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립습니다
닐 체틱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거울을 통해 보는 사내아이 - 유년기(출생~17세)
아버지의 죽음은 아이의 삶을 지진처럼 삼킨다 아버지가 50세 때 태어난 톰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와 아들은 숲 속을 돌아다니며 시냇가에서 낚시도 하고, 자동차를 개조해 아지트를 만들어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언젠가 자신이 소유한 자그마한 땅에 아들과 함께 카센터를 여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 꿈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그에게 '사내다움'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톰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 침대 밑에서 톰은 그리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 혼자 울었다. 그는 10대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다. 학교생활이 몹시 지루했던 톰은 17세 때 공군에 입대했고, 2년 뒤 술독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만취한 톰은 막사의 화재경보기를 잡아당겨 체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꼭 11년째 되는 날이었다. 독방에 갇힌 톰은 긴장형분열증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뒤 그는 군대생활을 정리했고,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전쟁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팔 다리를 잃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그보다 더한 장애를 지니고 있더군요. 나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어요." 미국 남자들 가운데 약 4%가 8세가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는다. 그런 남자들은 모두 언제나 그 경험을 재난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어느 시기에 이르자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안정을 찾은 뒤에도 그들은 집안 일이 있을 때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상실감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감정 조절장치가 고장 난 성인아이제대한 뒤 톰은 정직하게 일하며 생활했던 아버지를 따름으로써 아버지의 부재에 맞서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톰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원했는데 처음에는 가능한 듯 했다. 20대 초반에 교회에 다니면서 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커다란 상처는 그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는 유형으로 말이다.
그의 결혼 생활이 6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이유는, 그가 아버지 될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빨리 아기를 갖길 바랐는데, 톰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알기에 내 아이에게 그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혼은 또 한 번의 고통이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처럼 톰은 버림 받은 느낌이 들어 더 깊이 알코올로 빠져들었다.
톰은 금주 프로그램에 등록해 치료를 받았다. 그 후 1년간은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이 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는 상담치료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말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슬퍼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요. 정말 멍청하지요. 나는 많은 것을 잃은 뒤에 깨달았어요. 만일 누군가가 좀더 일찍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났지만 톰은 아직도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인생의 균형감각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싸움은 아버지를 일찍 여윈 남자들이 대부분 겪는 일이다. 마치 아버지의 죽음이 아들의 감정적인 조절장치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후 평생 거의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이들은 어릴 때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감정이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남자 연습하기 - 성년기(18~32세)성년기의 남자들 5명 중 1명이 아버지를 여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들들은 대부분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었고, 재정적인 부분, 정서적인 지원, 삶의 모델이 되는 안내자 등 여전히 많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거의 항상 아버지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뭔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표현하지 못했던 가슴 속 응어리나 원망이나 깨닫지 못한 애정 같은 것들 말이다.
또한 이 시기의 아버지의 죽음은, 아들이 결혼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도 전에 중요한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게 만든다. 또한 성년기 초기에 아버지를 잃은 남자들은 중년 이상의 남자들보다 약물 남용, 사회적 위축, 자기 불신과의 반복되는 싸움 등과 같은 엄청난 공포에 직면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 한 달 동안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21%에 해당하는 남자들이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했다. 성년기에 아버지를 여윈 남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다른 사람(가족이나 친구)에게 의존하는 일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일어서는 데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10대 후반이었던 아들들은 운이 좋지 못하다. 성년기에 아버지가 죽은 남자들의 25%가 아버지 때문에 아직도 가끔씩 화가 난다고 조사되었다. 아들이 18~22세가 되면, 아버지는 조력자가 되어 아들을 어린 시절의 집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도와준다. 아버지를 통해 아들은 확신을 갖게 되며, 자립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그 뒤에 아들이 20대 중ㆍ후반의 나이가 되면, 아버지는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조력자의 위치에서 아들의 결정과 성취(직업, 이성교제 등)를 승인하는 역할로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승인을 받을 때, 아들의 확신은 확고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을 완전히 성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와의 이런 동등한 관계에 도달하는 과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혹은 중도에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 아들은 이 성숙의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또는 아버지를 대신할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무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어딘가 모르게 뻥 뚫린 구멍과도 같은 공허함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는 아들들 - 중년기(33~55세)'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영향 조사'에 의하면, 아버지가 사망한 당시 33~55세의 남자들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 2~3년 동안 자신의 생명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48세의 한 대학교수는 아버지가 죽은 뒤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방패였어요. 항상 저를 보호해 주셨죠. 하지만 다음 차례는 접니다."
중년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남자들은 이 상처받기 쉬운 고조된 감정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한다. 어떤 남자들은 실제로 질병에 시달린다. 일시적인 정서적 불안감에 빠지거나 극적인 삶의 변화를 모색하기도 한다. 실제로 중년기에 경험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일반적으로 유년기나 성년기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아들의 삶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변화시키는 잠재력은 여전하다.
