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 나무생각
■ 우정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친구에게 우리의 결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 뛰어난 재주보다 신뢰가 대화의 문을 열어준다.
■ 열정 때문에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지만 그중 가장 어리석은 실수는 사랑의 열정에서 비롯된다.
■ 인생의 황혼기처럼 사랑의 황혼기에도 우리는 즐겁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사는 것이다.
■ 아름다운 행위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은 그 아름다운 행동에 한몫 끼여들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친구가 우리를 속였을 때 우정을 가장한 친구의 행동을 냉담하게 대할 수는 있지만 친구의 불행에도 냉담할 수는 없다.
■ 사랑에서나 우정에서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 준다.
■ 늙어서도 어리석은 사람의 어리석음은 젊은 사람의 어리석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 올곧은 사람이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최선의 방법은 비뚤어진 사람들을 끌어가려 애쓰지 않고 그들의 뜻에 맞춰 사는 것이다.
■ 무엇인가를 하나씩 이뤄 가며 희망으로 성공을 일궈 낸 것이 아니라면, 그 성공을 제대로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큰일을 꿈꿀수록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데 힘쓰기보다 눈앞의 기회를 이용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 거짓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훨씬 이익일 것이다.
■ 우리에 대해서 적이 우리보다 진실에 더 가깝게 평가한다.
■ 우리가 어떤 결점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그런 결점이 없을 것이란 오만한 생각 때문이다. 이런 오만 때문에 우리가 갖지 못한 장점까지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 행복이나 불행이나 한계를 넘어서면 행복이 행복으로 불행이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본래의 취향과 다른 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성 때문이라기보다 허영심 때문이다.■ 굳센 정신은 사랑의 유혹을 견뎌 내는 힘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한편 의지력이 약한 사람은 숱한 유혹에 흔들리면서 열정의 진정한 환희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
■ 어떤 열정의 앙금으로 마음이 여전히 흔들릴 때 우리는 새로운 열정에 휩싸이기 쉽다.
■ 뜨거운 열정의 포로가 된 후, 그 열정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사람이다.■ 사랑은 야망으로 곧잘 변해 가지만 야망이 사랑으로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인간은 자신을 결점으로 가득한 동물이라 생각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이상한 성격을 개성이란 이름으로 감싸주며 결점들을 늘려 간다. 게다가 이런 결점들을 애써 장려하면서 나중에는 고칠래야 고칠 수도 없는 습관으로 발전시킨다.
■ 잘못이 한쪽에만 있다면 어떤 다툼도 오래가지 않는다.
■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성격상 결함이 있는 사람보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정직한 사람이 결국에는 승리하는 법이다.
■ 미덕의 위선적인 면에 대해 언급했다면, 죽음을 경멸하는 마음의 거짓됨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이 공정한 처사일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굳세게 이겨내는 것과, 죽음을 경멸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후자는 결코 신중한 자세가 아니다. 죽음의 진실된 모습을 깨달은 사람들은 죽음처럼 두려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숙명을 깨닫게 되면서, 철학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태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차분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이는 하잘것없는 추론에 의지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성격에 희망을 걸어 보자. 우리 감정이 어떤 가혹한 시련이라도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성은 죽음을 경멸하기는커녕 죽음이야말로 진정으로 두렵고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이성이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죽음에서 눈을 돌려 다른 것을 응시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우정은 교제에 비해 훨씬 고귀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교제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우정을 닮고자 하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감추려고 애쓰지 않는다. 따라서 교제가 난관에 부딪히고 깨지는 것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우리가 즐거운 만큼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들의 자존심을 존중해서 결코 상처를 안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일을 처리하는 데는 정신이 커다란 역할을 해내지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만나는 교제에서는 정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상식과 성격, 그 존경심이 교제의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제는 기대할 수 없다. 허물없는 교제를 위해서는 당사자 모두가 자유로워야 한다. 만나고 만나지 않는 데 어떤 구속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함께 즐기고 심지어 함께 지루해할 수도 있어야 한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그 때문에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된다. 만나서 상대를 난처하게 할 입장이라면 한동안 헤어져 지낼 수도 있어야 한다. 상대가 결코 당신을 언짢게 생각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때가,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제에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한계는 뚜렷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면서도 내 감정을 소중히 한다는 확신을 상대에게 심어 줘야 한다. 교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어법이 있다. 이런 어법 덕분에 사람들이 깊은 생각 없이 뱉어내는 말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또한 그런 식의 말투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 것이다. 신뢰가 없을 때 교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신뢰는 상식적인 요건이다. 다양한 방면에 재주를 가져야 한다. 한 가지 재주밖에 없는 사람은 상대를 오랫동안 즐겁게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에게 유익한 수단을 찾아내고, 그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관련된 일에 대해 언급해도 상관없지만 그가 허락하는 한에서 그치도록 한다. 