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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지음 | 이마고
1991년의 걸프전은 언론과 미국 정부에 의하여 성공한 전쟁으로 평가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군대는 미국과 연합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쿠웨이트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조지 부시와 콜린 파웰이 승리의 기쁨을 즐기는 동안, 걸프전에 참가했던 수천 명의 병사들을 괴롭히는 악성 질병이 등장했다. 통칭 걸프전증후군(GWS)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걸프전증후군에는 여러 가지 파괴적인 증상이 있는데 밤중의 오한, 신경계 장애, 종양, 과도한 체중 감소, 설사, 불면증, 만성피로, 극심한 관절염, 기이한 발진, 성격 변화, 정신적 기능의 상실, 과도한 출혈 등 다양하다.



· 정말 이상한 부분

걸프전증후군의 증상은 에이즈의 증상과 유사성이 많다. 어떤 경우에 걸프전증후군 환자들은 에이즈 테스트에 양성으로 판정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에이즈 바이러스의 표시는 없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사담 후세인 : 후세인은 그의 적들에게 생화학무기를 실험하고 또 사용해왔는데, 가령 걸프전 이전에는 쿠르드족에게 이 무기를 사용하여 몇 개의 마을을 싹쓸이한 적도 있다. 후세인은 스커드미사일에 치명적인 생화학무기를 탑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연합군에 의해 파괴된 화학약품 공장이나 이라크 무기 벙커에서 위험한 것이 흘러나왔을지도 모른다.

- 강제 접종 : 생화학전에 대비하여(하지만 미국은 이런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연합군의 병사들은 강제로 예방약을 먹었고 또 접종을 했다. '피리도스티그민 브로마이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알약과 예방접종(탄저병 예방접종 포함)약은 매우 실험적인 약물이었다. 이런 접종이 걸프전증후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 증후군의 확산에 일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가장 그럴듯한 증거

감염된 병사들의 수는 이 질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대변해주고 있다. 약 15만 명 이상이 걸프전증후군에 감염되어 그 중 10만 명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이는 최소한의 수치다). 걸프전증후군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해당 바이러스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특징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걸프전증후군의 주범은 '미코플라스마 페르만탄스(정체미상이라는 뜻)'라는 제조된 약제로 알려지고 있다. 이 약제는 에이즈 바이러스 외피 유전자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실험실에서 추가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걸프전 연합군에 참가한 나라들 중에서 프랑스만 예방접종을 거부했다. 현재까지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는 걸프전 증후군이 보고되지 않았다.



· 가장 의문스러운 사실

걸프전증후군은 아주 감염성이 높아서 감염된 병사의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쉽게 전염될 수 있다. 걸프전증후군은 가벼운 접촉이나 성교, 공기접촉 등으로도 감염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질병의 가장 악질적인 점은 환자의 애완동물에게까지도 전염된다는 것이다. 걸프전증후군이 이종(異種) 간에도 전염이 된다면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 회의론자의 입장

결국 문제의 핵심은 돈이다. 각국 정부는 걸프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고 또 강제 예방접종이 걸프전증후군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인정했다가는 당연히 법적 책임의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가 자발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외계인의 존재



화성의 기념물 - 화성의 생명체에 대해 나사가 숨기고 있는 비밀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에 대해, 그가 1977년 8월 16일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음모론자들은 로큰롤의 제왕이 죽었다는 소문은 대중을 속이기 위한 기만전술이고, 프레슬리는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 정말 이상한 부분

프레슬리의 사망이 발표된 지 두 시간 후에 그와 닮은 사람이 존 버로스라는 이름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행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실제로 이 이름은 프레슬리가 생전에 자주 사용했던 가명이었다. 닉슨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에 갔을 때도 프레슬리는 이 가명을 썼다. 당시 방문에서 그는 FBI 본부를 찾아가 동료 연예인들에 대한 비밀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마약단속반의 명예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존 버로스가 출국 당시 국무부의 특별문서를 휴대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때문에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남미로 도망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엘비스 프레슬리 : 당시 이 로큰롤의 제왕은 명성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와 다름없었다. 이제 42세가 된 그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전에도 총기 오발 사고를 가장해 자신의 죽음을 꾸며낸 적이 있던 그는 다시 한 번 자살극을 꾸몄다.

