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포 브론슨 지음 | 물푸레
내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포 브론슨 지음/곽명단 옮김
물푸레/2003년 12월/493쪽/13,000원
운명 대 개척
운명의 편지를 받은 청년 - 예정된 싸움일지라도
당신이 열일곱 살 때 삶의 의미를 주관하는 ‘궁극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누군가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고 해보자. 그 편지에는 당신이 누구이며 당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쓰여 있다. 당신이 그 편지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지쳐 쓰러질 때마다 그 편지를 꺼내 읽어 본다면 삶이 한결 쉽지 않을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정말로 그런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다. 현재 32세인 그는 카멜백 산자락의 피닉스에 살고 있다. 그는 인도 남부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자랐다. 그가 그 운명의 편지를 받은 것은 티베트 문학교수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전문대학에 등록한 직후였다. 그의 본명은 체아오 돈덥이었지만, 모두들 알리라고 불렀다. 권투 선수 알리처럼 몸집이 거대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평범한 청년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유난히 어둠을 무서워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학교에서 달라이 라마가 직접 서명한 편지를 받은 것이다. 알리는 달라이 라마의 절대적인 신봉자였다.
편지의 내용인즉 그가 체아오 돈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현재 알리라고 불리는 그는 여섯 평생 전 자신의 다섯 형제와 함께 티베트의 가난하고 외딴 동부 지역을 다스리던 전사의 화신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섯 형제는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후예인데, 알리는 전생에서 가족의 폭정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 동안 13개의 사찰을 세웠으며, 테호 지역에서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고 했다. 알리의 진짜 이름은 자 린포체이며, 이는 티베트 말로 ‘법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알리가 인도 북부에 있는 드레풍 사원에 입문하기를 바랐다. 알리는 자신의 고뇌와 불안감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자신이 꼭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는 친구들의 강력한 권유에 떠밀려 결국 그 사원으로 떠났지만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 불안감이 완전히 떨쳐지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후로 12년 동안 알리는 2,000년 전에 쓰여진 고대 경전을 외웠다. 죽음을 앞둔 테호 사람들은 육신을 벗고 열반에 이르기 전에 그가 속세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알리의 사진을 코앞에 대고 죽어갔다. 그만큼 그들은 린포체에 대한 믿음이 컸다. 아마도 린포체가 자기 자신을 믿는 것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위치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달라이 라마에게 직접 편지를 받았다면 말이다! 물론 내가 그를 만나러 간 것은 이런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음 한편으로 성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혹 그 영적인 존재가 내게 묻은 세상의 때를 씻어내고 내가 갈 길을 일러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건 성스럽긴 해도 우리와 하나 다를 바 없는 진짜 인간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고뇌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지만, 그도 역시 날마다 고뇌하며 여느 사람들처럼 자신의 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적혀 있는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정녕 자신이 속한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고 어려운 선택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도 삶의 문제로 부단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물질로 보는 것이 서양 사람이나 티베트 젊은이들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에서는 자기, 즉 정신이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층위 - 육신, 감정, 지각, 의지, 의식 - 로 이루어져 있다고 풀이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경우에는 의식은 환생했지만 지각, 감정, 육신은 환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내부의 층 그 자체가 외부의 층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섯 가지가 한데 아우른 것이 ‘자기’라는 뜻이다. 불교 신자들도 사람은 저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특별히 정해진 길은 없다고 봅니다. 굳이 운명이라고 한다면 깨달음을 얻어 한결같은 마음 상태에 이르는 것이죠.”
