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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

피에르 쌍소 지음 | 동문선
가면무도회



나는 언제나 몽상가였다. 그것도 아주 못 말리는 몽상가 말이다. 물론 이 습관 때문에 생긴 성가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가 강의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단정짓고, 내 시험 답안지도 형편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렇지만 몽상의 능력은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한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도리 없이 겪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일들을 견뎌내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내 전공과 직업은 삶을 자유로이 영위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내게는 여자를 꼬시는 일이 스포츠 경기나 시시한 일상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면서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화가 어떤 것이건 그 내용은 나 자신과 닮아 있고, 나의 진실을 드러내 준다.

유혹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지 않기'처럼 '유혹하지 않기'라는 부분에 중점을 두면서 그 몇몇의 얼굴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사실 유혹에 작별을 고한 뒤라야 세상의 잔인한 얼굴과도 작별을 고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한 친구와 파리를 여행하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사라졌으며(가정에 안주하였다), 그 도시는 더 이상 예전의 파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것을 실제 경험하느니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는 결론이 났다. 그리하여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기는 유혹자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어 사랑하는 삶을 택했다. 이 세상은 수천의 얼굴로, 풍성한 녹음으로, 그 별들로 한껏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한참이나 엉뚱한 길을 헤맨 끝에 진리의 한 형식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벌써 대단한 일이다. 구태여 커다란 승리나 대단한 성취·성공을 바라지 않고, 그저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소리 없이 미소를 퍼뜨리며 만나는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면 그쪽에서도 기분 좋은 관심으로 응답할 것이고, 그러는 사이 주변은 환해질 터이다. 정겨움을 몸소 실천하는 것은 결코 사람이 흐물흐물하다거나 줏대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향권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의 곁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제 여러분에게 떠도는 존재의 여정, 섬세함과 행운을 약속하는 존재의 여정을 제안하겠다. 다시 말해 거부에서 시작해 합의에 이르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여정을 말이다.

거부



나는 지금껏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내가 몸담고 있던 지난 일에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제대로 치러야 한다고 믿었었다. 그것은 언젠가는 끝을 보아야 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좀처럼 진전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너무도 빨리 삶의 기쁨과 집착으로 위안을 받는 이들을 나는 원망했다. 인간 존재가 이처럼 배반의 대가로만 성취되는 존재라면, 우리들 모두 한낱 일회용품 같은 개개인에 불과하다면, 한 인생의 성공이 그의 친구들과 애인들의 숫자로만 가늠된다면 그런 인생에 대해서는 아예 성찰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상의 난폭한 병사로부터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들 자신으로부터, 즉 운명이 그들에게 부여한 역할을 벗어나 그것을 배반하고자 하는 자신의 유혹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려 한 것이다.

분노는 내게 유익한 것이다. 이 끊임없는 투쟁이 나의 슬픔과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부터 눈을 돌리게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점차 나의 동시대인들과 으르렁거리는 일을 멈추고, 내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본다. 또 다른 인간 유형을 보자. 그는 우리의 분노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 살고 있다. 신은 가엾은 피조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의 비참을 보고서 비애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적어도 그들은 신과의 영적인 교류에만 만족하며 세상의 부름에는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사랑이 상호간의 존경과 공통된 취미, 환희의 순간, 멋진 깨달음과 긴 저녁 나절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당신들의 사랑의 가치 자체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어느 날 단조로운 일상과 계절의 사이클로 다시 돌아갈 때, 당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빼앗고 껍질만 남길 신비롭고도 이상한 타인의 존재가 살금살금 당신에게 다가간 적이 한번도 없었는가. 내게 있어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순한 포기보다 한 층 더한 것. 그것은 차라리 거부인 것이다.

불행한 유혹의 종말



나도 대부분의 내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주어진 기회들을 증식시키면서 쉽게 여자들을 꼬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남이 내겐 도무지 낭만적이지도 않고, 기회주의자적인 선택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위험을 감행하고자 했다. 사실 내게는 위험이 없는 유혹은 전혀 무의미하였고, 나에게 유혹의 가치는 그에 따르는 위험에 비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유혹만 하려 했던 것인가? 사실 탐미주의자 행세를 하였을 뿐 우연히 만나거나 그 뒤를 쫓은 이러이러한 여자와 진정으로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지는 않았다. 내가 끌렸던 것은 그녀가 나를 배제한 움직임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움직임과 손짓·발걸음·태도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댄서들이나 자신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그 자유를 말이다.

