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남자 vs 남자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김영삼 vs 김어준 - '내 맘대로' 왕자, '니 맘대로' 독재자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 '김영삼론'
-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부터 1998년 2월 24일까지 만 5년 동안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첫해 90%대까지 치솟았던 YS의 인기는 임기 말에는 10% 이하로 떨어졌고, 현시점에서는 더 바닥을 치고 있다. 근자에 YS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제발 YS를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돌대가리 YS와 붙어먹는 기자 너도 돌대가리'라는 폭언도 퍼붓는단다. YS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박종웅 의원의 육성이다. "내 홈페이지에 글이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10건 중 9건은 욕이다. 심지어 YS를 왜 자꾸 따라다니느냐며 '둘이 호모냐'라는 욕까지 올라온다. 사람들이 YS를 '또라이'라고 하고 나를 '꼴통'이라고 하는 것 다 안다." 게다가 한 네티즌은 YS의 막가파식 독설을 비난하며 "이젠 손명순 여사가 나서야 한다"며 비아냥거린다. 레이건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에게 공개한 낸시 여사처럼 손 여사가 YS의 행동에 대해 솔직히 국민에게 고백하고 모종의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대단한 독설이지만 현재 그게 YS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솔직하고 감정적인 반응인 듯하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죽은 건 YS의 기(氣)가 셌기 때문이다?! - YS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기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문제는 그 정도가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는 데 있다. 그는 전형적으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 식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YS는 2000년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이라는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두 회고록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역사를 YS 자신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란다. 한 시사 잡지에 실린 만평이 걸작이다. 비서관이 그에게 자서전에 대한 시중의 여론이 '저질스럽기까지 하다'는 쪽이라고 전한다. 그랬더니 YS는 "그러게 내가 종이도 최고급으로 쓰고 표지에도 금박을 넣자고 했잖아"라며 흥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걸핏하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YS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내 인생의 낙'이라고 했단다. 물론 YS의 말이다. 강력한 야당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의 말도 예사롭지 않다. "내가 야당 때는 참 무섭게 싸웠어요. 그래서 결국 박정희가 죽은 거예요. 나를 국회의원 제명 안 했으면 박정희는 안 죽었죠." 그러나 '내 멋대로' 식 사고의 금메달감은 단연 김일성 사망원인에 관한 그의 진단이다. 김일성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죽은 건 자기처럼 기가 센 사람과의 회담 준비에 과도하게 신경을 쏟다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듣고 있던 사람은 완전히 할 말을 잃게 된다. 그가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



"모두 깜짝 놀랬제" - YS는 자신의 존재가 콘서트의 오프닝에서 가수가 처음으로 등장할 때처럼 극적이고 화려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YS는 대단히 강박적인 스타일리스트다. 넥타이를 잘 매고 옷을 잘 입어서가 아니라 내용보다 포장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다. YS가 깜짝쇼를 좋아하는 심리적 배경이다. 1993년 3월 육국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한 후 수석비서관들에게 장난스럽게 YS가 던진 "모두 깜짝 놀랬제"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수석비서관은 이렇게 말한다. "김 대통령의 진면목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큰일을 저질러 놓고 어른들이 당황하는 것을 지켜보는 악동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표정이었죠."



