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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이름의 행복

오주협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배넷아이 사이트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모든 프로그램이 아이를 영재로 만들기 위한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는 시의 적절한 자극을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고자 했을 뿐이다. 내가 부모로서 수많은 혼란을 겪었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메일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오는 일도 생기고 있다. 그 대개가 조바심을 내는 부모들의 글 때문이다. '다른 아이는 벌써 한글을 깨쳤다는데 우리 아이만 너무 늦는 거 아닐까요?', '우리 애가 이런 부분이 뛰어난 것 같은데 그걸 더 개발시킬 수 있는 장난감이 없을까요?' 등. 그처럼 부모들이 중심을 못 잡고 자꾸 조바심을 내는 건 불안 때문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좌절된 꿈은 아이한테 넘어간다. 아이가 그 꿈을 이뤄 주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샌가 아빠와 엄마가 꾸는 꿈의 무게가 아이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욕심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요즘 아이들은 아무런 꿈이 없다고 한다. 오늘과 내일과 먼 미래까지 모두 부모가 알아서 짜 주기 때문에 '하라는 대로만' 하는 로봇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 안에 숨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놀라운 잠재 능력들은 영원히 빛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자연에서 배우는 행복의 기술』을 보면 자녀 교육의 한 법칙으로 벼룩의 법칙을 제시한다. 원래 벼룩은 자기 키보다 200배나 높이 더 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나 빨리 쉬지 않고 뛰어오르는지 1시간에 1000번을 뛰어오를 수 있단다. 게다가 벼룩은 자기 몸무게의 10만 배나 무거운 물건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서커스를 위해서 담뱃갑에 벼룩을 넣고 그 상자 뚜껑까지만 뛰어오르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고 해 보자. 그러면 벼룩은 나중에 뚜껑을 치워도 여전히 뚜껑이 있는 위치까지만 정확히 뛰어오른다고 한다. 자기 키보다 200배나 높이 뛸 수 있는 벼룩이 담뱃값 뚜껑이 있는 위치까지만 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벼룩의 법칙은 다름이 아니라 자녀를 상자 안에 너무 오래 가두지 말고, 뚜껑을 너무 낮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부모들이 벼룩의 법칙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집착과 욕심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아이를 망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 또한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마음 한 귀퉁이에 휴지통을 마련해 놓고 살기. 버려야 채울 수 있다. 아이를 향한 더 많은 사랑을, 더 많은 이해를, 더 많은 믿음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의 욕심을 버려야만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내 아이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는 마음속 휴지통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아이들에게 진짜 물려줘야 할 유산나는 '아빠'가 되기 싫었다



나는 '아빠'가 되기 싫었다"임신이래요." 결혼 두 달 만에 아내가 수줍게 던진 이 말. 분명히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써 내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난 아빠가 된다는 게 싫었다. 아니, 내가 아빠가 돼서 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소식은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둔,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스멀스멀 기어 나오게 했다.

