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칼의 노래
김정일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3장 아름다운 휴머니스트
사랑을 좋아하는 자유인우리 안의 생명력은 감성으로 뭉쳐져 있기에 생명력, 감성, 물은 모두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하겠다. 물은 막힘이 없다. 막으면 고여 있다가 어떻게든 틈이 생기면 비집고 흘러나온다. 물 흐르는 감성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이건 적절하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변화가 빠른 시대에서는 감성적인 적응이 더욱 요구된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감성을 끌어내 쓰는 수밖에 없다.
강금실 장관은 부지런한 감정의 소유자다. 검찰 문제를 다루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빈틈이 없다. 이성은 이성대로, 감성은 감성대로 잘 발달해 있다. 그만큼 깨어 있고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강금실은 '적'까지도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사위 등에서 성실하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여온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이런 강금실의 리더십을 '공감의 리더십'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단칼에 내치지 않고, 개개인의 고층에 귀기울일 줄 아는 강금실 특유의 리더십이 조직을 단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감성에 바탕한 리더십에 있어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적합하다. 생명의 근원은 모성이지, 부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끈끈한 생명력의 발휘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감성은 뿌리 깊은 생명력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커다란 일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낸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해 가는 다음 사회에서 감성의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들은 그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장을 얻게 될 것이다.2004년 한국 사회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 4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고, 오랜 불황에서 탈피해 다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한 사회의 변화의 추동력으로서, 한 사회의 희망을 견인하는 인물로서 강금실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사뭇 크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제2, 제3의 강금실을 찾아가는 데 있다. 신뢰와 원칙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강금실'과의 아름다운 연대를 모색하는 데 있다. 2004년 '올해의 인물'을 통해 수많은 '강금실'이 배출될 수 있다면, 이는 오랫동안 부정부패와 갈등에 휩싸여 있는 한국 사회에 밝은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가 그만큼 변화 성숙했다는 아름다운 증거가 될 것이다.감성의 리더십이 사회의 또 다른 '강금실'을 위하여필자가 생각할 때 강금실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며 상징적으로 '연애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한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처럼, 삶이란 어쩌면 끝끝내 연애가 아니겠는가.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늘 시대의 구석진 한 켠에 자리한 소수자들의 마음 아픈 그늘에 가 닿는다. 그 그늘에서 잠시 머물다 보면 '시대와의 불화'를 열정적으로 건너온 강금실의 향기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시대와 불화한 사람을 사랑하고, 이 땅의 모든 진정성과 아름다운 연애를 즐기는 따뜻하고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또한 강금실은 판단 기준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외부 판단 기준에 매달리지 않는 자세가 곧 대외적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인기의 상승과 하락이 아니라 자기 일의 성공과 실패에 충실한 강금실은 진정 내적 판단 기준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이 사회의 지도자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강금실이 사과를 너무 자주 한다고 지적한다. 그 같은 지적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다시 한번 사과하는 성격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야단을 치면 그저 아무렇지 않게 사과한다. 이것은 곧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상대가 아파하기 때문에 사과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그는 늘 사과를 한다. 그의 사과에는 특유의 여성성도, 고도의 정치적 전략도 깃들어 있지 않다.
