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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힘

제롬 그루프먼 지음 | 넥서스BOOKS
머리말 : 희망 이야기를 시작하며



왜 어떤 사람은 중병에 걸리고도 희망을 품는데 어떤 사람은 그러지 못할까? 과연 희망은 실제로 병의 경과를 바꿔 병을 낫게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의사 생활을 해오면서 만난 아주 특별했던 몇몇 환자들의 삶을 통해 나는 이 물음의 답을 찾고자 했다. 희망과 낙관을 혼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앞으로 일이 잘 풀리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낙관이다. 하지만 희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남의 말이나 눈을 현혹시키는 장밋빛 청사진에서 나오지 않는다. 낙관과 달리 희망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뿌리를 둔다. 희망이란 마음의 눈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볼 때 경험하는 상승 감정이라는 것이다. 희망은 미래로 향한 길에서 만나는 중대한 장애물과 깊은 함정까지 인정한다. 진실한 희망에는 망상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그 현실을 뛰어넘을 능력을 준다.



나는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혈액종양학 의사로서 암, 혈액질환, 에이즈, 간염 환자들을 치료해 왔다. 그런데 병상을 돌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실험실에 앉아 연구에 몰두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보냈건만, 환자의 질병에 희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거치며 그런 닫힌 마음이 열렸다. 척추 수술을 잘못 받은 뒤 19년 동안 나는 계속 재발되는 통증과 장애의 미로 속을 헤맸다. 그러던 중 몇몇 우연한 사건을 겪으면서 출구를 발견했다. 오직 희망만이 내 병을 고칠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불붙은 희망은 내게 통념을 거스르는 힘겨운 치료프로그램을 시작할 용기와 끝까지 견뎌낼 탄력성을 주었다. 내 속에 희망이 일기 시작하자 내 몸의 생리 작용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과연 희망이라는 감정이 실제로 병을 고치는 데 어떤 작용을 하는지,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희망, 그 희망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하려 한다.



1장. 준비되지 않은 시절



1975년 7월 뉴욕, 나는 컬럼비아 대학교 의과대학에서의 마지막인 4학년 과정을 시작했다. 내가 들어간 수술 팀은 윌리엄 포스터 선생이 이끄는 팀이었다. 수련 병원의 관례대로 포스터 선생의 모든 환자는 의대생들에게 배정되었고, 학생들은 병상을 돌며 진단과 치료의 기초를 배웠다. 실습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나 역시 의대생의 자격으로 에스더 와인버그라는 환자를 맡게 되었다. 왼쪽 가슴에 종괴가 있는 젊은 여자였다. 29세. 결혼한 정통파 유대교 여신도들이 정숙함의 상징으로 쓰는 파란 머리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우리가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주면 안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대교 전통 인사를 건넸다. 환영의 미소가 돌아오는 대신 에스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환자의 양쪽 가슴을 만져보고 움찔 놀랐다. 왼쪽 가슴에서 만져지는 덩어리가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암 덩어리가 이 정도로 커지고 부근의 림프절에까지 퍼지려면 수년까지는 아니라도 수개월은 걸린다. 멀쩡한 젊은 여자가 어찌 이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단 말인가? 하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우리의 역할은 관찰하고, 배우고, 포스터 선생의 지시를 따르는 것까지였다. 포스터 선생은 환자의 손을 잡으며 수술에 관해 궁금한 점이 없느냐고 물었고, 에스더는 수술이 끝나고 깼을 때 내가 있어주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당혹스런 포스터 선생의 눈길이 순간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 역시 혹시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해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으나 헛일이었다.



6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포스터 선생은 에스더에게 종양의 크기가 너무 큰 데다 전이된 림프절 수만도 열두 개가 넘기 때문에 암이 곧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화약 요법을 실시하여 몸 속에 남은 암세포들을 죽일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혼자서 다시 에스더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말했다. "제가 암에 걸린 건 하나님이 내린 벌이예요. 남편과 함께 지내는 집 안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과 불륜을 저질렀어요. 저희 회당 사람들 눈으로 보면 저는 창녀입니다. 화학 요법을 받지 않겠어요." 성경에서는 병을 곧 죄에 대한 형벌로 간주하곤 한다.



암의 징후가 처음 나타났을 때 병원을 찾지 않음으로써 에스더는 의심할 바 없는 죽음의 길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포스터 선생을 만나면서 그 발걸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치료를 거부한다는 건 곧 자멸의 길로 돌아감을 의미했다. 포스터 선생이 다시 에스더를 설득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병원 실습이 끝나고 보스턴으로 옮겨갔으므로 나중에서야 에스더의 소식을 들었다. 암이 재발했고 처음에는 뼈로, 다음에는 간으로, 마침내 폐까지 전이되었다고 했다. 결국 에스더는 서른넷에 세상을 떠났다.