난 어머니 없이 자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 세 분의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내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고, 나머지 두 분의 새어머니에게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흐르는 정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머니 없이 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자식인 나에게 있어 그냥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그 때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손찌검과 혁대로 맞은 고통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다. 내가 자란 가정처럼 만들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너무도 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된 나는 '내가 과연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는데, 나의 아이가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잘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고민 때문에 아내와 아이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아빠'라는 이름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고단한 기억을 벗어 던지고, 어렵사리 결혼을 결심해서 아빠 노릇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래서 간단치만은 않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방치되고, 그래서 아빠가 되기 싫어하던 한 불우한 청년이 어떻게 '아빠'로서 느끼는 행복을 말할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아빠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아빠라는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워지기까지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학원 선생님이었고 아내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내게 아내는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영장이 나와 군대를 갔고 그게 끝이었다. 제대를 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한때나마 정을 나눈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마침 학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 연락처가 있어서 죽 전화를 돌리다가 지금의 아내 집 차례가 됐다. 오주협이라고 이름을 밝히자 왜 이제 전화를 했냐며 한번 보고 싶다는 장모님(그 때는 장모가 될 줄 몰랐지만)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딸이 성당에서 늘 자네 한번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네. 어떻게 생겼기에 우리 딸이 자네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네. 얼굴이나 한번 보세." 예기치 못한 장모님의 전화 환대는 내게 아내가 살던 대전까지 일부러 내려갈 수 있는 용기를 줬고, 첫 데이트부터 나는 미래의 처갓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 집에서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만났을 때, 난 '가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비로소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관계가 있었다. 아내를 만날수록, 처갓집에 가면 갈수록 나도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욕심이란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난 절대로 결혼하기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으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때 아내는 내 마음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아내와 장모님은 희망 없이 아무렇게나 살던 내게 살아야 할 의미를 주고, 내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가족'을 주었고, 그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다.내가 '배넷아이'를 만든 이유2002년 5월 태어난 비영리 무료 육아 사이트 '배넷아이'. 태교부터 7세까지 부모들이 아이들과 같이 보고 같이 놀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곳. 그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배넷아이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회원 가입 과정에 비해 콘텐츠가 꽤 재미있고 많다는 데 한 번 놀라고,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2년 전만 해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던 터라, 제휴 문의가 적지 않았다. 나 또한 정말 좋은 콘텐츠를 욕심껏 만들고 싶은데 운영비가 내가 예상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 비용을 기업들에게 후원을 받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비지니스 마인드'가 결국은 사람 목을 옥죄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미 몇 년 전에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었다. 그 경험의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비지니스 마인드'란 내 소중한 삶을 돈이 지배하게끔 방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였다.



결혼 후 2∼3년간 광고 디자인과 북 디자인 등을 하던 나는 틈틈이 미진이가 볼 그림책들을 직접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아이'라는 존재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몹시 신기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부모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를 육아 일기처럼 메모 형식으로 적기도 했다. 우연히 그 글의 내용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한 출판사에 의해 책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운이 좋았는지 그 책이 꽤 잘 팔리면서 출판일이 하고 싶어졌다.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완전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지, 나에게 어떤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그림책과 육아서 만드는 재미에 출판을 시작한 거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림책과 육아서로는 금방 돈을 벌 수 없어서 할 수없이 당시 유행하던 대중서를 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책이 이른바 대박이 났다. 그러면서 출판사를 하려던 본래 목적은 어느새 없어져 버리고 그림책을 만들 시간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 3년 7개월 만에 출판사를 정리하고서부터는 뭘 하더라도 내가 정말 즐거워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배넷아이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배넷아이를 다시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개인 재산을 털어 이런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하면 감동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가 누굴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한, 아주 이기적인 일이다. 배넷아이는 우리 가족을 화목하게 해줬다. 배넷아이 때문에 이야기도 많아졌고, 아이들과 함께 콘텐츠 캐릭터나 내용을 구상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 회원들 편지를 아내와 같이 읽으면서 함께 가슴 아파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아내들에게는 말 못하는 아빠들의 진짜 속마음

