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김은성·노유미 지음 | 뿌리와이파리
"꿈은 단지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 - 외국인 노동자 모피스 씨모피스 씨는 무려 6년씩이나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돈을 벌기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온 모피스 씨(25)는 인천의 한 공단에서 금속 도금 일을 하고 있다. "자주 전화하고 싶은데 전화비가 비싸서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해요. 편지라도 자주 써야 하는데 일하고 나면 피곤해서 그것도 쉽지가 않네요." 한 달에 15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 모피스 씨는, 130만 원을 고스란히 가족에게 보낸다. "고향의 평균 임금은 고작 20∼30만 원밖에 안 돼요. … 비록 제가 고생하고는 있지만 고향의 가족들이 행복하면 그것처럼 좋은 게 있나요?"
꿈 많은 나이 열아홉. '의과대학생'이었던 그는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에 왔다."며 그는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어한다.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모피스 씨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며, 쉬는 날이면 동료들과 축구를 한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회상하며 뿌듯해한다.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의 4강 진출에 자부심을 느낀다.
"전 정말 좋은 한국 사람만 만났어요. 단 한 번도 나쁜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 방글라데시에도 나쁜 사람은 있어요.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항상 같이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제가 먼저 타인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저에게 '부'를 안겨준 한국이 좋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죠!" 어수룩한 한국말이지만 그 속엔 모피스 씨의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모피스 씨의 꿈은 소박하다. 가족을 꼭 한 번 만나고 싶고, 앞으로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계속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싶어한다. 그의 '코리안 드림'이 천천히 여물고 있다. 모피스 씨는 당당히 그의 능력과 노력으로 '새벽'을 열었다. 다음에 언젠가 그를 만나면 "꿈은 단지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라는 말을 꼭 듣고 싶다.전미영 간호사(26)는 응급실에서 일한 지 벌써 햇수로 5년째다. "응급실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돼요. 죽음에 대해서 무덤덤해지거든요. 저도 처음엔 죽은 환자들을 보면 보호자 분이랑 같이 울었어요. 근데 그러다 선배들한테 혼났어요.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니까 이성을 지켜야 한다고요. 별의별 환자가 많아요. 술 먹고 싸우다 오신 분들은 욕도 하고, 거칠게 함부로 말씀하시거든요."
응급실엔 금기 아닌 금기가 있다. 환자가 없어 한가하단 말을 해선 안 된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그 말을 한 후엔 꼭 환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지없이 누군가의 한가하단 말에 환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오늘은 환자가 적은 편. 보통 적게는 열 명부터 많게는 스무 명의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는다.
그녀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이다. 지금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독립을 꿈꿨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9년. 드디어 독립했다. 그러나 서울 살이가 만만치 않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집 생각이 간절하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가씨!" 누워 있던 어느 환자가 간호사를 불렀다.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요. 그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심지어는 '어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어요. 반말하는 사람들도 진짜 많고요."
"직업병요? 특별한 건 없어요. 하루 종일 서 있으니까 다리는 튼튼해요." 말로는 튼튼한 다리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그만 얼굴에 마른 몸. 제 시간에 끼니를 챙겨먹기가 어렵다. 시간이 없어 하루에 한 끼 먹기도 바쁘다. 또 한 달에 여덟 번 정도는 밤샘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 그녀에게 밥 시간이 일정할 리가 없다.
그녀에게 환자는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주위에 있는 동료 간호사들과 의사를 쳐다보며 "질문이 너무 어려워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선생님! 선생님은 환자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예요?" "필요충분조건이지." "모르죠. 아직은 알아가는 단계잖아요." "두려운 존재죠. 저 환자가 어디가 아플까?"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응급 구조사가 각기 다른 답을 내놓았다. 모두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그녀. 잠시 후 말한다. "왜 살아요랑 똑같은 질문 같은데요?"사시 2차 백 일 전,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는 스트레스에 초조할 법도 한데 고시생 곽경화 씨(21)는 그저 담담했다. 세상의 모든 걸 다 공부하고 싶은지 뭐 하나 대충 넘어가는 게 없다. 기도할 때를 빼고는 좀처럼 손에서 펜이 떠나지 않는다.
