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가르침
소노 아야코 지음 | 들녘
녹색의 가르침
소노 아야코 지음/오경순 옮김
들녘/2003년 6월/196쪽/8,000원
바다가 보이는 정원에서
영어로, 식물을 가꾸는 재능을 ‘그린 핑거즈(Green Fingers)'라 말한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린 핑거즈적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나는 도쿄에 살고 있지만, 30여 년 전에 미우라 반도의 서해안 해변에 주말용 집을 지었다. 이 해안가에 오게 되면 내 마음은 신기할 정도로 평온해지고 차분해졌다. 당시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작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해변 집에는 자주 왔지만, 정원을 가꿀 만한 마음과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내게 재미있는 준비를 해주었다. 나이 오십이 되기 직전,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심한 근시였으나, 설상가상으로 눈병이 끊이지 않았고 책을 쓰고 읽는 일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수술만 하면 완전히 회복됨. 그다지 확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양호한 상태로 됨. 수술을 하더라도 결정적으로 더욱 악화됨. 나를 기다리고 있던 미래란 이 세 가지 경우의 수였다. 나는 이런 불안한 미래의 한 가운데서 흔들리며 표류하고 있었다.
집필을 그만두게 되자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원고 쓰는 데 들였던 정성과 시간을 해변 집에서 나무를 심고 야채 씨를 뿌리며 꽃을 가꾸는 일에 돌리려 했다. 정작 마음은 그렇더라도 현실은 손으로 더듬더듬거리는 서투른 원예에 지나지 않았다. 잡초를 뽑는 일만 해도 가느다란 잡초는 시력이 나빠 뽑을 수가 없었다. 강낭콩 꼬투리나 토마토에 대를 세워 끈으로 묶거나, 비료를 운반하거나, 뽑아낸 모종을 내다버리는 일과 같은 잡다한 일 외에는 불가능했다.
눈 수술의 결과는 양호해서 나는 수술 전보다도 훨씬 좋은 시력을 갖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시력이 나빠 어쩔 수 없이 심심풀이로 하고 있던 밭일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다. 시력이 나쁠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 나무를 심었다. 무화과, 비파, 블루베리, 키위, 벚꽃, 감귤류 그리고 울타리를 따라 능소화와 장미 등등. 그들 중 죽어 없어진 것도 있고, 잘 자라 근사하게 제 모습을 갖춘 것도 있었다.
나는 점차 괭이를 들고 혼자서도 야채를 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괭이질이 몹시 서툴러서 밭두둑을 만드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밭일을 하게 되면서 식물을 재배하는 역량의 대부분은 인간이 아닌, 바로 바람이며 흙이며 햇빛이며 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신앙으로 말하자면, 진정한 ‘그린 핑거즈’의 소유주는 오직 하느님일 뿐이다.
초봄의 어린 줄기
언젠가 정원의 부엽토(낙엽 따위가 썩어서 된 흙) 구멍 옆에서 특이한 이파리를 발견했다. 킨렌카(관상화초로 원산지는 열대․아열대가 많으며 추위에 약한 것이 특징)였다. 노젠하렌과의 식물로 정식으로는 ‘나스타치움’이라고 부른다. 둥근 엽전 모양의 특이한 잎은 서양 기사의 방패와 흡사하다. 그 잎이 힘없이 길고 불안하게 생긴 줄기 끝에 붙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씨를 뿌린 것도 심은 것도 아니므로 어딘가에서 씨가 섞여 들어와 따스한 부엽토 속에서 발아했을 것이다. 나는 재빨리 화분에 옮겨 심었다. 서재는 겨울밤에도 15도 정도는 유지되므로 충분한 햇빛을 받도록 창가에 두었고, 다습한 것을 좋아할 것 같아 액체비료를 주자 한 달 반이 지났을 때 예쁜 오렌지색 꽃이 피었다.
