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이야기
한용운 지음 | 바보새
1. 수양과 성찰 (수성修省)수성이라 함은 자기의 심신에 대한 수양修養과 성찰省察을 말함이라. 이와 같이 어려운 길을 가고자 하매, 먼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표준점이 될 수 있는 자기의 심신을 수성하여 외물과의 사이에 생기는 관계를 조화시킴으로써 그 올바른 길을 얻을 수 있음이라. 외물이 나에 대하여 보응報應하는 것은 곧 내가 외물에 대한 작용을 반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심신을 수성함은 만사萬事의 근본이 되느니라.
배에 바늘구멍이라도 있다면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사상을 실천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한 생각이 잘못되면 모든 행위가 다 잘못되는 것이오. 그릇된 생각을 방지하되, 바다를 건너는 부낭에 바늘구멍 하나의 샐 틈도 용납하지 아니함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니라. 바다를 건너는 부낭에 바늘구멍 만한 틈새라도 있으면 물이 새어 들어와 침몰의 재화(災禍)를 당할 것이오. 사람의 생각도 이와 같아서 한 생각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모든 잘못이 발생하여 과오에 빠질 것이니, 생각을 엄밀히 방비하고 보호하여 터럭 끝 만한 것도 삿되고 거짓된 것은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라.
한가할 때 준비하라바쁜 때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한가한 속에서 검토하고 살펴보아 충분한 계획을 정해 놓으면 그릇된 행동이 드물고, 활동할 때에 일어나는 생각을 미리 고요한 가운데 닦아 가져서 뜻이 향하는 곳을 확립하면 도가 아닌 마음은 스스로 그치게 되는 것이니라. 이에 반하여 일을 한가한 때에 먼저 점검하지 아니하고 갑자기 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황망하게 전도(顚倒)되어 잘못이 생기고, 생각을 미리 고요한 가운데 조심하여 가지지 아니하고 갑자기 행동해야 할 때를 당하면 정욕이 산란하여 도가 아닌 마음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
마당을 쓸면서 풀을 뽑지 않으면 풀은 다시 돋는다부귀와 영화를 가벼이 함은 뜬 세상의 명리(名利 : 명예와 이익)를 사양하는 청렴 활달한 일이요, 이름과 절개와 의리를 중히 함은 속세의 욕망을 떠난 강직 공정한 뜻이라. 그러나 그 부귀를 가벼이 하는 마음과 명분을 중히 하는 마음을 항상 흉중에 지니고 스스로 귀중하게 여겨 자부하는 뜻을 가진다면, 이는 넓고 밝은 사물의 경지를 막는 더러움과 같고 맑고 깨끗한 마음의 경지를 막아버리는 티끌과 같으니, 이와 같은 곳에서 티끌 같은 더러움을 물리쳐 없애지 아니하면 그 더러움이 점점 번져서 마음의 경지를 가리게 되는 것이니라. 흡사 전원(田園)을 청결히 하려고 하면서 토석은 들어내고 풀뿌리는 없애지 아니하면 풀이 다시 돋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사람은 마땅히 부귀를 가벼이 하되 그 부귀를 가벼이 하는 마음까지 가벼이 여기거나, 이름을 귀중히 하되 그 이름을 귀중히 하는 마음까지는 귀중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깨끗한 곳에 발을 내딛어라공업(功業)을 세우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사를 이행(履行)하는 그 곳을 따라 진보의 발을 착지할 것이니, 만일 실지를 떠나서 조금이라도 명예와 칭찬의 허영을 앙모仰慕하면 진실한 공업을 이루지 못하고 허위의 결과를 이루며, 도덕을 강론하고 닦는 사람은 생각마다 탐욕이 없는 깨끗하고 밝은 곳에다 그 바탕을 세워야 할 것이니, 만일 마음을 겸허하게 가지지 않고 공리(功利)의 효과와 소득(所得)만 헤아리면 도리어 도덕을 등지고 속세의 욕망에 떨어지는 것이라. 그러므로 큰 공로를 도모하는 사람은 먼저 명예를 바라는 마음을 없애고, 도덕을 닦는 사람은 공적에 대한 효과를 바라는 생각을 반드시 끊어 버려야 하는 것이니라.