대구에서 올라온 곽씨는 신창원을 변호했던 엄상익 변호사를 닮고 싶다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그의 불안은 까마득한 미래도 시험 결과도 아니다. 곽씨는 그간 공부만 해왔던 터라 자신이 아는 세상이 좁다는 데 불안해했다. 소위 책을 먹어도 시원찮을 시기건만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른 인생에 호기심이 더 많았다. 구수한 사투리로 말을 잇는 그녀는 자기 얘기보다 타인의 얘기에 더 정성스레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있었다. 그녀의 귀는 좋은 변호사의 자질을 가졌다. 가감 없이 열려 있는, 오염되지 않은 좋은 귀.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시작되려 한다. 사는 거 참 심심할 수도 있겠네. 이렇다 할 취미도 없고 공부말고는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그래도 사는 게 재미있을까? 재미? 글쎄. 확고한 목표가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삶에 뚜렷한 구심점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녀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람 - 동서울 우편 집중국 발착계 주임 이학봉 씨"비 오고 눈 오면 가슴부터 두근두근거려요." - 기상청 총괄예보관 최치영 씨"정이 드는데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더라고…." - 서울대공원 인공포육장 사육사 한효동 씨"오늘도 철책의 아침은 밝아옵니다." - 육군 무적 부대 바위 중대밤 1시. 동서울 우편집중국의 발착계가 환한 빛을 발한다. 발착계는 우편물의 도착과 발송을 담당하는 곳. 오늘도 전국 각지의 우편물이 주인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오늘 밤 그들의 손길에 닿으면 내일 누군가가 기뻐할 것이다. 강동구, 광진구, 광화문, 동대문구, 성동구, 송파구, 하남시의 우편물을 담당하는 동서울 우편 집중국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4시간 풀 가동. 우편물을 분류하는 기계는 청소를 하기 위해 하루에 단 한 번 멈출 뿐이다.
발착계 이학봉 주임(52)은 우체국 업무를 한 지 32년째다. 정년 퇴임을 5년 앞둔 그는 이제 24시간 근무가 익숙하다. 새벽 4시가 훨씬 넘은 시간. 먼 길을 가야 하는 우편물이 차에 실린다. 모두 제주도로 향할 것들이다. 6시까지 작업한 우편물은 아침 7시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편물은 8시쯤 제주도에 도착해 9시까지 각 우체국으로 보내진다. 마지막으로 집배원의 손길을 거쳐 주인의 품에 안긴다.
"일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면 30년 동안 못했을 거예요.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니까. 지금까지 어려움 없이 지내온 것 같아요." 청주집에서 출퇴근하며 24시간 근무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에도 그는 별 문제 없다고 말한다.
발착계는 몇 백 킬로그램이 넘는 우편물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힘이 필요하다. 배기문 씨(25)는 제대한 지 3일 만에 시작한 이 일이 벌써 1년 반째다. 9월 복학을 앞두고 남은 세 학기 등록금은 충분히 모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 요즘, 우편량이 줄었겠다 싶었지만 오히려 증가했단다. 전에 없던 각종 고지서와 청구서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고지서랑 청구서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은 넘어요. 요즘은 통신에 관한 고지서가 많아요. 인터넷 사용자도 많고, 휴대폰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리고 카드 고지서도 많아요. 예전에 느꼈던 그런 정감이 없죠. 왜 그땐 편지 하나 받으려고 하루 종일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리곤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난리 나요. 늦게 도착했다고. 당장 민원 들어오죠." 역시 30년 넘게 일해온 김영수 씨는 "정말 마음을 담은 편지는 30년 전에 비해 5분의 1로 줄어든 것 같다."며, "그래도 군대로 오가는 편지의 양은 여전한 것 같다."고 말한다.
"연말연시에는 연하장이다 뭐다 해서 정신없고, 2, 3월이면 무슨 데이라고 있잖아요. 초콜릿도 보내고 사탕도 보내는 거요. 가을엔 추석 있죠. 또 추수감사절이라고 있어요. 그리고 가을걷이 때 시골에서 부모들이 자식 준다고 온갖 곡물들을 보내요. 1년이 그렇게 지나가는 거예요. 사람들은 우체국 하면 집배원만 알지 우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잘 몰라요. 보통 사람들이 알겠어요?"
점점 빠르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섭섭할 때도 아쉬울 때도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그는 안다. 단지 편지 한 통이 주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저는 비 오고 눈 오면 가슴부터 두근두근거려요.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제 일이니까요. 어서 회사에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부터 들죠." 기상청 예보실의 총괄예보관 최치영 씨(48)는 근무를 시작한 후 언제나 첫눈 오는 설렘보다 적설량을 먼저 생각한다.
예보실은 4교대로 근무한다. 오늘은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기에 밤 9시 30분에 출근했다. 순수 예보관 다섯 명, 위성과 지진 담당 한 명씩, 이렇게 일곱 명이 한 조를 이룬다. 그는 총괄예보관으로서 전국의 상황을 담당한다. 기상청에서 근무한 지 정확히 15년 6개월. 예보 업무 경력 6년째다. "예전에는 비 오고 눈 오고 바람 부니 조심해라 식이었지만, 요즘은 주5일 근무잖아요. 레저 스포츠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경쟁력이 부족하죠."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기 쉬운 한 가지가 있다. "사람들은 강수 확률 30퍼센트. 이러면 비 올 확률이 30퍼센트인 줄 알고 있는데 사실 그것과는 약간 달라요. 서울은 송월동이 기준이 되는데요. 그곳에서 같은 상황과 조건으로 백 번 관측했더니 서른 번 비가 왔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통계 수치가 되는 거죠."
