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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새롭게 하는 명상

데이비드 폰타나 지음 | 들녘미디어
나를 새롭게 하는 명상

데이비드 폰타나 지음/박주미 옮김

들녘미디어/2003년 5월/164쪽/8,500원



서문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명상기법들이 전 세계의 수많은 문화권에서 수립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명상 기법들 대부분을 설명하면서 위대한 명상전통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제공하게 된다. 명상은 어떠한 심리적․ 육체적 문제의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명상이란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고 각자의 반응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상으로 인해 심리적․병적으로 악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명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적절한 조언을 구하기를 다시 한 번 권한다. 명상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너무 가볍게 해서도 안 된다. 명상은 진지한 수행이므로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성실성과 결단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 대부분은 번잡한 정신이 너무나 습관화된 나머지 잠시도 이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일부 선승들은 이 같은 번잡함을 ‘관문(gate)'이라고 부른다. 참선을 시작할 때, 관문은 굳게 닫힌 듯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 수련 기법과 약간의 인내심의 도움을 받아 마음을 함께 탐구하다 보면, 관문은 실재하지만 비현실적인 장벽이 되어 우리 앞에 차츰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기적적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명상 여행에 돌입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단지 머리를 비우는 일만으로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재충전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제1부 관문

제1장 끝이 없는 길

명상을 저지를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의 하나는 확고한 목표를 마음에 정하고 이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명상의 목표를 설정하면, 목표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고 결국 실질적인 경험은 모호해진다.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은 편안하게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상태’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논평자들은 명상을 광활함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부르거나, 선승 도겐(Dogen)의 말처럼 ‘그저 앉아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즉, 의도나 기대, 조바심이나 실망감 없이 명상 자체만의 수련에 몰입함을 의미한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 명상이란 평소의 번잡한 정신에 지배되지 않고 마음의 무한한 본질을 경험하는 일이다. 맑은 길을 통해 마음을 경험하는 것은, 완벽하고 생생한 경험인 동시에 우리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평화로운 존재를 경험하는 일이다. 명상을 마치 외국어나 컴퓨터를 배우듯 습득해 나가는 외적 기술로 생각하지 말라. 명상이란 본질적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무언가를 재발견하는 일이며, 한때는 아주 좋아했지만 지금은 옆으로 밀어놓았던 책의 낯익은 페이지를 펼쳐보는 일과 같다.

명상은 우리와 현실세계를 유리시키지 않고 한층 더 명료한 시각을 갖춘 능률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또한 명상을 통해 타인과 자연의 세계를 더욱 섬세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명상의 전통 -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도교, 신도, 자이나교, 그리고 무속과 이교(異敎) 전통은 신도들에게 각 종교 자체의 신비를 이해하고, 생각을 일으키는 근원과의 상호관계를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마음을 내면으로 돌리는 법을 가르친다. 명상 - 그리고 사색과 기도 - 은 위대한 전통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마음을 탐구하고 훈련하기 위한 심리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경우, 이들 종교적 전통은 철학인 동시에 현실의 문화 체계다.

명상은 종교 교의상의 접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명상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나,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는 특정 신앙이나 교리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통적 종교의 창시자, 예수와 석가는 각각 2천 년, 2천 5백 년 전에 살았다. 힌두교의 『베다』를 저술한 리쉬(rishis,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약 4천 년 전 인도에서 살았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고대 이집트인들은 등을 꼿꼿이 펴고 앉은 자세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서양의 명상 전통은 특히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교회에서 가장 빈번히 쓰는 방법은 예수기도문을 반복해 암송하는 것이었다. 이는 만트라 명상의 일종이다.

전념 - 전념(專念)이란 마음을 오직 현재에만 집중하고, 하는 일에 늘 전력을 다함을 의미한다. 부처는 전념의 기본이 되는 4가지로, 몸에 대한 전념(몸의 움직임을 인식), 느낌에 대한 전념(몸의 감각을 인식), 정신적 상태에 대한 전념(분위기, 감정, 태도, 정신 상태를 인식), 정신적 대상에 대한 전념(생각하고 관찰하는 바에 대한 인식)을 언급했다. 전념은 우리가 깨어 생활하는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므로, 명상이란 정해놓은 명상 시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존재의 한 방법이 된다.

자신에게 4가지 질문을 하라.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내 몸은 어떤 느낌인가?’, ‘지금 나의 정신 상태는 어떠한가?’,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보고 듣는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동작이나 기분에 따라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라. 예를 들면 ‘지금 창을 향해 걷는다 - 지금 정원을 내다보며 미풍에 흔들리는 꽃들을 바라본다 - 기분이 행복해진다 - 지금 창문에서 돌아서서 탁자를 향해 걷는다 - 지금 왼쪽 무릎이 조금 아프다 - 지난 여름 휴가 때 도보 여행을 했던 일을 기억한다’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 같은 수행이 주는 즉각적 장점들 가운데 하나는 기억력 증진이다.

