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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슈퍼 히로인들

이나미 리츠코 지음 | 작가정신
전설의 미녀 - 서시



"클레오파트라냐 양귀비냐"하는 말도 있듯이 양귀비야말로 중국의 대표적인 미녀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고대 중국에는 양귀비도 무색할 정도의 전설적인 미녀가 있었다. 그 이름은 서시(西施). 춘추시대(기원전 770∼403년) 말기에 회계(오늘날의 저장성)를 중심으로 홀연히 출현한 남쪽의 강대국 월(越)나라 사람이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



기원전 6세기 말(춘추시대 말기), 동주(東周)왕조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대국과 소국이 어지럽게 뒤섞여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격동기에 급속도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강남(양쯔강 이남 지역)의 오(吳)나라였다. 그 나라 지도자였던 오왕 합려(闔閭)는 인접한 강남의 대국 초(楚)나라를 맹렬히 공격해 함락시키고 기원전 506년에 마침내 강남 최강의 세력을 갖게 됐다. 합려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손자병법'으로 알려진 군사 전략가 손무(孫武)와 오자서(伍子胥)였다. 이들 두 브레인 중에서도 오자서가 맡은 역할은 특히 절대적이었다.

오자서는 원래 초나라 출신이었다. 그런데 초나라 태부(태자의 후견인)였던 아버지 오사(伍奢)가 왕실 싸움에 말려들어 맏아들(오자서의 형)과 함께 평왕에게 살해되자, 오자서는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해 초나라와 적대관계에 있는 오나라로 망명했다.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자서는 이윽고 오나라 공자(公子) 광(光)의 참모가 되자, 지략을 써서 광의 사촌동생인 오왕 요(僚)를 제거하고 광을 왕위에 앉히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광은 왕위에 올라 오왕 합려가 됐다. 오자서의 보좌로 합려는 남쪽의 대국 초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이때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나타난다. 오나라 남쪽에 홀연히 월나라라는 신흥국가가 나타나 배후에서 오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나라는 초나라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는 오나라의 허를 찔러 자주 오나라에 도전했다. 기원전 496년, 월왕 윤상이 죽었다는 정보를 얻은 오왕 합려는 단숨에 월나라를 쳐부수러 갔다. 그런데 윤상의 뒤를 이은 월왕 구천은 유능한 참모 범려(范 )의 비책을 써서 보기 좋게 기선을 제압했다. 합려는 이때 입은 상처가 도져서, 후계자인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에 대한 원한을 절대 잊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섶나무 위에서 자면서 ('와신(臥薪)') 밤낮으로 군비 강화에 힘썼다. 그 배후에 아버지 합려의 명참모 오자서의 시의적절한 뒷받침이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기원전 494년, 월왕 구천은 부차가 보복을 위해 군비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싸움을 걸면 불리하다"는 범려의 반대를 뿌리치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또다시 오나라의 기선을 제압할 작정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월나라에서 강화를 청했을 때 오자서는 부차에게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려 하고 있습니다.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월나라의 뇌물을 받은 탐욕스러운 태재(太宰) 백비(伯 )는 "월나라가 항복하여 신하가 되면 오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오자서와 대립했다. 결국 부차는 백비의 주장을 받아들여 월나라를 용서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씹으면서('상담(嘗膽)') "너는 회계의 수치를 잊었느냐"고 자신을 채찍질하여 굴욕감을 되살리고 부차에 대한 복수심을 새로이 다졌다.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은 오월의 처절한 복수극을 상징하는 테마다.