때로는 내가 직접 겪고 있는 연애 사건이 완전히 어긋난 경우도 있다. 나는 나의 명예를 건 비장한 연애에 빠졌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영혼은 마치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뛰어다니는 새처럼, 아니 그보다는 어느 박식한 노인이 자신의 기억과 현재의 사유로부터 솟아올라 흩어진 모든 단상들의 한쪽 끝을 저쪽 끝에 연결하듯 온갖 구속에서 벗어나 방황하였던 것이다. 지나가는 여자들에게서 익명성이 아닌 친숙함을 느끼는 순간 나는 유혹을 포기했다. 거대한 희망에 온몸을 내던지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절망을 견뎌내는 내 능력도 쇠퇴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숭고하지만 예리한 몇 줄기의 섬광 때문에 내 생명을 내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매일 매일의 내 삶을 영원과 같은 선상에 두려 한다.

여자들의 명랑함은 나를 무력하게 한다



현재 명랑함에 대하여 생각 중이다. 분명 괜찮은 장점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내 패배의 원인이 되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유혹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몇 달째 어떤 명랑한 여자에게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명랑함은 은밀한 미소이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것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이다. 게다가 분명히 기분 나쁜 일이었을 텐데도 그토록 좋은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지 그녀들이 기막히게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혹시 내게 어느 정도는 무관심하지 않은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명랑한 여자들하고만 만나 사랑하고 싶다.

내 첫사랑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



사실, 나는 재빨리 포기했다. 다른 노인들이 어린 시절로 퇴행하는 데 반해, 나는 조숙하게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의 여주인공 중 한 명과 정숙하게 길을 함께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녀들이 사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싫어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기 위해 나는 고전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 유산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나는 수월하게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떤 여학생들은 그저 장난으로 나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그 어여쁜 소녀들은 나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학생 하나가 라신이나 제라르 드 네르발의 시를 암송하는 것(텍스트의 쉼표를 건너뛰는 실수)만으로 나는 환상에 의식을 양보하고, 저 잃어버린 세기의 넓은 품을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남녀가 서로 끌리는 것, 그 이론과 실체



유혹하는 것과 유혹 당하는 것,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것, 주목하는 것과 주목받는 것이 왜 이리 혼동되는지 모르겠다. 나의 시선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한 여인에게 가 닿을 때 그녀의 육체는 그저 평범한 동요가 아닌 거의 현실을 벗어난 듯한 떨림과 혼란에 사로잡힌다. 사랑이 가득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시선은 일단 목적을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같은 에너지로 되돌려지게 마련이다. 물론 왔던 에너지에 이중의 가속도가 붙어서 말이다. 이 왕복 운동은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곧이어 두 사람은 욕망을 억제할 길, 그러니까 서로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될 숙명에 놓인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누가 유혹을 했고, 누가 유혹 당하였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큰코다친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앙리에뜨라는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나의 욕망하는 에너지가 덧없는 사랑에 잠시 머물다가 잦아들고 만 것에 고소를 금치 못했다(이런 사랑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애당초 알았어야 했다. 신속하지만 멋있게 끝나는 사랑 말이다). 이제 나는 나의 이론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관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해서 그것이 항상 매혹과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을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에너지의 목표가 어긋났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도중에 다른 곳으로 새어 버렸던지, 한참 왕복 운동을 하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았던지 하여 애초의 에너지가 눈부신 목표 지점에까지 가 닿는 데 필연적인 기력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이 원리들을 설명한 선험적 물리학 저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만사에 삼가고, 일시적이나마 초현실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상상력이 고갈되다니



나는 지금껏 여성들을 바라보거나 말을 건네거나 칭찬을 하거나 만나 달라고 매달릴 때 특정한 방법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내 수법은 너무 뻔한 데다가 지금껏 중요한 부분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통상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능력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시나리오에 내 존재의 한 부분을 투영하지 않았다. 나는 만남의 첫 단계를 완성시켜 줄 영혼의 흥분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경우 만남은 그곳을 산책하는 사람이면 훤히 알 수 있는 길은 될 수 있지만, 그의 육체를 일깨우지도 그를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정복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관심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로 내 속에서 뭔가를 불러일으키고, 무엇인가 되어가는 상태의 것을 새로이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상상해 보려고 하면 비참할 정도로 빛 바래고 밋밋하고 단조로운 것이 되어 버렸다. 빌어먹을 정체성의 대체라는 명목으로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 얼굴과 자태를 빌려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는 또 다른 나를 용납할 수가 없다.