벌레 한 마리라도 다치게 하지 마라벌레 한 마리를 다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나, 이것은 측은한 마음(側隱之心 :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라, 인(仁)에서 나오는 뿌리요 새싹이니 이를 북돋우고 키워 큰 인으로 확대하고 보충하면 만족스럽게 사람을 구제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자선(慈善)을 이룰 것이오. 한 가닥 실오라기를 탐하지 않음은 지극히 사소한 행위이나 이것은 수오(羞惡), 곧 자신의 결점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착하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라. 의(義)에서 생기는 실마리이니, 이를 이행하여 정의를 원만하게 이루면 천지를 지탱하는 기질과 절개를 세울 것이라. 이 어찌 백성과 사물에 생명을 세우고 천지에 어진 마음을 세움이 아니겠는가.
어깨 힘을 풀어라사물에 대한 사사로운 욕심과 공공(公共)의 정의(正義)는 병행하지 못하는 것이고, 티끌 세상의 쓸데없는 일과 성현의 책임은 뒤섞일 수 없는 것이라. 그러므로 도의(道義)의 바른 문을 열고자 하면 먼저 물욕의 사사로운 길을 막아야 하고, 성현의 맡은 일을 떠맡고자 하면 반드시 속세에 집착하여 허망하게 치솟은 어깨 힘을 풀어 버려야 하니라.
원만해져라재주와 지혜가 영특하고 민첩한 사람은 일을 깨달음과 일을 결단함이 민첩하고 신속하여 매사에 가볍고 조급하기 쉬우니 마땅히 학문을 널리 익혀 그 가볍고 조급하여 천박한 그것을 억제할 것이요, 기개와 절조가 과격하게 높은 사람은 협기와 의기가 지나쳐서 매사에 편벽되고 조급하기 쉬우니, 마땅히 덕성을 길러 그 편벽되고 조급함을 융화시켜야 할 것이니라.
배움은 스스로 깨닫는 것만 못하다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깨닫되, 남의 말에 의하여 깨닫는 사람은 깨닫기는 하나 도리어 미혹한 것이 있어서 스스로 깨달아 분명히 아는 것만 못하니라. 왜냐하면 남의 설명을 듣고 사리를 깨닫는 사람은 남의 설명을 들을 때에는 깨달아 이해하지만 남의 설명이 없으면 곧 혼미하여지기 때문이라. 그러나 자기의 마음과 힘으로 연구하여 깨달은 사람은 남의 설명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항상 똑똑히 알게 되는 것이니라. 예컨대 연회석상에 아름다운 사람과 재주 있는 사람을 모아 놓고 아름다운 노래, 미묘한 춤으로 일장의 희극을 연출하매 주흥이 일어나고 아리따운 정이 깊어져 마냥 즐겁기만 하다가도, 가무가 그치고 술이 깨고 사람들이 돌아가서 씁쓸한 정경이 빈창에 스며오면, 아까의 흥이 연기처럼 가라 않고 재처럼 식어서, 도리어 얼마간의 처량함만을 느낄 것이니 이것은 외부의 작용에 따라 득실이 있는 흥취이기 때문이라. 그러니 어찌 처량한 곳에서 평온하고 담박한 뜻을 가지고 쓸쓸한 때에 여유 있는 흥(興)을 내어서, 외부의 속박을 받지 않는 스스로 얻는 흥으로 항상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느냐.
2. 마음 자리 (응수應酬)응수란 일체의 사물을 접촉하고 상대하는 것이니 사람은 사교적 동물이라 고립된 생활을 할 수 없으므로 갖가지 사회의 모든 관계가 다 자기의 활동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 이렇게 바퀴살 같이 복잡한 사물에 대하여 올바르게 응수하지 못하면 어찌 세상의 복잡다단하고 인정을 헤아릴 수 없는 뜬세상의 일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으랴. 사물과 사물의 사이에 상대적으로 생기는 행복과 고통의 득실 관계가 뒤숭숭하여 대중이 없으니 응수의 길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라.
감정을 보이지 마라선비나 군자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남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가벼이 나타내지 말 것이니라. 만약 조금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고 곧 노기를 나타내어 기뻐함과 성냄이 너무 빠르면, 남이 그 기색을 보아 안에 지니고 있는 속마음을 엿보아 알게 되는 것이니, 외계의 사물에 대하여 좋아하고 싫어함을 지나치게 하지 말 것이니라. 만약 좋아하고 싫어함이 치우쳐서 혹 애정에 집착하거나 혹 증오가 지나치면 애정 상에 가지가지 부자유를 일으켜 의기와 정신이 모두 밖에서 사물의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니라.