서시의 등장



오왕 부차는 원래 여색을 밝히는 쾌락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뛰어난 미녀를 바치면 부차를 흐물흐물하게 녹일 수 있다는 제안에 구천은 월나라 국내를 샅샅이 뒤져 저라산(苧羅山)에 사는 가난한 나무꾼의 두 딸을 찾아냈다. 하나는 서시, 또 하나는 정단(鄭旦)이라고 한다. 이들은 호화로운 옷을 차려입는 법이나 예의범절 따위를 일단 배운 다음, 회계 시내의 화류계로 옮겨 가무음곡에서부터 요염하게 교태 부리는 법까지를 철저히 배운다. 이렇게 3년, 저라산에서 자란 두 시골 처녀는 어디 한 군데도 흠잡을 데 없는 세련된 절세 미녀로 변신했다. 때가 무르익자 범려는 서시와 정단을 데리고 오나라로 가 부차에게 선을 보였다. 물론 부차는 크게 기뻐하며 오자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선물을 받았다. 에로스에 탐닉하던 부차는 특히 서시의 미모에 빠져들어 점점 판단력을 잃게 되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인접한 월나라라는 오자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월나라를 충실한 속국처럼 생각했다. 한편 월나라로부터 계속 뇌물을 받고 있던 태재 백비는 자의식이 지나친 부차를 교묘히 조종하여 눈엣가시 같은 오자서를 모략해 자결하게 했다.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월나라에게 가장 버거운 존재였던 오자서가 비참하게 죽자, 정세는 월나라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졌다. 월나라 군대는 무려 3년 동안이나 각지에서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면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갔다. 오나라는 마침내 멸망했다.

서시와 범려의 러브 스토리



부차가 자살하고 오나라가 멸망한 뒤 서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시의 그 후에 대해서는 온갖 설이 분분하지만,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월나라에 구출되었지만 결국 "미녀는 나라의 재앙"이라 하여 구천이나 범려에게 살해되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범려와 함께 국외로 탈출했다는 설이다. 이렇게 범려가 관련되면 이야기가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범려와 서시가 아무리 서로 사랑하여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범려는 월왕 구천의 참모이고 서시는 오왕 부차에게 바쳐질 몸이다. 요컨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서시는 연인 범려의 '공모자'로 오나라에 들어가 부차를 농락하여 오나라의 내부 붕괴를 가속화하는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낸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의심받게 되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나긋나긋하게 존재할 뿐이다. 고혹적인 미녀를 연기하면서 부차의 마음이 자기한테 기울어지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때가 무르익어 월나라는 마침내 오나라를 멸하고,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나라에 보복하기 위해 월왕 구천을 뒷받침했던 범려는 이제 무대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고, 더 이상 월나라에 머무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역시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해낸 서시와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바다 저편으로 떠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를 포함하여 그녀를 도구로 여긴 자들에게 통렬한 앙갚음을 했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 월나라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저주하며 죽어간 오자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월왕 구천의 뒤통수를 치고 상쾌하게 변신한 범려. 그리고 신화의 주인공과도 비슷한 이런 사내들 틈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미녀 서시. 이들이야말로 환영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남쪽 나라 오나라와 월나라를 주제로 한 이 일대 로망의 주인공들이다.

수당 제국의 여인천하 - 독고황후와 측천무후



독고황후의 결벽증




통일 국가를 이룩한 수나라 문제(文帝)는 관리등용시험인 '과거'를 창설하여 관료 기구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는 등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게다가 절대 권력을 손에 넣은 황제답지 않게 실질강건하여 향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생활은 아주 검소하고 단정했다. 문제가 이처럼 근실했던 것은 강력한 파트너인 독고황후(553∼620년)를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명문 출신의 아내를 어려워해, 아내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수왕조가 성립한 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문제 뒤에는 반드시 독고황후가 있었다. 독고황후는 남다른 정치 감각을 살려 문제를 원격조종했다. 하지만 문제는 독고황후의 이런 24시간 감시체제의 틈새를 교묘히 빠져나가, 한 아름다운 궁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문제와 궁녀의 관계를 금새 알아차린 독고황후는 격분하여, 문제가 조정에서 정무를 보고 있는 틈에 다짜고짜 그 궁녀를 죽여버린다. 남편 문제와 늘 대등한 관계로 지내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은 독고황후는 남편을 꽁꽁 옭아맸을 뿐만 아니라, 여자관계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은 아들에서부터 친족과 중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증오하고 배척했다.

맏아들 양용(楊勇)이 황태자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본처를 학대하고 첩의 아양에 놀아나는 등 여자관계가 엉망이어서 어머니 독고황후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다. 맏아들 양용에게 넌더리가 난 독고황후는 언뜻 착실해 보이는 둘째아들 양광(楊廣)을 편들게 된다. 바로 이 양광이 나중에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사치스러운 방탕 천자로 이름을 떨친 수나라 제2대 황제 양제(煬帝)다. 문제와 독고황후가 함께 양광의 저택을 찾아왔을 때는 미녀를 모두 별실에 숨겨놓고 늙은 여자와 추녀들만 눈에 띄게 하여 독고황후를 기쁘게 했는가 하면, 현이 끊어진 먼지투성이의 악기를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에 늘어놓아 향락과는 거리가 먼 강직한 사람을 가장해 근실한 문제를 감탄시키기도 했다.