이블린보다 몽테뉴를 택하겠다



여자들을 유혹하면서 인간에 대한 나의 지식도 넓힐 수 있었으면 했다. 나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은 분자론을 전공하거나, 폐허가 된 옛 로마를 발굴하기 위해 먼지 가득한 역사의 잔해를 해독하거나 광물들을 연구하는 일에 지칠 줄 모른다. 나에게 타인은 수수께끼에 가득한 존재로 보였기 때문에 기상천외한 능력을 동원하여 이 괴물의 탈을 벗겼으면 했다. 유혹이 진전되면서 도피와 받아침, 그리고 가면들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상대방의 내면을 잘 투영한다. 아무래도 몽테뉴와 파스칼·프루스트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들이 기억을 가지고 장난하였음에 틀림없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정말로 가치 있는 책인지 알고 있는 나에게 그들이 주는 기쁨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엽색가도, 무뢰한도 아닌 호감 가는 남자이고 싶다



나는 참 좋은 시골 학교에 다녔다. 교실에 들어갈 때면 모두들 공손히 모자를 벗었고,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노파들이 무거운 짐을 들었을 때는 선뜻 도와 주었다. 늦게나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의 추모비 앞에 경건히 모자를 벗어들고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야깃거리가 언제나 풍부하였고, 인류에 대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환상을 심어 준 것으로 존경받아 마땅했던 사람은 단연 오렐리앙 삼촌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것이 본디 심성은 착하거든. 그러니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라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빌뇌브-쉬르-로에서 보낸 나의 중학교 기숙사 시절은 삼촌의 신념이 옳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인류는 두 부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서툴게 타인의 관심을 끌려 안간힘을 쓰면서 모범생인 척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주장을 억지로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 부류들이다. 한 패의 모범생인 척하는 패거리들이 우리 중학교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역겨움과 냉소주의 속에서 나를 구해 준 두 인물이 있었으니, 한 분은 문학 담당 선생님이었던 클로드 보드뱅이었다. 그의 열정적이고 풍부한 뉘앙스가 풍기는 강의 덕택에 나는 위대한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단지 당시 세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의 방이 수도사의 그것처럼 지극히 소박했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그를 '엄격주의 얀센파교도' 취급했다. 요행히도 이 시절 또 한 분의 은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마드무아젤 비늬리라는 당시 퇴직 유치원 교사였는데, 빌뇌브-쉬르-로에서의 나의 편지 친구였다. 사실 이 편지 친구라는 말은 지금은 사라진 아주 매력적인 말이다. 그녀는 내가 질문하면 주로 대답을 해주는 편이었고, 우리는 서로 규칙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람 좋은 육십대 여인으로 말수는 매우 적었지만, 나의 변화무쌍한 유머 감각을 감지했다. 방학 동안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은 덕에 나는 엄청난 양의 장서와, 어린 시골뜨기의 눈에는 그저 신기할 뿐인 기이한 물건들이 가득한 그 집에서 얼마간 머물 수 있었다. 소박하고 경건한 삶의 교훈을 내가 충분히 음미했는지는 모르겠다. 구태여 유혹하지 않는데도 마음을 끄는 것, 언제나 무대의 전면을 차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 것, 온갖 종류의 예의와 세심한 배려와 같은 인간 관계들을 조화시키는 것 등을 말이다. 인간은 근본이 야만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조건부 휴전 협정



흐릿하게 행동한 내 잘못이 크다. 현재의 내 여자친구는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기분 좋게 절교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처지에서는 거북한 만남을 어떻게든 피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서로 협상을 하기로 했다. 중요한 일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각자가 다니는 공간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타협은 쉽지 않았다. 모든 일이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이 맺은 관계가 단절될 때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나의 두뇌는 옛날 여자 친구들을 아틀라스 지도책처럼 초록색·노란색·파란색으로 분류하느라 정신없이 회전했다. 이 공간과의 싸움을 그저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 생각해도 좋았겠지만, 나는 이내 이 놀음에 지쳐 버렸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샅샅이 훑고 다니던 그 소중한 파리가 금지 구역이 된 셈이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연애가 끝나면 예전에는 막대하던 내 영토의 마지노선까지 무너질 지경이었다. 이제 수도를 버리고 마르세유나 리옹에 가서 개과천선하여 조신한, 아주 조신한 새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증오한다



증오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사고를 어떤 결정된 한 대상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런 식의 강박관념은 우리를 흘러가는 세상의 무한한 아름다움으로부터 비켜 가도록 한다. 나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움이 생긴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정당한 이유를 찾아낼 수 없을 내 역정의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마음속 깊이 증오를 간직하고 있었다. 타인들이 애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는 증오를 키워 나갔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남들의 고통으로부터 기쁨을 길어오지는 않았지만, 무슨 수를 쓰던지 그들의 행복에 훼방을 놓아야만 했기 때문에 이 불순한 욕구를 채울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사실 나는 사람을 끌 줄 알았으니, 이제 나의 희생양이 될 여자들을 유혹할 차례였다. 처음에 온갖 친절과 주의를 기울여 호감을 사고, 상대편에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리 우리는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사인을 보내고 난 다음 결정적인 치명타와 불쾌할 만한 지적, 냉전의 순간을 만들었다. 여자들이 나약할수록 내게는 훨씬 편했다. 만일 그녀가 잔뜩 화가 나서 나를 지옥 불에 던지던가, 그저 잠깐 불쾌해하고는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살아간다면 내 시나리오는 빛을 못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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