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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미국 미술관 기행 1

웬디 베케트 지음 | 예담
세계적인 규모의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위압적이지 않으며, 그 외부는 위엄 있으면서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인상을 준다. 높은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계단은 대개 앉아서 이야기하거나 먹거나 안에서 관람한 것들을 즐겁게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 200만 평방피트의 거대한 건물은 5,000년이 넘는 인간의 역사를 아우르는 20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명작들을 연구하고, 관리하고, 전시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1,7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50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메트는 중세 미술품들을 아주 많이 소장하고 있어 북부 맨해튼에 부속 미술관을 별도로 마련했다.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부속 미술관의 회랑과 예배당들은 모두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옮겨온 것으로 제단화, 태피스트리, 벽화, 조각품, 성구 등을 위한 조용하고 명상적인 배경이 되어 준다.<추수하는 농부들>은 열두 달을 표현한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달 연작은 현재까지 5점이 남아 있고, 그 중 세 작품이 빈 미술과 박물관의 긴 벽에 걸려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원근에 대한 시각적 고찰이다. 근경에 위치한 농부들은 브뢰헬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려졌다. 피곤해서, 아니면 술에 취해서 뻗어있는 남자, 열심히 새참을 먹고 있는 사람들, 대낮의 휴식 전에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들 등 브뢰헬은 우리에게 실제 인물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화가는 그들을 다소간 희화화시킨다.

브뢰헬은 알곡 같은 머리칼의 한 여자와 곡물 더미를 옮기는 것처럼 들판을 걷고 있는 여인네들을 바라본다. 그는 미소짓지만 한숨도 짓는다. 화가의 붓에는 감성적인 구석이 없지만 브뢰헬만큼 농부의 고달픈 삶을 동정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브뢰헬의 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짐승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얼굴, 서로 주고받을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의 공허한 얼굴이다.



그는 이 '근경' 뒤에 경이로운 '원경'을 배치시킨다. 햇빛 화창한 은총 속에서 저멀리 희미하게 뻗어 있는 낮은 언덕들, 곡물과 나무로 채워진 굽이치는 세계이다. 농부들은 이 원경 속으로 삼켜져버린다. 그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화가와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은총 어린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그저 공간이 아닌 공간성, 즉 굉장히 만족스럽고 내재된 힘을 지닌 지상 천국을 인식하게 한다. 어떤 풍경화가도 이토록 지적인 미묘함으로 풍경을 표현해 내지 못했지만 브뢰헬은 아무 말이 없다. 그는 그저 우리의 감수성을 뒤흔들어놓을 뿐이다.렘브란트에게는 외국인 후원자가 한 명 있었다. 시칠리아 귀족인 그는 렘브란트에게 어느 철학가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렘브란트는 이 일을 맡았을 당시 그 심적 감응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개인적인 불안과 철학적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자신의 가장 위대한 걸작을 완성했고, 그 그림을 통해 천재가 되는 두 가지 대조적인 방법을 표현했다.



렘브란트는 순수한 예술혼과 대비되는 물질적 성공, 명성, 권력의 중요성에 대해 그림을 통해 명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의 위대한 문호 호메로스를 대면시킨다. 기원전 4세기에 철학은 과학 전체를 아울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이해하고 통합시켜 조직화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화려하고 넓은 비단 소맷자락을 보라.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옷차림이다. 특히 그의 두툼한 금 체인,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선물로 준 것이다.



