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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대화법

이정숙 지음 | 나무생각
상황에 따른 자녀와의 대화 장애물 넘기

1. 공부에 관해서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모도 누군가가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막연하게 "공부 잘해야 출세하니까."라든가 "공부 잘해야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얻어 잘살 수 있으니까."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도 박사 실업자가 수두룩하며 의사나 변호사라고 해서 다 잘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려면 자식에게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 그 이유 정도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부모는 여전히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식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만 생각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고생고생해 자수성가했으니 자식들은 당연히 죽기살기로 열심히 공부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가 왜 자기가 잠시 쉬는 꼴도 보지 못하고 죽기살기로 공부만 하라고 닦달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차가 부모 자식간 대화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다. 부모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자식이 자라는 환경 차를 인정해야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오랜 신념대로 입만 열면 자식에게 무조건 공부하라고 말해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끼리 솔직히 말해서 학창 시절에 지금의 자녀들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우리 때는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사정이 못 돼서 그런 거지요. 학교 다녀오면 농사일 거들어야지, 집안일 도와야지, 공부만 하는 것은 사치였지요." 이와 같은 변명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신의 학창 시절이 지금의 당신 자녀처럼 여유 있는 상황이었을지라도 당신 자신이 자식에게 요구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렸을 보장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보장을 할 수 없어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를 외치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가끔 우리 작은아이가 운영하는 '공부기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자식들이 부모와 공부 때문에 빚는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연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공부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조금만 쉬고 있으면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달려와 "지금 공부 안 하고 뭐해?" 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가 한눈 팔지 않도록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아들의 공부방을 지키며 뜨개질을 했다는 어머니를 최고의 어머니로 친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으면 아이는 공부하다가 잠시 음악을 듣거나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겠는가? 어머니가 곁에서 뜨개질을 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아이는 굳이 어머니가 지켜보지 않았어도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아이일 뿐 공부 못하던 아이가 단지 어머니가 지켜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항상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직장생활도 그 때문에 따분한 것이다. 그러나 여가 시간에 짬짬이 즐기는 취미생활을 보면 땀을 뻘뻘 흘리거나 힘에 부치는 일도 기꺼이 한다. 억지로 하는 일과 자발적으로 하는 일의 차이다. 정말로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자식이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 자식에게는 결과에만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때로는 아이와 약속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예상을 뒤엎고 "성적이 좀 내려갔다고 죽고 사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 시간에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게 더 낫지 않겠니?"라고 말하며 어깨를 토닥여보라. 그 아이는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다.



2. 교우 관계에 관해서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를 사귈 때


부모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 길러도 자식이 나쁜 친구 꼬임에 빠지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자기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겉모습이 초라한 아이를 친구라고 소개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 아이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이지? 공부는 잘하니? 가족들은 어떻게 돼? 집이 어디야? 몇 평에 살아?" 와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부모가 친구 앞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자녀는 부모가 자기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해 친구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수록 쉽게 정의감에 불타기 때문에 강자보다 약자 편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기 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기면 자녀는 부모를 강자로 보고 친구를 약자로 여겨 거의 본능적으로 부모를 공격하고 친구를 옹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친구 또한 부모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를 고맙게 생각해 둘 사이의 친밀감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데려온 친구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드러내놓고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는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제삼자가 비난할 때 불타는 전의가 살아나는 법이다. 자녀를 나쁜 친구와 격리시키고 싶다면 오히려 자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고도 치밀한 작전을 짜야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녀가 그 친구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령 다니는 학원을 바꾸거나 새로운 취미를 갖게 해 그 친구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고 다른 데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중학교 때 미국에 온 이후 처음에는 영어가 서툴러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목과 귀에 쇠사슬을 건 흑인 아이들과 사귀었고 걸음걸이마저 뒤뚱거리는 흑인 특유의 걸음걸이로 바뀌었다. 그때 나 역시 아이들이 친구를 잘못 사귀어 문제아가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던 흑인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갈비를 구워 먹이며 더 극진하게 대해주었다. 그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번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마미라고 부르며 따랐고, 우리 집이 이사할 때면 제일 먼저 달려와 발벗고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영어가 익숙해지면서 고등반에 들어가게 돼 처음에 사귀던 흑인 아이들과는 저절로 간격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그때 만난 흑인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판단력이 있다. 아무리 친해도 자라온 문화가 다르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가 수선을 피우며 억지로 떼어놓으려 하면 더 오래 붙어다닐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또래 앞에서 지켜야 할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의 체면과 자존심 역시 부모의 것만큼 중요하다. 부모가 수선을 피우면 아이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해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따라서 당신이 진정으로 자녀가 나쁜 친구와 헤어지기를 원할수록 자녀의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자녀가 다른 곳에 흥미를 갖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

