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우울한 걸까?
김혜남 지음 | 중앙M&B
1. 왜 나만 우울한 걸까?
우울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세 가지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그러나 그 우울한 감정을 어떻게 흘려 보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가볍게 흘려 보내지만 어떤 사람은 우울의 강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울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좋은 결과는 우연, 나쁜 결과는 내 탓? -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실패를 하게 마련이다. 우울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관심과 노력 부족, 어쩔 수 없는 상황 등으로 그 탓을 돌리기보다 자신이 원래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변화 가능한 구체적인 요인보다 자신의 내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열등감을 방어하기 위해서 좋은 결과는 내 탓, 나쁜 결과는 남의 탓을 하려는 속성이 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울한 사람들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나쁜 결과를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된다.
그들이 가진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처럼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면서 성공에 대해서는 또 너무 지나칠 정도로 우연적인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은 '항상', '반드시', '완벽하게', '…해야 한다' 등의 당위성과 절대성을 지닌 것들이다. 그런 말들은 자연히 우울에 이르는 공포와 분노, 상처, 죄책감과 같은 정서 상태를 만들어내고, 결국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객관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물론 자신의 잘못에는 엄격하고 타인의 잘못에는 후할수록 좋다지만 그것도 너무 지나치면 병이 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을 대할 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감정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그런 중립 지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분명하게 호감과 친절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을 싫어한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어느새 '모든' 사람으로 확대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못생겨서' 혹은 '성격이 나빠서'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발전시켜 우울에 빠지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우울한 사람들, 그들은 지나치게 타인의 애정과 관심, 인정을 갈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안에는 타인의 끊임없는 애정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 타인에게 지나치게 매달린다. 마치 타인의 인정과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처럼,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내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울해할 게 아니라 먼저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 투성이다.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대 1.0이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먼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를 따져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렇게 따져 들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도 조금 관대해져 보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
사랑하면 더 이상 우울은 없을 거라 믿은 당신에게때로 사랑은 우울을 벗어나게 해주는 특효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해하는 외로운 솔로들에게 다짜고짜 사랑을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우울해?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빨리 사람 만나서 결혼해." 하다 못해 텔레비전을 켜도 그렇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도 밤늦도록 전화통화를 하며 외로울 틈이 없어 보이고, 아내들은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보글보글 음식을 끓이고 튀기느라 바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그런 걸까? 언제나 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밝은 웃음만이 가득하며, 외로움과 우울은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사랑이 깊어도 우울을 피해갈 순 없다 - 여기,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한순간도 서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사랑했다. 둘은 잠을 자는 시간이나 각자의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같이 있고 싶었다. 함께 있는 동안엔 둘 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행복했다. 그러나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외로웠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만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깊이 느껴지는 외로움을 설명할 수도,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고 애틋해질수록 불안한 느낌도 빈번해졌다.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만일 그가 날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서 이 세상에 나만 놓고 떠나 버리면 어떡하나? 내가 아프거나 죽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까?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은 우울해졌다. 두 사람은 이렇게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고, 또 사랑으로 인해 슬펐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에 행복만 깃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랑이 그 안에 좌절, 미움, 외로움, 인내 등의 여러 속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한들 그들은 한 몸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완전한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랑 속엔 자연스럽게 슬픔이 깃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행복은 그 슬픔과 외로움으로 인해서 더욱 빛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아래 배려와 이해를 나누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우리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이 주는 우울감을 두려워하지 말라.
2. 우울, 그들을 유혹하거나 혹은 유혹당하거나
중독녀 & 중독남술은 때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비타민과 같은 힘을 준다. 애연가들이 "담배는 생각의 비타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애주가들에게 술은 "통증의 아스피린"이라고 불릴 만하다. 특히 우리 나라는 술에 대해 꽤 관대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으레 술 한잔 마시고 풀어 버리고,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술 한잔 마시는 분위기다. 술 마시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관대하다. 이러한 음주 문화는 억압이 심한 평소의 생활 습관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평소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다가 술만 마시면 그 동안의 불평 불만을 쏟아 놓고, 억압된 공격성과 성적 욕구를 풀어놓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술의 유혹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술에 취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걸까?
