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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 | 푸른솔
재키 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정연희․정인희 옮김

푸른솔/2003년 9월/344쪽/38,000원



프렐류드

승마용 바지와 부츠, 어린 시절 그녀의 유니폼과 다름없었던 복장을 하고, 부드러운 3월의 태양 아래 그녀는 곧은 자세로 군인처럼 서 있다. 원래 남자들을 위해 디자인된 승마복을 입고도 이렇게 우아하다. 승마용 재킷은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리고, 어깨선도 완벽하다.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어린 소년처럼 포켓에 손을 집어넣은 채, 그녀는 자신의 애마와 함께 한껏 여유롭다. 그녀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이지만, 그에 앞서 활력 넘치고 강건하며 낙관적인 미국 여성이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건강하고, 남편은 강인했다. 그녀는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서른두 살, 버지니아 주의 들판에서 스스로에게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인간이 소망하는 모든 것을 다 소유한 듯하다. 마치 위대한 영화배우처럼, 그녀는 우리의 꿈을 흡수하여 우리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명징한 소리로 우리에게 반향케 해 준다. 재클린 부비에 케네디 오나시스의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재키다. 그녀의 삶을 용기 있는 행동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재키와 가장 크게 연관되는 것은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말 그대로 그녀의 의상에서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의 인격과 자아를 스며들게 하는 데 실패한 적이 없었다. 재키의 스타일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점이자 오늘날까지 재키 스타일이 패션에, 디자인에, 문화에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녀의 스타일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이는 재키가 절대 바라지 않던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일이란 단지 의상을 선택하고 방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일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미국 동부의 귀족으로 자라난 재키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청교도적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재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을 뿐더러, 그것을 기꺼이 했고, 또 유지해 나갔다. 스타일의 또 다른 측면은 자유다. 자유가 없으면 개성도 없다. 그녀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고, 그 때문에 싫증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세상은 그런 그녀를 보며 끊임없이 즐거워했고, 다음에는 그녀가 무엇을 할까 궁금해했다. 마지막 세 번째 인생을 살면서 재키는 아이들, 가까운 친구, 그리고 일에서 정서적 평정과 지적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딸이자 언니였고, 아내이자 엄마였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었다.



메종 블랑쉬

1960년 11월 9일, 메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존 F. 케네디는 11만 5천 표의 득표 차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키는 케네디 가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자신과 자신의 작은 가정에 요구할 희생을, 그리고 희생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재키는 모든 성공은 실패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재키의 관심은 백악관으로 돌려졌다. 곧 퍼스트레이디(그녀는 마차를 끄는 말 같은 느낌이 드는 우스꽝스러운 호칭이라고 생각했다)가 될 그녀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생겼는데, 백악관을 활기차게 하는 것과 자신이 입을 의상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취임식이 있기 전, 아이젠하워 영부인이 재키에게 백악관 구경을 시켜 주었다. 재키는 백악관의 형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실내장식가 시스터 패리쉬의 조수였으며 재키의 조지타운 저택 개조를 맡기도 했던 리차드 넬슨은 백악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시즈 케네디가 아무렇게나 꾼 꿈속에서라도 그대로 둘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음식, 그리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정말정말 중산층 같았습니다.”

눌린 베개 같은 공간을 보기 좋게 부풀리기 위해서 재키가 고용하려 했던 사람은 기성 여성 실내장식가 헨리 패리쉬 2세였다. 그녀는 ‘시스터’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케네디 가에서 수녀를 고용, 백악관 실내장식을 하다!” 데일리뉴스에서는 대서특필을 했다. “재미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리차드 넬슨은 말한다. “그가 사물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에요. 나는 패리쉬에게 말했죠. ‘패리쉬 부인, 대통령의 침실이 천사와 꽃, 화환이 그려진 분홍색이라는 걸 알면 난리가 날 거예요. 사람들이 그를 리베라체(요란한 의상 및 공연 스타일로 유명했던 미국 위스콘신 출신의 피아니스트)나 그 부류로 생각할 거예요. 더구나 카스트로(쿠바의 정치가 및 혁명가)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지 상상해 보세요.’”

백악관을 일으켜 세우고 운영하는 것과 더불어 재키는 자신의 공식 의상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전 세계가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자의 눈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에 재키는 퍼스트레이디의 격에 맞는 옷을 입으면 좀 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키는 ‘메종 블랑쉬’ - 재키는 자신의 새 집 백악관을 프랑스어로 이렇게 불렀다 - 의 드레스룸에서 프랑스 패션잡지 「보그」와 「마드모아젤」을 읽는 처음이자 아마 유일한 퍼스트레이디였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머물던 시절에 재키는 거의 클래식한 디자이너들의 옷만 입었지만, 그녀가 무엇보다 좋아했던 것은 위베르 드 지방시였다. 지방시의 옷은 그녀가 바라는 바로 ‘그것’이었다. 지방시는 자신의 분야에 관한 한 디자인의 대가였다. 깨끗한 디자인, 모던한 실루엣, 고급스럽지만 장식적이지 않은 옷감을 사용한 그의 디자인에는 재키 스타일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개인적으로는 충격 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어 보이는 화려하고 복잡한 것들에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지방시가 공감했던 것은 라인과 형태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시대를 초월한 그만의 엘레강스 스타일을 창출했다.