참다운 용기란 무엇인가지혜가 밝다는 것은 사물의 마땅히 살펴볼 것과 살펴보지 않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니, 만일 살펴볼 것과 살펴보지 않아야 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떤 사물이든지 한결같이 관찰하기를 좋아한다면 이는 밝은 것이 아니니라. 능히 살펴볼 것을 살펴보고 살펴보지 않을 것은 살펴보지 않는 것이 밝은 것이라. 또 큰 용기란 억울함을 설욕하기 위하여 적을 이기기도 하고, 모욕을 참기 위하여 자기를 이기기도 하는 것이니, 만일 설분(雪憤)과 인욕(忍辱)의 득실을 조화하고 견제하지 못하고, 한 때의 객기(客氣)로 기어코 적을 이기기만 한다면 이는 큰 용기가 아니니라. 능히 적을 이기어 분을 풀고 능히 적을 이기지 아니하여도 모욕을 참는 것이 참으로 큰 용기라. 잘라 말하면 보고 보지 않는 것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을 밝음이라 하고, 이기고 이기지 않음을 마음대로 하는 것을 용기라고 하는 것이니라. ( 참다운 용기 또는 참답게 자기를 잘 살펴보는 것은 능히 참아야 할 곳에서 모욕적인 것을 참고 견디고 나아가 상대를 절복해야 할 때에는 조금치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 절복시키는 것, 그것이 사항을 밝게 살피는 것이요. 진정한 용기라고 할 것이다.)
얻으면 잃는다세상에 가득 찰만한 공명과 하늘을 들 만한 부귀라도 사람의 죽음과 일의 변천에 따라 사그라져 없어지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어떠한 공명이나 부귀도 그 사라져 없어지는 곳에서 최후의 궁극을 관찰해 보면, 얻고 잃는 것이 덧없음을 깨닫게 되어, 탐내고 부러워하고 연모하는 정이 스스로 가벼워지는 것이니라. 또 뜻밖의 재난과 억울한 곤궁도 그 일어난 곳에서 그렇게 된 원인을 연구해 보면 모두 자기가 스스로 취한 것이요 남의 잘못이 아님을 알아서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마음이 스스로 식어지는 것이니라. 공명과 부귀를 욕심내어 집착하지 말고 재난과 곤궁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니라.
광명정대마음의 기운은 털끝만큼의 치우침도 없이 융화하고 소통하여, 모든 사람과 서로 도와주고 함께 즐기기를 기약하되 화창한 봄바람이 모든 생물을 흔들어 시원하게 불어 줌과 같이 조금도 막히는 일이 없게 할 것이며, 마음속은 일점의 숨김도 없이 광명정대하여 모든 사람과 서로 어울리되, 맑고 밝은 가을달이 모든 물건을 환히 비춤과 같이 털끝만큼도 모호한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니라.
일의 순서일의 변화를 만났을 때 오직 한결같이 진정하여 침착하게 순서를 잃지 않고 처리하면 그 일이 아무리 헝클어진 실과 같더라도 마침내 순서대로 정리될 것이다. 사람을 대우하되 조그마한 거짓과 숨김도 없이 진실하고 정당하게 하면 교활하여 귀신같은 사람이라도 스스로 성의와 신의를 바쳐 올 것이니라.
3. 평가와 토론 (평의評議)이 평의는 원저자 곧 홍응명(烘應明)씨가 자기의 가슴속에 하나의 이상적인 평의회를 열고, 우주 안의 온갖 사물을 의논할 안건으로 제출하여, 충분한 토론과 공정한 가결로 평의를 끝마치고, 독자 여러분에게 통과를 맡겨 시행되기를 기대한 것이라. (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다. 상상으로 회의를 하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홍응명 씨가 그렇게 했다고 만해 스님은 말했지만 이것은 홍응명 씨의 이름을 빌린 만해 스님의 순전한 발상이다.)