"저도 처음엔 족집게처럼 딱 맞추는 게 예보를 잘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어디가 맞고 안 맞고는 오차가 생기면 완전히 틀려버리는 거잖아요. 전체적인 흐름을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로 자기가 낸 예보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예보관에겐 수십 개의 자료를 머리에 넣고 그것을 잘 풀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힘든 건 딱 하나. 야근이 힘들어요. 여기 들어올 때 점심 먹고 자고 들어와요. 이게 몇 번은 괜찮은데 계속 아침에 집에 들어가니까 동네에서 처음엔 절 실직자로 봤다니까요." 1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 야근. 예보실에선 누구 하나라도 병가를 내면 똑같은 직급의 사람이 반드시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오전 3시 20분. 전국 다섯 개 지방청을 연결한 화상회의가 시작된다. 5시에 나갈 예보를 위해 전국의 상황을 종합하는 것이다. 그가 먼저 대략적인 상황을 브리핑한 뒤 제주, 광주, 대전, 강원, 부산 순으로 각 지방청에서 상황을 전한다.
예보실에서는 민원을 위한 예보 상담반을 운영하고 있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문의와 항의 전화를 위해서다. 현재 중국의 기온이 몇 도인지 친구와 내기를 했다는 사람, 방학숙제 때문에 전화를 건 꼬마, 자신은 도사라며 언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항의 전화 또한 엄청나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항의 듣는 일에 대해 담담하다. "우린 잘해야 본전이에요. 맞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니까요. … 국민들은 결과만 놓고 평가하시지 저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예보를 하는지 잘 모르니까요."
새벽 5시가 되자 언론매체를 비롯해 전국에서 기상예보가 필요한 70여 군데에 오늘 하루 일한 결과물인 기상예보 자료가 동시에 보내진다. 이제 6시 아침 방송을 통해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저희가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기상청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됐으면 좋겠어요.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예보의 정확성이 85∼88퍼센트거든요."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대공원 자연학습연구실 인공포육장. 인공포육장의 문을 열자 헐레벌떡 뛰어와 사람에게 안기는 다섯 살배기 강아지 뽀삐와 동물원의 아버지 한효동 사육사(48)가 나를 맞이했다. 지난 밤 수달이 아파 3시 30분에야 간신히 잠이 든 한씨는 오늘도 두 시간의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한 채 커피 한 잔으로 밀려드는 잠을 쫓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수달이 밤새 아픈 것도 모자라 새벽이 찾아와도 분유를 먹지 않자 한씨가 식염수를 먹인다.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이 수달은 요즘 소화기관이 안 좋아 설사를 하며 계속 탈수 증상을 보인다.
"어린 동물은 아기와 똑같아.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니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 잠? 대중없지. 아기 낳으면 한동안 부모들도 밤잠 설치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70∼80퍼센트의 습도 유지, 분유 먹이는 각도는 45도, 영양분이 활성화될 수 있는 60도의 적정 온도 유지 등 어린 동물을 보살피는 건 사람의 아기를 보살피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동물마다 먹이는 분유의 양과 시간, 농도 등이 제각각이라 꼼꼼히 기억하고 챙겨야 한다.
야간 근무를 했다고 다음날 쉬는 것도 아니다. 오후 4∼5시에 퇴근하고 내일이 오면 다른 이와 똑같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정부에선 사육사를 늘리지 않으니 일손이 모자라고 그와 오랜 시간 정이 든 어린 동물들은 한순간이라도 그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어떻게 사육사가 되셨어요?" "먹고 살려고 했지. (웃음) 동물 사랑은 무슨 얼어죽을 사랑 타령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동물들 앞에만 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돌변한다. "하다 보니깐 자꾸 정이 드는데, 나도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더라고. 오래 전 인공사육장이 없었을 때 어린 새끼가 태어나고 죽었던 일화가 있었어. 조금만 사람이 보살펴주면 살 수도 있었는데…." 어느새 경력 18년차인 한씨는 1984년에 개원한 동물원과 함께 서울대공원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직업을 택한 거라면, 사육사는 너무 고되고 비효율적인 직업이 아닐까? 동물의 분뇨와 땀이 밴 작업복을 입고 24시간 대기하며 남이 안 보는 곳에서 휴일도 없이 일하니 말이다. 뒤늦게 그는 짧고 굵게 "좋으니깐 하지."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무심히 던진다.
"더러 몇몇 사람들은 아직도 사육사를 동물 똥만 치우는 사람 혹은 천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 동물을 오래 돌보고 있으면 우리는 거의 수의사가 다 돼. 약 처방은 기본이고, 동물의 변만 봐도 아픈지 건강한지를 체크할 수 있어. … 다양한 동물을 돌보며 자연스레 쌓는 현장의 경험과 지혜를 쉬이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다른 이들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우리도 존중받았으면 해.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더 인정받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야 되겠지. 열심히 해야 당당히 말할 수도 있는 거니깐."
그가 강조하는 동물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종의 보존'이다. 동물들의 근친상간을 막고 종을 보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