겉으로 보기에 재키는 하룻밤 사이에 스타일 리더가 되었다. 카시니(파라마운트 사의 코스튬 디자이너)는 유럽을 본뜨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첫 아메리칸 스타일의 창조를 위해 그들이 노력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실상 당시 파리에서 진행되고 있던 벽화, 특히 디오르, 지방시, 발렌시아 가의 경우를 본다면 카시니의 작품은 지나치게 프랑스적이었다(퍼스트레이디가 프랑스 열광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백악관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세련된 케네디 백악관의 출발점은 바로 재키였다. 거기에는 7부 소매의 멋진 프렌치 수트 복제본, 로우힐 구두 등 너무 화려하지도 번지르르하지도 않은 미국 육사 웨스트포인트 유니폼의 엄밀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데이타임 오피스웨어로는 누드 스타킹, 격조 있는 진주 목걸이(세 줄짜리 이상은 아닌), 단정하게 다듬어진 헤어스타일 등 ‘나이스 걸’ 룩이 지배했다.

케네디 가 사람들, 특히 존 F. 케네디와 그의 아내에게 있어서 스타일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프리즘이었다. 케네디라는 인물이 되거나 로마 카톨릭 신자가 되는 것처럼 스타일(세상에 반응하는 뿌리깊은 습관)이라는 것은 당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해 준다. 스타일은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치켜올려 준다. 재키와 그의 남편에게 스타일은 또 다른 목적을 충족시켜 주었다. 살면서 일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때 그 겉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케네디 가 사람들에게 겉모습은 분명 매우 중요했다. 더구나 스타일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과 기호를 갖추고 한창 번영하는 중에 있던 전후의 미국은 외부에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과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몹시 필요로 하고 있었고, 재키는 미국 상류계층의 의례성, 특유의 성향, 은어 사용의 커튼을 걷어올림으로써 이 부분의 리더가 되었다.

이제 지위와 명성을 얻었으므로 재키는 최상의 미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스타일 리더가 되었다. 다른 퍼스트레이디들과는 달리 그녀는 백악관이 단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집이 아닌 국가의 상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그런 의식을 갖고서 행동했다. 그녀는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의 양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갈망했다. 재키는 워싱턴 몰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늘 작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끈 삶의 예술은 책의 한 페이지보다 위대했다. 그녀의 예술은 그녀의 삶이었고, 그녀가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녀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타인에게 본보기로 제시한 용기와 아름다움, 개성, 그리고 하나의 지점을 향한 목적의식이었다.



운명의 아이

강인한 정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재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가져야 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고집 세고 제멋대로의 아이였는지 인정할 정도였다. 장래의 시어머니 로즈 케네디처럼 재키의 어머니 재닛 리 부비에 역시 모든 일에 옮음과 그름을 따지는 꼼꼼한 사람이었다. 재닛은 딸들에게 규율, 감사 편지의 중요성, 그리고 격에 맞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쳤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 더 중요한 인생의 기술에 관한 한 스타일의 첫 지도자는 바로 아버지였다. 그는 색과 형태에 관한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두 딸, 재키와 재키보다 네 살 어린 리에게 골동품에서부터 결국 남자 인생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설교를 했다(“모든 남자들은 믿을 수 없는 쥐새끼들이야.”).

블랙잭은 재키를 딸이라기보다 최고의 여자 친구처럼 대했다. 몇 년 뒤에 블랙잭과 재닛이 최종적으로 이혼에 합의한 후, 재키가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전부 취소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키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극진했다. 사정이야 어떠했든, 블랙잭은 재키에게 스타일에 대해서 가치를 따질 수 없이 소중한 교훈을 가르쳤고, 그녀는 그 교훈을 평생토록 간직했다. “스타일은 네가 얼마나 부유한가, 혹은 네가 누구인가를 과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일은 양보다 질을, 단순한 업적보다 고귀한 투쟁을, 풍요보다 명예를 우선시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그것은 네가 어떤 사람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너의 본질적 자아이며, 너를 부비에 가문의 한 사람이 되게 해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스타일에 대해 부비에가 내린 정의의 속뜻인 “실제로 어떠한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다.”는 조셉 P. 케네디의 스타일에 대한 정의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혼한 지 2년 후, 재닛은 스탠더드오일의 상속자인 어마어마한 거부 휴 D. 오킨클로스 2세와 결혼하여 사회․경제적 위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재키와 리는 그를 ‘엉클 휴디’라고 불렀다.

