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왕멍 지음 | 들녘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생존'은 경시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문제이며, 또한 가장 기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존 다음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했는가'이다. 그것이 삶의 가치와 질을 결정한다. 나의 경우 대답은 두 글자, '학습'이다. 물론 나는 혁명에 참가했지만, 그보다 일관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했던 일은 '학습'이었다. 나의 생활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인생의 줄거리는 바로 배움이다. 나는 배우는 것을 시종일관 멈춘 적이 없었고, 그 가치나 의의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움은 언제나 나를 고무시켰고, 힘을 주었으며, 존엄과 신념, 즐거움과 만족을 주었다. 특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역경에 처했을 때, 배움은 내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구명 부표였다. 배움이 있었기에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미치거나 의기소침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배움을 지속함으로써 나는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무위도식하며 세월을 허송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에게 배움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였다.
나는 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왔는가사실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가 가장 배우기 좋은 상황이다.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여서 그 효과도 가장 크다. 문화대혁명(1966∼76) 시기에 나는 신장의 위그르족과 함께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극좌파가 득세한 시기라 나는 우파로 분류되어 창작조차 할 수 없었고, 직업을 구할 수 없었으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공개적으로 학습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이때 나는 농촌 간부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 주석(마오쩌둥)의 저작을 학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나는 이 저작들을 위구르어로 암기했다. 이것이 내가 뒤늦게 위구르어를 배우게 되었던 이유이다. 외국의 벗들은 어떻게 16년이란 세월을 신장의 농촌 지역에서 보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이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기만하거나 마비시키지 않으며,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배움은 정신적 승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이야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난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또한 내게는 오로지 '구제불능의 낙관주의적' 생활과 대중(위구르족 농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젊은 시절 투신했던 혁명은 고난과 곡절로 점철되었지만, 그것은 외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고난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역사와 그 현상에 대해 그들이 바라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점, 사색의 시점 그리고 신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꿈속에서라도 그들과 영합할 생각이 없으며, 세상과 어울려 자기의 이름을 알리는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학생이다1949년 3월, 열네 살에 관리의 신분을 얻은 나는 그후로도 갖가지 직무를 많이 맡아보았다. 심지어 신장에서 '노동단련'(우파 분자나 정치 문제가 있는 간부들을 농촌으로 보내 그곳에서 노동에 참가하게 하는 것)을 하는 기간에도 나는 인민공사의 부대대장 직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지금도 관리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내가 관리가 된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높은 관직에 오르기 위한 것도 아니며, 특권을 향유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혁명의 이상을 위해, 인민을 위해, 민중의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 관리가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관리로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시각으로 문제를 사색하지 않으며, 개인의 사상 또는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관리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무를 벗어날 수 없다. 직업, 직장, 지역의 이익을 떠나 자기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금물이다. 내가 소년시절에 받은 당원, 간부에 대한 엄격한 훈련과 교육은 나에게 깊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동자공(童子功:평생동안 성性을 멀리해야 하는 엄청난 고통)'이라 부른다. 이것은 기강이 흐트러졌을 때 '매관매직'을 일삼는 관리들과는 정반대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관리라는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석연치 않다. 1948년 입당했으니 혁명 사업에 뛰어든 해로부터 계산하더라도 장장 반세기인데, 실질적으로 임직했던 기간은 겨우 1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관리로 살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19세 되던 해 가을, 첫소설 『청춘만세』를 집필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벌써 48년이 흘렀지만 그 중 20여 년 동안은 습작도 못했으며, 아예 붓을 들어보겠다거나 차후라도 해보리라는 마음가짐마저 없었다. 그러니 나는 문학가라고도 말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생이었다! 내가 일생 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다는 이 깨달음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일 학년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에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공무원 이력서 출신 칸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이미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나의 신분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확신했을 때의 홀가분함은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학생'은 나의 신분만이 아니고, 나의 세계관이자 인생관이며, 성격과 감정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단어였다.