의대에 들어가 처음 이 년동안 나는 강의실에 앉아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에 걸친 수많은 지식들을 빨아들였다. 새로운 지식을 그득 채운 나는 이제야 비로소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시작할 준비를 온전히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지식과 통찰력을 혼동했다. 과학적 지식은 제대로 갖추었는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영혼을 위한 준비는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에스더 일을 좁은 눈으로만 보았다. 그녀의 원리주의적인 신앙은 병을 죄의 심판으로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믿었다. 모든 현재와 미래가 돌이킬 수 없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견뎌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탈출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생지옥이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내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깨닫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고 자신에게 진정한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인식할 때 비로소 희망은 가능하다. 내가 뭔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내 행동들이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을 때 희망은 자랄 수 있다. 희망이란 내 능력에 대한 믿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통제할 만한 능력이 내게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 희망을 가져야만 우리는 자기 바깥의 힘에게 운명을 내맡기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달을 만한 통찰력이 없었고, 그렇게 눈을 가린 채 긴긴 세월을 보냈다. 포스터 선생이 에스더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식으로 마지막 결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 일의 보다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수업은 몇 년 뒤에야 시작되었다.





2장. 진실한 희망, 거짓 희망



1978년,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한 시골 읍내인 러셀에서 리처드 키스 선생의 일을 대신하는 당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유난히 뜨거웠던 8월의 어느 날, 키스 선생이 프랜시스 워커라는 환자를 소개했다. 4기 결장암 말기. 당시 나는 여전히 환자와 그 가족에게 나쁜 예후를 전달하는 방법을 몰라 더듬거리는 중이었다. 키스 선생은 말했다. "암이 당신의 목숨을 빼앗아갈 것이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 봤자 남은 시간만 훨씬 더 비참하게 만들지. 아니면 완전히 공포로 몰아넣어 완화 치료조차 거부하게 만들거나. 물론 의사마다 다 자기 스타일이 있고, 일을 풀어 가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지. 이런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 사실을 너무 많이 알면 감당하지 못할 걸세." 나는 더 이상 키스 선생을 압박하지 않았다. 절대 진리란 없다. 난 이 사람의 방식을 따를 것이다.

하지만 암이 급격하게 성장하여 고통이 심해지고 나서는 결국 프랜시스와 외동딸 샤론에게 사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샤론이 물었다. "왜 진작 이렇게 말씀해 주지 않으신거죠?" "키스 선생님도 최선의 노력을 하셨다고 생각해." "제 생각에 그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진실에 대처할 만큼 똑똑하지 않던지, 아니면 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오는 데 샤론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울렸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나를 옥죈 채 떠나질 않았다. 진실을 포기함으로써 키스 선생과 나는 프랜시스를 포기했고, 거짓을 말함으로써 샤론을 소외시키고 쓰라림을 맛보게 했다. 프랜시스가 죽은 뒤 키스 선생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며 눈이 흐려졌다. 하지만 당시 내게는 그를 향한 분노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분노로 그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몇 년 후 어느 날 키스 선생이 쓰러졌다. 담관암이었다. 일반적으로 예후가 아주 나쁜 상태에서 진단이 나왔을 때는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키스 선생은 치료를 위한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앤드루스 선생님이 정말 선생님을 속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모든 게 다 뻔한 수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키스 선생은 내 물음에 완고한 침묵으로 답했다. 키스 선생이나 나 같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능력을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희망의 능력도 의심했다. 우리는 환자들에게서 선택의 기회를 박탈했다.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선택권을.



회피, 애매한 답, 말 속의 미묘한 뉘앙스들은 전부 희망을 지속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공허했다. 그것은 거짓 희망, 유혹적이지만 순간의 만족을 위한 환상이었다. 환자에게 거짓말을 한 의사는 비록 좋은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해도 다시는 신뢰받을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병이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진실은 드러난다. 이와 동시에 환자의 거짓 환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남는 것은 오직 분노뿐이다. 프랜시스와 샤론도 그랬다. 이쯤 되면 의사가 그 어떤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해도, 그것이 아무리 진실된 희망일지라도, 그저 거짓 희망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앤드루스 선생이 의식적으로 키스 선생에게 희망의 여지를, 희미하지만 진실한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두고 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고, 저녁에 다시 돌아와서는 완치의 가능성에 더욱 힘을 실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자네 저 사람을 믿나?" "네, 믿습니다." 이후 키스 선생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암의 그림자는 수년 동안 키스 선생 내외를 따라다녔다. 담관암 같은 종양의 경우 보통 오 년 내에 재발이 없으면 완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육 년이 지난 뒤 나는 선생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담관암을 떨쳐 냈으니 이제 안도감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하지만 직접 환자가 돼 본 경험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네." 나는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으나 의사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키스 선생이 진실과 희망이 공존할 수 있는 중간 지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3장. 희망의 권리