따라서 커다란 절제가 필요하다. 상대의 속내까지 들춰내지 않는 예의와 인간됨이 있어야 한다.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이 교제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고유한 관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도 그런 관점에서 자신을 보아주길 원한다.거짓이 만연된 이유는 신념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세계관이 불확실하고 혼돈에 싸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거나 낮게 평가하기 일쑤다. 따라서 사물이 우리와 갖는 관계마저도 왜곡된다. 이런 착오가 다시 우리의 취향과 마음자세에 무수한 거짓을 만들어내며, 여기에 우리의 자존심까지 더해져 우리에게 선의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것에 흡족해한다. 요컨대 하나의 행위를 두고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지닐 수 있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애착을 갖는 감정도 다르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자세보다, 취향에서 거짓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균형감과 정의로움이다. 우리가 본연의 재능만으로 주어진 의무에 충실함으로써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취향에서나 행동에서나 거짓된 면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편견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모든 사물을 대할 것이다. 또한 세계관과 감정에도 균형감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할 때 잘못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자랑스레 드러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이상과 상식으로 결정된 취향을 바탕으로 사물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사물의 값과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잘못을 저지른다. 이런 착오는 언제나 거짓에서 비롯된다.사랑은 우리 삶의 모습이다. 사랑과 삶은 똑같은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은 즐거움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자체를 행복해하듯이 젊음 자체를 즐긴다. 이런 행복은 우리에게 다른 행복을 추구하도록 자극한다. 우리는 더 확실한 것을 원한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원하고 행복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힘든 고통이 따르지만 행복이 무르익어 가면서 고통은 잊혀진다. 그러나 이런 행복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다. 우리는 주변에 널려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우리가 그것에 쏟는 관심도 시들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애쓴다. 이런 변덕은 시간의 조화이다. 시간은 우리의 삶과 사랑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랑을 의지로 끝낼 힘이 없다. 이제 우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온몸이 아파 오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사랑의 고통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이런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망과 눈물이다. 노쇠에 따른 온갖 영향 중에서 사랑의 무력증만큼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은 없다.대화가 즐겁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모두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에서 상대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마음놓고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화 상대의 성향에 맞춰 자연스럽고 쉽게 말해야 하지만, 진지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주장에 동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대화 상대의 성향이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면 상대와 가슴을 터놓고 대화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생각이 곧 당신의 생각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당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수도 없다. 또한 화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여유도 필요하다. 가끔은 화제와 동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라 판단한다면 계속 견지해도 상관없겠지만, 이때도 상대의 감정에 상처를 주거나 상대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반박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똑같은 내용을 중언부언하는 것도 대화를 불쾌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쪽으로 대화를 끌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상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말하는 기술이 필요하듯이 침묵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웅변적인 침묵이다. 침묵함으로써 대화 상대들에게 존중받는 방법이다. 얼굴빛과 몸짓만으로 대화 분위기를 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재주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다. 게다가 법칙을 알고 있더라도 제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따라서 대화에서 가장 안전한 법칙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며 허식을 버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화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외관과 태도에 대하여사랑과 바다의 변덕스러움에 대하여 표현해 보려 했던 사람들은 곧잘 사랑을 바다에 비유하면서 희망과 두려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했지만, 사랑의 과정에서도 닥칠 수 있는 권태로운 평온함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한 것 같지 않다. 누구나 오랜 항해에는 지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서둘러 항해를 끝내고 싶어한다. 그 와중에도 모진 풍랑과 싸워야 한다. 질병과 무력감에 선뜻 움직이기도 힘들다. 외부에 구원의 손짓을 보내 보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마침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싫증을 낸다. 언제나 근심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매일 똑같은 망망대해, 아니 똑같은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고 따분한 상태를 벗어날 꿈을 키워보려 하지만 부질없는 꿈일 따름이다.■ 때때로 냉혹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이라 칭송을 받을 자격이 없다. 다른 의미에서 친절은 게으름이거나 박약한 의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최고의 재능은 사물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다.
