈습니다.

아이는 세 차례 입원을 했고, 조울증 환자의 특징이라 할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겪었습니다. 나는 아이가 마지막 순간에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대감으로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갈구하던 평화를 발견했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소망만이 내가 고통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아이의 병은 그 누구도 어찌해 볼 도리 없는 태풍처럼 아이를 휩쓸어 갔습니다. 아이는 너무 빨리 떠났지만, 나는 아이가 우리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아이를 용서하면서, 아이도 아버지로서 부족했던 나를 용서했으리라고 믿습니다. 슬픔 속에 자신을 그냥 놓아두지 마십시오.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무섭게 채찍질하십시오. 희망을 꼭 껴안고 그 팔을 결코 풀어주지 마십시오.



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두 아이를 잃었습니다. 불과 13개월 사이에 큰아들이 자살을 했고, 막내아들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나는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그리고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나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내게 진정 가치있는 게 무엇인가?" 이제 "왜 하필 나의 아들들이?"라든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불평해봐야 죽은 자식들이 살아 돌아올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었던 사람들한테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절망에 빠졌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떠한 말로도 위로를 받지 못했지만, 결국 말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아직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결국 말이 있어 그 과정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죽은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아이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내 가슴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용서도 했습니다. 늙어가는 나 자신과 화해한 것입니다. 사람은 헤어져야만 그 진가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별은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남겨주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기억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하면 주로 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다가 탓할 사람이 없으면, 운이 없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책임을 물어야 할 자신의 나약한 의지는 쏙 빼놓은 채로 말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일에서든 성공의 가능성을 낮추거나 앗아가는 가장 큰 주범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애써 기대를 낮게 가짐으로써 쓰디쓴 실망감에서 벗어나려고 하지요. 그러나 실망하는 걸 두려워한다면 성공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생산적인 변화는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내심과 의지를 발휘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성공을 원하지만 실제 행동에는 인색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행동과 생각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죠. 나는 내담자를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그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변화에 필요한 용기를 발휘할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변화되는 것을 원하기보다는 다른 이유로 도움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감옥의 벽은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이 실제 세상과 일치할 것이라는 꿈이 반반씩 섞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달콤한 환상을 버리기도 어렵지만, 주변 세상과 맞지 않는 인식과 믿음을 갖고 행복한 삶을 건설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먹고 달려든 사람들은 금세 실망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됩니다. 나쁜 습관들의 경우는 우연히 배우는 것들이 많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화되면서 우리의 삶을 파괴할 지경에 이르러서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낭패를 본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습관이 고쳐지지는 않습니다. 만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습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우리가 깨달은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를 몰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순간에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들을 보면 사고, 실직이나 의사에게 듣는 무시무시한 소식처럼 나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새로운 학습, 만족스러운 관계 형성, 아이들의 성장처럼 우리 삶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인내심과 의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안일함과 노력 사이의 긴장은 우리의 일상에도 작용합니다. 만일 변화가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고 믿는다면, 별로 노력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시간과 인내와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파괴보다는 건설을, 되는 대로 사는 것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는 실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삶을 만족스럽게 사는 방법을,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깜박이는 의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듯 실수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며, 대부분은 만회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심한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에서도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첫 번째 결혼에서 배운 교훈이 두 번째 결혼을 위한 선택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혼의 실패율은 초혼보다 50퍼센트나 더 높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의도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자존심과 무관한' 행동은 거의 없습니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에 나오는 잭 니콜슨의 대사처럼 "이 사람은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가?"라고.



슬픈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치 행복을 산타클로스나 숲 속의 왕자처럼 비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목표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과거에 했던 행동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론보다는 실용적인 면을 주장합니다. "나는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대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쓸모 있는 것을 믿을 뿐이죠.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식으로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것이다

젊은 시절 제82공수사단에서 초급장교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휘하에 있던 베테랑 중사 하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도에 따르면 저쪽에 산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는군." 내 대답을 들은 중사는 매우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만일 지도가 지형과 다르다면 지도가 잘못된 겁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머릿속에 삶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게 생겼다고 하는 나름의 '인생 지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는 사는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수정이 됩니다. 결국 "인생이란 머릿속의 지도를 내가 걷고 있는 땅에 맞게 그려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할 만큼 고분고분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이들이 보고 배울 만한 구석이 없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삶의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자력으로 배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치있는 품성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지도를 갖고 있다면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친구와 연인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가장 주의깊게 살펴야 할 품성 중에는 '친절함'이 있습니다. 친절함은 상대방의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정이나 사랑을 이어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일 머릿속의 지도에 친절한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사는 동안에 잘못된 선택을 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고통을 피해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서둘러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면밀히 살펴서 수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훗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 다시금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미래를 말해준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꿈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야기 한다고 해서 기분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생각이나 말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가보다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보고 평가해야 실수가 적습니다. 무릇 행동하기보다는 말하기가 쉬운 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수많은 말들 중에 상당수는 우리 자신이나 남들을 속이는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금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미래를 말해 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모든 일에 적용시킬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저런 가슴 아픈 일들을 훨씬 적게 겪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살피십시오. 나는 끊임없이 이 점을 사람들에게 강조합니다.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변명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물론 가장 나쁜 거짓말은 자기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입니다. "그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만, 사랑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나는 묻습니다.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을 고의로 아프게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당신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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