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포수 짐 코벳과 쿠마온의 식인호랑이
짐 코벳 지음 | 뜨인돌
다행히 호랑이는 날 공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놈은 아주 천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시내를 건넜다. 나는 저만치 위쪽에 있던 타실다르에게 그의 총을 달라고 소리쳤다. 내가 시내에 도착했을 때 호랑이는 이미 바위턱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약 5∼6m 거리까지 접근한 다음 신중하게 총을 들어 놈을 겨누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신과 총미 잠금장치 사이에 약 1cm 가량의 균열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아까 타실다르가 두 번 발포했을 때 총은 파열되지 않았다. 아마 한 발을 더 쏘아도 파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발사 순간의 충격으로 인해 내 눈이 멀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망설임이 일었지만 어차피 지금 상황에선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만 했다.
나는 호랑이의 벌어진 입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내가 살짝 움직였던 것일까? 총에 문제가 있었을까? 총알은 목표를 벗어나 호랑이의 오른쪽 다리에 맞았다. 어쨌든 그것이 호랑이에게는 마지막 순간이었고, 놈은 머리를 바위 옆으로 떨어뜨린 채 힘없이 쓰러져 죽었다. 436명의 생명을 앗아간 식인 호랑이의 최후였다. 나는 놈의 잔인한 발톱 앞에 노출된 437번째 인간이었고, 놈에게 패배하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이었다.
아까 호랑이가 바위턱에서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놈의 입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오른쪽 송곳니가 위 아래 모두 부러져 있었다. 위쪽은 절반쯤, 그리고 아래쪽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아마도 총알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치아손상 때문에 놈은 먹이를 사냥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식인 동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을 내려가던 몰이꾼들은 그 불쌍한 소녀의 머리를 발견했다. 골짜기 입구에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는 마치 그녀의 가엾은 영혼처럼 보였다. 식인 호랑이가 최후를 맞은 바로 그 산자락에서 소녀의 친척들이 그녀를 위한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훗날 '참파와트의 식인 동물'이라는 공식 명칭이 붙은 호랑이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은 것은 말라니에서 에디 노울즈와 사냥을 할 때였다. 인도 최고의 사냥꾼인 그의 매부가 정부로부터 참파와트 지방의 식인 동물을 사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당연히 그 동물이 머지않아 최후를 맞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호랑이는 죽지 않았고, 4년 후 내가 나이니탈을 방문했을 때까지도 정부의 커다란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다. 거액의 포상금이 붙었고 특별 사냥꾼들이 고용되었으며 알모라의 연대 본부에서 구르카족(네팔의 용맹스러운 종족) 병사들이 파견되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암컷으로 판명된 그 호랑이는 네팔에서 200명을 죽인 다음 그곳의 무장 군인들에 의해 인도의 쿠마온 지방으로 쫓겨갔다. 쿠마온에서 출몰하던 4년 동안 놈은 희생자의 숫자에 다시 234명을 더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나이니탈에 도착한 직후 베르후드의 방문을 받았을 때의 상황이었다. 당시 나이니탈의 경찰 부청장이던 베르후드는 식인 호랑이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결국 새로운 희생자가 나타나는 즉시 참파와트로 출발하겠다는 약속을 내게서 받아냈다.
나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정부에서 내건 보상금을 취소할 것, 둘째는 특별 사냥꾼인 알모라에서 온 군인들을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 이런 조건을 내건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사냥꾼'은 보상금이나 쫓는 '얼치기'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법이니까. 베르후드는 내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1주일 뒤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다비두라와 두나가크 사이에 있는 '팔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여자가 또 다시 희생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현지로 출발했고 팔리에 도착했다. 여자가 변을 당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50여 명의 주민들은 그때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집 안에 숨어 있을 정도였다.
호랑이가 마을 근처로 배회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마을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도로 근처에서 3일 밤 내내 놈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가끔은 마을 바로 아래쪽에 있는 경작지까지 내려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날 노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사냥감을 추적하며 정글 속에서 야영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날처럼 식인 동물을 기다리며 밤을 보내는 것은 나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음 날, 내가 이곳에 오는 계기가 되었던 마지막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불행한 여자가 죽었을 때 그녀와 함께 소에게 먹일 떡갈나무 잎을 따고 있던 20여 명의 여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마을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한 일행은 1km쯤 간 뒤에 잎을 따러 나무 위로 올라갔다. 희생자와 두 명의 다른 여자들은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를 선택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지름 1m에 너비가 3∼4m 가량 되는 나무였다. 작업을 마친 희생자가 나무에서 내려오기 시작했을 때, 은밀하게 다가온 호랑이가 뒷다리로 서서 그녀의 발을 잡아당겼다. 나무 밑으로 떨어진 여자는 황급히 일어서려 했지만 곧바로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목에 박혔고 호랑이는 희생자를 입에 문 채 울창한 수풀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 불쌍한 여자가 매달렸던 나뭇가지는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또렷이 보여 주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움켜잡았던 나뭇가지에 손바닥과 손가락에서 떨어져 나온 살점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나무 밑에는 그녀의 저항의 흔적과 더불어 흐릿하게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혈흔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맞은 편의 강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부근의 수풀 속에서 우리는 호랑이가 여자를 먹은 장소를 발견했다. 식인 동물들이 사람의 머리와 손발을 먹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식인 동물들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심지어는 피 묻은 옷까지 먹어치운다. 우리는 여자의 옷과 2∼3개의 작은 뼈 조각을 발견했다. 안내인들이 미리 준비한 깨끗한 천에 그 흔적들을 담았다.