수왕조의 붕괴



양광이 황태자가 된 후 안심한 독고황후는 2년 뒤에 쉰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독고황후의 죽음은 무려 36년 동안 아내의 감독을 받으며 위축되어 있던 문제를 단번에 해방시켰다. 이제까지의 근실함은 어디로 가버리고, 문제는 노골적으로 후궁에 틀어박혔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진나라 선제(宣帝)의 딸인 진부인이었다. 어느 날 문제는 진부인과 함께 수도 장안의 서쪽에 있는 인수궁이라는 별궁에 머물고 있다가 중병에 걸렸다. 그러자 양광이 틈을 보아 진부인을 강간하려고 했다. 진부인은 간신히 뿌리치고 문제의 병실로 와 자초지종을 말하고 문제는 격분했다. 문제는 당장 폐태자인 양용을 불러들여 복위시키려 했지만, 이미 양광은 연락을 접하고 부하들을 아버지의 병실로 보내 아버지를 죽였다. 이렇게 양광은 태연히 수왕조 제2대 황제 자리에 앉았지만 그의 문란한 생활과 파멸적인 낭비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왕조의 제2대 황제가 된 지 14년째 되던 해에 쿠데타를 일으킨 근위대 병사에게 목졸려 죽는다. 수왕조는 아버지와 아들이 쾌락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고 있던 독고황후가 세상을 떠난 순간부터 구심력을 잃어버렸다. 무서운 독고황후의 위협이 사라지자마자, 아버지와 아들은 대립하여 싸웠다. 결국 아버지를 죽인 양제는 쾌락을 추구하면서 일사천리로 나락을 향해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독고황후는 스스로 권좌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금욕적인 결벽증으로 걸핏하면 어두운 쾌락 충동에 사로잡힌 남편과 아들을 단속했다. 좋든 나쁘든 독고황후는 400년에 걸친 남북 분열에 마침표를 찍고 중국 전국을 통일한 수왕조의 구심력을 구현한 존재였다.

당왕조의 성립과 측천무후의 등장



중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제(女帝)가 된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원래 태종의 후궁이었다. 북조의 미의식에 걸맞은 풍만한 미소녀로 성장한 측천무후는 정관 12년에 그 평판을 전해들은 태종의 부름을 받고 열다섯 살에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하지만 태종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한 채 후궁에 틀어박혀 있던 측천무후의 운명은 정관 23년 태종의 죽음을 전후하여 태종의 아들이자 당왕조 제3대 황제가 된 고종(高宗)과 우연히 마주친 것을 계기로 크게 달라진다. 고종이 첫눈에 측천무후에게 홀딱 반해서, 태종이 죽은 뒤 측천무후를 제 후궁에 맞아들인 것이다. 나이도 측천무후보다 네 살 아래인 데다 성격도 나약한 고종은 야심가인 측천무후에게는 이상적인 파트너로서 그는 뭐든지 측천무후가 하라는 대로 했다.

