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가벼워지는 인생
양석일 지음 | 오늘의책
책머리에
내게 인생은 언제나 시작이다나는 다른 사람보다 다소 고생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야쿠자조차도 두려워하는 인물이었고 가족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러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우리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버지가 첩을 얻어 집 바로 건너편에 살 때부터였다. 나는 18세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달래'라는 동우회에 참가했었는데 그곳을 주도하던 시인 김시종이 그가 소속된 조총련을 비판하다 대립하는 바람에 정치와 문학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얼마 안 돼 「진달래」는 폐간되었고, 1년 뒤 간행한 동인지 「카리온」도 3호만에 좌절했다. 그후 나는 시와 문학의 세계를 떠나 생활의 세계로 돌아왔다.
나는 25세에 결혼했다. 결혼하고 1년 후 인쇄회사를 설립했으며, 그로부터 1년 뒤 연 면적 160평의 공장 겸 주택을 지어 종업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곳은 독일제 자동평판기 다섯 대와 사진실을 갖추고 있었고, 나의 야망은 불타올랐다. 그러나 모든 것이 빚더미였다. 지금 회상해보면 경영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무모하게 돌진한 셈이었다. 3년 후인 29세 때 지금 금액으로 환산하여 약 10억 엔의 빚을 안고 도산했다. 나는 매일 밤 오사카의 환락가 미나미의 카바레와 클럽에서 주색잡기에 빠져 퇴폐의 극치를 보였다. 도산한 지 2년 후 나는 도망치듯 센다이로 갔다. 한번 몸에 배인 퇴폐적인 삶은 센다이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또다시 술과 여자, 빚에 몰려 1년반 뒤에는 센다이마저 떠나야만 했다. 도호쿠 지방을 1개월 정도 방랑하다가 도쿄로 갔다. 가진 돈이라고는 5,000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돈으로는 3∼4일밖에 먹고 잘 수 없어 곧 기아상태에 빠졌다. 하루종일 신주쿠 외곽을 돌면서 물만 마셨으며, 밤에는 지하도에서 잠을 잤다. 4일째 되는 날 아침, 신주쿠 중앙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바람에 날린 스포츠 신문지가 내 발을 감았다. '택시운전사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곧장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인간의 의식 변혁은 간단히 일어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 경우, 변혁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밖에는 없었다. 나는 택시운전사가 된 후에도 반드시 깃발을 세울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10년째 되던 어느 날 새벽 1시 반경, 신주쿠에서 승객 세 명을 태우고 환상 7호선 신요다역 앞 적신호에서 정차했을 때, 10톤짜리 대형화물차가 추돌해 승객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은 반신불수의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나는 등뼈를 심하게 다쳐 반년간 입원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퇴원 후 일이 없었던 나는 또다시 택시를 타야 했다. 2개월 후 한밤중에 록본기 교차로에서 2중 충돌 사고를 당해 다시 이틀간 입원한 후 택시운전사 일을 그만뒀다.
그 무렵 나는 신주쿠 서쪽 출구에 있는 술집에서 문예평론가인 친구 오카니시 노보루로부터 치쿠마 서점의 편집장 카이바라 나루미쓰를 소개받아 처녀작 『광조곡』(문고판으로 만들면서 『택시 광조곡』으로 개명)을 출판했다. 나는 45세부터 인생을 고쳐 산 것이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었고,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포함하여 인생은 하나의 원을 그린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자기에게 달려 있다. 모든 인생은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은 환원 불가능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 쓰는 구술형 수필이다. 출판 이야기가 있은 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구술했는데, 1년 정도 계속되었다.
시대의 불안, 마음의 불안
따라다니는 환상을 떨쳐버리자인생을 살면서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뤄진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종종 냉엄한 현실과 싫든 좋든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중에는 절망적인 결과가 기다릴수도 있다. 전에 미술인쇄 회사를 경영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려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등 뒤로 파탄의 발소리가 들려와도 '내일이면 어떻게 되겠지.', '사업은 반드시 궤도에 오를 거야.'라며 멋대로 생각한 적이 있다. 혼자만이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리는 바람, 그것이 환상이다.