또한 강금실은 마음이 맑은 사람을 좋아한다.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면은 그가 '마음'의 빛깔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심안을 통해 진실을 바라보는 풍경이란 얼마나 따뜻한가. 이러한 풍경이 하나하나 모여 향기로운 정부를 이루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강금실의 성격은 그리 평범한 것 같지는 않다. 필자의 눈으로 보면 그의 내향적 성격은 잘 분화 발달되어 있으며 진실을 통해 현실을 헤쳐가려는 감각과 육체의 여성성, 또한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외향성을 '열린 자아'로 받아들이는 등 그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쩐지 낯선,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강금실 장관만큼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은 인물은 없다. 왜 그녀는 대중에게 이토록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강금실이라는 한 자연인이 일반 대중과 맺고 있는 정서적 '관계'에서 찾아 보면, 한 마디로 그녀가 '쿨(cool)'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리에 별로 매달리는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자신은 그 인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바로 이 점이 대중들의 사랑을 꾸준히 유지시키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그녀는 엄숙한 회의장에 보라색 숄을 걸치고 나타나는가 하면, 많은 시선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입니다. 기분 좋은 시작을 위해서 입었을 뿐입니다." 전통적인 시선에 비추어 보면, 분명 강금실의 옷차림은 '바람난'패션이다. '바람났다'는 의미는 곧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뜻한다. 강금실의 바람난 패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것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직장', '종신고용' 등과 결별하고, 자신을 감싸줄 수 있는 보호막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전통과 권위에서 벗어나 점점 자신만의 브랜드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도 집단주의의 보편성 속에 들어 있는 미덕을 포기하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관계 형성, 즉 개인의 의사와 감수성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로서 강금실을 폭넓게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바라보는 시선에 억압되지 않고, 자기 패션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당당함과 솔직함을 맵시 있게 차려 입은 강금실, 그는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찾아 떠나는 바람난 사회의 쿨한 패션 리더다. 강금실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2003년 한국 사회에는 '강금실'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반신반의했다. 그 동안 자신들을 속여온 무수한 사이비 이정표 중 하나는 아닌지, 혹시 또 그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탄식 속에서 등장한 그는 시종일관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맸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함과는 거리가 먼 '솔직함'이었다. 그 동안 이른바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 자처하며 어깨를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던 이정표들은 일제히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강금실'이라는 이정표는 별로 그 같은 시비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어떤 비난이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처럼, 누군가 밝혀놓은 등대 빛처럼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밝혀주며 늘 항상 그 곳에 있는 듯 보였다. 오랫동안 길을 묻기를 포기하고 귀를 막은 채 고개를 돌려 외면했던 사람들이 점점 마음의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며 길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강금실'이라는 이정표가 차기 한국 사회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정치지도자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강요된 힘과 통제에 바탕한 권력이 아닌 진실과 사랑에 입각한 권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권력의 기저에는 국민의 기대와 바람, 그리고 존중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권력이 '희망'의 전위에 있는 사회란, 얼마나 진정 '희망적'인가.우여곡절 끝에 샘과 프로도는 악마의 반지를 태울 수 있는 화산에 다다른다. 절벽 끝에서 프로도는 반지를 들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발밑으로는 시뻘건 용암이 흐르고 있다. 이제 반지를 던지기만 하면 자신의 삶의 무거운 짐을 벗게 된다. 마지막으로 프로도는 반지를 본다. 반지를 보는 그의 얼굴이 점점 검게 변한다. 하인이자 친구인 샘이 소리지른다. "뭐하고 있어? 빨리 반지를 던져." 얼굴에 기묘한 빛이 서린 프로도가 말한다. "던지지 않겠어. 내가 갖겠어." 그러면서 반지를 낀 채 프로도는 사라진다. 투명해진 것이다. 이 때 그들을 따라왔던 골룸이 프로도에게 달려든다. 골룸은 그 반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소 리지르며 투명한 프로도의 반지 낀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골룸은 프로도의 손가락을 끊어 내고 반지를 빼앗아 의기양양하지만 곧 프로도와 뒤엉켜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골룸은 용암 속에서도 반지를 보고 기뻐하나 곧 타죽어버리고 반지 또한 가라앉는다. 프 로도는 용암으로 떨어지지 않고 절벽에 매달려 있다가 샘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 후 그들은 인간과 요정 들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프로도는 인간 세상에 만 족하지 못하고 더 큰 모험을 위해 요정들과 함께 또다시 길을 떠난다.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화두가 권력, 자유, 사랑이라면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화두는 정녕 무엇일까? 필자는 다름 아닌 '변화'라고 생각한다. 변화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고민하고, 이해하고,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친구, 연인, 가정, 직장, 사회생활 등 인생 전반에 걸쳐 그 진정성의 참된 주변을 가꾸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시대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일인자가 되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일인자 그룹에 참여할 수 있어야만 변화의 급물살을 맞이해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일인지가 되기 위해 각축하고 이합집산하는 현대는 이른바 전통적 의미의 칭기즈 칸이 부재하는 새로운 초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생존이 아니라 감정이 주요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평화는 힘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정이, 긍정적인 감정이 보호해 주는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는 무엇보다 먼
