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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지음 | 이마고
유명인의 의문사



엘비스 프레슬리 - 그는 FBI의 비호 아래 살아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에 대해, 그가 1977년 8월 16일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음모론자들은 로큰롤의 제왕이 죽었다는 소문은 대중을 속이기 위한 기만전술이고, 프레슬리는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 정말 이상한 부분 프레슬리의 사망이 발표된 지 두 시간 후에 그와 닮은 사람이 존 버로스라는 이름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행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실제로 이 이름은 프레슬리가 생전에 자주 사용했던 가명이었다. 닉슨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에 갔을 때도 프레슬리는 이 가명을 썼다. 당시 방문에서 그는 FBI 본부를 찾아가 동료 연예인들에 대한 비밀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마약단속반의 명예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존 버로스가 출국 당시 국무부의 특별문서를 휴대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때문에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남미로 도망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엘비스 프레슬리 : 당시 이 로큰롤의 제왕은 명성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와 다름없었다. 이제 42세가 된 그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전에도 총기 오발 사고를 가장해 자신의 죽음을 꾸며낸 적이 있던 그는 다시 한 번 자살극을 꾸몄다. - FBI :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기 얼마 전에 마피아와 거래하다 큰 돈을 잃었다. 그는 정부에 협조하여 마피아의 비행을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FBI는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 작전에 나선 다음 그의 가짜 죽음을 연출했고, 또 아주 특별한 증인의 극비 이주 프로그램에 따라 그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햄버거 체인 회사 : 한적한 햄버거 가게에서 치즈버거를 굽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봤다는 소문이 나돌자, 엘비스 팬들은 너도나도 그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고 그 햄버거 체인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프레슬리의 죽음은 본인과 햄버거 체인 회사의 합작품일까? - 광신도 집단 : 어느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농장을 사들였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위 사람들은 그가 종교적인 인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와중에 프레슬리를 그리스도에 비유한 책들이 출간되어 일약 미국의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그러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영적인 기운을 풍기는 것처럼 보였다.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라는 광신도 집단이 미래의 새로운 종교적 기반을 닦기 위해 엘비스 음모론을 꾸며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과연 뉴 월드 오더가 극저온 냉동기술로 프레슬리를 얼려두었다가 후에 지구의 새로운 메시아로 부활시키고자 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있을까?

· 가장 그럴듯한 증거 엘비스(Elvis)의 이름이 라이브스(Lives, 여러 번의 삶)를 재배열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의 시신을 넣었다는 900파운드 무게의 관(공기를 냉각시키는 기계가 갖추어진 관)은 정말 그럴듯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가족은 어떻게 그가 사망한 바로 다음날 주문 제작한 900파운드짜리의 관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런 엄청난 관을 미리 준비할 정도로 대비가 철저했으면서도 어머니 옆에 묻어달라는 프레슬리의 기본적인 부탁을 무시해버린 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사망하기 며칠 전 프레슬리는 밤중에 여러 영안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 회의론자의 입장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었다. 죽은 사람은 편히 쉬게 해야 한다.