덴마크의 사상가 키르케고르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던 길에 한 남자가 길가에서 날개를 쉬고 있는 작은 새를 발견한다. 그 남자가 붙잡으려 하자 작은 새는 얼른 날아가지만 결코 멀리 도망가지는 않는다. 손을 내밀면 조금 날아가더니 또다시 남자의 코끝까지 되돌아온다. 붙잡으려하면 도망가버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걷는 중에 마침내 작은 새는 휙 하고 하늘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만다. 남자는 그제야 현실로 되돌아와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은 황량한 대지 한가운데로, 이제는 자신이 걸어온 길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을 '가능성의 절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쫓아가지만, 정신차려보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환상의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은 불안이다.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여러 가지 사건과 재해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사건과 재해가 자기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 밑바닥에 '어쩌면 내게도 재난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긴 하지만 애써 그것과 마주하려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마침내 내게도'라는 불안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스스로 괜찮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 같은 환상을 품어서 불안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스스로 환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자신을 믿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을 믿는 것과 환상을 갖는 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이러한 환상을 없애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까지 무척이나 긴 시간이 걸렸다.
프리터에게는 미래가 없다일본에서는 현재 15∼35세 사이의 '프리터(free + arbeiter)라 부르는 파트타임 노동자가 200만∼4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조직에 속박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프리터 생활을 계속하면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싫어지면 그만두고, 돈이 조금 모이면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리터 중에 약 70퍼센트가 안정된 직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때까지 나는 프리터를 계속 한다." 일부 프리터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좋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그들 중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은 되도록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기업에서 프리터는 매우 유용한 존재다. 정규직 사원보다 임금이 싸게 들고 보장도 필요없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없어지면 언제나 해고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을 기업이 몇 살까지 고용해줄 것인가. 지금까지 일본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종신고용제는 사라지고, 때가 되면 이뤄지던 승진과 정기승급도 없어지고 있다. 대기업조차도 정기승급은 35세까지, 그 다음에는 실력급으로 바꾸는 시스템 변화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5세에 계장이 되고, 30세에 결혼하고, 35세에 집을 산다.'는 등의 인생설계는 그릴 수가 없다. 프리터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살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상당한 각오를 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실패만을 두려워마라인간은 대다수가 안정을 바라는 동물이다. 나도 두세 번 죽음으로 흘려보낼 뻔한 인생을 살았지만 일부러 그런 인생을 택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온 나지만 그래도 역시 젊을 때에는 이것저것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한두 번 실패했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어떤 일에 도전하다가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데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오랜 고도성장의 흔적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풍요로움 속에서 부모로부터 실패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생활을 위해 오로지 일만 했고, 라이벌과도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왔다. 그것이 수입 안정으로 이어져 풍족한 생활 속에서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바쁜 아버지와 접할 기회조차 별로 없었던 자식들은 아버지처럼 억척스럽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땀 흘리며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는 있기 때문에 야심을 품고 꿈을 좇는 고생 따위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풍요로운 시대에 부모들이 모아놓은 재산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며,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모르고, 그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뭔가를 행하기도 전에 실패할까봐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은 부모가 모아둔 재산이 바닥을 드러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젊은이들이 모두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분명하게 찾아내어 왕성한 에너지로 전진하는 유형과, 언제까지나 자기 인생에 대해 방관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유형으로 양극화될 것이다.
정치가 불안을 부채질한다일본 경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어떻게 벗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여러 낡은 제도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것을 개혁하겠다고 정부수뇌가 외치고 있지만 간단치 않다.
전쟁은 시대의 불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메이지 정부는 매우 강경한 정책으로 국가 근대화를 단행하기 위해 국민에게 고통스런 생활을 강요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수행했다. 국가 전체가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은 희석된다. 국내의 불안을 밖으로 돌려 발산하려는 정책은 정치에서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국가가 가상적국을 만들어 국민에게 제시함으로써 불안을 부추기고, 그 다음에는 '적국'을 침으로써 불안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은 북한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국민의 모든 불안을 그곳에 집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없애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도식을 만든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강경한 발언을 반복하는 이시하라 신타로(작가 출신의 도쿄 도지사로 우익 정치인의 대표적인 인물)같은 사람에게 큰 기대를 갖게 된다. 이시하라는 이러한 시대가 만든 전형적인 '영웅'이다. 70세가 넘은 이 남자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일본은 대책없는 나라다.
일본인은 원래 분위기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젊은 정치가 중에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헌법을 개정하여 일본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입에 담는 사람도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 총리는 2005년까지 헌법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당내에는 "총선거의 당원 표나 국회의원 표 획득을 노린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신문은 "만일 그렇다면 개헌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마이니치 신문 2003년 8월 27일자」라고 비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총선거에서 이미 개혁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번 지시에는 기본적인 방향조차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한편,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지금도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는 것이 억제력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시대의 불안을 부채질하면서 어느 틈에 일본은 전에 없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가 하는 일, 나아가는 방향을 분명히 직시해야만 한다.