아버지를 미워하더라도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간다 84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맥스 할버그는 53세였다. 맥스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사내다움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남자다움, 즉 확신과 확고함이 있었다. 그 점은 맥스도 닮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맥스는 아버지를 위선적이며 경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위압적인 스타일을 거부하다 보니, 그는 지나치게 수동적이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가정생활을 모두 맡기고 있었다. 아버지와 대화해 보려던 첫 번째 시도가 거절당한 뒤에 그는 뒤로 물러나 버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면서 맥스는 여느 때보다 술을 많이 마시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격도 꽤 지독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또 맥스는 갑자기 아내를 향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더니 결혼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인가?" 맥스는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했다.
맥스의 상태는 몇 달 동안 악화되었다. 그리고 2년 뒤 어느 날, 3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를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그 상태는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맥스는 마음을 바꿨다. 그는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결국 행운이 되었다. 맥스는 아내에 대한 분노가 잘못되었고, 그의 진짜 분노는 도덕적이면서도 인정머리 없는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고집 센 성격의 아내가 손쉽게 맥스의 첫 번째 목표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맥스는 여전히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그는 쉽게 분개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로 인해 지독한 성격을 갖게 된 데 동정심을 느꼈다. 한편 맥스는 결혼 50주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결혼은 끄떡없노라고 기분 좋게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간다. 아이들도 떠나간다. 성적 충동도 줄어든다. 직업적 선택의 기회도 줄어든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는 중년의 미래는 우울하고 꽉 막힌 것처럼 볼 수 있다. 목숨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중년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스포츠카를 사서 드라이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대부분의 남자들은 기꺼이 그 상실에 맞서는 경향이 있었다.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즉,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은 '이제 다음은 내 차례'라는 두려움을 통과해,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뭔가?'에 대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떠나보내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 - 노년기(56세 이상)
하나의 인생이 저물면서 또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85세의 아버지가 뇌졸중을 앓다 돌아가신 지 3일이 되었다. 그동안 환갑이 다 된 댄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목에 차올랐다.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관에 다가간 댄은 평화로운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아버지의 팔을 만져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런지 모른 채, 댄은 아버지의 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때 댄은 며느리의 팔에 안긴 두 살배기 손녀를 언뜻 보았다. 아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댄은 한참동안 손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곧 슬픔은 사라졌다. 그리고 댄은 다시 관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손녀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녀가 그의 목을 감쌌다. 다음 몇 분 동안 그는 손녀를 감싸 안고 행복감을 맛보았다. 2년 뒤에 그는 당시의 기분을 들려주었다. "내 손녀를 보았을 때 나는 인생 하나가 저물었지만 또 다른 인생이 새롭게 시작한다고 느꼈지. 그게 순리 아닌가?"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현상은 노년기 아들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인터뷰를 한 노년기 남자들 대부분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을 꾸밈없이 솔직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85% 이상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아내, 파트너, 친구, 친척들로부터 도움을 구하고, 또 도움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고통은 아버지가 충분히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상쇄되었다. 56세 이상의 남자들 가운데 아버지가 죽었을 때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63세였던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큰 재앙으로 보지 않았어. 정말이야. 슬프긴 했지만 비통하지는 않았지."
떠나보내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시인인 토마스 린치는 노인들에게는 특별한 통찰력이 있다고 했다. "노인들은 떠나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희생하며 성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달라진다고 린치는 생각했다. "50대와 60대에 접어든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삶의 의미를 깨달을 때, 인간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신에게 맡기는 목록이 길어지는 대신, 자기 자신이 통제하는 목록은 점점 짧아집니다." 린치는 나와 대화를 나눌 때, 노인들은 젊은이들보다 슬픔에 대한 '반작용'을 덜 일으킨다고 말했다. "60대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실컷 울고, 실컷 웃고, 감사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아버지의 죽음에 참여해 그 일부가 되어라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인터뷰를 했던 많은 남자들의 경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가장 유용한 준비는 다른 죽음을 미리 경험하는 것이었다. 특히 40세 미만의 남자들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종종 생애 최초의 가장 큰 상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준비는 가능하다.
공무원인 게리 이시노프는 죽음과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건강하셨지만, 37세인 게리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게리는 자신의 호스피스 경험을 '커다란 변화'라고 묘사했다. "그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그들이 곧 저 세상으로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들도 자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건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겁니다. 그 모든 것에는 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죠. 저는 그런 경험을 통해 죽음에 익숙해지게 되었어요."
죽음과 친구가 된 것은 5년 뒤에 아버지를 간호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80세의 아버지가 병마와 싸우며 병실에 누워 있을 때, 게리는 '선한 죽음'이라는 호스피스의 개념을 기억하며 가능한 한 죽어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려 애썼다.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인생을 마감하는 걸 지켜줄 수 있다는 것, 내가 그 과정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죠. 아버지는 제가 두 발로 설 수 있도록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가 아버지를 돌봐드릴 차례가 돌아왔던 것이죠.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죠. 그때는 마치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게리는 『티베트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읽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음의 신비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외에도, 책을 읽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아직 가지 않은 여행길에 동행이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함으로써 동질감을 안겨줄 수 있다. 또 남자들은 죽음에 대해 아버지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눔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 83%는 그 대화가 나중에 아버지의 죽음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작별인사, 아버지 고맙습니다!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와 임종 시점에 아들이 아버지를 간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직접 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