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감정 에너지는 자연계의 무수한 변화에 대응해 온 에너지가 저장된 것으로, 이들 에너지를 잘 끌어내어 쓸 수 있다면 변화하는 경쟁 사회에서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다. 지금껏 과학문명과 산업은 인간의 삶을 물질적 충족과 경제적 번영으로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의 자유로운 활성화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유목민이 되어가고 있다. 더 큰 자유, 새로운 모험을 찾는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끓는 피를 가진 젊은이들이 감정의 자유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참여정부를 맞기에 이르렀다. 참여정부는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국민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참여정부는 진정한 자유를 바라는 유목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부지런히 경계를 넘나들며 당당하게 초원을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와 열정의 전위에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자리하고 있다.필자가 볼 때 강금실장관은 노 대통령 못지않게 무의식적인 개인주의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소중히 여기며 순발력이 뛰어나다. 놀이를 즐기며 집단의 눈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나아가 순간 순간 부딪히는 상황에 창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적응시킨다. 강 장관의 솔직한 언행은 여성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성(떠오르는 느낌)의 진실됨과 용감함에 바탕하고 있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은 타고난 모성애를 통해 부드럽고 원만한 국정 운영을 추구한다. 특히 강금실은 사랑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릴지언정 남편, 자식, 돈 등과 같은 그 주변적 요소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다. 무의식적 인간은 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인간은 현실을 넘어서까지 진실한 사랑, 진정성으로 통하는 사랑을 갈구한다.
1980년대 중반 강금실 판사는 5공화국 군사독재에 맞서 시위하다가 붙잡혀온 대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연이어 기각하는 소신을 보였다. 이 또한 집단(정부)보다는 개인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1996년 그는 변호사 개업 후 검찰이 음란물로 기소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저자 장정일의 변론을 맡기도 했는데, 이 또한 집단의 질서를 지켜주는 성적 억압보다는 개인의 본성을 좀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세계는 집단의 억압에서 풀려난 개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능력의 각축장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아직은 변화와 재편의 와중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환경은 집단주의에 익숙하다. 사람들이 강금실의 돌발적인 행보에 대해 당혹해하는 것은 어쩌면 이 같은 사회 흐름에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금실이 국회의원들과의 회의석상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고집하지 않음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진실을 발견하거나, 진실된 점을 발견하면 즉각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순발력 있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또한 깊은 잠재적 생명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진실'외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진실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진실도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에 바탕한 모든 질서는 적절하게 자리를 잡고, 점점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필자는 강금실 장관이 역사상 가장 유쾌한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인 인간은 공직사회 같은 경직된 집단에 들어가 적응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세대 간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강금실 장관 또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내부 평가에서는 다소 그 이해가 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의식적 인간에 대한 진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무의식의 에너지가 현실, 특히 집단의 수장으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는 한 가지로 굳어진 의식적 리더보다는 다양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무의식적 리더를 필요로 한다. 또한 하이테크놀로지가 많은 일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 지도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의식척 측면들은, 많은 부분 그 보완이 가능하다. 강금실은 문제 해결에 있어 원칙보다는 일반 여론이나 다양한 역학관계를 감안하는 탄력적인 입장을 취한다. 근본적으로는 법치주의에 입각해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서가 살아 숨쉬는 정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칭기즈 칸이 될 수도 있다. 신인류로서의 칭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