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
이우일 외 18명 지음 | 청림출판
그때 아침은 내게 '감금'의 상징이었다 - 듀나(영화평론가)출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나는 직장인들이 회사에 박혀 있어 인적이 드문 낮에 영화를 본다.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워의 인파를 피할 수 있는데 왜 밤에 그 고생을 해야 할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역시 일이다. 나는 진짜 일들을 위해 밤을 남겨 둔다.
내 목표는 아침 10시 기상이다생각해 보면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절대로 될 수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밤의 매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가한 낮의 매력에 대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빠져나가 졸린 고양이와도 같은 나른한 분위기가 녹아 있는 대낮의 동네 골목들과 점심 시간 때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지는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프리랜서의 우월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정된 출퇴근 시간에 갇히지 않은 어떤 사람들도 해줄 수 있는 소재다. 그리고 그 소재가 '저녁형 인간'의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저녁형 인간으로도 낙제인 셈이다. 좋다. 이럴 바엔 나도 슬슬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한다. 밤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으니, 내 목표는 아침 10시 기상이다. 10시라면 지나치게 아침 같지 않으면서도 점심 먹기 전에 아침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각이다.
시간도 폭력이 될 수 있다나는 등교와 퇴교, 출근과 퇴근에 얽매어 있던 긴 학창 시절과 짧은 직장 생활 동안 겪었던 새벽의 악몽을 기억한다. 새벽은 단 한 번도 내가 속해 있어야 할 시간대인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시간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공간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공간을 제한하는 감금이 처벌이 될 수 있다면, 시간을 제한하는 것 역시 그만큼이나 폭력적인 처벌이다. 그들은 수면 부족으로 충혈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이를 갈면서 버스와 전철 속으로 뛰어든다.
늦잠꾸러기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일하는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고 수면 시간이 긴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것뿐이다. 강요된 기상 시간이 만들어 내는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삶의 흐름은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아직도 그런 강요된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작은 사실뿐이다. 내가 새벽을 그렇게 증오했던 것은 순전히 시스템의 강요 때문이었다. 해가 뜨는 시기에 특별히 선천적인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기상 시각을 10시로 앞당기려는 내 필사적인 노력이 실패한 것도 아침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 때문은 아니다. 단지 생체 사이클을 재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이다.
얼마 전 나는 감기와 과다 섭취한 카페인 때문에 밤을 꼴딱 새어 결국 잠자는 걸 포기하고 동네 멀티플렉스에서 하는 조조할인 영화를 보러 갔다. 그것은 나에게는 몇 년째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보았던 아침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 풍경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강요 없이 맞은 아침은 그럭저럭 아름다웠고 신선했다.
혹시 미래에 어찌어찌해서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다고 해도, 내가 맞을 아침은 졸린 눈을 비비며 지저분하게 국에 만 밥을 쑤셔 넣고 학교로 뛰어야 했던 아침과는 분명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소음인들이여, 아침잠을 뺏기지 말지어다 - 강용혁(한의사)2004년 들어 계속 '아침형 인간'이라는 단어가 화두다. 그러나 '아침형 인간=무조건 좋은 것',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다같이 동참해야 하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되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상의학(四象醫學)적 관점에서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소음인(少陰人)'들은 '아침형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에 체질적으로 맞지 않다. 따라서 새벽이나 오전 중에는 머리가 맑지 못하고 제 컨디션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소음인에게 찬 공기는 최악이다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해 보자. 만성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수개월 간 고생했던 최 군(29)도 그 한 예다. 최 군은 1년 반 전 '7시 출근-4시 퇴근'을 하는 한 대기업에 취직했다. 7시 출근을 위해서는 적어도 5시경에 일어나야 하는데, 출근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회사에 도착해서도 오전 내내 피로감에 시달렸다. 더구나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비염증세가, 이른 출퇴근을 한 지 3개월 정도 지나면서부터 나타났다. 진찰 결과 최 군은 전형적인 소음인이었다.
소음인은 체질적으로 온기(溫氣)는 적고 냉기(冷氣)가 많다. 따라서 소음인들은 따뜻한 온기가 제대로 상승하지 못해, 코로 들락거리는 찬 기운을 견뎌내지 못함으로써 알레르기성 비염이 생기는 것이다. 최 군에게는 속을 차게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인 돼지고기와 밀가루 음식을 당분간 삼가도록 주문했다. 최 군처럼 전형적인 소음인이라면 업무 효율 차원이나 건강 차원에서 볼 때, '아침형 인간'이 그다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억지로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부글거린다'아침형 인간'을 논함에 있어서 '아침밥'에 대한 것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아침밥을 꼭 안 먹는다는 것보다는 굳이 남들이 다 한 그릇씩 거하게 먹는다고 소음인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몸이 제 컨디션을 찾기도 전에 억지로 밥을 먹게 되면 오히려 속이 부글거리고 부담스럽다는 소음인들이 많다. 이런 경우 초콜릿이나 코코아차 혹은 쌀과자나 대추차, 생강차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대신하는 것이 오히려 속도 편하고 아침 컨디션도 더 좋다.