외계인의 존재



화성의 기념물 - 화성의 생명체에 대해 나사가 숨기고 있는 비밀




태양계의 행성들 중 화성은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별이다. 많은 작가들이 화성에 대한 공상과학 소설을 써왔다. 그것은 화성 표면의 '운하'처럼 보이는 지형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운하라면 과거 어느 한때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NASA의 마리너 화성탐사계획(1965∼1971)을 통해 촬영된 화성 표면 사진으로 인해 화성에는 돌과 모래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화성에는 생명체가 없고 또 과거에 있은 적이 없다는 가설이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1971년 마리너 9호가 화성의 엘리시움 쿼드랭글 지역의 사진을 전송해오면서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사진에는 피라미드를 닮은 산들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 NASA의 화성탐사선 바이킹이 보내온 사진에도 피라미드의 도시 같은 장면이 있었다. 그 중에는 폭 2킬로미터, 길이 2.6킬로미터, 높이 457미터의 거대한 얼굴이 찍혀 있는 사진이 있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5면체의 피라미드가 있었는데 그 폭이 대략 3.2킬로미터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NASA는 이 얼굴이 자연적으로 생긴 일종의 암석층이며, 바람과 부식에 의해 우연히 생긴 것일 뿐, 오래 전에 죽은 화성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침내 1993년 여론에 떠밀려 NASA가 새로운 화성 관측 탐사선을 보내 같은 지역에 대한 정밀한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탐사선이 화성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탐사선은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2004년 3월 2일, NASA는 미국의 화성탐사선 오퍼튜니티와 스피리트가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 정말 이상한 부분 화성의 피라미드는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사각의 링 속에 들어 있는 남자>를 많이 닮았다. 더욱이 피라미드, 도시, 얼굴은 정삼각형을 이루면서 각기 꼭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NASA : 탐사선의 세부 사진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NASA는 언론의 성가신 간섭 없이 그 기념물들을 연구할 수 있다. 그 결과 연구성과들을 NASA가 독점할 수 있으며 연방정부의 예산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일반대중에게 공포와 사회적 불안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지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연합통신(AP)은 NASA가 자체적으로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뉴스는 공개하기를 꺼려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NASA는 또한 조직의 규정상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발표를 유예할 수도 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화성인 : 그들은 화성 탐사선이 화성 근처에 출몰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해 탐사선에 고장을 일으킴으로써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NASA는 인류가 더 큰 보복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화성 기념물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 고대 이집트인 : 화성에 새겨진 얼굴 모양이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았고 또 화성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에서 모티프를 빌려갔을 것이라는 상상에 따라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공간의 문(門) 혹은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화성으로 여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은 죽은 사람이 미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죽음의 땅(화성)으로 여행한다는 이집트 신화의 배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마야인들도 이런 여행의 신화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가장 그럴듯한 증거 화성의 얼굴과 주위의 구조물은 기자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닮았다. 머리장식, 표정, 피라미드의 배치 방식 등이 유사하다는 것은 이 두 건축물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화성의 구조물은 연대기적으로 현생 인류의 조상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점은 스핑크스가 이집트인들의 시대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최근의 고고학적 이론과도 일치했다. 조야한 그 얼굴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닮았는데, 바로 스핑크스가 건설되던 그 당시 인간의 모습이라고 추측된다.

· 가장 의문스러운 사실『접촉(Contact)』의 저자 칼 세이건은 외계의 생명체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화성의 기념물은 평가절하했다. NASA와 가까운 사이였던 세이건은 어쩌면 NASA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NASA 또한 세이건의 높은 명성을 고려하여 그를 일종의 홍보대사로 위촉했던 것은 아닐까?

· 회의론자의 입장어쩌면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화성의 기념물을 둘러싼 음모론이 증명할 수 없는 추측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하룻밤 사이에 화성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



철가면의 사나이 - 프랑스 왕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




철가면의 사나이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프랑스의 공식 문서에 남겨져 있는 얼마 안 되는 정보가 전부이다. 그는 1669년 체포되어 프랑스 알프스의 요새인 피네롤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후 1681년 피네롤 근처의 에그질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다시 1687년에 프랑스 남부 해안의 섬, 생 마르그리트로 옮겨졌다. 그는 이 섬에 11년 동안 수감되었다가 다시 파리의 바스티유로 보내졌고 1703년 사망했다.

그의 전 수감기간을 통하여 감옥의 간수가 아닌 사람을 만난 것은 단 두 번에 불과했다고 한다. 에그질에서 생 마르그리트로 이감될 때 이 죄수에게는 철가면이 씌워졌다. 바스티유로 옮겨갈 때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철가면 대신 벨벳을 쓰게 했다. 정부 장관과 교도소장 사이에 오고간 편지를 보면 그는 면담이든 편지든 외부인사와 접촉하는 것이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이 죄수가 얼마나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가혹은 보안조치를 했을까? 왜 그를 살려두었을까? 만약 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프랑스 왕이나 정부에 그토록 위협이 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안전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에게 그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그토록 우려했을까?

· 정말 이상한 부분철가면의 죄수를 담당했던 교도소장 생 마르는 이 죄수가 처음 수감되어 1703년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당시 고위직이 정치적 입김에 따라 수도 없이 교체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처럼 한 자리에 장기 근속했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일이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루이 14세 : 가장 흔한 이론으로 프랑스 왕이 용의자이며 가면을 쓴 죄수는 루이 14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왕위 계승에 따를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한 왕이 동생을 투옥시킨 것이다. 또한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배다른 형으로, 그의 어머니가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생부라는 설도 있다. - 루이 올덴도르프 : 로렌 주 출신의 귀족인 그는 템플 비밀교단의 지도자였다. 이 조직의 규칙에 의거하여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의 지도자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지도능력이 너무 탁월해 그가 죽은 뒤에도 조직원들은 그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싶어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면을 쓰고서 올덴도르프가 투옥되어 있는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이후 이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고서 올덴도르프의 이름 아래 교단을 계속 운영해나갈 수 있었다.

