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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

피에르 쌍소 지음 | 동문선
두 존재를 구분하고자 한다. 한 부류는 천성이 정겨운 이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만남 같은 사건을 계기로 정겨운 행동을 하게 되는 이들이다. 천성이 정겨운 이들은 어떤 경우 정겹게 행동해야지 하는 선택 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인류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로서, 일단 사회적인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정한 다음 그것의 성취를 위해 인간을 약하게 하는 성정들, 그러니까 정겨움을 희생한 부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커플은 그들의 정겨움을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사랑을 존속시킨다. 만난 해의 열병 같은 사랑이 식은 자리 위로 시간의 익숙함이 자리잡고, 각자 새로운 위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어떻게 애정을 분할해야 하는지 배우기 시작한다. 한쪽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다른 한쪽은 자녀들에게, 또 부모에게,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부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정겨움은 그 존재와 동질의 것이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었다. 관대함은 긍정적인 행동의 조류를 타고 표출되는 미덕인 반면, 정겨움은 인간의 존재 양식 또는 사물을 느끼는 방법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비록 정겨움이 모든 다른 이들처럼 행동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행동에 옮기는 것은 근본적인 선택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선택을 넘어서는 행위로부터 유래한다. 무엇보다도 정겨움은 남을 해치지 않고, 감탄하고, 온순한, 감동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는 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사랑하는 것에는 두 가지 상반된 방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하나는 관대함으로 보다 대담하고 격앙된 표현 방식이며, 장기간이나 단기간에 다 적응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보다 조용한 표현 방식인 정겨움으로 작고 가벼운 표시 속에서 행복을 길어낼 수 있는 보다 명상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다. 그 둘을 합한 사랑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유혹은 그저 그럴듯한 허세에 불과한가남녀가 서로 끌리는 것, 그 이론과 실체조건부 휴전 협정나는 증오한다나는 참 좋은 시골 학교에 다녔다. 교실에 들어갈 때면 모두들 공손히 모자를 벗었고,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노파들이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는 선뜻 도와 주었다. 늦게나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의 추모비 앞에 경건히 모자를 벗어들고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야깃거리가 언제나 풍부하였고, 인류에 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환상을 심어 준 것으로 존경받아 마땅했던 사람은 단연 오렐리앙 삼촌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것이 본디 심성은 착하거든. 그러니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빌뇌브-쉬르-로에서 보낸 나의 중학교 기숙사 시절은 삼촌의 신념이 옳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인류는 두 부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서툴게 타인의 관심을 끌려 안간힘을 쓰면서 모범생인 척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주장을 억지로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 부류들이다. 한 패의 모범생인 척하는 패거리들이 우리 중학교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역겨움과 냉소주의 속에서 나를 구해 준 두 인물이 있었으니, 한 분은 문학 담당 선생님이었던 클로드 보드뱅이었다. 그의 열정적이고 풍부한 뉘앙스가 풍기는 강의 덕택에 나는 위대한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단지 당시 세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의 방이 수도사의 그것처럼 지극히 소박했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그를 '엄격주의 얀센파교도' 취급했다. 요행히도 이 시절 또 한 분의 은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마드무아젤 비늬리라는 당시 퇴직 유치원 교사였는데, 빌뇌브-쉬르-로에서의 나의 편지 친구였다. 사실 이 편지 친구라는 말은 지금은 사라진 아주 매력적인 말이다. 그녀는 내가 질문하면 주로 대답을 해주는 편이었고, 우리는 서로 규칙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람 좋은 육십대 여인으로 말수는 매우 적었지만, 나의 변화무쌍한 유머 감각을 감지했다. 방학 동안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은 덕에 나는 엄청난 양의 장서와, 어린 시골뜨기의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인 기이한 물건들이 가득한 그 집에서 얼마간 머물 수 있었다. 소박하고 경건한 삶의 교훈을 내가 충분히 음미했는지는 모르겠다. 구태여 유혹하지 않는데도 마음을 끄는 것, 언제나 무대의 전면을 차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 것, 온갖 종류의 예의와 세심한 배려와 같은 인간 관계들을 조화시키는 것 등을 말이다. 인간은 근본이 야만스럽지 않은 모양이다.내가 꼬인 거의 모든 여자들은 충분히 연기해 버리거나 빠져나갈 수 있는 나의 초대에 응했다. 그러다가 나를 버릴 시기가 오면, 거짓인지 진실인지 몰라도 지금껏 나처럼 애정이 가는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내가 사슬로 얽어매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유를 되찾고 싶다고 한다. 이처럼 신속한 절교 선언에 대비할 그 어떤 종류의 신호(언쟁, 권태)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녀들에게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들은 권태로운 삶을 못 견뎌 했다. 한 가닥의 자존심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러한 현상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에는 어른이건 아이이건 할 것 없이 덧없는 것만을 추구한다.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다가도 언제 그랬느냐 싶게 원위치로 되돌아선다. 