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
이케가야 유지 지음 | 은행나무
해마
이케가야 유지․이토이 시게사토 지음/박선무․고선윤 옮김
은행나무/2003년 6월/336쪽/8,900원
제1장 잠자고 있는 뇌를 깨우다
머리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공부를 잘한다거나 어려운 사실을 잘 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섬세한 배려, 문제가 생겼을 때의 적절한 대응, 재미있는 놀이발견, 딱 들어맞는 상황판단…. 이런 일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머리가 좋은 것입니다. 여러 상황에서 표현되는 사람의 생각은 두뇌 작용의 결과입니다. 즉 생각은 모두 두뇌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두뇌 기능의 2퍼센트만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머리를 좋게 하는 것은 잘사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보다 잘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머리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뇌 연구자인 이케가야 유지 박사와 카피라이터인 이토이 시게사토 선생과의 대화 속에서 ‘더 잘살고 싶다’는 소망과 ‘머리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것이지요.
“누구나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며 절망하는 때가 있고, 또 머리가 좋다고 느끼면서 자신만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머릿속 상태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태를 자신의 뜻대로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요?” 대담 전에 이토이 선생은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케가야 박사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이케가야 : “건망증이 심해졌다.” 또는 “이제 나이 탓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두뇌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오해를 푸는 것만으로도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이토이 : 그렇습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네요. 그런데 이케가야 박사는 기억력이 좋은 편입니까? 이케가야 : 손으로 그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모습들과 연관시켜 연상을 하기 때문에, 성인들은 의외로 짧은 시간에 이 그림을 기억합니다. 직접 그려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손으로 그려서 기억해도 눈으로 보고 기억한 것과 같은 결과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즉 경험을 통해서 아는 능력은 성인이 되면서 더 발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른 살짜리 성인이 열 살짜리 꼬마보다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종횡으로 더 잘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두뇌 기능을 더 잘 이용할 수 있게 되지요. 나중에 그 이유를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만, 적어도 두뇌의 주요 기능 중 몇 가지는 서른 살이 지나야 더 활발해집니다.이토이 : 나이 먹을수록 두뇌를 더 잘 이용할 수 있다거나, 서른 살이 지나야 두뇌 작용이 활발해진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가 아닙니까? 저는 나이가 들수록 두뇌 세포가 점점 줄어들어 머리가 나빠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과학자들은 손을 움직여서 실험할 때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습니다만, 손을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이케가야 : 손을 움직이는 것은 두뇌를 자극하는 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실 과학자가 실험현장을 멀리하면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없지요. 손의 세포는 대뇌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을 많이 쓰면 손가락 끝의 풍부한 신경세포가 자극을 받고, 이어서 두뇌 기능이 작동합니다. 그 결과 두뇌에 있는 신경세포가 움직이게 됩니다. 영어 단어를 외울 때에도 직접 손으로 써본다거나 소리 내어 읽어보면 더 잘 외워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토이 :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다’는 것과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머리가 좋으니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저 사람한테 물어봐.”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좋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가 가도록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책을 보다보면 ‘아! 이 감독(작가)는 정말 머리 좋다.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전달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교류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 예술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참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정보를 전달하는 발신측과 받아들이는 수신측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이케가야 : 그것 참 재미있는 말이네요.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은 개인적인 호감도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은 맞습니다. 두뇌속에서 ‘좋고 싫음’을 담당하는 것은 편도체이고, ‘이 정보가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편도체이고, ‘이 정보가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해마입니다. 해마와 편도체는 서로 이웃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필요한 정보라고 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잘 기억할 수 있고, 흥미로운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라고 불리는 사람은 수다쟁이다
이토이 :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이 없다거나 조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상당한 수다쟁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불리는 사람 중에 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수다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술이 보통이 아니라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것은 아마 사물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통찰하는 힘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다고 할까요. 경영자,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 야구선수들을 보세요. 대부분 언변이 뛰어납니다. 말을 잘 못한다고 느껴지는 사람일지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독특한 화법을 쓰고 있을 따름입니다. 시를 읊듯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대단하게 느껴지지요. 그 시적인 이야기 속에는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이케가야 : 네, 그렇습니다
이토이 : 비유로 만들어진 이야기, 이른바 우화 같은 것은 참 흥미롭습니다. 석가, 그리스도, 마호메트 등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우화의 명인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것도 어떤 사물과 사물을 연결짓는 두뇌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까요?이케가야 :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토이 : 성대모사 같은 것을 하면서 상대방의 특징을 잡아 재현하는 연예인들도 머리가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흉내 내지 못하는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이케가야 : 그렇군요. 저는 두뇌 기능에 대한 연구가 그런 부분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점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두뇌 기능이 좋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두뇌기능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반대방향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뇌에서 출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람이라도 두뇌에 입력이 없으면 두뇌의 기능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지요? 물론 어려운 말을 하면 누구나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결고리를 발산하는 능력
이토이 : 이젠 두뇌의 구조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멈추게 하고 싶지 않은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 두뇌 활용법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이케가야 : 이토이 선생님께서는 앞에서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은 호감도에 달려 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 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실험을 하다보면 우리 뇌는 주관적인 판단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을 ‘좋아하고 싫어한다’는 개념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우리 뇌에 대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뇌가 흥미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두뇌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이토이 : 그렇습니까?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좋아진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이케가야 : 우리 뇌를 직접 연구해 보면 ‘20대 후반이 되면 두뇌의 편성이 상당히 안정되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만들고 부수는 일을 계속 반복하지요. 이렇게 두뇌는 재편성되면서 움직임이 차츰 유연해지지요. 그러다가 서른이 지나면 와인이 숙성해 가는 것처럼 차분해집니다. 이 단계는 이미 구축한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리력은 어른이 단연 우수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고, 그 범위는 서른이 넘는 그 순간 비약적으로 확대됩니다.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별개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뿌리로부터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바로 서른을 넘긴 때라고 합니다.이토이 :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비유를 많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도 ‘연결의 발견’인지 모르겠습니다.이케가야 : 두뇌의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일은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어버렸다.”라는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요.