사서 가꾸는 꽃도 좋지만, 이렇게 주워온 꽃은 마치 잡종의 애완견처럼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을까. 게다가 한 달 반 가량 지난 뒤 예쁜 꽃이 피는 게 신기했다. 대개 이 꽃은 여름이 되기 전, 빨라야 3월에서 4월 경에 피는 것으로 원예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교과서 기술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이 내게는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잎사귀만 보고서도 그것이 킨렌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살려놓았다. 그냥 방치했더라면 찬 서리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운명을 구해줬다는 것을 내심 뿌듯하게 느끼고 있다.
지난번 내가 파종한 푸성귀 밭을 보고, 한 전문가가 “이렇게 촘촘히 씨를 뿌리면 안 되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취미 삼아 하는 원예’와 농업 전문가의 원예와는 다르다는 것을 가끔씩 느끼게 된다. 우리 집에서는 오래 묵은 종자가 남게 되면 나중에 발아가 어떨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촘촘하게 씨를 뿌려 오래된 종자들을 다 써버린다. 때때로 여러 종자가 섞여 있는 것도 뿌린다. 그러고는 매일 솎아내 먹게 되면, 나물 무침도 혼합야채 무침이 된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맛이 있다.
도쿄 집의 서너 평 남짓 되는 밭은 시금치, 쑥갓, 순무, 소송채(잎이 둥글고 두툼하며, 진한 녹색에 광택이 있으며 신선도가 오래 유지됨), 청경채(배추의 일종), 양상추 등을 겨울 내내 식탁에 대주고 있다. 이런 야채들은 겨울에 벌레도 생기지 않고 얼지도 않으며, 초보자들이라도 취급이 편하고 게다가 맛도 좋다.
그러나 이런 푸성귀에 대해 나의 친구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소노 씨는 상자 가득 들어 있는 종자를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다 뿌린다고 했는데, 거 참 대단하군요.” 나는 나를 칭찬하는 말인 줄 알고 겸손하게 대꾸했다. “어째서요?” “그렇게 뒤죽박죽 가리지 않고 심어도 결국 쑥갓은 쑥갓, 청경채는 청경채, 소송채는 소송채가 아닙니까. 우리 인간들 같았으면 바로 어떻게든 머리를 써서, 소송채라 할지라도 쑥갓처럼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참으로 대단한 관찰력이었다. 식물은 아무리 섞어 심어도 결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인간보다 훨씬 비겁하지 않다.
바오밥 예찬
세상에는 온갖 질병들이 많지만, ‘아프리카 병’이라는 것도 그 중 한 가지로 나도 그 병을 앓는 사람들 중 하나다. 물론 일반적인 질병과는 다르다.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정)열이 나는 것이 그 증상이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것이 바로 최근의 일인데도 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무엇이든 죄다 의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질병이나 빈곤조차도 뭔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그게 참 문제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인이라면 누구나 다 걸려 있는 ‘부족 항쟁’이라는 열병은 현재로서는 해열작용이 있는 특효약이 없기 때문에 열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관념적인 평화론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을 수밖에.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곧바로 바오밥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사바나라는 곳은 열대와 아열대에 걸쳐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는 넓은 지역으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지역을 일컫는다. 그리고 바오밥이란 그런 사바나에서 자라는 거목이다. 종종 신목(神木)이라 불리는 삼목나무나 녹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바오밥의 개성 강한 풍부한 표정이나 거대함으로 말하자면 삼목나무나 녹나무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바오밥나무는 ‘코끼리 한 부대를 끌고 가도 다 먹을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나무’, ‘교회당처럼 큰 나무’로 등장하고 있다. 어린 왕자의 고향인 작은 별에서는 바오밥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뿌리가 별을 뚫고 들어가 별을 파괴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마다 장미와 흡사한 바오밥의 싹을 뽑아버리는, 마치 풀뽑기 같은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오밥 노목은 마치 수백 년을 살아온 노인의 얼굴처럼 하나하나마다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거기에 눈과 코만 그려넣으면 곧바로 희화화(戱畵化)한 노인의 얼굴이 된다. 부드러움과 까탈스러움, 온화한 미소와 곤혹스러움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요사이는 일본에서도 바오밥 모종을 파는 곳이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무턱대고 ‘일단 심고 보자’는 성격이지만, 바오밥만은 아직 망설여진다. 바오밥 한 그루를 잘 키우는 데만도 5백 평방미터의 대지가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바오밥을 심어보고 싶다고 나처럼 아프리카 병에 걸려 있는 친구에게 고백하자 “정 그렇다면 심으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럴 만한 면적의 땅이….”라며 머뭇거리자 “전혀 상관없어요. 소노 씨가 살아있는 동안은 주변의 잡목만큼밖에 자라지 않을 테니까, 어디에 심든 마찬가지예요.”라고 냉혹하게 말했다.