감정 지켜보기 - 생각은 감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생각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명상이 도움이 된다. 우리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감정과 전쟁을 치르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삶과 세계 속에 작용하는 병인(病因)이 되어, 삶을 효율적으로 영위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명상을 통해 생각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가능하듯, 감정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연습이 가능하다. 명상을 통해 감정에 덜 좌우되며, 평정을 잃거나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의 방해를 받는 일이 적어지게 된다. 때로는 원치 않는 생각이 불가피하게 떠오르는 동시에 여러 감정들이 북받쳐 올 때가 있다. 이는 명상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막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끈덕지게 나타나는 감정들은 명상을 통해 본질 파악이 가능하다. 이것은 실제보다 훨씬 어렵지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거나 감정과 싸우지 않으면서도, 내면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제2장 입구

명상 환경 -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자세로도 명상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차분하게 앉아 명상을 하는 정규 명상 시간을 이런 명상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그대가 원하면 언제라도 명상 상태가 되는 수준까지 수행을 강화해주는 것은 바로 정규 명상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규 명상을 위한 주변 환경을 잠시 생각해보자. 어떤 공간을 선택하든 시간이 흘러도 그대가 편안함을 느끼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어야 한다. 명상을 하는 공간의 색상 또한 중요하다. 이상적인 명상 공간은 명상가의 심적 상태와 맞아야 한다. 명상을 할 때 음악 같은 보조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보조 도구 없이는 명상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명상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그대의 마음뿐이다.

명상 시간 -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명상에 가장 적합한 시간으로 아침과 정오 그리고 늦은 저녁 세 번을 든다. 조사에 따르면 명상가들의 약 70퍼센트는 아침 명상을 선호하며, 25퍼센트는 저녁 시간을, 그리고 나머지는 정오를 택한다고 한다. 가능하면, 아침과 저녁에 명상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아침 명상의 장점은 밤에 충분한 숙면을 취한 후 마음이 가장 안정된다는 점이며, 저녁 명상의 장점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차분하고 균형잡힌 마음을 만들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한낮에 명상을 하면 일하는 도중 심신의 활력을 회복하고 휴식을 취하는 짧은 기회가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명상을 하면, 마치 식사를 하듯 일상사로 자리 잡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대의 명상이 판에 박힌 일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는 명상을 전혀 하지 않는 만큼이나 나쁜 일이다. 명상 시간은 길어질수록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궁극적으로 매일 최소한 30분씩 명상을 하도록 하라.

의식과 대상 - 의식(儀式)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외, 숭상, 존경, 헌신, 연민과 같은 특정한 마음가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명상을 하는 동안, 의식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 수행의 동기를 보다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위대한 영적 전통에서 의식은 부처나 보살, 수호성인들이나 특정 신과 같은 외적인 존재의 도움을 구할 때 이용된다. 이때 의식은 기도나 기원, 주문의 형태가 된다. 적어도 의식은 명상 수행의 규칙적인 습관을 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의식이 시작되면 마음도 자동적으로 명상 상태로 전환된다. 의식이 영적인 믿음에서 떠오른다면, 명상 수행은 다른 장점에 더해져서 헌신 행위가 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의식 자체는 그대가 믿는 종교에서 이미 행하는 형태일 수도 있고, 명상 스승이 알려준 형태이거나 그대 스스로 고안해 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의식에 공통되는 황금률은 의식은 단순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종교적 전통의 신도들이 의식을 향해 바치는 외적인 힘이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해 때로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대한 여러 시각 중 하나는, 신성한 에너지를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 즉 만물이 비롯되는 원초의식(primal consciousness)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신성한 에너지는 나름의 신앙 체계와 개인의 창의력에 따라 인격화되어 있다. 따라서 의식과 기도를 통해 그들이 실제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이 존재한다.

자세 - 다양한 자세로도 명상이 가능하다는 점은 명상 수련의 중요한 특징이다. 자이나교도들은 종종 발을 조금 벌리고, 양팔은 양쪽으로 들어올린 자세로 명상을 했다. 수피교도들은 우아한 회전춤을 추고, 선불교도들은 천천히 걸으면서 명상을 한다. 태극권과 여러 무예들 또한 명상과 움직임을 결합시킨 형태이다. 가장 흔한 명상 자세는 가부좌로, 책상다리로 앉는 자세이다. 어렵다면 이보다 간단한 반가부좌가 있다. 반가부좌는 위로 포갠 다리 쪽 발만 넓적다리에 올려놓고 다른 발은 종아리에 놓는 것만으로 완벽한 자세가 된다. 책상다리로 앉기가 불편한 사람은 의자에 꼿꼿이 앉아 발을 바닥에 붙여라.

어떤 자세로 앉든지 척추는 곧게 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몸의 에너지가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정수리를 향해 척추를 따라 올라온다고 한다. 머리는 꼿꼿이 들고 턱은 치켜 올린다. 눈은 뜨거나 감아도 되지만 초심자의 경우는 눈을 감으면 산란한 마음을 최소로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제3장 명상의 필수요소

모든 명상의 기본은 생각이나 느낌, 몸의 사소한 불편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특정한 자극에 마음을 집중하는 능력이다. 규칙적으로 명상 수행을 하면 마음이 보다 평온하고 맑아지며 통찰력이 높아진다. 명상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정 수준의 인내력과 성실함이다. 수많은 명상 초심자들은 마음은 통제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명상이 자신에게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바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명상이 필요한 것이다.