인생이란 배우는 과정이다. 인생은 절대로 오만한 자의식이나 초인적 패권주의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배우는 자세로 사고하고 실험하고 관찰하여 판단을 내리고 싶다. 이러한 자세는 역사를 존중하고 선현들을 섬길 줄 알며, 다른 유파와 학술을 포용할 줄 알며, 일체의 합리적인 것들과 기성의 성과를 대중들에게 충분히 나누어줄 줄 안다. 이는 민주적으로 파벌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인간을 대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배움을 열망하는 학생은 피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자만이나 자족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것을 완전히 실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정상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반드시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학생이지만 최우수 학생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학생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인생은 절차탁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마오쩌둥은 이런 말을 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책 속의 지식을 경시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마오쩌둥은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중남해에 있는 그의 옛집에는 방의 3분의 1이 모두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오쩌둥은 만년에 "진지하게 책을 읽고 학습하며 마르크시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중요한 지시도 내렸다.
그렇다면 마오쩌둥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극단적인 말로 독서의 의의를 폄하했는가? 그는 "독서도 학습이고, 사용도 학습이다. 그러나 사용은 독서보다 더 중요한 학습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그의 사상의 핵심을 반영한다. 그는 인식의 실천을 강조했으며, 인식에 대한 실천의 역할을 중시했다. 바꿔 말하면, 그는 실천성을 상실한 교조주의, 텍스트주의, 책 속에만 묻혀 사는 책벌레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의 어떤 것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다른 어떤 것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어쩌면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오히려 사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지식만을 얻고 인식만을 획득할 뿐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될 뿐이 아닌가? 수영이나 태극권을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을까? 책에서는 법을 지키고,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도리를 가르치지만 뒷거래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뒷거래는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분석해야 할 사회현상이며, 문화현상이다. 뒷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 현상의 내막을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은 없다. 만약 당신에게 책에 근거한 지식만 있고 다른 유형의 지식이 없다면, 당신의 지식은 아마도 아주 불완전한 것일 게다.
자유시장경제와 대인관계 숭배
동맹을 만들지 말라어떤 사람은 당신과 다른 사람 간의 갈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갈등이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의 인간관계를 샅샅이 가려내어 당신 마음속에 숨겨진 적의까지 끄집어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갈등을 밑천으로 삼는 부류이다. 그는 당신을 위해 정보를 탐지하고, 계략을 제시하고, 소문을 전하고, 갈등을 부채질한다. 살면서 어찌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없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당신 옆에서 갈등을 부채질하는 바로 그 사람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말 피할 수 없을 때는 건성으로 그의 권고를 듣는 척하면 된다. 절대로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받아들이고 중용(重用)하는 사람은 조만간 패가망신하고 만다. 열병을 피하듯 갈등의 그물을 가급적 피해야 하며, 의미 없는 갈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또한 누구와 동맹을 맺는 것을 피해야 하며, 누구를 적대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가장 훌륭한 처사이다.