신이라 불리고 싶은 사나이 -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YS의 오만과 독선은 이러한 심리적 패턴을 바탕으로 한다. YS는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성장했고 그런 태도를 신념화했다. 그의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게 있다. 사진 속의 그는 대부분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사진에서부터 그런 습관이 나타난다. 초선의원 시절 자신의 정신적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조병옥 박사와 사진을 찍을 때도 뒷짐을 지고 있으며, 46세의 최연소 야당 총재로 국회에서 대표 연설을 할 때도 그렇다. YS는 다른 사람을 언급할 때 호칭을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김대중이가, 이인제가, 이회창이는…." 매사가 그런 식이다. 오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또 그가 잘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것이다. 고(故)정주영 회장이나 박태준 전(前)포철회장, 박철언 의원 등은 모두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YS에게 곤욕을 치른 사람들이다. YS에게 선악의 기준은 오로지 자신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을 지지하면 선이요,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거나 자신과 반대 입장을 취하면 그건 바로 악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나는 지금 YS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테러리스트?! - 김어준은 1968년 경남 진해에서 출생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세 번 떨어진 후 홍익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최초의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이후 무려 3년 동안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등 40여 개국을 여행했다. 미당의 시구를 빌어서 표현해 본다면 '지금의 김어준을 키운 건 9할이 여행이었다'. 이집트에서 귀국한 김어준은 여행 관련 IP 사업과 이벤트 사업, TV 다큐멘터리를 기획, 제작하는 일에 종사한다. 배낭여행과 인터넷을 결합한 신종 여행상품을 개발해서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던 김어준은 IMF를 맞아 수천만 원의 빚을 지고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딴지일보」는 그때 시간은 남는데 할 거는 없고 그래서 심심풀이로 만들어본 개인 홈페이지라고 한다. 그는 아랍을 여행하기 전까지는 아랍인들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유태인은 머리 좋고 역경을 이겨낸 민족,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랍 버스에 올라와 검문을 하는 이스라엘 군인은 아랍의 편에서 보면 일본 순사였고, 팔레스타인인의 폭탄 투척을 그들의 등 뒤에서 봤더니 바로 우리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김어준이 느낀 충격의 강도나 철학적 고민이 그대로 실려 있는 에피소드다. 그렇게 선입견을 없애고 뒤집어서 생각해본 경험이 「딴지일보」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럼 니가 만들어" - 김어준은 YS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오만과 독선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오만과 독선은 오히려 귀엽고 유쾌하다. 「딴지일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철저하게 비주류를 지향한데다 고정관념 없이 핵심을 향해 거침없이 찌르고 들어가는 비판과 풍자 때문이라는 게 인터넷 전문가들의 평가다. 「딴지일보」의 보도원칙이라는 것도 딴지식 표현처럼 '엽기적'이다. "독자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독자의 항의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독자에게 변명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오만과 독선을 바탕으로 한다. 「딴지일보」의 독자들은 김어준과 딴지의 '귀여운 오만과 독선'을 충분히 수용하고 즐기기까지 한다. 김어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독자들이 딴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해오면 그냥 놔둡니다. 왜냐하면 그 비판 자체는 그 독자가 언론으로 기능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정 귀찮게 구는 독자가 있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그럼 니가 만들어'." 대단한 통찰력에다 얄미울 만큼 한계가 명확하다.



'당연한 걸 가지고 씰데없이 폼은' - 김어준은 부모의 완전 방임 속에서 자랐다고 한다. 맛있는 게 있으면 부모님들만 드시면서 "너는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아, 짜식아",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김어준은 그런 통제 없는 시스템 속에서 자율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딴지일보」가 말을 막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무책임한 짓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김어준은 늘 상식에 근거해 판단하려 한다고 말한다. 김어준은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좀 다르다. "저 페미니스트 아니에요.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남자 여자 차별 안 해야 하는 거 상식 아닌가요? 너무 당연한 걸 가지고 지가 페미니스트라고 잘난 척하는 남자들, 저 이해 못해요." 역시 상식 수준의 역설이다.



'니 꿈을 이뤄주마' - 이제 김어준은 딴지사옥을 마련해 주방과 간이 바도 만들어놓고 수많은 딴지 식구들과 함께 삐딱한 책상에 않아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딴지그룹의 경영철학도 삐딱하긴 마찬가지다. "저희의 사규가 '니 꿈을 이뤄주마'예요. 직장이 바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저는 과거에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엔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가 중요하죠." 어느 해 추석을 앞두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설파하는 김어준의 말을 들어보자. "왜 방송은 추석 때마다 성룡 영화를 그토록 재방 삼방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 PD들이 골라냈을 텐데, 그 사람들한테 묻고 싶어요. '니넨 그거 재밌니? 니들이 재미없으면 우리도 재미없어'."



오로지 '나'를 위한 예외 - 미국의 어느 기자가 '미국 국회의원들은 모두 다 저능아다'라는 신문기사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 문장을 미리 본 고참 기자는 그에게 충고했다. "그 기사가 나가면 국회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그러니 한 구절만 추가하자." 다시 고친 문장을 이랬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다 저능아다." 기사가 나간 후 항의한 국회의원을 한 명도 없었단다. 국회의원들은 모두 그 '한 명'이 바로 자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기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이건희 vs 조영남 - 완벽하지 '못한' 황제, 망가지지 '않는' 광대