고종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측천무후는 맹렬히 황후 자리를 노리기 시작한다. 황후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황후인 왕황후를 밀어내야 한다. 측천무후는 이때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술책을 부렸다. 자기가 자신의 딸을 이불에 뒤집어씌워 질식시키고는 자식이 없던 왕황후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왕황후가 살인범이라고 믿은 고종은 왕황후를 쫓아내고 측천무후를 황후로 삼을 결심을 굳힌다. 하지만 세습 귀족과 군벌을 중심으로 하는 왕황후파들이 맹렬히 반대했다. 반면에 신분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과거에 급제한 진사 출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 관료층은 모두 측천무후를 지지했다. 결국 격렬한 권력투쟁 끝에 측천무후가 승리하여 황후 자리를 손에 넣는다. 측천무후가 당당히 황후가 된 것은 사실 역사의 변화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은 측천무후를 후원한 신흥 관료층이 남북조 시대 이래의 세습 귀족이나 군벌로 이루어진 구세력을 밀어내고 정치 기구나 사회의 중추를 차지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여제의 탄생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측천무후는 명실공히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 착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우선 고종이 살아 있을 때 황제를 '천황'이라고 부르고 황후를 '천후'라고 부르도록 결정하고, 종래의 관례를 바꾸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아버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3년 상을 치르도록 명령하여, 남녀를 대등하게 보는 자세를 명확히 드러냈다. 남녀가 대등하니까 당연히 여자도 황제가 될 수 있다. 여자가 제위에 앉으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걸출한 정치 감각을 지녔던 측천무후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제위에 오른 친아들 중종(中宗)이 아내 위후(韋后)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위후 일족을 후대했기 때문에 당장 퇴위시키고, 역시 친아들인 예종(睿宗)을 즉위시킨다. 이렇게 차례로 친아들을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우는 한편, 비밀 경찰을 마음대로 움직여 반대 세력을 말살하면서 스스로 황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또한 준비 공작의 마지막 마무리로 신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측천무후의 즉위는 부처님의 뜻이고 그로써 태평성대가 이룩된다는 예언을 『대운경(大雲經)』이라는 불경 비슷한 책에 슬쩍 집어넣었다. 원래 측천무후에게는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에, 이 예언은 민중에게 대단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예순 일곱 살의 측천무후는 마침내 황제가 되어 새로 주(周)왕조를 창간했다. 이 '무주혁명(武周革命)'으로 이씨의 당왕조는 일단 멸망한다.

협녀의 계보 - 중국 소설 속의 긍정적 여인상



협녀의 원조




중국 문학사에서 작가가 의식적으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것은 8세기 중엽, '당대전기(唐代傳記)'로 총칭되는 한 무리의 단편소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당대 전기 가운데 배형(裴 )이 지은 「섭은랑( 隱 )」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섭은랑이야말로 후세의 협녀 이야기의 원조가 되는 존재다.

섭은랑은 당나라 위박 절도사 섭봉( 鋒)의 딸로 태어났지만, 열 살 때 여승에게 유괴되었다가 5년 뒤에 홀연히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섭봉이 어찌된 일이냐고 캐묻자, 섭은랑은 기괴한 체험을 이야기한다. 여승은 은랑을 깊은 산 속 동굴로 데려가 수행을 시켰다. 1년 동안은 나무타기, 2년부터는 검법, 이윽고 3년이 지나자 공중을 날면서 매나 수리를 칼로 찌를 수 있게 됐다. 4년째 되던 해, 여승은 섭은랑을 데리고 큰 도시로 갔다. 여승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면서 그가 저지른 악행을 열거하고는 그의 목을 베어오라고 시킨다. 비수를 건네받은 섭은랑은 아무한테도 눈치채이지 않고 대낮에 대도시 한복판에서 그 남자의 목을 잘라서 산 속 동굴로 가져갔다. 여승은 약을 부어 그 목을 녹여버렸다. 이렇게 섭은랑을 비정한 자객으로 키운 여승은 섭은랑의 뇌 두 쪽을 갈라 비수를 집어넣고 필요할 때는 꺼내 쓰라고 명령한 뒤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섭은랑은 밤이 되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질 때가 많았다. 이윽고 그녀는 대문 앞을 지나던 거울 닦는 젊은 장인을 유심히 보고 아버지를 설득해 결혼했다. 몇 년 뒤에 아버지 섭봉이 세상을 떠나자, 섭봉의 후임으로 위박 절도사가 된 사람이 섭은랑의 불가사의한 재주를 전해 듣고 그녀를 불러 제 신변을 경호하는 관리로 임명했다.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위박 절도사는 평소 사이가 나빴던 진허 절도사 유창예(劉昌裔)의 목을 잘라오라고 섭은랑에게 명령한다. 그런데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섭은량은 암살 명령을 내린 위박 절도사보다 표적인 유창예가 인품도 좋고 능력도 있다고 판단하자 그 자리에서 유창예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아무나 죽이는 단순한 살인 기계는 아니다. 납득이 가지 않으면 손을 대지 않는 주체적인 테러리스트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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