렘브란트는 명성과 부를 모두 얻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장님 시인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비쩍 여윈 흉상이 호메로스의 빈궁했던 삶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저녁 파티의 하프 연주로 푼돈을 벌면서 그리스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호메로스는 자신의 재능에 충실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지 않았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위대한 물질적 성공과 교육의 대실패 모두를 표현하며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리는 장식 메달을 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고 렘브란트는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재능이 점점 퇴보하고 있지 않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지? 물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지만 렘브란트는 분명 그 재능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가 순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심오한 자성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어떤 사람들은 보스턴 하면 대학(근처의 하버드 대학)이나 상류층 가정(보스턴 교양인들)을 떠올리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보스턴은 항구 도시로, 배들이 국내의 지적이고 미학적인 재산을 동양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보스턴 사람들은 언제나 많은 소장품들을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은 물론 유명한 아시아 학자들을 초빙해 미술관의 감독을 부탁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초기 보스턴의 삶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그리고 그 덕분에 미술관이 얼마나 많은 미국 장식 미술품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사실상 미국 가구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나의 이 무지는 보스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보스턴 미술관에서 본 모든 것들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비교적 친숙한 동양 예술의 아름다움과 미국 가구, 은제품, 도기처럼 낯설지만 역시 멋진 서양 예술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이 곳은 500명이 넘는 정식 직원과 거의 그 정도 수에 달하는 파트타임 근무자들이 일하고 있다. 1,000명쯤 되는 자원봉사자들도 이 곳의 자랑거리이다. 보스턴 미술관은 대중에게 두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나는 잔디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20세기 초의 조각상으로, 바로 사이러스 에드윈 달린의 1990년 작 <부족 주신에의 호소>이다. 이 조각상은 한 고매한 인디언 추장이 말 위에서 두 팔을 높이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대개 관람객들이 많이 운집해 있는 이 곳의 또 다른 얼굴인 정문은 웰렘 드 쿠닝이 작업한 무정형의 육중한 조각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스턴 미술관은 서로 모순된 이 두 이미지 사이에서 그 명성 높은 다양성을 지켜나가고 있다.수르바란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페인 화가이다. 진중하고, 품위 있고, 금욕적이며, 감내와 침묵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가 그린 많은 성 프란체스코 그림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진다. 사실 성 프란체스코는 체구가 작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중세 시대에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람들의 근심 걱정을 풀어주고, 사랑과 신의 선량함, 그리고 신의 세계만을 이야기했다.



수르바란은 프란체스코만큼 낙천적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불행히도 후대 사람들은 프란체스코가 지나치게 천하태평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좀더 감명 깊은 인물을 원했고, 그런 사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르바란적인' 전설이 창조되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성인의 주검이 너무나 보고 싶었던 한 교황이 호롱등을 들고 수행원들을 대동하여 납골소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들은 충격적인 전율을 느꼈다. 죽은 성인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벽감에 버젓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유럽 회화 갤러리를 찾을 때마다 나는 그 충격을 다시 체험하곤 한다. 미술관은 들어가자마자 이 수르바란의 걸작을 첫 번째로 보게끔 전시해 놓았다. 이 그림은 전시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유령처럼 어른거리며, 가까이 다가가면 그때서야 살아 있는 사람, 진짜 성 프란체스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헝겊을 기워 만든 제복 차림에 밧줄 허리띠를 매고 있다. 밧줄 허리띠의 세 매듭은 가난, 순결, 순종의 서약을 의미한다. 더 가까이 가면 겁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얼굴은 천국의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보스턴 미술관에는 일본식 정원이 하나 있다. 이 미술관의 동양 예술 소장품은 '한 지붕 아래의 세계 최고'로 불렸지만 이 작품은 지붕을 넘어 야외로 나간다. 바로 <텐신엔(天心苑)>, 즉 '하늘 마음 정원'이라는 작품이다. 이 정원은 미술관의 위대한 일본인 큐레이터이면서 학자이자 성인인 오카쿠라 가쿠조를 기리기 위해 미술관이 만든 선정(禪庭)이다.



이 정원은 폐쇄된 한 공간에서 산과 폭포, 강, 섬들 그리고 거대한 바다 등의 자연의 세계 전체를 표현하려 한다. 이 정원을 만든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해안의 윤곽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뉴잉글랜드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주목할 점은 '물'이 물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 물은 자갈들을 긁어모아 물결이 일렁거리는 모양을 담은 마음의 물이다.