· 다소 황당한 용의자 - 루이 13세와 앤 사이의 숨겨진 딸 : 아들이 없는 것을 크게 우려하던 루이 13세는 앤 왕비가 딸을 낳자마자 그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버리고 사내아이로 바꿔치기했다. 이 딸이 자라서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되자 루이 14세(바꿔치기한 아들)가 그녀를 투옥시켰다. - 몰리에르 : 그는 무신론에 기울어져 있고 프랑스의 기성체제를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몰리에르는 특히 강력한 가톨릭 단체인 성체성사회의 분노를 샀다. 따라서 1673년의 몰리에르 사망은 실로 꾸며진 것이며 기성체제를 조롱한 벌로 철가면의 사나이가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가장 그럴듯한 증거이 죄수가 간단히 처형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왕가와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가장 의문스러운 사실프랑스 정계는 남의 말을 잘하기로 유명하며 또 이 죄수가 누구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이 죄수와 관련된 자료를 샅샅이 수색했음에도 이 죄수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모든 관련자들이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공통의 비밀인 것이다.

비밀기관, 조직, 단체



국가보안위원회(KGB) - KGB가 소련의 붕괴를 묵과한 이유




소련의 진정한 해체는 1991년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내려져 땅바닥에 산산조각남으로써 완료되었다. 제르진스키는 1917년 10월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전복된 후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도록 도와준 적색 테러의 총지휘자였다. 그는 비밀경찰 체카(Cheka)를 창설했는데 이 조직이 여러 해 뒤에 국가보안위원회(KGB)로 커졌다. KGB는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섭고 악랄한 정보 수집 기관으로 알려졌다.

KGB는 국내외의 적들로부터 소비에트 공산당정권을 보위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을 창설한 사람의 동상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소련 시민들을 장악했던 KGB의 권력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동서냉전 기간 동안에는 음모라는 말이 나오기만 해도 그 배후에 KGB의 존재를 의심했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세계 최고의 비밀기관이 공산당에도 충성을 바치지 않고 오로지 기관 자체의 비밀적인 목적에만 봉사한다고 말했다. 이론상 KGB는 소비에트 내각회의에 활동경과를 보고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소련의 정치국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

가공할 공포와 비밀정보원의 연락망을 통해 소련 주민들을 완전히 장악해오던 KGB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소련이 붕괴되도록 내버려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 특히 KGB가 소련 군대의 감독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음모론자들은 그래서 이런 주장을 편다. 소련과 KGB의 해체는 정교한 음모를 감춘 은폐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막후에서 은밀하게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여 전보다 더 강한 러시아 제국으로 권토중래하려 애쓰고 있다.

· 정말 이상한 부분소련의 붕괴 이래 러시아는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런 현상의 최대 수혜자는 극우민족정당인 자유민주당의 당수 블라디미르 지르노프스키였다. 독일의 극우 그룹, 러시아 마피아, 심지어 사담 후세인과도 연계가 있는 지르노프스키는 만약 정권을 잡는다면 러시아의 히틀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사실은 그가 KGB의 비밀요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의 KGB 동료들에 의하면 해체되었다고 알려진 이 비밀기관의 전 지도자들이 그의 집권을 돕고 있다고 한다.

· 먼저 떠오르는 용의자 - 프리메이슨 : KGB가 영국 정부와 영국 정보기관에 침투하기 위해 먼저 메이슨 조직에 침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었다. 프리메이슨도 KGB의 지휘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여 이 기관을 통제하려 했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런 해석을 하고 있다. 보다 강해진 러시아 제국으로 거듭나려는 KGB의 계획은 세계제패를 이룩하려는 메이슨의 더 큰 계획의 한 부분일 뿐이다.

· 가장 그럴듯한 증거일부 음모론자들에 의하면 소련의 전 대통령 고르바초프가 KGB에게 지시하여 지로노프스키의 자유민주당 창설을 지시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 본인은 그런 주장을 부인했지만 KGB가 지로노프스키를 배후에서 통제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KGB가 신당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지로노프스키는 뛰어난 배우다. 누가 그에게 지시를 내리는지, 누가 그의 뒤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 가장 의문스러운 사실지로노프스키를 가장 열렬하게 지원하는 해외지도자는 사담 후세인이다. 걸프전 때 전직 KGB 요원과 현역 군인들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이라크에 보내준 지로노프스키의 호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후세인은 그를 이라크 군의 명예 대령에 임명했고 또 커다란 초상화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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