일찍부터 재키는 돈과 안락함을 연결시켜 생각했다. 어머니는 ‘결혼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쳤고, 재키의 마음속에서 그것은 부를 뜻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지는 않았지만, 오킨클로스의 위압적인 재정에 비하면 무력했고, 그녀의 생활 반경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안정적인 배경에서 자라난 것 같지만, 실상 재키는 신데렐라 같은 의붓딸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외에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패션과 스타일의 관점에서, 성장기의 재키는 승마 바지와 승마 부츠를 신은 채 매일 매일을 보낸 말괄량이였다. 1951년에 재키가 쓴 에세이에서 재키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열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뉴욕에서 살았고, 여름 동안은 시골에서 보냈다. 나는 인형을 싫어했고, 말과 개를 좋아했다. 무릎은 늘 생채기가 나 있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기간 동안 치아 교정기를 하고 있었다.” 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재키는 아웃사이더였다. 그녀의 지성, 수줍음, 가족사의 비밀, 이국적 외모가 그녀를 타인들과 분리시키는 요소였다. 오킨클로스 가 사람들 가운데서 그녀는 매혹적인 침입자였다. 그들이 비록 ‘최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재키는 채핀, 파밍턴, 바사에서, 리는 포토맥, 파밍턴, 사라로렌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가입한 클럽은 모두 ‘건전’했고, 심지어 ‘소셜리지스터’에도 올라 있었지만, 재키와 리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1920년대에는 아일랜드 가톨릭이 드물었고, 유태인은 끼어 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다지 곱지 않은 편견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재키는 평생 차별당하는 느낌을 절대 잊지 않았다. 재키는 종교와 부모의 이혼 때문에 타인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꼈지만, 더 날카롭게 따지자면 그러한 느낌은 그녀의 지성과 수줍음 때문이었다. 여성적 아우라의 망토에 감춰져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굉장한 통제력, 집중력, 그리고 지성이 있었다.



빌어먹을 바사

미스 재클린 부비에가 입학할 즈음,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바사 대학의 위상은 상당했다. 학창 시절, 재키는 겸손, 유머, 수줍음, 아름다움을 두루 갖추고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친구였다. “오. 그녀는 언제나 위트가 있었어요. 재키는 매우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때때로 그녀가 뭔가를 말할 때면, 나는 그녀가 눈치가 빠르지 않은 편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단지 재미있어 보이려고 하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었어요.” 열여덟, 열아홉 살의 재키는 자연 미인이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때 「보그」에 보낸 글에 썼듯이, ‘여대생들에게 뷰티케어는 최소로 제한되어 있어야 한다. 공을 들여 계획을 세워도 주중에는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시될 것이고, 주말엔 계획 같은 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재키의 생각은 이러했다. ‘건강 및 머리카락과 피부, 치아, 손톱의 청결은 아름다움을 가꾸는 기초다. 계획을 세워 규칙적으로 손질한다면 약간의 노력만으로 아름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 즉 최고의 차림새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재키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샴푸, 손톱 손질, 제모 등의 관리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키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주말이 돌아오면 누구든 어딘가로 떠났다. 로즈 휴게실에서의 차 한 잔, 대성당 같은 도서관, 광대한 마구간. 이 지점을 넘어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바사 대학은 극도로 사치한 감옥 같았다. 이것이 재키를 안달나게 했던 것 같다. 2학년이 끝날 무렵 재키는 스스로 기록하고 있듯이 ‘여학생들 사이의 한 여학생’으로 지내는 것이 지겨워졌다. 그녀는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고 뉴욕으로 가서 사진작가의 모델이 되는 것을 고려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욕에서 젊은 모델로 활동하는 것이 어떤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재빨리 그 생각의 싹을 잘라냈다. 재키는 곧 다른 계획을 세웠는데,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며 3학년을 보내는 것이었다. 소르본느에서 수학한 후 재키는 메리우드 집으로 돌아와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 대학 4학년에 진학했다. 전공을 프랑스 문학으로 바꾸었고, 저널리즘과 문예창작을 함께 공부했다. 그녀는 언제나 독서를 좋아했으므로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저널리즘은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기에 좋은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가정 환경의 영향으로 그녀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동기, 즉 왜 그들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는가에 관심이 끌렸다. 수줍음이 많았지만, 저널리즘에 관계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재클린 부비에와 존 F. 케네디는 두 사람 모두의 친구였던 찰스와 마사 바트렛이 개최한 조지타운의 어느 디너파티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사실, 바트렛은 그의 형제의 결혼식이 열렸던 1948년 롱아일랜드에서 이미 재키를 잭에게 소개해 주려고 했었다. 그들의 첫 저녁파티는 잘 진행돼 갔다. 모든 사람들이 흥겨워했고, 술을 마시며 함께 울렸다. 잭은 말할 것도 없이 재키의 아름다움에 끌렸지만, 그녀의 지성 역시 그를 끌었다. 밤이 다가오자 바트렛은 재키를 그녀의 중고 검정 머큐리 컨버터블까지 데려다 주었고, 잭은 그녀를 좇아오며 “다른 데 가서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라고 머뭇거리며 수줍게 말했다. 그 후, 잭과 재키는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연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다. 잭의 상원의원 선거 캠페인이 막 시작되었고, 재키는 그 직후 유럽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바트렛 가족은 1952년 5월 8일 또 한 번의 디너파티를 열었고, 재키에게 잭을 초대하라고 부추겼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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