1987년 어느 여름날 오후, 나는 또 다른 동료 의사의 병실을 찾았다. 하버드 의대 병리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존경과 사랑을 함께 받아 온 조지 그리핀 선생이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선생만큼 위암의 악성과 예후에 정통한 사람은 없었다. 조지 선생은 고용량의 화학 요법과 집중적인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공격적 치료를 받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나는 속으로 혹시 조지 선생이 죽음을 너무 잘 알아서, 의사인 자신이 스스로를 그런 고문 속으로 몰아넣을 만큼 그런 극단적인 저항을 하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익한 치료 속으로 뛰어드는 저 고집스러운 결정에서 조지 선생을 보호하고, 또 그의 아내를 보호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 아닌가? 고문과 다름없는 이 치료를 당장 끝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맡은 역할은 그런 개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당혹함과 연민을 숨긴 채 두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2000년 12월의 어느 추운 날, 조지 선생이 위암 진단을 받은 지 십삼 년째 되던 그 해 나는 병원의 안뜰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선생님은 저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의료진이 그 치료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까?" "알고 있었지. 환자들 중에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의 예후가 얼마나 나쁜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네. 앞으로 가망이 어떻다고 의사들이 정확히 얘기를 해 주지 않으니까. 나는 물론 내 병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할지는 내 '권리'였어. 사실 기대는 안 했네만 그래도 그때 나한테는 그 길밖에 없었네. 가슴 깊이 나는 정말 살고 싶었고, 그러니 싸워야 했지. 그래야 스스로한테 나는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않겠나."



진정한 자유인의 정신, 자기 운명의 결정자로 스스로를 정면으로 내세우는 자의 정신이 여기 있었다. 이것은 생존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노라며 결심하고 버텨 나갈 만큼 강인한 힘, 희망이었다. 의사는 마치 재판관인 양 절박한 환자를 내려다보고 앉아 당신이 앞으로 살날은 이제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노라고 선고를 내려서는 안 된다. 그 환자가 그럴 줄 알고 있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 나도 조지 그리핀 선생의 일을 겪고 나서야 생사의 주관이 어느 한 의사의 권한 내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사들은 어떤 환자라도 미리 단념해서는 안 된다. 최초 진단 시,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막아 놓고 선택의 기회를 차단하는 일은 성급하고 그릇된 처사다.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한다는 것은 저항, 곧 조지 선생의 설명처럼 내 삶의 조건은 내 스스로 정하겠노라는 저항의 몸짓이다. 견디며, 오래 견디며 기적이 일어날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인간 정신의 한 얼굴인 것이다.



4장. 한 걸음씩 차근차근



1980년대에는 내 환자들 거의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많은 죽음들 앞에서 희망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0년 초, 임상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 환자들 중의 훨씬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기보다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때마다 희망이 점점 현실화되었다. 조지 선생을 통해 나는 모든 환자들에겐 설혹 가망이 아주 낮을지라도 희망할 권리가 있으며, 그 희망을 키우게끔 돕는 일이 바로 내 역할임을 배웠다. 의학이 점점 발달하자 내 자신 스스로 희망을 믿게 되고 이로써 환자들이 희망을 바라고 그 희망을 끝까지 지켜내게끔 돕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댄 콘래드라는 환자를 만났고 그와의 만남을 통해 희망이 진정 현실이 되기까지는 과학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댄은 보스턴 시내의 한 건설 현장에 일하던 인부로, 어느 늦은 오후 시멘트 반죽을 들어 올리던 중 호흡 곤란을 느꼈다. 결과는 '공격형 비호지킨 림프종'이었다. 이러한 악성 림프종은 성장 속도가 빠르고, 종양이 기관지를 막거나 혈관과 내장을 압박할 위험이 있었다. 치료가 시급했다. 나는 댄과 이야기하면서 일부러 단호한 의지를 보였고, 시작부터 의도적으로 완치의 가능성을 거론했다. 실제로 종양의 크기와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완치의 가능성은 존재했다. 하지만 댄의 얼굴은 내가 의도적으로 드러낸 투지에도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죽음의 문턱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그랬고 그 뒤에도요. 지금 제 속 깊숙한 곳에서 그 죽음이 느껴진단 말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 제가 압니다. 속에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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