이런 식으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은 영원하다는 호언장담을 거부한다. 그러니 나 역시 이런 식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는가.사실, 나는 재빨리 포기했다. 다른 노인들이 어린 시절로 퇴행하는 데 반해, 나는 조숙하게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의 여주인공 중 한 명과 정숙하게 길을 함께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녀들이 사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싫어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기 위해 나는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 유산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나는 수월하게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떤 여학생들은 그저 장난으로 나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그 어여쁜 소녀들은 나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학생 하나가 라신이나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시를 암송하는 것(텍스트의 쉼표를 건너뛰는 실수)만으로 나는 환상에 의식을 양보하고, 저 잃어버린 세기의 넓은 품을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흐릿하게 행동한 내 잘못이 크다. 현재의 내 여자친구는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기분 좋게 절교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처지에서는 거북한 만남을 어떻게든 피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서로 협상을 하기로 했다. 중요한 일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각자가 다니는 공간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타협은 쉽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이 맺은 관계가 단절될 때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두뇌는 옛날 여자 친구들을 아틀라스 지도책처럼 초록색·노란색·파란색으로 분류하느라 정신없이 회전했다. 이 공간과의 싸움을 그저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 생각해도 좋았겠지만, 나는 이내 이 놀음에 지쳐 버렸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샅샅이 훑고 다니던 그 소중한 파리가 금지 구역이 된 셈이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연애가 끝나면 예전에는 막대하던 내 영토의 마지노선까지 무너질 지경이었다. 이제 수도를 버리고 마르세유나 리옹에 가서 개과천선하여 조신한, 아주 조신한 새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삶이 내게 대체 무엇을 바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멋진 동반자로 유랑했다. 때로는 헤어지자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지만, 나는 한번도 삶과 떨어져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된 일이다. 그래서 급기야는 삶이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들 중 가장 최악의 일이자 반항하는 어린아이보다도 더 다루기 힘들고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는 삶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한다. 삶을 유혹하려 하지도 않겠다. 그래서 내가 삶을 잊을 수 있도록 온갖 종류의 선행으로 이루어진 리스트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숙녀들 앞에서 빙빙 원을 그려 가며 춤추는 것보다 훨씬 고상하고 확실한 다른 종류의 일들을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고독하고 절망에 잠긴 환자들을 방문하고, 나의 사랑하는 모국어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애쓰는 사람들 편에 서서 투쟁하고, 의처증의 횡포가 미치지 못하도록 남편을 피해 도망쳐 나온 여자를 위해 우리 집 문을 열어 주고, 맹인들이 길을 건널 때 도와 주고, 우체국 창구에서 기다리는 나처럼 나이 든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세상 천지에 돌봐 줄 이 없는 고아처럼 슬픔에 잠겨 있는 아이들의 찌푸린 얼굴을 향해 밝게 웃어 주고, 불법 체류자들의 서류 준비를 도와 주고, 판잣집에 사는 이들에게 집을 알선해 주고, 학업이 부진하고 반항적인 아이들에게 역사와 삼각법의 매력을 보여주는 등 신 혼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들 말이다.신은 유혹자가 아니다내가 그녀들에게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니그저 괜찮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미소를 퍼뜨리는 사람내 자신 그대로를 드러내는 위험마저도 감수하리라유혹하는 것과 유혹 당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것, 주목하는 것과 주목받는 것이 왜 이리 혼동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시선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한 여인에게 가 닿을 때 그녀의 육체는 그저 평범한 동요가 아닌 거의 현실을 벗어난 듯한 떨림과 혼란에 사로잡힌다. 사랑이 가득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시선은 일단 목적을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같은 에너지로 되돌려지게 마련이다. 물론 왔던 에너지에 이중의 가속도가 붙어서 말이다. 이 왕복 운동은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곧이어 두 사람은 욕망을 억제할 길, 그러니까 서로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될 숙명에 놓인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누가 유혹을 했고, 누가 유혹 당하였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큰코다친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앙리에뜨라는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나의 욕망하는 에너지가 덧없는 사랑에 잠시 머물다가 잦아들고 만 것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이런 사랑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애당초 알았어야 했다. 신속하지만 멋있게 끝나는 사랑 말이다). 