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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우울한 걸까?

김혜남 지음 | 중앙M&B
그러므로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사람도 각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우울할 수도 있고,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똑같이 우울해진다 하더라도 어둠의 터널 안에서 살아갈 희망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 터널을 현명하게 빠져 나와 더욱 성숙해질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계속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어도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항상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스러운 기억 아래 묻혀 있던 나를 찾아서 거기에 밝은 햇빛과 맑은 공기를 쐬어 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론 길을 잃을 수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버릴 수도 있다. 혼자 힘으로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반복되는 행동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과거는 과거로 돌려주고 자기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3. 우리가 사는 시대조차 우울에 빠지다

우울한 시대가 만든 사람들, 키덜트족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그러나 그 우울한 감정을 어떻게 흘려 보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가볍게 흘려 보내지만 어떤 사람은 우울의 강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울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좋은 결과는 우연, 나쁜 결과는 내 탓? -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실패를 하게 마련이다. 우울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관심과 노력 부족, 어쩔 수 없는 상황 등으로 그 탓을 돌리기보다 자신이 원래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변화 가능한 구체적인 요인보다 자신의 내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열등감을 방어하기 위해서 좋은 결과는 내 탓, 나쁜 결과는 남의 탓을 하려는 속성이 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울한 사람들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나쁜 결과를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된다.



그들이 가진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처럼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면서 성공에 대해서는 또 너무 지나칠 정도로 우연적인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은 '항상', '반드시', '완벽하게', '…해야 한다' 등의 당위성과 절대성을 지닌 것들이다. 그런 말들은 자연히 우울에 이르는 공포와 분노, 상처, 죄책감과 같은 정서 상태를 만들어내고, 결국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객관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물론 자신의 잘못에는 엄격하고 타인의 잘못에는 후할수록 좋다지만 그것도 너무 지나치면 병이 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을 대할 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감정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그런 중립 지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분명하게 호감과 친절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을 싫어한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어느새 '모든' 사람으로 확대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못생겨서' 혹은 '성격이 나빠서'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발전시켜 우울에 빠지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우울한 사람들, 그들은 지나치게 타인의 애정과 관심, 인정을 갈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 안에는 타인의 끊임없는 애정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 타인에게 지나치게 매달린다. 마치 타인의 인정과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처럼,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내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울해할 게 아니라 먼저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 투성이다.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대 1.0이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먼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를 따져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렇게 따져 들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도 조금 관대해져 보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우울은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하지 못하는 건 수치다? - 중세 시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슬픔과 우울을 주요한 죄악 중의 하나로 규정했다. 당시의 사회에서 미덕으로 여겨지던 것들은 근면과 낙천주의, 자기 조절 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울은 근심 많고, 부주의하며, 낙담하기 쉽고, 세상사에 관심이 없고, 외톨이가 되려는 상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을 '아체디아(acedia : 게으름, 무기력)'라 명하면서 폭식, 탐욕, 간음, 분노, 낙담, 자만과 더불어 주요 악덕 중 하나로 꼽았다. 이처럼 우울을 죄악시하고 금기시하는 종교적 영향의 결과, 우울한 사람은 자신이 신의 뜻을 거역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것을 수치스러워하거나 부인하고 숨기며 비탄에 빠졌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이유로 우울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며 성공한 자신의 이미지와 젊음, 명성, 그리고 매력에 대한 다른 사람의 찬사를 요구한다. 이런 사회에서 우울해진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밝고 감각적이고 행복해야 하는 세상에서 우울은 어두운 실패의 이미지로 피하고 숨겨야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중세 시대에 우울은 신에 대한 죄악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울은 자신에 대한 죄악이다.