생텍쥐페리의 표현대로 ‘장미와 흡사한 바오밥의 어린 나무’는 일본에 뿌리를 내린다 해도 내가 죽은 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무로 오인받아 싹뚝 베어나갈 것이 뻔하다. 바오밥이라고 설명하며, 장밋빛 석양에 물들어가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광대한 아프리카의 하늘을 때론 바오밥나무 한 그루가 떠받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미래를 걱정할 필요 없이, 결코 실현되지 않을 조그마한 꿈을 얼른 심어버리면 그만으로, 그것이 거목이 되는 날을 걱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소로운 일이다.
“아프리카는 빈곤한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만 보더라도 바오밥만큼 웅대한 생명력과 꿈을 펼쳐가는 나무란 일본엔 없다.
메마른 땅의 축복
농작물에는 모두 비료, 수분, 통풍, 일광, 좋은 토양 이렇게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 한때 비료에 대해서는 황산암모늄만 제때에 잘 주면 비료 걱정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무기(無機) 비료를 쓰면 땅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대개의 경우, 물을 함부로 많이 주는 것은 금물이다. 시클라멘과 같은 특수한 꽃은 예외로 치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물을 주게 되면 뿌리가 썩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연상한다. 공복을 느낀 후 충분히 먹는 것이 몸에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꽃이든 야채든 수분이 마르고 난 후에 충분한 물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진심으로 원한다는 생각이 든 후에 사주어야지, 미리부터 응석을 받아주며 무엇이든 사주는 부모들이 결코 아이들을 건전하게 키울 수 없는 것과 같다.
통풍이 잘 되지 않으면 벌레나 병이 생긴다. 햇빛을 받지 못한 식물은 결코 강하게 자라지 못한다. 줄기는 가늘어지고 웃자라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생활은 볕이 안 들고 통풍이 잘 되지 않는 밭과 대단히 흡사하다. 그곳에서는 사상, 신앙, 선서, 표현, 이주 등 선택의 자유라 할 수 있는 통풍의 장점이 없기 때문에 극소수의 강력한 특권 계급과 음지에서 자란 풀처럼 비굴한 정신을 가진 대다수 인민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이다.
식물은 사람과 대단히 흡사하다. 식물 중에도 비료를 주면 안 되는 식물도 있다. 고구마, 강낭콩, 오크라(아욱과의 다년초로 높이 0.6~2미터. 꽃은 황색이나 가운데는 암적색으로,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된다)가 그것들이다. 강낭콩은 점토질의 메마른 땅에 심는 게 좋다. 무심코 비료를 주면 잎은 풍성해지나, 콩꽃은 피지 않는다. 나는 충분한 영양 공급으로 기름진 밭에 오크라를 심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꽃은 피었지만 곧 녹아버리고 말았다. 오래 전 인도의 벽촌에 갔을 때 오크라가 어디서나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영양 좋은 우리 집 밭이라면 그들의 열 배 이상도 수확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었는데 섣부른 낙관이었다. 수확도 마찬가지다. 오늘 오후쯤 딱 먹기 좋은 열매가 맺었는데 이삼일 정도 늦어져도 괜찮겠지 하며 여유를 부리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그와는 반대로 까탈스러워 미운 식물도 있다. 클레마티스(clematis. 세계 각지에서 자라며 230여 종이 있음. 거의 대부분의 품종이 4계절에 걸쳐 꽃이 핌. 유럽에서는 ‘처녀의 휴식 장소’, 미국에서는 ‘악마의 머리 모양’ 등으로 불림)라는 식물이 그렇다. 일본명의 뎃센과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으나, 몇 번씩 심어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풀은 뿌리를 잘 내리고 1미터 정도 자라난 다음에 갑자기 시들어버렸다. 지난번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클레마티스는 사람의 손이 닿는 것을 싫어한답니다.”라고 가르쳐주었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다. 사람 손의 살갗 자체를 싫어하므로 옮겨심기 등을 할 경우에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인간이든 식물이든 까탈스러워 다루기 힘든 존재는, 지금 내 생활에서는 나와 교제할 수 없다. 세인트폴리어(실내 원예용) 같은 것은 인공적인 기온, 습도, 광선이 필요하므로 포기하고 말았다. 장미의 경우도 나 정도의 기술로는 약을 쓰지 않으면 병이 생겨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등지에 가면 건조하기 때문에 장미에 그다지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도 각자의 성격에 맞는 땅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다. 사람도 그 이상으로 맞는 성격과 맞지 않는 성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중국 부용의 표정