■ 자신의 재능을 감출 줄 아는 재능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일 것이다.
■ 취향이 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기본적인 성격까지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미덕이나 악덕 모두 이해 관계에 따라 생겨난다.
■ 엄숙한 태도는 정신의 결점을 감추려고 꾸민 육체의 미스터리이다.
■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정중히 대접받기 위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 세상이 청년에게 주는 교육은 제2의 자존심을 그들의 마음 속에 불어넣는 것이다.
■ 편협한 생각이 옹고집을 낳는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믿지 않는다.■ 게으름은 삶을 꾸려 가는 데 필요한 온갖 계획과 행위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열정과 미덕까지도 조금씩 갉아먹어 소멸시킨다.
■ 아무리 빈틈없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모두 알고 있지는 못하다.
■ 이미 손에 넣은 명예는 앞으로 명예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담보물이다.
■ 커다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도 사소한 일로 자화자찬을 한다면 모두에게 경멸의 눈총을 받아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출세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출세한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비밀스런 시기심의 발로라 할 수 있다.
■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좋은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성찰편
취향에 대하여대부분의 동물이 그렇듯이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성격과 얼굴이 변하고 신체 기관도 약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교제가 조금씩 줄어들게 마련이다. 또한 이성적 판단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자존심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만이 차지한다. 또한 노인들은 젊은 시절 그들의 상상력을 채워 주었던 것들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인은 매일 자신의 일부를 상실해 가는 존재다. 그들 앞에는 슬픔과 질병과 쇠약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인은 헛된 욕망의 허무함을 깨닫고 말없는 대상, 감각이 없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인다. 모든 것이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다. 지혜로운 노인은 남은 시간을 개인적 구원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노인은 비참한 신세를 한탄할 뿐이다. 그래도 지혜로운 본능 덕분에 무엇인가를 원하는 욕망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결국 그들은 세상을 잊고, 세상도 그들을 잊는다. 은퇴와 더불어 허영심까지 줄어든다. 권태와 불확실과 무력감으로, 때로는 신앙심으로, 때로는 이성의 힘으로,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습관의 관성으로 그들은 따분하고 지루한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간다.대화에 대하여거짓에 대하여누구에게나 얼굴과 재능에 어울리는 외관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어울리는가를 찾아서 그 모습을 지켜가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완벽하게 다듬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어린아이가 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타고난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바꿔가며 다른 사람의 모습을 흉내내려 한다. 자신의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를 찾아 헤맨다. 자신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외부의 것을 얻으려고 내면의 것을 무시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자신에게만 매몰되어, 좋은 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 본보기로 삼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나 똑같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성취한 신분과 계급에 걸맞은 모습을 하면서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꿈꾸는 신분과 계급에나 어울리는 모습을 앞질러 흉내내는 사람이 있다. 행동거지가 얼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말투가 생각하는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 일쑤다. 거짓된 것이 끼어들어 조화를 깨뜨린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망각하고 본연의 모습에서 멀어진다. 많은 재주를 지니고도 미움을 받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별다른 재주가 없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