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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이름의 행복

오주협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나는 '아빠'가 되기 싫었다



나는 '아빠'가 되기 싫었다




"임신이래요." 결혼 두 달 만에 아내가 수줍게 던진 이 말. 분명히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써 내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난 아빠가 된다는 게 싫었다. 아니, 내가 아빠가 돼서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소식은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둔,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스멀스멀 기어 나오게 했다.

난 어머니 없이 자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 세 분의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내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고, 나머지 두 분의 새어머니에게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흐르는 정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머니 없이 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자식인 나에게 있어 그냥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그 때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손찌검과 혁대로 맞은 고통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다. 내가 자란 가정처럼 만들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너무도 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된 나는 '내가 과연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는데, 나의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잘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고민 때문에 아내와 아이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아빠'라는 이름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고단한 기억을 벗어 던지고, 어렵사리 결혼을 결심해서 아빠 노릇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래서 간단치만은 않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방치되고, 그래서 아빠가 되기 싫어하던 한 불우한 청년이 어떻게 '아빠'로서 느끼는 행복을 말할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아빠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지기까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학원 선생님이었고 아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내게 아내는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영장이 나와 군대를 갔고 그게 끝이었다. 제대를 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한때나마 정을 나눈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마침 학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 연락처가 있어서 죽 전화를 돌리다가 지금의 아내 집 차례가 됐다. 오주협이라고 이름을 밝히자 왜 이제 전화를 했냐며 한번 보고 싶다는 장모님(그 때는 장모가 될 줄 몰랐지만)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딸이 성당에서 늘 자네 한번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네. 어떻게 생겼기에 우리 딸이 자네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네. 얼굴이나 한번 보세." 예기치 못한 장모님의 전화 환대는 내게 아내가 살던 대전까지 일부러 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줬고, 첫 데이트부터 나는 미래의 처갓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 집에서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만났을 때, 난 '가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비로소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관계가 있었다. 아내를 만날수록, 처갓집에 가면 갈수록 나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욕심이란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난 절대로 결혼하기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으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때 아내는 내 마음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아내와 장모님은 희망 없이 아무렇게나 살던 내게 살아야 할 의미를 주고, 내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가족'을 주었고, 그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다.

내가 '배넷아이'를 만든 이유



2002년 5월 태어난 비영리 무료 육아 사이트 '배넷아이'. 태교부터 7세까지 부모들이 아이들과 같이 보고 같이 놀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곳. 그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배넷아이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회원 가입 과정에 비해 콘텐츠가 꽤 재미있고 많다는 데 한 번 놀라고,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2년 전만 해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던 터라, 제휴 문의가 적지 않았다. 나 또한 정말 좋은 콘텐츠를 욕심껏 만들고 싶은데 운영비가 내가 예상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 비용을 기업들에게 후원을 받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비지니스 마인드'가 결국은 사람 목을 옥죄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미 몇 년 전에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었다. 그 경험의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비지니스 마인드'란 내 소중한 삶을 돈이 지배하게끔 방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였다.

결혼 후 2∼3년간 광고 디자인과 북 디자인 등을 하던 나는 틈틈이 미진이가 볼 그림책들을 직접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아이'라는 존재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몹시 신기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부모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를 육아 일기처럼 메모 형식으로 적기도 했다. 우연히 그 글의 내용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한 출판사에 의해 책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운이 좋았는지 그 책이 꽤 잘 팔리면서 출판일이 하고 싶어졌다.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완전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지, 나에게 어떤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그림책과 육아서 만드는 재미에 출판을 시작한 거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림책과 육아서로는 금방 돈을 벌 수 없어서 할 수없이 당시 유행하던 대중서를 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책이 이른바 대박이 났다. 그러면서 출판사를 하려던 본래 목적은 어느새 없어져 버리고 그림책을 만들 시간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 3년 7개월 만에 출판사를 정리하고서부터는 뭘 하더라도 내가 정말 즐거워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배넷아이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배넷아이를 다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개인 재산을 털어 이런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하면 감동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가 누굴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한, 아주 이기적인 일이다. 배넷아이는 우리 가족을 화목하게 해줬다. 배넷아이 때문에 이야기도 많아졌고, 아이들과 함께 콘텐츠 캐릭터나 내용을 구상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회원들 편지를 아내와 같이 읽으면서 함께 가슴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아내들에게는 말 못하는 아빠들의 진짜 속마음



아빠들에게도 산후우울증이 있다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한 번쯤은 걸리는 병이 있다. 바로 '산후우울증'이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오면 여자들은 아기도 보기 싫고, 살기도 싫고, 자기 몸 변한 것도 괴롭고, 남편도 밉다고 한다. 갑자기 늘어난 의무들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가 호르몬의 변화까지 겹쳐 신체적인 변화도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아내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남편을 탓한다. 남편이 너무 무심해서 그런 거라고, 남편이 아기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내를 정서적으로 따듯하게 보살피면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며 우울증을 극복해 나간다고 말이다. 물론 100퍼센트 옳은 이야기이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 역시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아내처럼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결코 남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아이를 낳자마자 척척 아버지 노릇을 한다지만, 아직도 많은 남편이 아버지가 되는 준비 없이 아이를 낳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아내들은 이런 남편들을 '아직 철이 덜 들었다' 혹은 '이기적이다'라고 점점 더 심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남편들만의 책임이냔 말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버지 되는 일의 중요성을 배우지도 못했고, '좋은 아버지'가 어때야 한다는 모델도 갖지 못했다. 그러니 그렇게 키워진 게 남편들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모성이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거라면, 부성 역시 길러질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남편이 갓 낳은 아이를 보고 기뻐하지 않거나 육아에 참여하기를 꺼린다고 속상해 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이 혹시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길 바란다. 그리고 남편에게 '기회'를 주기 바란다. 남편이 아이 기르기를 즐거워해야 아내도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빠의 자리는 엄마가 만든다