이제 나는 나의 이론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관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해서 그것이 항상 매혹과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을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에너지의 목표가 어긋났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중에 다른 곳으로 새어 버렸던지, 한참 왕복 운동을 하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았던지 하여 애초의 에너지가 눈부신 목표 지점에까지 가 닿는 데 필연적인 기력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 원리들을 설명한 선험적 물리학 저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만사에 삼가고, 일시적이나마 초현실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증오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사고를 어떤 결정된 한 대상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런 식의 강박관념은 우리를 흘러가는 세상의 무한한 아름다움으로부터 비켜 가도록 한다. 나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움이 생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정당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을 내 역정의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마음속 깊이 증오를 간직하고 있었다. 타인들이 애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는 증오를 키워 나갔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남들의 고통으로부터 기쁨을 길어오지는 않았지만, 무슨 수를 쓰던지 그들의 행복에 훼방을 놓아야만 했기 때문에 이 불순한 욕구를 채울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사실 나는 사람을 끌 줄 알았으니, 이제 나의 희생양이 될 여자들을 유혹할 차례였다. 처음에 온갖 친절과 주의를 기울여 호감을 사고, 상대편에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리 우리는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사인을 보내고 난 다음 결정적인 치명타와 불쾌할 만한 지적, 냉전의 순간을 만들었다. 여자들이 나약할수록 내게는 훨씬 편했다. 만일 그녀가 잔뜩 화가 나서 나를 지옥 불에 던지던가, 그저 잠깐 불쾌해하고는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살아간다면 내 시나리오는 빛을 못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퇴폐성을 확인시켜 줄 또 다른 두 종류의 기쁨을 나는 마음껏 누렸다. 또 나는 호의적이고 딸의 행복에 집착하는 부모를 가진 여자들을 선호하였는데, 사실 내가 망쳐 놓고 싶었던 것은 딸의 행복보다는 그 부모의 행복이었다. 또 다른 기쁨은 아주 능수 능란하게 다음의 두 역할을 연기해 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었다. 하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유혹자의 역할로 가장 섬세한 여자들까지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야비한 사기꾼의 모습이다. 나는 정말로 재능 있는 배우였다. 내 안의 증오도 그것이 생겼을 때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사그라졌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행복하기나 했겠는가? 그때부터 나는 타인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는 그의 운명을 망쳐 놓기 위해 타인을 유혹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마도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정을 한번 세워 보려고 한다. 사실 증오는 사랑만큼이나 우리의 정력을 소진하는 에너지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놀음에 지쳐 버렸다. 지금의 나는 끔찍한 과거 때문에 벌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어린 시절을 거쳐 청년기로 접어드는 동안, 나는 때로는 무시무시한 여호와의 말씀(구약성서)보다 복음서(신약성서)의 경건하고 온화한 이미지에 더 끌렸다. 그래서 나도 열두 명의 친구들(제자들) 그룹에 합류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들일지라도 모두 종말이라는 것이 있고, 아무런 위험도 없이 신의 아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종교는 은총과 헌신, 그리고 유혹이라는 물에 젖어 있었다. 신은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사람들에게 그토록 은총을 베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얼마든지 권위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일방적인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모두들 신에 대한 믿음과 감동에 젖어드는 것이다. 성화나 신비주의적인 글, 깨달음을 얻은 이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나는 아득한 현기증까지 느끼며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종교적인 삶은 이른바 피정묵상(避靜默想)이라고 하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잠시나마 휴식기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뭐 사막이나 세상의 가장자리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떠나지는 않았지만 일상은 다른 리듬으로 흘러갔다. 사제들은 우리가 성경 말씀에 전적으로 집중하기를 원하였으므로 수업도 자습도 없었다. 나와 신과의 동거는 매주의 고백성사 시간만 없었다면 틀림없이 훨씬 기분 좋은 방식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에게 정당한 이미지를 보여 주고,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그의 긍휼심을 자극하고 나서야 몸을 빼낼 수가 있었다.



나는 미사(성체 예식)를 생각할 때마다 고해실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고해실의 격자창이 메마른 소리를 내며 올라가면,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저편 철망 사이로 다른 속죄자의 실루엣을 엿보는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자세하게 이 광경을 설명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이 무시무시한 재판정에서 떨어지는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느껴 보라는 의미에서다. 이것은 학위나 자동차, 보물, 지상의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천국과 천상지복이 걸린 문제이다. 가끔 다른 속죄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간에 지은 죄를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기도 하고,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준비하기도 했다.



마음을 사로잡는 일, 환심을 사려는 행위는 대부분 희롱이나 우아한 몸짓, 뇌쇄적인 미소 등과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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