해탈인격을 완성하려면 세속적인 인정으로부터 해탈(解脫)하여 속세에 물들지 말고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시속(時俗)의 흐름을 거슬러 억지로 고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나니, 시속을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 괴상한 행동이 생겨서 남이 시기하는 화로 닥쳐올 것이라. 이를 운용하려면 그때의 사정에 따라 임기응변의 기능을 잘 써야 하며, 시세에 붙어 좇아다닐 생각을 일으켜서도 안되느니라. 시세에 붙어 좇아다니다 보면 아첨하는 행동이 생겨서 남이 비루하다고 꾸짖을 것이니라.
인품인품(人品)을 높게 이루려면 오직 한가지로 솔직하게 해야 하나니, 거짓됨을 벗고 그 하는 일이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에 밝게 비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니라. 그렇게 되면 그의 종적( 迹)이 깊은 산, 험한 골짜기 속에 들어가 숨어 있어도 그의 덕과 명성은 도리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라. 마음을 수양하는 데에는 털끝만큼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잡된 욕망이 있으면, 공사를 행함에 사사로운 인정이 있게 되는 것이라. 고상한 품격은 솔직함을 요구하고, 마음의 생각은 맑고 깨끗한 것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니라.
졸부와 영웅가난하고 미천한 자가 의지와 기계(氣系)를 자부하여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게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은 실력이 없는 헛된 교만이지만, 도리어 거기에는 얼마만큼의 호협한 기상이 있어서 남에게 아첨하거나 비열하게 구는 것은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 그러나 영웅이 자기의 재능을 빛내어 일세(一世)를 기만하는 것은, 비록 종횡무진 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반점의 진실한 마음도 없어 마침내 원만하고 아름다운 덕을 손상시키는 것이니라.
행복날아다니는 나방이 먼저 등불을 피면 등불은 도리어 나방을 태워 버린다. 사람의 재화도 자기가 악의 근본을 심어서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요, 또 열매의 씨로 꽃을 심으면 그 꽃이 도리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이라. 이것은 열매를 맺는 복은 꽃을 심는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것이니, 행복이 오는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 사람의 행복도 좋은 원인을 심어서 스스로 구하는 것이니라.
분별심을 내지 마라만(萬) 가지의 경계가 어수선하게 각각 다르지마는 그 참된 취지는 다 같아서 한 길로 난 수레바퀴 자국과 같은 것이니, 본래 궁색함과 통달함이 다르다고 할 것이 없는 것이고, 만물이 들쭉날쭉 서로 같지 않지만은 그 원리는 하나이므로 남과 나의 구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유일한 참 마음이 미혹되어, 분별하는 망령된 생각을 좇아 한 길 수레바퀴 자국의 평탄한 길 위에 막히고 통함을 구별하는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하나의 굴 안에다 남과 나를 구별하는 울타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니라.
역경을 즐긴다심상(尋常)한 평범한 사람들은 일마다 뜻대로 되는 순탄한 경우를 좋아하지마는, 군자의 즐거움은 이와 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역경 가운데서 오는 것이며, 또 사람들은 자기 뜻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까를 근심하지마는, 군자의 근심은 이와 반대로 유쾌한 일에서 생기니라. 용렬庸劣하고 비겁한 사람들은 장난과 게으름 피우기를 좋아하여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말리는 유익한 벗을 기피하지마는, 덕행을 닦는 군자는 착한 일을 권하는 아름다운 말을 좋아하고 아첨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무리를 근심하느니라. 사람들은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사사로운 정리로써 하고, 군자는 근심이나 즐거움을 떳떳한 도리로써 하기 때문에 그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경계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라.
4. 마음의 여유 (한적閑寂)한적은 심경(心境)에 구별됨이 있다는 것이니, 경(境)의 한적이라 하는 것은 시끄러운 저자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림의 샘물을 말하는 것이고, 마음의 한적이란 경이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설혹 군사와 말이 분주하게 오고 가고, 장부와 문서가 복잡한 지경 가운데 있더라도 마음 가운데 별도로 한 줄 선(線)으로 한가함을 얻어 한 점의 번뇌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 심경(心境)을 취하느냐, 버리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터득한 능력에 따라 다를 것이지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처하여 어떤 일을 하든지 한적한 취미를 알지 못하면 항상 사물의 부림을 받아 번뇌가 만장(萬丈)이나 되는 괴로운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