그런데 왜 누군가와 동맹을 맺는 것도 피해야만 하는가?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동맹을 맺으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처음 당신은 같은 지향점과 이념이 있어 동맹을 맺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맹은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변한다. 이러한 집단이 민중의 적이나 깡패 집단이나 사교의 이용 도구로 전락했던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둘째,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당신도 그 동맹에서 일정한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동맹은 하나의 세력이 되어 당신은 그 어디를 가든 동맹의 힘을 업고 호가호위한다. 그들이 당신과 동맹을 맺은 것은 당신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그들이 당신을 받들어 올리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과 특수한 관계를 맺게 되면, 사사건건 당신에게 이런저런 일을 도와달라고 청탁하게 된다. 당신은 소수의 사람들을 자기 주변에 묶어 두겠지만, 정작 더 많은 사람들의 노여움과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당신은 그들을 대신하여 책임을 져야 하며, 그 욕을 대신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는 일 없이 내분만 일으킨다. 그들이 내분을 일으키게 되는 이유는 이익 분배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서로 물고 뜯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유명인이 이른바 '자기 사람'의 손에 망했는가? 그리고 '소인'일수록 각 부류의 사람들과 모순을 일으킨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그들은 당신의 넓은 도량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당신을 위해 가슴에 칼을 들이대도 막아설 수 있으므로 당신도 똑같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당신 주변에 모인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주어진 이득에 만족하지 못한다. 때문에 결국 당신을 이탈하고, 미워하며, 원망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단순하게 이익관계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맹우(盟友)가 바로 잠재적인 적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자가 부르는 무위無爲의 노래
'무위'란 무엇인가편집장이 깨달음을 주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무위(無爲)'라는 두 글자였다. 소극적인 뜻으로 이 두 글자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무위라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평생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가장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이 성과를 거두었을 때 질투하지 않는 것이다. 옹졸하게 손해를 볼까 근심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는 것이며, 떠들썩하게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실현하지 못할 많은 일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으로 많은 정력과 활동을 소모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위이다. 무위는 허망한 것을 경계한다. 가능한 한 초조함을 방비하고 조급한 것을 방비하는 것이다. 객관법칙과 객관적 실재를 이탈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며, 형식주의를 멀리하는 것이다. 무위란 제한되어 있는 정력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이럴때에야 어떠한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이것을 '유위(有爲)'라 한다. 무위가 있어야 유위가 있으며, 무위가 있어야 유위에 헌신할 수 있다. 무위는 효율의 원칙이며, 사무의 원칙이며, 절약의 원칙이다. 무위는 유위의 으뜸가는 전제조건이다. 무위는 또한 양생의 원칙이며, 쾌락의 원칙이다. 무위일 때라야 자아에 대한 번뇌가 없다. 무위는 도덕원칙이다. 이때 도덕의 요점은 선택적 무위이지 모든 것을 무위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저급한 취미에서 벗어나, 공명과 출세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생에서 해탈할 수 있다. 무위는 하나의 경지이다. 무위는 자아 방위이며 자아 존중이다. 무위는 신념이며, 자기와 타인 그리고 사업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다. 무위는 철인의 희열이다. 무위는 활달한 인내심이다. 무위는 총명이다. 무위는 청허하고 명랑하고 침착하고 온당한 유머다. 무위는 또한 품격이다.
흔들리는 중국의 가치관
생명의 의의원칙의의원칙 즉, 일생의 하루하루와 한 시간 한 시간을 가능하면 의미있게 보내자는 말이다. 의의가 있는 모든 것은 논쟁거리다. 그러나 이런 점이 있다고 해서 의의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지 않으며, 쟁의가 있다고 해서 의의를 추진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논쟁이 있다고 해서 이를 닦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개인의 음식 습관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큰 문제일수록, 모든 것을 포용한 문제일수록 토론을 진행하기가 어렵고, 일치된 견해를 얻기가 어렵다. 무한한 영원과 광활한 우주를 비교할 때, 인류는 너무나 사소하여 계산에 넣을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인생에 의의가 없다고 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무한함에 대비해 인생의 짧음을 논하는 것은 가슴을 넓히고 마음을 크게 가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철학가나 문학가들이 인생의 허무를 논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근거가 있다. 그들에게는 엄격한 기독교 전통과 신학 전통이 있다. 그들은 허무 속에 태어났고, 예수와 성모가 그들의 출생을 도왔다고 믿는 공허함에 속해 있다. 그들은 종교나 신학 속에서 삶의 의의를 찾는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허무에는 체제적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의 '자유'가 있다. 당신은 당신대로 허무를 말하고, 나는 나대로 효율과 최대 이윤을 창조한다. 당신은 당신대로 전쟁을 반대하고, 나는 나대로 미사일을 연구한다. 동시에 몇몇 교수는 또 인생의 궁극적 허무는 확실히 뛰어난 연구 성과라고 고막이 터지도록 설파한다. 그리고 물욕에 젖어 영원히 제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 영혼과 양심에 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