집중과 호흡 - 명상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띠는 집중은 학교에서 교과목을 공부할 때 요구되는 치열하고 강인한 정신적 노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명상적인 집중이란 훨씬 더 미묘하다. 마음을 가볍게, 하지만 즐겁고 명료하게 집중점에 맞춘다. 초심자들은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지루하다고 한다. 하지만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지루함은 사라져버리고 삶 자체의 질적 체험이라고 할 만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때로 내용 없는 깨달음이라고 지칭되는 이러한 순수한 존재의 체험은 다른 정신적 상태가 떠오르는 영적 상태에 대한 체험인 동시에 우리의 본성의 심연을 잠시 엿보는 일이다.

규칙적인 명상 수행을 할 때, 호흡은 대개 번잡한 마음으로 산란해진 정신을 모으는 집중점으로 이용된다. 호흡에 집중하면 우리의 생명 자체가 유지되는 순간 순간의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모든 영적 전통에 있어서 호흡은 항상 영(靈)적인 존재, 즉 참된 자아의 비물질적 본질을 상징하는 비가시적이며 내재적인 본성과 연결된다. 호흡은 콧구멍, 또는 복부의 팽창과 수축으로 알 수 있다. 코를 통한 호흡은, 콧구멍의 미묘한 감각으로 인해 예민한 지각이 가능하므로 명상가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호흡에 집중하는 습관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올바른 호흡법이 정착하여 윗가슴이 아니라 횡경막으로 호흡하게 된다. 횡경막이 수축하면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하며 폐의 아래쪽 공기 순환을 증가시킨다. 또 그대는 자신의 호흡과 폐로 들어오는 공기에 대해 보다 큰 애정을 느끼게 된다.



제2부 관문 너머

제1장 위대한 전통들

‘위대한 전통들’이라는 말은, 문명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스스로의 삶에 대해 사색하는 방법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 현존하는 신앙, 의식(儀式), 그리고 수행 체계를 이른다. 전 세계의 위대한 음악, 그림, 건축, 조각, 문학과 철학은 이 체계에서 영감을 받아 왔다. 위대한 전통들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사한 명상법을 공유한다. 이는 명상이 자아 이해와 영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길임을 확인시켜 준다.

불교 - 위대한 전통들 가운데, 불교는 명상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 본명은 싯다르타 고타마이며 기원전 563년 무렵 태어났다. 그는 35세의 나이에 인도 동부의 보드 가야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니르바나(해탈)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홀로 명상하며 보리수 아래에서 49일간 앉아 있었다. 훗날 그 나무는 생명의 나무로 알려졌다. 부처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는 불교 교리 전체의 핵심이 되는데, 부처는 영적인 삶에 이르는 본질이 명상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도교 - 도교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다. 도교 명상에는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사색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자연의 일부로 인식되며, 외부 환경을 이용하고 변화시키며 오염시킬 권리를 가진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신성하고 분리되지 않은 도(道)의 신비에 포함되는 하나의 요소로 생각된다. 도교의 명상은 매우 내면적인 형태를 취하는데, 이는 영생(永生)에 대한 추구와 다르지 않다. 명상을 통해 육체적 에너지인 정(精)은 정신적 혹은 미묘한 이미지인 기(氣)로 변한다. 또한 기는 영 에너지인 신(神)으로 변하고, 신은 절대적인 자각 자체와 하나가 된다.

수피교 - 수피교는 대체로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종파 가운데 하나로 인식된다. 수피교도들에게는 지크르(dhikr, 신에 대한 염원)라는 의식이 있다. 이는 명상과 일상생활 속에서 신의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 일이다. 결국 ‘신’의 이름은 이름이 불려지는 ‘존재’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러한 일은 은총으로 간주되는데, 신은 사랑으로 자신을 찾는 이를 만나러 와, 그들을 자아로부터 끌어내 성스러운 무아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의식이 사라지면, 수피교도는 신을 생각한다는 의식마저 잊는다. 분열의 자취는 전부 사라지고 오직 신만이 존재하게 되어 힌두교의 무상삼매(無相三昧)에 해당하는 상태가 된다.

힌두교 - 서양에서는 종종 힌두교를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힌두교는 엄청나게 다양한 신앙과 수행을 총망라한 광범위한 체계로, 종교와 심리학, 철학을 구분하지 않는다. 브라흐만(Brahman)은 현상계의 창조신인 브라흐마, 창조물을 보살피는 비쉬누, 변화와 이동을 불러오는 시바의 삼위일체로 나타난다. 시바는 자신의 신성한 거처인 히말라야의 카일라사(Kailasa)산에서, 또는 벌거벗은 몸으로 재를 뒤집어 쓴 채 뱀들을 몸에 두르고 화장터에 앉아 깊은 명상에 빠져 있다. 수천 년이나 지속된 깊은 명상으로부터, 제3의 눈으로 상징되는 시바의 위대한 지혜가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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