우울이 부르는 중독의 늪 - 니콜라스 케이지가 술 중독 환자로 나오는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는 "내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가족이 떠난 것인지, 아니면 가족이 떠난 후에 술을 마신 것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란 독백이 나온다. 여기서 가족이 떠난 사건을 '우울'로 바꿔볼 수도 있다.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술을 마셨는지, 아니면 내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우울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 동안 술과 약물 중독, 그리고 우울증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술을 장기적으로 과다 섭취할 경우 사회적 관계를 상실하는 등 사회적인 고리를 잃어버림으로써 우울이 생긴다는 설도 있고, 술이 신경 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며 우울증의 증상을 유발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우울이 술을 부른다는 주장으로는 이들이 우울하기 때문에 불면증이나 기분 저하 등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술 중독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환자들을 보면 우울해지고 잠이 안 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음주 패턴은 그들의 우울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술이든 약물이든 모든 중독 행동은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특히나 무능감이란 감정에 상당히 취약해서,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극심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독을 통해 재빨리 무능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독에 잘 빠져드는 사람은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아 발달에 손상을 받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저하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약물이나 술을 통한 즉각적인 기분 상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 상태가 되면 오래 전 엄마 뱃속에서 느끼던 깊은 안락감을 맛볼 수 있어서 중독자들은 더욱더 술과 마약에 빠져든다. 특히 약물 중독의 경우 대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투약을 하며 환각 상태로 빠져드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어릴 적 부족하던 애정 어린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렇게 우울해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만족을 약물이나 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약효가 사라지면 현실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또 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면 그 우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다시 약물과 술에 손을 뻗치게 된다. 그렇게 우울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자살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 혐오감을 유발한다. 한 사람이 자살을 하면 그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무력해지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워버려야 하는 오점으로 남는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죄책감을 갖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살하려는 사람의 심정을 미리 간파해 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이며, 그래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살에 대한 개인적인 두려움이나 혐오, 낭만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냉철한 관점에서 자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누가, 왜 자살을 꿈꾸는가? - 자살은 인류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매년 45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 나라의 자살률도 매우 높아서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에 이어 5위를 기록한다니 상당히 놀랄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자살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생전에 정신과적 질환을 앓은 것으로 밝혀졌다. 자살에 이르게 한 정신 질환으로는 우울증과 술 중독이 가장 많았다.
우울증은 자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울증의 긴 터널을 고통스럽게 빠져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얼마나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는지 고백하고 있다. 도대체 그들로 하여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심적 괴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요소는 바로 희망의 상실이다. 이 다음으로 자포자기가 있다. 그것은 현재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데,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이러한 자포자기에는 죄책감도 한몫 한다. 그 외에도 자살을 선택하는 심리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형태의 자살이 '도움을 요청하는 절규'라는 점이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괴로우니 자신을 도와 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즉 자살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 의사 표시로 쓸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자살을 부추기는 자살에 대한 오해들 - 자살하려는 사람의 상당수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죽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만약 그런 신호를 당신이 받게 된다면 결코 그 말을 가볍게 흘려 넘겨서는 안 된다.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믿음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자살자 10명 중 8명은 자살 전에 자살 의사를 주변에 알린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정말 죽기를 원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정말로 죽기를 원하는 건지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자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져야 할 태도에도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얼른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서 자살에 대한 생각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제할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는 행동이다. 이때는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그 안에서 가능한 도움을 모두 주는 것이 가장 올바른 대처 방법이다.
이 중에서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의 주변 사람들이 특히 잘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우울증 증세가 심할 때는 물론이지만 병세가 호전되어 간다고 해도 결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울 증세가 호전되고 있을 때가 자살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시기다. 우울하던 사람이 갑자기 명랑해지거나 주변을 정리하면 마음을 놓을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살의 위험성에 대해 민감하게 고려하고 있어야 한다.
3. 우리가 사는 시대조차 우울에 빠지다
우울한 시대가 만든 사람들, 키덜트족'헬로키티', '마시마로' 같은 캐릭터 인형들을 수집하고, 어릴 적 놀던 조립품에 몰두하고, 실내 장식과 승용차 안도 이런 깜찍한 캐릭터로 꾸미는 '어른'들. 그들이 바로 일면 '키덜트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키덜트'란 '키드(kid)'와 '어덜트(adult)'를 합성해서 만든 신조어로, 20∼30대 나이에도 여전히 어린이의 분위기와 감성을 간직하고 추구하는 어른들을 일컫는다.
어른이 되기 싫은 어른들, 키덜트족 - 키덜트족의 출현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복고 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옷이나 인형뿐 아니라 어린 시절 못해 봤던 놀이를 다시 시도하려 한다. 과거는 보통 잃어버린 파라다이스의 의미를 띠고 현재에 기억되는 법이다. 그때의 추억은 대부분 어머니의 품안에서 느끼던 따뜻한 느낌과 동반되어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로 출발하게 하는 토대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가득할 경우, 사람들은 미래로 출발하기보다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이것이 불안한 시기에 복고 열풍이 부는 이유다.
키덜트족의 또 하나의 심리는 자극과 공격성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성적 자극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쉽게 성적으로 유혹되고,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어떤 공격성이 표출될 만한 위험성도 높아진다. 그들은 이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법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방법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