권력은 때로 거대한 폭력이 되어 내부로 향한다권력 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장치는 국가다. 국가에는 경찰, 군대 등의 권력이 자리잡고 있다. 경찰이나 군대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중대한 목적이 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그것은 거대한 폭력이 되어 내부로 향한다. 1979년 10월, 한국에는 그동안 강권 정치를 펼쳐왔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하고,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대행에 취임하여 비상계엄령을 발동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12월에는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과 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박정희 정권이 무너짐으로써 정치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 일어나 '서울의 봄'이라 부르는 상황이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경계하여 비상계엄령을 확대 강화하고, 김대중 등 많은 반정부활동가를 체포했다. 이에 대해 학생을 중심으로 항의시위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 5월 1일, 전두환 장군은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와 휴교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반발한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서 가두시위를 결행했고, 무장한 시민까지 합세하여 전시내를 장악했다. 군은 곧 무력으로 이들을 제압했고, 이 과정에서 일반시민을 포함해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처럼 경찰과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권력은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 억압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권력의 억압장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 흔적도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권력이라는 억압장치와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 무관심으로 가장한다. 권력에 대해 무관심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권력과 '공범관계'가 되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에 대해 입을 채우고 침묵한다면 권력은 편해진다. 인생은 그저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여러 제도 속에서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 제도에 대해 결연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인생을 농락하는 돈·물질·사람
돈은 인간을 농락한다미국에는 카드 파산자가 15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파산할 가능성이 있는 파산 예비자가 그 열 배에 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540만 명이나 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인생은 즐기는 것, 살아 있는 동안 갖고 싶은 것을 갖고, 먹고 싶은 것을 먹자."라는 생각이 왕성한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은 대출이자를 매월 1퍼센트만 지불하면 카드대금 지불을 재촉받지 않는 시스템을 가진 듯하다. 그 결과 방대한 카드 파산자가 속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카드를 한 장고 갖고 있지 않은 현금주의자이지만 "당신 작품에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군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고보니 다른 소설을 보면 돈을 테마로 쓴 것이 그리 많지 않기는 하다. 돈에 대해 쓰면 작품의 품격을 의심받는다는 인식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근대문학은 스스로를 절대시하거나 성역화하여 한층 높은 곳에서 사물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물물교환 시대와 비교해 화폐 시스템은 훨씬 편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것을 계기로 유통범위가 한층 확대되어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동시에 돈으로 뭐든 살 수 있게 되면서 돈은 인간의 욕망과 그리고 권력과도 밀접하게 유착되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대개 큰 돈을 벌어 부를 축적할 수가 있다.
모든 이권을 쥔 권력은 수중에 큰 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분배한다. 예컨대 '백'이라는 부가 있고 분배해야 할 사람이 백 명이라고 하자. 권력은 '백'의 부를 모두 갖고 싶은 게 본심이지만 미묘한 역학관계가 있기 때문에 혼자 독점할 수는 없다. 따라서 권력은 '백'의 부를 힘의 균형에 맞게 배분한다. '백'중 80은 큰 힘을 가진 사람 10명이 배분하고 나머지 20은 어중간한 힘을 가진 90명이 배분한다. 여기서도 빈부의 차가 생기게 되고, 그러한 경향은 점점 심화된다. 어떤 경제분석가는 "일본은 앞으로 점점 미국형 약육강식 사회로 변해간다. 극히 일부의 큰 부자와 연간수입이 300만∼400만엔(약 3,000만∼4,000만 원)인 약 60퍼센트의 사람, 나머지 40퍼센트는 연간수입 백 수십 만 엔의 저소득 샐러리맨으로 구성되는 세 계층이 생긴다. 큰 부자들의 연간수입이 1억 엔이라 해도 소득 격차는 약 100배에 달한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 미국에는 500배에서 1,000배의 소득격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금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불경기이다. 그런데 일부 국민들에게는 아직 풍성하던 시절의 흔적이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남아 있다. 분별없는 대출과 구매를 반복하다가는 결국 돈에 휘둘리게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절실히 느끼는 것은 '돈은 역시 요물'이라는 것이다. 젊을 때 어느 정도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되도록 돈 때문에 고생하며 살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