- FBI :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기 얼마 전에 마피아와 거래하다 큰 돈을 잃었다. 그는 정부에 협조하여 마피아의 비행을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FBI는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 작전에 나선 다음 그의 가짜 죽음을 연출했고, 또 아주 특별한 증인의 극비 이주 프로그램에 따라 그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햄버거 체인 회사 : 한적한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버거를 굽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봤다는 소문이 나돌자, 엘비스 팬들은 너도나도 그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고 그 햄버거 체인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프레슬리의 죽음은 본인과 햄버거 체인 회사의 합작품일까?

- 광신도 집단 : 어느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농장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위 사람들은 그가 종교적인 인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와중에 프레슬리를 그리스도에 비유한 책들이 출간되어 일약 미국의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그러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영적인 기운을 풍기는 것처럼 보였다.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라는 광신도 집단이 미래의 새로운 종교적 기반을 닦기 위해 엘비스 음모론을 꾸며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과연 뉴 월드 오더가 극저온 냉동기술로 프레슬리를 얼려두었다가 후에 지구의 새로운 메시아로 부활시키고자 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있을까?



· 가장 그럴듯한 증거

엘비스(Elvis)의 이름이 라이브스(Lives, 여러 번의 삶)를 재배열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의 시신을 넣었다는 900파운드 무게의 관(공기를 냉각시키는 기계가 갖추어진 관)은 정말 그럴듯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가족은 어떻게 그가 사망한 바로 다음날 주문 제작한 900파운드짜리의 관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런 엄청난 관을 미리 준비할 정도로 대비가 철저했으면서도 어머니 옆에 묻어달라는 프레슬리의 기본적인 부탁을 무시해버린 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사망하기 며칠 전 프레슬리는 밤중에 여러 영안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 회의론자의 입장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었다. 죽은 사람은 편히 쉬게 해야 한다.역사적 인물과 사건



철가면의 사나이 - 프랑스 왕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비밀기관, 조직, 단체



국가보안위원회(KGB) - KGB가 소련의 붕괴를 묵과한 이유태양계의 행성들 중 화성은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별이다. 많은 작가들이 화성에 대한 공상과학 소설을 써왔다. 그것은 화성 표면의 '운하'처럼 보이는 지형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운하라면 과거 어느 한때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NASA의 마리너 화성탐사계획(1965∼1971)을 통해 촬영된 화성 표면 사진으로 인해 화성에는 돌과 모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화성에는 생명체가 없고 또 과거에 있은 적이 없다는 가설이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1971년 마리너 9호가 화성의 엘리시움 쿼드랭글 지역의 사진을 전송해오면서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사진에는 피라미드를 닮은 산들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 NASA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보내온 사진에도 피라미드의 도시 같은 장면이 있었다. 그 중에는 폭 2킬로미터, 길이 2.6킬로미터, 높이 457미터의 거대한 얼굴이 찍혀 있는 사진이 있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5면체의 피라미드가 있었는데 그 폭이 대략 3.2킬로미터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NASA는 이 얼굴이 자연적으로 생긴 일종의 암석층이며, 바람과 부식에 의해 우연히 생긴 것일 뿐, 오래 전에 죽은 화성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침내 1993년 여론에 떠밀려 NASA가 새로운 화성 관측 탐사선을 보내 같은 지역에 대한 정밀한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탐사선이 화성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탐사선은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2004년 3월 2일, NASA는 미국의 화성탐사선 오퍼튜니티와 스피리트가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 정말 이상한 부분

화성의 피라미드는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사각의 링 속에 들어 있는 남자>를 많이 닮았다. 더욱이 피라미드, 도시, 얼굴은 정삼각형을 이루면서 각기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NASA : 탐사선의 세부 사진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NASA는 언론의 성가신 간섭 없이 그 기념물들을 연구할 수 있다. 그 결과 연구성과들을 NASA가 독점할 수 있으며 연방정부의 예산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일반대중에게 공포와 사회적 불안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지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연합통신(AP)은 NASA가 자체적으로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뉴스는 공개하기를 꺼려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NASA는 또한 조직의 규정상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발표를 유예할 수도 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화성인 : 그들은 화성 탐사선이 화성 근처에 출몰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해 탐사선에 고장을 일으킴으로써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NASA는 인류가 더 큰 보복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화성 기념물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 고대 이집트인 : 화성에 새겨진 얼굴 모양이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았고 또 화성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서 모티프를 빌려갔을 것이라는 상상에 따라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간의 문(門) 혹은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화성으로 여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은 죽은 사람이 미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죽음의 땅(화성)으로 여행한다는 이집트 신화의 배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마야인들도 이런 여행의 신화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가장 그럴듯한 증거