우울은 오히려 성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정신분석가 에미 거트는 정상적인 우울 감정이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적응력을 강화해 준다고 했다. 온 힘을 다 쏟은 중요한 일이 실패하거나 멈추어 섰다고 느낄 때,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틀렸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질 때 우리는 이 위기를 '기본적인 우울 반응(the basic depressive response)'으로 대용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슬럼프가 이에 해당한다. 우울 반응은 내적으로 뭔가 풀리지 않고 막다른 상태에 도달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모든 주의를 내부로 향하게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동안 쌓인 경험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탐색, 통합하여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그 상황은 변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더 이상의 무의미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우울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심리적 신호이며,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인 것이다. 우울한 상태에서 흥미가 감퇴하고 활동량이 감소하는 것은 그런 새로운 변화를 위해 암중모색의 시기를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그 시기를 보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처럼 고통스런 내면의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체념의 미덕을 배우고 혹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서게 된다.감정이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우리의 느낌을 말한다.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미묘하다. 때로 우리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할 수도 있다. 좌절과 절망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열등감으로 인해 분노하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감정을 억압하기 시작하면 감정은 안에서 곪아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온다. 왜냐하면 억압된 감정은 이미 우리의 통제 밖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밖으로 쏟아내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정체성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는 좋고 나쁜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건 없다. 모든 감정은 정상적이다. 단지 도가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이 문제가 될 뿐이다.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거나, 아니면 그대로 억압해 버리고 자책에 빠져 스스로를 자학할 때 비로소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된다. 내가 친구를 시기하고 있음을 알면 나 역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임을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심을 선의의 경쟁으로 승화시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면 된다. 그러면 내 감정도 조절할 수 있을 뿐더러, 다른 사람의 나쁜 감정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감정에 굴복하지 않는 가장 최선의 길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나쁜 감정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어떠한 감정이든 숨쉴 수 있게 하고, 그것이 내 마음 안에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알면 내가 원하는 대로 감정을 조절할 수가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감정을 속이고 억누르며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받기 쉬운 세상인데, 나마저 나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지 않겠는가.4. 우울한 당신이 먼저 버려야 할 편견 혹은 오해



당신이 알고 있는 우울이 다가 아니다때로 사랑은 우울을 벗어나게 해주는 특효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해하는 외로운 솔로들에게 다짜고짜 사랑을 시작하라고 당부한다. "우울해?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빨리 사람 만나서 결혼해." 하다 못해 텔레비전을 켜도 그렇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도 밤늦도록 전화통화를 하며 외로울 틈이 없어 보이고, 아내들은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보글보글 음식을 끓이고 튀기느라 바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그런 걸까? 언제나 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밝은 웃음만이 가득하며, 외로움과 우울은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사랑이 깊어도 우울을 피해갈 순 없다 - 여기,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한순간도 서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사랑했다. 둘은 잠을 자는 시간이나 각자의 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같이 있고 싶었다. 함께 있는 동안엔 둘 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행복했다. 그러나 헤어져 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외로웠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만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깊이 느껴지는 외로움을 설명할 수도,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고 애틋해질수록 불안한 느낌도 빈번해졌다.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만일 그가 날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서 이 세상에 나만 놓고 떠나 버리면 어떡하나? 내가 아프거나 죽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까?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은 우울해졌다. 두 사람은 이렇게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고, 또 사랑으로 인해 슬펐던 것이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에 행복만 깃들일 수 없는 것은 사랑이 그 안에 좌절, 미움, 외로움, 인내 등의 여러 속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한들 그들은 한 몸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완전한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랑 속엔 자연스럽게 슬픔이 깃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행복은 그 슬픔과 외로움으로 인해서 더욱 빛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아래 배려와 이해를 나누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우리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이 주는 우울감을 두려워하지 말라.술은 때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비타민과 같은 힘을 준다. 애연가들이 "담배는 생각의 비타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애주가들에게 술은 "통증의 아스피린"이라고 불릴 만하다. 특히 우리 나라는 술에 대해 꽤 관대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으레 술 한잔 마시고 풀어 버리고, 기분 좋은 일이 생겨도 술 한잔 마시는 분위기다. 술 마시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관대하다. 이러한 음주 문화는 억압이 심한 평소의 생활 습관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평소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다가 술만 마시면 그 동안의 불평 불만을 쏟아 놓고, 억압된 공격성과 성적 욕구를 풀어놓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술의 유혹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술에 취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걸까?



우울이 부르는 중독의 늪 - 니콜라스 케이지가 술 중독 환자로 나오는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는 "내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가족이 떠난 것인지, 아니면 가족이 떠난 후에 술을 마신 것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란 독백이 나온다. 여기서 가족이 떠난 사건을 '우울'로 바꿔볼 수도 있다.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술을 마셨는지, 아니면 내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우울해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 동안 술과 약물 중독, 그리고 우울증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술을 장기적으로 과다 섭취할 경우 사회적 관계를 상실하는 등 사회적인 고리를 잃어버림으로써 우울이 생긴다는 설도 있고, 술이 신경 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며 우울증의 증상을 유발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우울이 술을 부른다는 주장으로는 이들이 우울하기 때문에 불면증이나 기분 저하 등을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술 중독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환자들을 보면 우울해지고 잠이 안 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음주 패턴은 그들의 우울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술이든 약물이든 모든 중독 행동은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특히나 무능감이란 감정에 상당히 취약해서,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극심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독을 통해 재빨리 무능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독에 잘 빠져드는 사람은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아 발달에 손상을 받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저하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약물이나 술을 통한 즉각적인 기분 상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게다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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