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 푸른숲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장혜경 옮김
푸른숲/2003년 4월/247쪽/9,000원
1. 폭군이 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 - 인간의 정신은 양성적이다
여성 속의 남성, 남성 속의 여성
융은 자신의 심리학이 탁상공론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현장의 목소리라는 사실에 대단한 가치를 두었다. 일생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을 분석했고, 이 과정에서 계속해서 특정한 현상을 목격했다. 융이 설명한 여러 현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정신의 양성성이다. 융은 여성들의 꿈속에는 남성이, 남성의 꿈속에는 여성이 등장하며, 이 인물들은 아주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신비로운 꿈속 인물들은 특정 시대, 특정 문화 속에서 남성이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꿈꾸는 사람의 인생을 보충해주는 심리적 내용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성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렇지가 못하다. 인간의 정신에는 반대되는 성의 일부가 담겨 있다. 이런 반대되는 성의 일부를 인식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이나 일상 행동에 편입시키는 것은, 한 인간의 인격 발달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여성의 정신 속에 남성적 요소가 들어 있듯이, 남성의 정신 속에도 여성적 요소가 숨어 있다. 융은 여성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Animus)'라 불렀고, 반대로 남성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Anima)'라 불렀다.
원형이란 무엇인가?
융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 남성상과 여성상에게 ‘원형(Archetype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므로 융의 ’원형‘이란 전 인류가 소유하고 있는 인간 정신의 구성 요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원형은 유전된 인간의 기질을 일컫기도 하는데 이는 동물의 본능과는 다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의식이 있다. 때문에 인간에게서는 본능적 태도가 행위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내면의 상(像)이나 꿈, 신화, 동화, 예술작품 등은 인간의 본능적 태도를 표현하는 형태인 것이다.
본능이 동물에게서 특정한 행동 모델을 불러내는 것처럼, 인간은 특정한 원형이 등장함으로써 특정한 정서가 나타나며, 그리하여 아주 특수한 행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온갖 부수 현상을 동반한 원형의 등장’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원형이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인격 발달 과정에서 원형이 언제 심리 내부에 형성되었는지 알아차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동반되는 기분이나 행동 욕구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원형은 모든 인간의 심리에 내재한 ‘반대성’이라는 부분이다. 즉, 여성의 정신 속에 있는 내면의 남성과 남성의 정신 속에 있는 내면의 여성인 것이다.
2. "맙소사.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 또 하나의 공동 지배자
심층 심리학의 인격 모델
융 심리학에는 심층심리학적 인격 모델이 있다. 심층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이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심층심리학은 의식 이외에도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또 다른 심급이 존재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로 아주 독특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때문에 심층심리학은 인간에게는 의식을 제외한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다고 가정한다. 즉, 인간에게는 또 하나의 공동 지배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 바로 ‘꿈’이다. 잠이 들면, 즉 우리의 의식이 활동을 멈추면, 여러 가지 상이나 스토리가 있는 사건들이 꿈속에 등장한다. 심층심리학에서는 반복하여 나타나는 꿈의 모티브를 ‘반복의 꿈’이라 부르며, 그런 꿈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설사 꿈의 모티브를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못한다 해도 이 기이한 꿈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은 남게 되며, 꿈속의 사건이 아무리 비정상적이라 해도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느낌 때문에 전 세계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꿈을 해석하고 꿈의 언어를 해독하여 노력해왔다. 그러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꿈을 꾸는 사람은 잠을 자고 있는 중이라서 전혀 의식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꿈들을 만들어 내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심층심리학의 대답은 ‘무의식이 꿈을 생산한다’이다.
인간의 정신에는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심층심리학이 근거로 내세우는 또 다른 형상이 있다.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실수’이다. ‘한 인간이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어떻게 된 영문인가?’ 대답은 앞의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내부에는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행동을 유발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말한 ‘그 무엇’은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내 안에는 거칠 것 없는 바람둥이가 숨어 있다 - 내 안의 그림자를 불러낸다면
소방관 속에 숨어 있는 방화범
‘그림자는 항상 조종키 곁에 나와 함께 서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융의 심리학에서 그림자 개념은 한 인간의 인격에 포함되면서도 당사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특성을 말한다. 그림자와 무의식 속에는 한 인간이 성장한 환경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어서 성장 과정에서 억압되었던 인격의 일부가 들어 있다. 의식적인 견해가 극단적일수록 상반되는 입장을 대변하는 그림자 역시 극단적이다. 그래서 항상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밖에 모르던 한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던 조신한 가정주부가 어느 날 카리브해의 잘생긴 댄서와 바람이 나서 가출을 할 수도 있다.