아빠들에게도 산후우울증이 있다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한 번쯤은 걸리는 병이 있다. 바로 '산후우울증'이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오면 여자들은 아기도 보기 싫고, 살기도 싫고, 자기 몸 변한 것도 괴롭고, 남편도 밉다고 한다. 갑자기 늘어난 의무들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가 호르몬의 변화까지 겹쳐 신체적인 변화도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아내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남편을 탓한다. 남편이 너무 무심해서 그런 거라고, 남편이 아기 돌보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내를 정서적으로 따듯하게 보살피면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며 우울증을 극복해 나간다고 말이다. 물론 100퍼센트 옳은 이야기이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 역시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아내처럼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결코 남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어떤 남자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아이를 낳자마자 척척 아버지 노릇을 한다지만, 아직도 많은 남편이 아버지가 되는 준비 없이 아이를 낳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아내들은 이런 남편들을 '아직 철이 덜 들었다' 혹은 '이기적이다'라고 점점 더 심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남편들만의 책임이냔 말이다. 우리는 한 번도 아버지 되는 일의 중요성을 배우지도 못했고, '좋은 아버지'가 어때야 한다는 모델도 갖지 못했다. 그러니 그렇게 키워진 게 남편들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모성이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거라면, 부성 역시 길러질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남편이 갓 낳은 아이를 보고 기뻐하지 않거나 육아에 참여하기를 꺼린다고 속상해 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이 혹시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길 바란다. 그리고 남편에게 '기회'를 주기 바란다. 남편이 아이 기르기를 즐거워해야 아내도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큰딸 미진이는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게 많고, 말도 굉장히 느리다. 그래서 일곱 살에 학교를 보내는데 내심 불안한 게 많았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일산은 향학열이 무척이나 높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학원을 서너 군데씩 다니느라 어른보다 더 바쁜 것은 물론이고, 퇴근(?)시간도 10시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러니 뭘 해도 한 박자 내지 두 박자가 늦는 미진이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진이는 학원은커녕 학교 수업을 소화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벅차 했다. 우리 부부는 미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갈등을 반복해야 했다. 그것은 이러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떡하나 조바심치는 마음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내내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미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자신의 개성을 살려 자신의 방식을 찾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진이가 6학년 학생 춤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미진이의 아빠로서 미진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본 아이는 분명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 좋아하고, 친구도 마음이 통하는 몇몇만 사귀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많은 친구 앞에서 춤을 추고 1등을 했다니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 순간 가슴을 쓸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진이에게 저런 면이 숨어 있었구나. 내가 보지 못한 면이 있었구나 싶어서였다. 만약 내가 바라보는 모습만을 미진이의 전부라고 생각해 아이를 몰아붙였다면 어땠을까. 자신감 없어 보이고 내성적인 아이의 성격을 고치겠다고 웅변 학원에 보내고, 뒤처지지 말라고 영어와 수학 학원에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미진이는 자신의 숨어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스스로 키워 나갈 만한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미진이의 아빠로서 딸의 앞날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각뿐이지 과연 미진이가 어떤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감조차 잡기 힘들다. 나는 미진이를 '다른 아이보다 잘난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와 다른 아이'로 키우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남과 다른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고 가꾸어 나갈 줄 안다면, 그래서 자신의 인생계획표를 스스로 짤 줄 안다면 좌절을 겪더라도 금방 일어나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또한 금방 익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진짜 물려줘야 할 유산, 그것은 '밝고 맑고 당당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그 마음을 더 키워 나가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 역할인 것이다.마음 한 귀퉁이에 휴지통을 놓아두라요즘 가끔 친구들이나 배넷아이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 얘기를 보면 칭찬을 해도 참 서툴게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정도로 아이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실천하려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빠들의 경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엄마들보다 현저히 적기 때문에 칭찬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런데 내가 더 걱정하는 부분은 칭찬이라고 던진 말이 아이에게 독이 됨을 모르는 부모들이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렸을 때 칭찬한다고 쳐 보자. "와, 그림을 참 잘 그렸네. 이 다음에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만 칭찬하면 될 텐데,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아이에게 부담이 된다. 칭찬이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감으로 독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럴 때는 "그림을 참 잘 그렸구나"하고 아이의 노력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더 좋다.



상황을 잠깐 통제하기 위해서 하는 칭찬도 좋지 못한 칭찬에 속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식당에서 아이가 떠들고 부산스러울 때 흔히 "얌전히 있어라, 착하지?"라는 칭찬보다는 그냥 "얌전히 행동하거라"하고 엄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칭찬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분명 착한 아이가 되려면 얌전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다른 상황에서는 착한 아이가 되려면 잘 뛰어 놀라고 한다. 그럼 아이는 당연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또 얌전히 있지 않는다고 나쁜 아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는 아이의 인격과 연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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