맨 뒤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산으로, 작은 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다. 불멸성을 상징하는 거북이와 학의 형상을 바위로 조각한 두 개의 섬이 있다. 이 두 섬은 다리로 연결되지만 그 다리를 건너거나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곳은 성스러운 공간으로 당신의 영혼만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물 없이 물의 소리, 물의 촉감, 물의 밝고 신선한 모습을 상상하도록 이끄는 방식은 너무나 일본적이며, 우리의 물욕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이곳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니는 그런 정원이 아니다. 조용히 앉아서 영혼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곳이다.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25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지닌 대형 미술관이지만 크기보다는 건물 외관의 위엄 있는 친밀감이 인상적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처음에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상주의 작품들이 지나치게 유명한 탓이다. 한마디로 인상주의의 낙원이라 다른 것은 별 볼일 없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의 작품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정말 훌륭하지만 - 위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작품과 뛰어난 제자들이 남긴 수 점의 그림이 그렇다 - 이 작품들은 부족한 것 없이 부유한 도심에 자리잡은 이곳 미술관의 엄청난 재산 중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그곳을 아는 사람들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곳을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곡예사, 중국청자 물병, 한국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개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개호메로스의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렘브란트 반 레인추수하는 농부들, 피테르 브뢰헬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보스턴 미술관 소개성 프란체스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텐신엔, 일본이 물병을 만든 12세기의 한국 도공은 작은 예술품을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늘빛, 초록빛, 보드라운 잿빛이 섞인 반투명 빛깔, 즉 청자색 때문만이 아니라 그 형태의 조각적인 강인함 때문이다.



도공은 오리처럼 바보스러운 주둥이에 유쾌하고 건방져보이는 볏을 머리에 달고 있는 새를 상상해 만들었다. 목은 몸통의 고상한 곡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점점 부풀어오른다. 우아하고 약간은 손상된 날갯죽지는 너무 가냘퍼서 이 새를 날게 할 수조차 없을 듯하다. 꼬리는 백조의 것을 닮았다. 단지를 들고 새의 등에 뻣뻣하게 서 있는 어느 키 작은 높으신 분을 환영하는 듯 꼬리는 그를 향해 둥글게 휘어 있다. 너무나 환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실용적인 용기이다. 뒤에 탄 사람이 들고 있는 단지를 통해 물을 채워서 새의 주둥이로 물을 따르는 용도로 쓰인다. 나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언짢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한국인이 이 물병의 유쾌한 아름다움에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학자들은 당조(618∼907)에만 뛰어난 묘 조각상들이 나온 것처럼 말하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걸작인 이 <곡예사>는 전쟁, 침략, 반란 등으로 북중국이 한창 소란스럽던 6세기에 만들어졌다. 그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광포한 시대였건만, 곡예사는 타고난 생존자인가 보다. 그는 묘기를 부리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 뒤에서 무슨 난리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무명의 조각가는 이 작은 남자의 강한 개성, 즉 꿈틀거리는 힘과 함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본능을 강하게 전달한다. 곡예사는 이토록 생기가 넘치는데 그가 어두컴컴한 지하 무덤에서 죽은 귀족들에게 묘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온다. 그가 어떤 묘기를 부렸던 간에 분명 대단했을 것이다.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이 이를 증명한다. 그 묘기에는 막대를 세워서 하는 저글링도 분명 포함되었다. 우스꽝스러운 작은 모자 바로 밑에는 그가 저글링할 것을 받쳐주는 막대를 얹은 자국이 패여 있다. 막대는 없지만 우리는 상상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곡예사 조각상은 미술관 일층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공허 속에서 맥박치고 있는 그의 힘과 활기를 보며 나는 미술관 전체를 그의 막대 위에 얹어 지진도 피하게 하는 환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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