빛을 바라는 마음이 강렬할수록 어둠과 싸워야 하는 횟수도 많은 법이다. 무의식은 인간을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융 심리학은 그것을 일컬어 ‘무의식을 통해 대변되는 완전성을 향한 노력’이라 부른다.
금지된 것들에 대한 욕망
보통 인간은 그림자와 부딪치기를 두려워한다. 그림자는 악하고 불쾌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그림자들은 원래부터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자란 환경에서 나쁘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문화 전체도 그림자를 형성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종교이다. 종교는 항상 특정한 가치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그 종교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 그 종교의 가치 기준이 정한 ‘선한’ 인간이 되고자 노력할 때, 나머지 부분은 자동적으로 억압될 수밖에 없다.
가치 판단은 문명의 결과이며, 인간 의식이 성장한 결과이다.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공동생활을 규제하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 생활할 때 규칙이 있어야 생존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인을 금지했고, 사자와 같은 사냥의 충동을 무의식 속으로 몰아 그곳에 그림자를 형성했던 것이다.
그림자의 편입
우리는 ‘그림자’를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내심과 사랑으로 그림자를 대하다 보면, 야만적인 부분들을 점차 우리 공동체 일원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융 심리학은 이런 과정을 ‘그림자의 편입’이라고 부른다. 그림자를 편입시키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엄청난 양의 정신적 에너지가 남아돌게 된다. 지금껏 그림자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에너지가 갑자기 우리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손은 문이 열리지 않도록 꽉 붙들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한 손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을 잡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갑자기 양손이 자유로워졌고, 덕분에 지금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행동 레퍼토리에 새로운 특성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특성들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적인 자아에게는 이 특성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새롭게 발견한 인격의 요소들을 일상생활에 편입시키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생산적인 것이다.
4. 강한 여성의 무의식 속으로 - 숨어 있는 여성 키잡이
나를 정말 화나게 만드는 사람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면 잠시 심층심리학의 또 다른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개념이 바로 ‘투영(Projektion)'이다.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영‘이란 환등기가 슬라이드 필름을 영사막에 비추듯,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어떤 부분이 외부 세계의 사람에게로 비추어지는 과정이다. ’꿈‘이나 프로이트가 말한 ’실수‘처럼 투영의 과정 역시 인간에게는 무의식적인 부분이 존재하며, 무의식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다.
만약 우리가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서 각자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으려 할 경우, 무의식은 외부 세계에서 그것과 대면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런 대면은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소위 그림자의 투영에 적합한 사람(무의식 속으로 쫓아버렸던 특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심한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싫어하는 모든 사람이 그림자의 투영은 아니다. 그 사람이 정말 그림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그 사람을 얼마나 강한 감정의 톤으로 거부하느냐 하는 데 있다.
자신의 그림자를 진단하는 규칙은 이러하다. “당신을 정말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내게 보여달라. 그럼 당신의 그림자를 보여주겠다." 성경 구절대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내 눈의 들보가 될 경우, 바로 그것이 융 심리학이 말하는 그림자의 투영인 것이다.
이제 강한 여성이 살면서 만들게 되는 전형적인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해볼 시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융의 이론에 따르면 그림자의 인물은 항상 같은 성의 상(像)으로 등장한다. 즉, 여성 내면의 상은 여성이며, 남성 내면의 상은 남성이다. 이것은 ‘투영’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내면의 ‘투시’를 해방시켜라
남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의 투시(Tussi, ‘투스델다’의 줄임말. 옛날에는 흔한 여자 이름이었으나 요즘엔 ‘한 남자의 파트너가 된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쓰이는 고유명사)와 만나야 한다. 돌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원형적인 남성적 특성이 여성적 특성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해왔다. 그 결과 여성운동이 일어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종결짓고자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은 여성이 결코 부엌이나 자녀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여성은 연약한 성이라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며 남성과 똑같이 유능하다. 남성이 여성을 희롱하는 농담을 지껄이며 히히덕거리면 여성도 똑같이 응수할 수 있다. 우리들 강한 여성은 이런 수확을 한 톨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렇게 여성들은 싸워 쟁취한 신대륙에서 즐겁게 살고 있다. 단, 낭만적인 딜레마만 없다면 말이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여성성
문제는 한 가지다. 이렇게 우리가 남성의 특성을 쟁취하여 누리는 동안, 다시 말해 강한 아니무스를 키워나가는 동안, 우리의 여성적 특성은 그림자 속으로 밀려들어가 버렸다. 물론 당연한 역사적 결과였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여성에게 강요된 낡은 덕목을 지키며 살아온 세대다. 그로 인해 불행했던 모습을 우리는 자라면서 직접 목격했다. 어머니 세대는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우리 자신도 어린 시절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불평등을 겪었다. 사실이 이러하므로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성적인 덕목이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잘못된 것이다. 어머니가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곧 여성적 가치 자체가 나쁘다고 해석해버려서는 안 될 테니 말이다.