우리 뇌의 98퍼센트는 잠자고 있다
이토이 : 이케가야 박사가 연구하는 것은, 사람들간의 관계성에 대한 것보다는 아무래도 인체 내부의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지요?이케가야 : 그보다는 더 작은 하나의 신경세포 단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지금의 생명과학에서는 아직 신경세포 하나의 작용조차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신경세포가 두 개가 되어서 서로 회로를 만들어버리면 연구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뇌에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모여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서 현대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세계의 어느 연구자도 우리 뇌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이케가야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의 뇌는 그만큼 유연하니까요. 이를테면 크로마뇽인의 갓난아이를 현대 사회에 데리고 와도, 미분적분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나 침팬지에게는 무리입니다.이토이 : 인체는 시대의 변화 정도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이케가야 : 두뇌의 구조가 다릅니다. 쥐의 뇌에는 주름이 없습니다. 주름이 가장 많은 동물은 돌고래입니다. 사람보다도 더 많습니다. 주름이 많다는 의미는 같은 용적 안에 더 많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뇌를 꺼내 주름을 펴보면 신문지 한 장 정도입니다. 그것이 두개골 속에 꾸깃꾸깃 접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쥐는 주름이 없기 때문에 10짜리 동전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토이 : 그렇다면 ‘뇌란 클수록 좋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케가야 :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남성의 뇌는 1,400그램, 여성은 1,200그램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더 똑똑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뇌의 크기로 말하자면 고래가 더 크지요.
우리의 뇌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이토이 : 생각에 골몰하다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머리가 아프다, 피곤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케가야 박사는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케가야 : 우리의 뇌는 항상 힘이 넘칩니다. 절대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이토이 : 그렇군요. 생각을 깊이 하다보면 피곤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뇌 때문이 아니란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머리를 식혀야 되니까 30분 쉬었다 하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요. 눈의 피로를 풀거나 똑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데에서 오는 육체적인 피로를 푸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이케가야 : 그렇지요.
이토이 : 그렇다면 자세를 바꿔주거나, 눈을 쉬게 하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이케가야 : 사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피곤하게 느껴질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갔다 걸어 다니면서 같은 일을 생각합니다. 믿는다는 것, 즉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이토이 : 우리의 뇌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어도 충분히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뇌는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본다
이케가야 : 사람의 망막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 있는데, 이것을 맹점(盲點)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뇌의 왜곡된 세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잘 알 수 있지요.이토이 : 사람이란 정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보는군요.
이케가야 : 그렇습니다. 그 사실과 ‘머리가 좋다’는 것은 분명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뭔가의 작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완고하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다’고 하고, 이제까지의 인습에서 자유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머리가 좋다’는 것에 대한 정의의 하나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참조하면서 사물과 개념을 잘 분류할 수 있으면 머리가 좋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항상 정해진 단 하나의 견해만을 가지고 제한된 판단을 내린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제2장 기억의 제조공장, 해마
뇌 기능은 두 배씩 성장한다
이케가야 : 우리의 뇌는 너무 복잡해서 이것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래도 접근 방법은 있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 근거를 ‘기억’에서 찾지요. 우리의 뇌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뇌의 기능을 분류하면, 단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정보를 유지하는 것과 정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를 유지하는 것과 정보를 처리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쪽이 고장났을 때 정말 곤란해지는가를 떠올려보면,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정보를 유지하는 쪽이지요. 기억이지요. 기억이 없다면 정보 처리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기억이 없다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하지 못한다면 생각이 제한됩니다. 마찬가지로 정보처리도 그 처리 방법을 기억하고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니까요.이토이 : 여기서는 알기 쉽게 단순한 암기(의미 기억)를 ‘암기 메모리’라고 하고, 스스로 시도를 해봐야 알 수 있게 되는 노하우와 같은 기억(방법 기억)을 ‘경험 메모리’라고 해도 되겠습니까?이케가야 : 네.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 중에서, 암기 메모리보다 경험 메모리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0대부터 뇌 기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진다고 한 것도, 뇌가 경험 메모리에서 서로 닮은 것들을 찾아 연결(연결의 발견)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과학자가 해마에 매료되는 이유
이케가야 : 기억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가소성’이런 특성입니다.
이토이 : 가소성이란 외부 힘에 의해 모양이 달라진 물체가 그 힘을 없애도 달라진 모양 그대로 있는 성질을 말하는 거지요?이케가야 : 네. 말랑말랑한 공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움푹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손가락을 떼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오지요. 이것이 탄성입니다. 그러나 점토는 손가락으로 꼭 눌렀다가 떼면 그 모양이 바뀐 채로 있습니다. 이것을 가소성이라고 하지요. 우리의 뇌도 점토와 같습니다. 변한 것을 변한 그대로 두니까요. 그것이 바로 기억이지요. 이 때문에 가소성은 뇌 연구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