화성의 얼굴과 주위의 구조물은 기자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닮았다. 머리장식, 표정, 피라미드의 배치 방식 등이 유사하다는 것은 이 두 건축물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화성의 구조물은 연대기적으로 현생 인류의 조상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점은 스핑크스가 이집트인들의 시대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최근의 고고학적 이론과도 일치했다. 조야한 그 얼굴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닮았는데, 바로 스핑크스가 건설되던 그 당시 인간의 모습이라고 추측된다.



· 가장 의문스러운 사실

『접촉(Contact)』의 저자 칼 세이건은 외계의 생명체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화성의 기념물은 평가절하했다. NASA와 가까운 사이였던 세이건은 어쩌면 NASA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NASA 또한 세이건의 높은 명성을 고려하여 그를 일종의 홍보대사로 위촉했던 것은 아닐까?



· 회의론자의 입장

어쩌면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화성의 기념물을 둘러싼 음모론이 증명할 수 없는 추측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하룻밤 사이에 화성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테크놀로지



바코드 - 왜 미 군부는 바코드 사용에 그토록 적극적이었는가?비극적 사건



걸프전증후군 - 걸프전 참전 군인에게 엄습한 이름 모를 병철가면의 사나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프랑스의 공식 문서에 남겨져 있는 얼마 안 되는 정보가 전부이다. 그는 1669년 체포되어 프랑스 알프스의 요새인 피네롤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후 1681년 피네롤 근처의 에그질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다시 1687년에 프랑스 남부 해안의 섬, 생 마르그리트로 옮겨졌다. 그는 이 섬에 11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다시 파리의 바스티유로 보내졌고 1703년 사망했다.



그의 전 수감기간을 통하여 감옥의 간수가 아닌 사람을 만난 것은 단 두 번에 불과했다고 한다. 에그질에서 생 마르그리트로 이감될 때 이 죄수에게는 철가면이 씌워졌다. 바스티유로 옮겨갈 때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철가면 대신 벨벳을 쓰게 했다. 정부 장관과 교도소장 사이에 오고간 편지를 보면 그는 면담이든 편지든 외부인사와 접촉하는 것이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이 죄수가 얼마나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가혹은 보안조치를 했을까? 왜 그를 살려두었을까? 만약 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프랑스 왕이나 정부에 그토록 위협이 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안전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에게 그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그토록 우려했을까?



· 정말 이상한 부분

철가면의 죄수를 담당했던 교도소장 생 마르는 이 죄수가 처음 수감되어 1703년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당시 고위직이 정치적 입김에 따라 수도 없이 교체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처럼 한 자리에 장기 근속했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루이 14세 : 가장 흔한 이론으로 프랑스 왕이 용의자이며 가면을 쓴 죄수는 루이 14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왕위 계승에 따를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한 왕이 동생을 투옥시킨 것이다. 또한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배다른 형으로, 그의 어머니가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생부라는 설도 있다.

- 루이 올덴도르프 : 로렌 주 출신의 귀족인 그는 템플 비밀교단의 지도자였다. 이 조직의 규칙에 의거하여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의 지도자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지도능력이 너무 탁월해 그가 죽은 뒤에도 조직원들은 그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싶어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면을 쓰고서 올덴도르프가 투옥되어 있는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이후 이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고서 올덴도르프의 이름 아래 교단을 계속 운영해나갈 수 있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루이 13세와 앤 사이의 숨겨진 딸 : 아들이 없는 것을 크게 우려하던 루이 13세는 앤 왕비가 딸을 낳자마자 그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버리고 사내아이로 바꿔치기했다. 이 딸이 자라서 자신의 신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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