린포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다음 단계를 밟아야 했다. 1998년, 달라이 라마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승려단의 총책임자로 그를 지목했다. 린포체는 순회 여행을 떠나기 싫었다. 버스를 때로는 13시간이나 타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간절히 타이르는 바람에 어쩔 도리 없이 떠나야 했다. 린포체는 그때의 자신을 옹졸하고 오만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사원은 깊이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한 거룩한 곳일 텐데, 그는 도리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기고만장해졌다. 일반 승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신분이 높은 승려들만 상대했다. 또한 다른 종교를 철저히 배격하고,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나쁘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을 순회하고 오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1년 만에 드레풍 사원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승려들은 하나같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승려를 똑같이 대했고 늘 웃는 얼굴이었다. 이제 그는 이곳에 탄탄한 뿌리를 내린 듯했다. 원로 승려들조차 감격해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언젠가 ‘이것은 내 천성이 아니다’라고 폭탄선언을 한 뒤부터 린포체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거룩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편 서양 정신, 즉 서양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알고 싶었다. 그 광란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그것이 곧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이 미혹의 말 앞에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절대적인 존재가 우리 삶의 목적을 깨우쳐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든 역경을 뚫고 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마음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남이 일군 재물을 물려받기를 탐하지만 그 부를 스스로 일구었을 때 훨씬 더 뿌듯한 것처럼 운명도 그러하다. 어느 날 린포체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를 했다며 바뀐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 보디하트(Bodhiheart : 티베트 불교문화를 전파하고 교육하는 일종의 선원)를 나왔어요.” 보디하트는 린포체가 지금까지 얹혀 살았던 집의 여자 주인과 공동으로 설립한 단체였다.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뭐, 그런 셈이죠. 난 미국시민권이 없잖아요. 그래서 법적인 문제를 모두 그 여자에게 의존하다 보니.” “재단 설립 문제로군요.” “맞아요. 따로 내 재단을 세웠어요.”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녀는 사람들도 내 맘대로 못 만나게 하고, 일일이 간섭하려 들었어요. 자기 허락 없이는 아무도 만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저번에 당신이 여기 왔을 때도 자기 허락도 없이 내 멋대로 했다고 화를 내더군요.” “그냥 친구로서 만나는데도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다 이거군요.” “그래요.” “혼자 살아본 적은 있어요?” 그는 여태까지 승려가 4,000명이나 되는 사원에서 지내왔다. “아뇨,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럼, 요리는 할 줄 알아요?” “간단한 것 정도는요.” “대충 때우겠군요, 그렇죠?” “그런 편이에요.” “아파트는 넓어요?” “좁지는 않아요.” “어두움은요, 요즈음도 무서워해요?”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당신이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니 반갑네요.” “예.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발전하고 있는 셈이죠.” 그는 언젠가 내게 “이따금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었다. 마침내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린포체는 두려움이 자기 자신의 발전을 방해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은 마음의 상처와 같다.”고. 칼에 베인 손을 치료하듯이 두려움도 정성껏 치료해야 한다. 손에 난 상처를 그냥 두면 감염되어 곪지만, 약을 잘 바르면 상처가 깨끗이 아문다. 두려움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정서 에너지’의 70퍼센트를 막연한 두려움으로 소진한다. 만일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정서에 쏟는다면, 마음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나는 처음 그 가르침을 들었을 당시에는 별다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중요하다’는 표지를 달아 마음 깊이 새겨두면 좋은 가르침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나는 린포체의 그 가르침을 되새기다 깨달았다. 나도 그 어려운 길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온 것 같았다. “봐라. 린포체가 그 길을 내게 알려주려고 애썼는데도, 너 혼자 힘으로 알아낸답시고 9개월이나 보내지 않았느냐."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어렵지만 스스로 했기 때문에 훨씬 더 큰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그것은 곧 린포체가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삶의 목적은 주어졌지만, 그는 스스로 그 목적을 확인해야 했다.
또 다른 배움터에서
어느 늦깎이 대학생 - 노동계층에서 지식계층으로
아나는 이민을 왔다고는 하지만 쿠바 상류층 출신이었다. 게다가 대개 계층은 국가보다 훨씬 오랜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 1세대든 2세대든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기술을 익힌 이민은 미국에서도 고국에 있을 때의 계층으로 상승하기가 쉽다. 그렇다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하류층은 어떨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라고 생각할까.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이 문제를 염두에 두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여러 사람들이 그런 전제는 옳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는 사회적 지위나 계층과는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라이온스는 소매상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가족 중에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전기기술을 배우긴 했지만, 꿈이 건축가였던지라 해병대 장학금을 받아 대학교에 입학했다. 편안한 삶을 원했던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전기기술자를 하라고 성화였다. 아이들이 있어서 급작스럽게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결국 그의 첫 번째 결혼은 파경을 맞고 말았다. 최근에 그는 외국어 교사인 영국인 카밀과 결혼했다. 그의 잠재능력을 간파한 카밀은 남편에게 더 많은 꿈을 가지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카밀마저 직장을 잃으면서 그들의 포부는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그가 살던 집마저 압류당해 경매로 넘어 갔다. 스티븐 부부는 마틴 카운티에서도 가난한 동네에 작은 아파트를 얻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지만 건축 공사가 없는 상황에서 전기기술자가 할 일은 없었다. 스티븐은 절망했다. 그러던 차에 도미니칸 대학교의 냉방장치가 낡아 툭 하면 고장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당장 그 대학교 시설관리자를 찾아가 자신에게 그 냉방장치의 수리를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대학 당국이 수리비용으로 50만 달러를 책정해 놓고 업체에 의뢰할 예정이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한 달간 맡겨본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느냐며 스티븐은 간청했다. 자신에게 기회를 준다면 무료로 봉사하겠다고 나섰다.