많은 엄마의 불만처럼 아빠들이 엄마만큼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빠들에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빠들은 아무리 아이를 키워 봤자, 엄마가 최우선이고 자신은 항상 제2군, 뒷전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아무리 아이 기르기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결국 엄마만큼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일종의 '육아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아빠들 뒤에는 어쩌면 너무 완벽한 걸 추구하는 아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 아내'는 어쩌다가 아빠가 큰마음을 먹고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 우유를 먹일라치면 '당신이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어요?'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가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달려와서 "이리 내요, 내가 할게"하며 아빠를 밀어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들은 '가사와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결국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듯한 자괴감을 갖는다. 더 이상 아내와 아이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못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가족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아빠는 엄마와 목소리도 다르고, 노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아빠와 자주 있는 아이는 더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을 아빠로부터 배울 수 있으므로 사회성과 리더십도 높아진다고 한다. 가정에서 아빠의 자리를 찾아 주기 위해서는 엄마가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아빠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또 아빠에게는 자신도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끼게 해줘야 한다. 내 아내가 나에게 했듯이 말이다. 나의 아내는 내가 항상 '가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집 가장은 아빠'라는 사실을 생활에서 느끼게끔 배려해 준다. 아내는 밥을 먹을 때 내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절대 먼저 들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내가 늦게 되면 꼭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게 해서 "먼저 먹겠습니다", "아빠 수고하세요" 등의 말을 하게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것을 의무가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아빠에 대한 사랑으로 알고 즐겁게 행한다. 한편, 아내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 때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기를 때 재미'라고 한다. 나는 아내들이 그 재미를 아빠들에게도 좀 나누어줄 수 있길 바란다. 남편이 '알아서'다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남편이 하려고 할 때 잘 못하면서 왜 나서냐는 타박을 하는 것도 모두 남편으로부터 '아빠'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남편이 아빠로서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아빠에게 일단 아이에 대한 공부부터 하라



큰아이가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 아이를 데리고 집 부근의 공원에 간 적이 있다.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나는 문득 '이러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앉히고는 한 해에 발생하는 미아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 등 아이가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섞어 가며 장황하게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길을 잃었을 때의 행동 요령도 일러 주었다. 그 정도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내친김에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려고 아이에게 엉뚱하게도 '실습'을 강요하고 말았다. 아이가 비둘기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 내가 몰래 숨어 버린 것이다. 아빠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아이는 불안한지 울먹이면서 나를 부르며 큰 길로 나서려고 했다. 나는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에게 달려가 아빠 말을 듣지 않았다며 대뜸 야단부터 늘어놓았다. 잠시나마 아빠를 잃어 무서웠을 아이의 공포는 생각지도 못한 아빠의 아둔함이라니……. 부끄럽지만 나는 그 때 무서움에 질려 있던 아이를 혼내면서도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밤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를 돌봐 본 아빠들은 나와 같은 실수를 모두 한두 번은 했을 것이다. 아빠들은 아이를 보살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교육시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절대 아빠의 말을 잘 들을 리 없다. 아빠의 말에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생각하기에 '고쳐야 할 행동'은 대개 아이들의 자연스런 발달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심리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을 때 아이는 나쁜 습관을 보인다.

아이와 의사 소통을 하고, 아이의 필요한 욕구들을 알맞게 채워 주기 위해서는 아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모든 아이가 다 밟아 가는 일반적인 발달 과정도 알아야 하고, 우리 아이만의 독특한 습관과 성격도 알아야 한다. 아이가 왜 요새 그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아이가 왜 자꾸 손가락을 빠는지, 아이가 왜 엄마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아이가 왜 갑자기 그 물건만 잡고서 놓지 않는지 공부를 하라. 이것이 아이와의 거리를 가장 빨리 좁힐 수 있는 통로다. 아빠라는 이름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가 낯선 행동을 할 때 육아 책을 펴 들거나 아내에게 묻는다면 당신은 일단 좋은 아빠 되는 법의 70퍼센트는 깨달은 것이다.

'놀이'로 시작하라



내가 아빠로서 살아가며 터득한 지혜 중 하나. 아이들과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은 그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함께 노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을 치고, 술래잡기 놀이도 하고, 씨름도 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아이들은 아빠랑 놀 때 확실히 더 활발하고 격렬하게 논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한다. 아빠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절호의 찬스를 그냥 무심히 넘겨 버리는 아빠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아이들과 노는 것을 아빠로서 점수를 따기 위해 할 수 없이 '놀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놀아 주는 것이니 재미있을리 없다. 아내와 아이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쉬고 싶은 아빠들. 그러나 막상 집에 들어가서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다가 결국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아내와 아이의 원성만 듣게 되는 아빠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분배다. 집에 들어가면 우선 아이들과 아내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좋다. 그렇게 20∼30분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 준 다음 "아빠 좀 쉬어야겠다'고 말하면 된다. 휴식 시간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놀기 전에 준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아이들을 향해 키를 낮추고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무슨 놀이를 해야 하나, 뭘 가지고 놀아 줘야 아이가 신나 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높이를 낮추는 순간 세상 모든 것이 온통 장난감으로 보이고, 놀이 기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아이와 놀 때는 신나게 놀면 된다.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다만 몇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보통 아이들은 무슨 놀이를 하든 지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놀이를 할 때 아빠가 아이에게 무조건 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늘 이기는 놀이만 하던 아이는 밖에 나가서 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모가 이기는 때도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는 페어플레이를 하다가 질 수도 있음을, 그러나 그것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님을 가르쳐 주면 된다. 그리고 더불어 당부하자면 제발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아빠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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