누구에게나 '아픈 곳'은 있다
- 오늘날에는 콤플렉스란 말이 열등감과 같은 뜻으로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개인적 콤플렉스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은 구강기(口腔期), 항문기(肛門期), 남근기(男根期)의 순서로 심리적인 발달을 하며 성장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소아적 의존성을 가진 미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항문기적 성향인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강박적인 삶을 사는데, 그들은 세상을 경쟁의 원리에 따라 바라본다. 그에 반해 남근기적 성향인 사람은 즐거움 자체를 추구한다. 그들에게 경쟁과 완벽은 의미 없는 논리가 된다. 이렇게 분류할 때 이건희는 전형적인 항문기적 성향의 소유자고, 조영남은 그것을 뛰어넘은 남근기적 성향의 사람으로 본다.



황제의 열등감?! - 이건희는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황태자'를 거쳐 '황제'가 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한 다이어트를 '황제 다이어트'라 칭하고, 그가 사람들에게 베푼 정을 가리켜 '황제의 정'이라는 희한한 단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나는 이건희를 볼 때마다 정상에 선 사람의 고독감보다는 '황제의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건희에게 '열등감'이란 단어는 가당치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인간 이건희'의 일생을 찬찬히 관찰하다보면 열등감이란 키워드만큼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건희에겐 시비도 걸지 마라 - 이건희의 성격을 정신의학적으로 규정해 보면 '강박적 성향'에 해당한다. 이 성향의 심리적 축은 열등의식이다. 강박적인 성격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감정기능이 빈약하다. 이건희는 취미가 '연구와 생각'이라고 할 정도로 감정보다는 사고가 비대한 사람이다. 이건희는 퇴근 후에도 자기 방에 들어가 한번 앉아버리면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도 2~3일에 한 번씩 아빠 방에 와서 '아빠' 소리 한 번 하고 겨우 5분 정도 이야기하는 게 고작이었단다. 강박적 성향의 소유자는 타인과의 감정적, 정서적 접촉을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에는 권위에 대한 공포가 내재화 되어 있고 그와 함께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강한 분노와 적개심이 혹시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에 발간된 독일의 경영전문 월간지 『매니저』에는 삼성그룹의 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에는 한국에서 이건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한 독일인이 겪은 일을 소개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독일인은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커 두 번이나 항의해도 통하지 않자 세 번째 항의 차 옆집으로 갔다. 그러자 관리인은 그 집이 이건희의 저택이라고 말하면서 독일인이 세든 집도 이미 이건희 소유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건희가 항의 소식을 듣고 옆집을 매입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이 개입될 문제를 만나면 아예 그 해결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원리원칙을 따지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때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다. 이건희는 삼성직원들에게 '신경영'을 전수하면서 "내 말을 적어도 50번 이상 반복해서 테이프를 통해 들어라. 자꾸 들어 외울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몸에 배게 되고 실천이 가능해진다"면서 자신의 방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삶의 철학이란 것이 반복해서 듣고 보는 것만으로 체득되는 것인가. 문제가 있을 때 그 메커니즘이 머릿속에서 풀리는 순간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인간관계도 그러한 원칙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눈치다.



강박적 성격의 세 번째 특징은 도덕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들은 예의범절이나 에티켓 같은 것을 지나칠 정도로 중시한다. 이들은 어릴 때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그 권위에 압도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희도 성격적으로 이러한 특징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건희는 자신이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기업이란 이윤추구 집단이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강한 동지애로 뭉쳐 최고의 효율을 통하여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모임"이라고 정의한다. 기업이나 종교단체, 학교, 사회단체 등은 각기 담당해야 할 나름의 몫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기업의 오너이면서 완전한 도덕성을 꿈꾸는 이건희의 욕심은 끝이 없다.



찬바람은 옷섶을 열지 못한다 - 이건희도 개인적으로 보면 인격적으로 여러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다. 이건희식 사고방식을 한번 그대로 차용해 보자. "어떤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는 순간 문제 해결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희 자신과 삼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인간 이건희와 삼성의 울타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여유 있는 '남근기적 삶'을 음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도 좋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히트곡이 나의 히트곡 -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예쁜 여자를 보고도 설교를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 목사 되기를 포기했다는 사람이 바로 조영남이다. '가수, 화가, MC, 글쟁이, 뮤지컬 배우, 연애쟁이.' 그가 밝히는 자신의 이력이다. 못생긴 얼굴에다 <화개장터> 외에는 변변한 자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