한 달 뒤 그는 그 대학의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었고, 그후 몇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캠퍼스 시설을 관리했다. 그러다가 학교 직원은 대학등록금을 면제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자신이 늘 바라던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티븐은 야간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틈틈이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으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다져나갔다. 그는 기말 리포트로 ‘태양에너지 개발’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그후로도 태양열 내부집중장치를 개발하는 데 몰두하면서 계획서를 보완해나갔다. 하루 한시도 쉴새없이 일하고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는 낮에는 업무를 계속하면서 태양열 장치 설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문제는 태양열 발전장치의 경제적 이득은 30년 후에나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태양열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경제적 감각이 없다는 뜻이다. 스티븐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경제 논리를 무시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캘리포니아에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스티븐은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신문마다 에너지 위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대체 에너지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날로 높아졌다.
스티븐은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캘리포니아 주 당국에서는 태양열 사업체에 대한 세금 감면과 공제 혜택을 다시 실시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면 자연히 태양열 발전장치의 공사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었다. 만일 자신이 언젠가는 태양열 사업을 할 것이라면 바로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일단 세금 감면 법안이 통과된다면 태양열 사업 시장은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낙관했다. 스티븐은 ‘창조적 구상’을 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허허벌판으로 뛰어들었다.
스티븐은 ‘노동계의 먹이사슬’에서 진화한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7년 만에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블루칼라에서 자신의 소신에 따라 필요한 지식을 취한 다음 마침내 독창적인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하자, 스티븐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단호하게 쏘아 붙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하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오.” “다른 사람들도 당신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에는 한참만에 말문을 열었다.
“나를 역할 모델로 내세울 생각이라면 이 점을 반드시 밝혀두어야 해요. 나는 전기기술자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오. 이혼이라는 아픔도 겪었고, 집도 경매처분 당했었고, 이런저런 시련이 많았소. 그런 것들이 내 인격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인격이 중요한 문제 같아요. 대학생활도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었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해주었소. 창업을 로또복권 당첨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바로 자신이 성공할 확률인 거요. 그렇지 않고 인격 도야에 힘쓴다면, 성공 확률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에너지 재충전이 스티븐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물었다.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정말 큰 활력소는 자기 노동의 산물이 지붕 위에 있다는 것,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전기공이 작업한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숨겨져 있는 게 정상이니까. 그렇지만 태양열 장치는 달라요. 눈에 확 띄죠. 그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뜻밖의 소득인 셈이오. 이것이 네 번째 공사인데, 지붕을 올려다 볼 때마다 내가 한 일이라는 뿌듯함을 느끼거든요.” 그로부터 한 달 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그레이 주지사는 세금 감면제도를 실시하기 위한 기금을 늘렸다. 그리고 다시 한 달 뒤 세금 공제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런 뒤부터 스티븐 사무실에는 의뢰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스티븐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 일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남동생, 아들, 사위에게 도움을 청했고, 직원도 채용했다. 그러나 그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산타로사에 300평 남짓한 땅을 구입하고 주택융자를 받아 그가 꿈에 그리던 자기 집을 지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유혹 대 야망
유혹의 기로 - 하찮은 선택을 했다는 오명 극복하기
당신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선택의 기로에 서 보았는가. 타성에 젖은 자신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선택의 기로에 서는 기회를 몇 번이나 누려보았는가. 많지 않을 것이다. 퍼스트보스턴 은행을 그만둔 나는 내 애인이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 시사잡지사에서 일했다. 당시 나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야간부 문예창작과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그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는 꼬박꼬박 글쓰기 수업에 할애했다.
내 작품은 무난하기는 하지만, 소재 부족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애끓는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단편 몇 편을 보충해 소설집으로 내기도 하고 문예지에도 발표하기는 했지만, 딱히 내세울 것은 없었다. 당시에는 내 발표작이 적은 줄도 몰랐고, 다들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