푹 자야만 제대로 일할 수 있다소음인은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좋지 않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것이 좋고, 특히 아침잠이 다른 어떤 체질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적당한 아침잠을 자는 것이 오전 컨디션을 그나마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기식의 한 가지 기준이나 경험만으로 그것이 마치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인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말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음인은 '아침형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당신의 인생, 그렇게 자신 없고 빈약한 것인가 - 박상현(미술사 석사)자신의 생활 패턴에 따라 일찍 일어나고 싶으면 일찍 자는 것이고, 밤 늦게까지 깨어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거기에 무슨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는 듯이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건 얼마나 우스운가.
열등감이 숨어 있는 이 수상쩍은 냄새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주장이지만, 일단 그 단어가 싫다. '무슨 형' 인간이라니? 형(型)은 일본에서 찍어내는 자동차나 로봇에 붙여야 하는 말이지, 인격을 가진 인간에게 붙일 말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이 단어에서는 1980년대, 1990년대에도 꾸준하게 수입했던 무수한 일제(日製) 처세술, 성공 이론에서 나는 그런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 읽을 때는 그럴 듯해 보여도 다 읽고 나서는 결국 삶에 아무런 성찰도 주지 못하는 단편적인 기획 서적의 냄새이다.
나 역시 때때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곤 한다. 정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유연성 탓이겠지만, 밤 생활과 아침 생활이 내겐 모두 매력적이다. 하지만 내 생활 패턴이 밤 시간보다 아침 시간을 더 필요로 하니 일찍 일어나자고 하는 것과 아침형 인간이 되면 인생의 모든 것이 변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맞춤형 인간이 되기 싫다게다가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주장은 예외 없이 '당신은 아침형 인간인가, 저녁형 인간인가'라는 억지 분류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무슨 형의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두 가지 틀 중 하나에 억지로 끼워 넣기 시작한다(성별구분 외에도 인간을 이렇게 단순하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법이 또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더 기가 찬 것은 (성공학이라는 특성상) 개인의 생산성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하는 이런 주장이 사실상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그리고 개인의 처지와 상관없이 애초부터 한 가지 모델을 우세한 것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찍 일을 시작하는 모델 말이다.
산업 사회를 벗어나 정보화 사회로 간다고 하는 문턱에서 모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는 운동이 벌어진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이렇게 자신을 개조하면 성공이 보인다는 식의 주장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성공담 몇 가지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을 한 곳으로 몰아 거푸집(=型)에 찍어내자는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만큼 우리의 인생이나 사회가 빈약한 것인가.
"저는 멀티플 호환성의 회사형 인간입니다!" - 철밥통(회사원)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아침형 인간인가요?" "아니오."라고 말하자 그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럼 저녁형 인간이군요?" 그 말에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내게 무슨 형 인간이냐고 물어 본다면 내가 대답할 말은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는 회사형 인간입니다." 회사형 인간이란 쉽게 말해서 회사가 원하는 대로 라이프 스타일을 맞추는 인간형을 말한다.
저녁 시간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보통의 직장인들은 명목상의 퇴근 시간 이후 저녁이 실제로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 편히 퇴근할 수 있는 회사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회사의 실질적인 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직장인이 개인적인 자기 계발을 위해 쥐어짜 낼 수 있는 시간은 아침밖에없다. 그러니 '아침형 인간' 이야기가 나오면 솔깃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게다가 '새벽의 꿈'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직장인들에게는 '아침형 인간'이 현실적으로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이야기다. 직장인들이 경험해 본 '새벽의 꿈'이란, 바로 아침 일찍 등교하여 저녁 늦게까지 공부해야 했던 고교 시절의 대학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직장인들이 간과하는 한 가지 사실만 제외하면 '아침형 인간'은 가장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다. 그 문제점이란 고교 시절과는 현저히 다른 체력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과한 채 '아침형 인간'으로 돌변하는 것은, 수면 시간 부족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 예견된 실패를 자초하는 행위다.