3. 행동에 관해서

생활습관이 나쁠 때


"잠자리가 그게 뭐야? 일어나서 정리 좀 하면 어디가 덧나니?" "왜 그렇게 소리를 내며 먹어?" "야만스럽게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옷을 뒤집어서 던져놓으면 어떡해?" "밥을 먹었으면 빈 그릇은 개수통에 넣어야지. 엄마가 네 종이냐?" "걸을 때 살살 걸으면 좋잖아." "왜 그렇게 문을 쾅쾅 닫아?" 등 부모가 가르쳐야 할 바른 생활습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부모인 당신이 항상 '이 애가 잘못하는 것은 없나?'하는 감시의 눈으로 보며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자녀의 좋은 생활 습관을 기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지적들이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려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습관을 바로잡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평생 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등의 책이 인기를 모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녀의 습관은 어려서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 부모가 선물을 사주면 고마워하는 일, 부모가 심부름을 시키면 싫더라도 해야 하는 것, 자기 방은 스스로 정리하는 것 등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모두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중요한 태도다. 이러한 것들을 미리부터 가르치지 않고 아이를 향해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라고." 하며 고함을 쳐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생활습관은 잔소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섯 살 이전에 엄격하게 지키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녀가 이미 초·중·고등학생쯤 되었다면 부모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미 굳어진 나쁜 습관을 고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녀가 자란 다음에는 나쁜 습관이 눈에 거슬려도 일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 나이쯤 되면 자녀가 만약 잠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치약을 사용한 후 뚜껑도 닫지 않으며, 실내에서 쿵쾅거리며 걷고, 어른들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면 잘못된 모든 습관을 한꺼번에 고치라고 주문할 것이 아니라 한 가지씩 고치도록 권해야 한다. 한 가지씩 고치라고 해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고 일어난 자리가 그게 뭐니?" 라고 감정적으로 말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자녀의 나쁜 습관을 바로잡으려면 자녀와 마주 앉아 진지하게 "엄마가 네 대신 침대 정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그 일 하나만 하면 별것 아니지만 집안일이 많아서 네 뒤치다꺼리 하나만 더 보태도 힘겹단다. 너는 잠깐만 시간을 내어 그 일을 하면 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단다."라고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 자녀 스스로 자신의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설득해야 한다. 자아가 굳어진 다음에는 자발적인 행동으로만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약속을 어겼을 때

아이들은 잘못을 저질렀건 그렇지 않았건 부모에게 야단을 맞으면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며 싹싹 빈다. 그러나 돌아서면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 싶게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내 입이 닳지 닳아."하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매번 비슷하다. "양말 좀 뒤집어서 벗어놓지 마라." "자고 일어나면 이불 좀 개라." "옷을 제자리에 걸어라." "가방 좀 아무 데나 두지 마라."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라." "공부할 때 이어폰 좀 꽂지 마라." "그 친구 좀 그만 만나라." 심지어 "담배 피우지 마라." 등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 자녀에게 이와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면 당신에게는 부모의 권위가 없다는 증거다. 만약 당신이 권위를 가진 부모라면 자식이 당신과의 약속을 반복해서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와의 약속을 잘 지키게 하려면 자식의 세세한 잘못에 대해 "왜 그러니?"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 아니라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쳐 확실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가 말로는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치며 협박을 하지만 돌아서면 말한 대로 실천하지 않아 아이들이 부모 말을 우습게 여기도록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식들은 부모와의 약속을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화가 나서 불쑥 꺼낸 말일지라도 자식에게 이러이러한 벌을 주겠다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약속대로 벌을 주어야 한다. 대신 부모도 두 번 다시 같은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고쳐지지 않으면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큰 약속도 어겨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신뢰를 잃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들이 절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무섭게 벌을 준다. 사소한 약속을 어겨도 그 정도에 따라 용돈을 줄이고 방과후 외출을 일주일 또는 한 달간 금지시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목욕탕에 가두거나 밥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끝낸다. 그 때문에 자식들이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키게 하는 것보다 학원에 빠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 "알았으니 지금은 학원에 가라."라고 말함으로써 아이들이 공부만 하면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제 만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무시해버리고 학과 공부만 잘해서 성공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식이 부모와의 약속을 잘 지키게 하려면 부모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기 자신은 자식들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아이들에게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벌을 주면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자기는 생전 약속을 안 지키면서.'라며 비웃게 돼 부모 말을 우습게 여기게 된다. 따라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런 후에 자식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하게 야단을 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말하는 방법에 관해서

부모에게 털어놓기 싫어할 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도 부모에게 시시콜콜 다 털어놓던 자녀들도 사춘기만 지나면 큰일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입을 꼭 다물어버린다. 부모는 자식들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왜 말 안 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라고 꼬치꼬치 묻지만 아이는 간단하게 "별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그런 가정이 많으면 TV 공익 광고에서 집에 들어와 부모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아들과 대화를 트려고 어머니가 컴퓨터를 배워 컴퓨터로 대화를 청하는 내용을 방송했겠는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자식들은 머리가 커질수록 부모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의 원인 대부분은 부모에게 있다. 부모가 자녀와 대화만 시작하면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훈계나 꾸지람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 점을 주의하지 않는 한 자식들은 부모와 대화하기가 싫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됨으로써 큰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 그 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아들과 거의 매일 한 시간씩 국제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실 대화 내용은 국제 전화 사용료를 물면서 하기에는 너무나 시시껄렁한 것들이어서 전화비가 아까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전화를 자주 하는 이유는 그처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식들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를 알면 '아이들의 학과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비행을 저지르면 어떡하나?'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아이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국에서 따로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마약을 복용할거라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나의 이러한 신념을 뒷받침하듯 얼마 전에는 이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가 발표되었다. 일본 베네세 교육연구소가 2004년 봄 초·중·고등학생 각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력 테스트와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위권 학생일수록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매일 부모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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