9월말이 되면 나는 갑자기 바빠진다. ‘가을 농번기’가 되기 때문이다. 고작 30평 정도의 밭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소롭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씨를 뿌리지 않으면 밭이 될 수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세계에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하자.”라는 내 나름의 신조를 갖고 있다. 그 말은 현실적으로도 대단히 유효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일이 지체되고 있거나, 도중에 불쑥 예정에 없었던 새로운 일거리가 늘어났다 하더라도, 잠도 자지 않고 변변히 먹지도 않고 하게 되면 어떻게든 급한 대로 일을 처리해갈 수는 있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세계에서 프로가 되는 최저조건이었다. 그러나 식물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파종이란 의외로 엄밀하다. 빨라지거나 너무 늦어져도 발아율이 저조해진다. 식물은 왕이다. 인간을 거느리고 있다. 결코 인간의 형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의 형편에 맞게 그들의 생리를 관리하려 든다면 싹이 트지 않거나 시들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밭일을 하다 보면 “눈은 입만큼 감정을 전달한다.”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간다. 중국 부용(醉芙蓉. 아침에는 흰색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빨간색으로 변해, 술을 마시면 취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에 비유해서 부용 앞에 ‘취’라는 한자가 들어간다)이란 나무가 있다. 아무리 봐도 꽃잎이 잘 떨어지고 나무도 원기가 없는 거 같다. 나는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주의해서 살펴보니 잎에 벌레가 꼬이고 땅바닥과 잎에 검은 똥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미 모충(쐐기, 송충이 등과 같이 몸에 길고 빳빳한 털이 있는 벌레의 총칭)이 있다는 표시였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모충을 잡았는데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 자신이 중국 부용이 된 듯이 개운해진다.
식물은 건강을 해치게 되면 즉각 표정에 나타난다. 바로 ‘눈은 입만큼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람들이 ‘병을 무릅쓰고’ 회의에 참석한다거나 무대공연을 한다고 할 때 왠지 위선을 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아무튼 중국 부용은 내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서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했고, 모충에 먹혀 하얗게 질리기도 했다. 참으로 불쌍한 중국 부용의 표정이었다.
우산 밑의 목단
최근의 모든 식물은 제철을 모를 정도로, 자연이 아닌 인공적인 환경에서 재배되는 시련을 당하고 있다. 냉장고에 넣어둔다든지, 전기를 항상 켜둔다든지, 또 그와는 반대로 단일(短日) 처리라고 해서 일부러 낮이 짧아지게 할 요량으로 덮개를 씌워놓기도 한다. 동물애호운동에 열심인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고문과도 같은 인공적인 환경을 참고 견뎌내 제철이 아닌 시기에 꽃이나 열매를 피워야 하는 식물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운동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식물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동북지방을 여행했을 때, 버찌 밭에 커다란 철골이 올라와 있기에,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궁금해서 물으니 열매가 열린 후에 비가 오면 껍질이 갈라지기 때문에 비를 맞지 않도록 덮개를 내리거나 씌우는 장치라고 한다. 그 어떤 곳의 식물이 매번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치 아래서 자라나고 있단 말인가. 목단 꽃에 우산을 씌우는 것은 풍류의 세계에서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