자네는 왜 아침을 활용하지 못하는가?야근을 은근히 부추기는 경영진에게도 '아침형 인간'은 매력적이다. 저녁 시간에 일을 시키더라도 아침이라는 시간은 개인에게 자유롭게 부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야근을 지속적으로 하느라 피곤에 절어 지각을 한다면, 그 원인과는 상관없이 '아침형 인간'과 비교하여 아침을 낭비한 파렴치범으로 가중 처벌할 죄악이 된다. 또한 야근 때문에 자기 발전이 없다고 항변하는 간덩이 부은 사원에게 할 말도 생긴다. "자네는 왜 아침을 활용하지 못하는가?"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들이 갉아먹은 저녁 시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다음엔 또 그것에 맞게 버텨라회사에서 좋아하는 아침형 인간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회사에서 옹호하는 '아침형 인간'을 정확히 표현하면 '(밤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 다 하고도) 아침(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하는)형 인간'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 삶의 질과 성공의 문제를 회사와 같이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아침을 쪼개서 사용할 개인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결국 이런 씁쓸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에게는 늘 희망은 있다. '아침형 인간' 역시 한번의 트렌드로 휩쓸고 지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볼 때는 짧게는 몇 개월, 길어야 2년만 버티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아침형 인간'이 사라지고 다음 트렌드가 올 것이다. 그때는 또 그것에 맞게 버티면 된다.
밤은, 수천의 가슴을 출렁이게 할 수 있다 - 오린(카피라이터)나는 밤이 좋다. 좋은 일은 밤에만 한다. 대개 밤에는 머리를 쓰지 않고 가슴을 쓴다. 사람을 설득하는 게 내가 택한 광고 일의 핵심이다 보니 머리를 써서 득을 본 경험을 별로 없다. 가슴을 써서 득을 보는 동료들은 주변에도 많이 있다. 밤은 가슴을 쓰는 '아웃풋의 시간'이다.
내 주변엔 아직도 밤에 좋은 것을 많이 뽑아 내는 사람들이 많다. 발라드 가수라거나, 시인이라거나, 비평가라거나, 영화 일을 한다거나 제법 재미있어 보이는 새로운 것을 뽑아 내는 사람들은 밤을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밤에 쓴 연애 편지가 일견 유치해 보이지만 낮에는 꿈도 못 꿀 감정들이 살아서 생생하게 퍼덕거리더란 걸 이미 잘 알고, 그것을 인생에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밤 7시 출근, 새벽 4시 퇴근은 어떨까?밤일은 밤에 하고, 낮일은 낮에 하는 게 좋다. 광고를 한 몇 년 하면서 밤일의 즐거움을 몸으로 체득해 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신경영이다, 제2창업이다 해서 그룹이 온통 환골탈태의 폭풍에 휘말려 있을 때였다. 급기야 출근 시간을 7시로, 퇴근 시간을 오후 4시로 정한다는 7to4 지침이 하달되었다. 광고 회사의 속성과는 정반대의 타임 스케줄이었다. 허나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일찍 퇴근하여 자기 계발을 하라는 취지, 그 지엄한 명령 앞에서 기존의 관행이나 크리에이티브한 일의 성격 운운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변명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정말 남다르게 살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밤에 일하는 게 습관처럼 배어 있다 보니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고충에 시달렸다. 출근 시간에서 단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지각 체크를 해버리는 팀 총무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 비록 새벽 2∼3시까지 일했다 해도 7시까지는 어김없이 출근해야 했다. 출근 도장을 찍고 얼른 인근 사우나엘 가거나, 아니면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자든가, 충혈된 눈에 정신 빠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보면 아침이 오곤 했다.
그 시절 우리의 아침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생산성이 많이 올랐다든가, 자기 계발을 잘 해서 뭔가 뾰족하게 성공했다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진정 일류 기업답지 않은 이 코믹스러운 출퇴근 전쟁은 - 그러나 당하는 사람들은 결코 웃을 수만은 없었던 - 1년에서 2년 정도 지속되다 계열사별로 업무 특성에 따라서 출퇴근 시간을 정하라는 자율 근무 시간제를 도입한 뒤에야 사라질 수 있었다. '차라리 저녁 7시에 출근해서 새벽 4시에 퇴근하라고 그러지'하는 심정도 있었다.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점심형 인간이 되련다범람하는 게 시간을 잘 관리하라는 책들이다. 난 그 책들을 열심히 많이 읽었다. 그런데 나는 점점 더 바빠지기만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도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아침형 인간'이 뜨니까 '저녁형 인간'에 관계된 책도 나오더라는 것이다. 『퇴근 후 3시간』이라는 책 같은 것 말이다. 그 책을 보면 퇴근 후 3시간은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한 해로운 시간으로, '남아도는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을 재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전략적인 시간'이란다. 살아 남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하는 방법 중 하나로 퇴근 후 3시간을 잘 활용하라는, 역시 '아침형 인간'과 비슷한 자기 관리 지침서다. 정말 만만한 게 시간인가 보다. 하기사 재산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공평하게 받는 것이 오직 시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