원형의 의미는 의식을 통한 가치 평가와 무관하다. 여성적 특성을 나쁘게 평가하는 곳은 우리 사회와 같은 부권 중심의 문화뿐이다. 그러므로 여성적인 것의 원형을 그것에 대한 부권 사회의 평가와 혼동하는 이런 오류를 더 이상은 답습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런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여성적 특성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황폐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이 어두운 그늘에서 빠져나올 때는 ‘투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강한 여성의 무의식 속에는 이미 투시가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강한 여성은 내면의 투시를 해방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5. 손이 없는 소녀 - 그림 형제의 동화로 분석하는 강한 여성의 내면 세계
숲에서 만난 낯선 노인
옛날에 한 물방앗간 주인이 살았다. 날이 갈수록 그의 재산은 줄어들었는데 어느 날 장작을 구하러 숲으로 간 그는 낯선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에게 물레방아 뒤에 있는 것을 주면 그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가 노인에게 증서를 써주자 노인은 3년 뒤에 그것을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물방앗간 주인의 집은 갑자기 부자가 되었으나 노인이 악마이며 그가 원한 게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방앗간 주인의 딸은 아름답고 믿음이 깊은 소녀였다. 3년이 지나 악마가 소녀를 데리러 왔다. 소녀는 몸을 깨끗이 씻고 자기 주위에 분필로 원을 그렸다. 악마는 소녀 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화가 난 악마는 물방앗간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가 몸에 물을 대지 못하게 해. 그래야 몸을 씻을 수 없을 테니. 그러지 않으면 내가 힘을 쓸 수가 없어!” 물방앗간 주인은 무서워서 악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소녀는 손에다 눈물을 받아 몸을 씻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악마는 소녀를 데려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악마는 물방앗간 주인에게 아이의 손목을 잘라버리라고 말한다. 유약한 아버지는 악마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소녀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라며 양손을 내밀어 자르게 했다. 다시 악마가 찾아왔을 때 소녀는 오래도록 잘린 팔에 대고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온몸이 아주 깨끗했다. 악마는 그제서야 소녀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은으로 만든 손
소녀는 마음 착한 사람들이 도와줄 것이라며 그곳을 떠났다. 하루종일 걸은 그녀는 밤이 되어 왕의 정원에 이르렀다. 달빛 속에서 그녀는 과일이 열린 나무들을 보았다. 천사가 너무 배가 고팠던 그녀를 도와 정원에 들어가게 해주었고 소녀는 배를 베어 먹었다. 왕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소녀가 아름답고 믿음이 깊었기 때문에 궁궐로 데리고 가 아내로 삼았고, 소녀에게 은으로 손을 만들어 주었다.
1년이 지나 왕이 전쟁터에 나갈 일이 생겼다. 왕은 어머니에게 아내를 부탁했다. 왕비는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편지를 써서 기쁜 소식을 왕에게 전했다. 그러나 편지를 가지고 가던 사신의 편지를 악마가 가로채 음모를 꾸미는 바람에, 어머니는 왕비와 그 아들을 죽이라는 내용의 가짜 편지를 받았다. 늙은 어머니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에 고민하다가 암사슴을 대신 죽이고 왕비와 아이를 도망가게 한다.
왕비와 아이는 어떤 집에서 천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믿음이 깊었기에 신의 은총을 받아 잘렸던 손도 다시 자라났다. 왕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왕은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울며 그간의 일을 얘기해 주었고, 왕은 이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왕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찾을 때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며 그들을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