나는 팔리에서 동쪽으로 25km 가량 떨어진 참파와트로 이동했다. 중간에 합류한 사람들 중 몇몇이 얼마 전에 겪었던 아주 딱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저 아래쪽 골짜기에서 섬뜩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윽고 벌거벗은 여자를 입에 문 큼지막한 호랑이가 보였는데, 여자의 머리카락과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어요. 호랑이가 여자의 허리를 꽉 물고 있었던 겁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울부짖으며 신과 사람을 번갈아 불렀습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장정이 아무 일도 않았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나리, 너무 무서웠습니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람들이 대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오후 2시에 호랑이의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놈을 눕혔을 때 왼쪽 앞발의 안쪽 털 대부분이 없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살에는 아주 작은 구멍들이 잔뜩 뚫려 있었고, 각각의 구멍들에선 누런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리의 굵기도 다른 다리들의 2/3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가죽을 다 벗겨낸 다음 놈의 곪은 다리에서 호저 가시를 하나씩 뽑아냈다. 가시의 수는 총 30여 개였고 그 중엔 12∼13cm가 넘는 것들도 있었다. 가죽 바로 밑의 살은 염증으로 인해 앞가슴부터 발까지 싯누런 빛을 띠며 미끈거렸다. 놈은 바로 이 상처 때문에 다른 짐승들을 사냥할 수 없었고, 결국 인간만 노리는 식인 호랑이가 되었던 것이다.
호저의 가시는 살에 박히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녹지 않는다. 대부분은 뼈 사이의 딱딱한 근육에 박히고, 그 부위를 움직일 때마다 살 밑에서 짧게 부러져 심한 염증과 통증을 일으키게 한다. 호랑이들이 호저를 잡아먹으려 하다가 가시에 찔린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호랑이처럼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이 왜 그토록 부주의하게, 그것도 뒤로 물러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어 기술이 없는 호저 같은 동물에게 찔리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왜 호저가 가시를 박아넣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느냐는 점이다.식인 호랑이를 쫓아 참파와트에 머물며 그곳 사람들의 삶을 목격한 이후, 나는 식인 동물의 위협 아래에서 사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날 정오 무렵에 다시 돌아온 타실다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한 사내가 황급히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리, 식인 호랑이가 방금 여자를 죽였습니다." 마을에는 흥분한 주민들이 우릴 기다리며 모여 있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란 떨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뒤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소녀가 사고를 당한 장소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 섬뜩한 진홍색 웅덩이와는 대조적으로, 바로 옆에는 소녀가 걸고 있던 하늘색 구슬 목걸이가 부서진 채 흩어져 있었다. 호랑이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게 보였다. 산 언저리에 이르러 흔적은 산사나무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뾰족한 가시에는 소녀의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걸려 있었다. 호랑이는 그 너머 쐐기풀 숲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 쐐기풀 숲으로 들어갔다. 100m쯤 내려가자 핏자국은 좁고 가파른 개울 속으로 들어갔다. 바위를 끼고 돌던 개울물은 100m 정도 흘러내린 다음 왼쪽으로 나오는 깊은 골짜기와 만나고 있었다. 호랑이는 소녀를 곧장 여기까지 물고 왔고, 나의 끈질긴 추적은 그의 식사를 방해했던 것이다. 토막 난 뼈들이 깊게 패인 호랑이 발자국 주위에 흩어져 있었고, 그 속으로 붉은색 물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내가 아까부터 이상하게 여기던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다리였다. 나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식인 동물을 사냥했지만, 그 젊고 예쁜 다리만큼 가엾은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무릎 바로 아래에서 마치 도끼로 자른 듯 깨끗하게 잘려 있는 그 다리의 절단면에서는 그때까지도 따뜻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녀를 문 호랑이는 이제 바위투성이의 황무지로 들어섰다. 그리로 들어서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고, 호랑이는 이런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식사를 계속할 것이다. 열 번도 넘게 나는 호랑이가 쉬었던 자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피의 흔적도 점점 더 분명해졌다. 호랑이는 구조대 때문에 식사를 중단하는 일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자그만치 436번째 인간을 잡아먹고 있었으니까. 나는 4시간 이상 호랑이를 뒤쫓고 있었다. 풀숲이 움직이는 모습은 여러 번 목격했지만 정작 놈의 실체는 털끝 하나 보지 못했다. 반대편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에 흘끗 목격한 놈의 그림자는 이제 그만 퇴각할 시간임을 내게 일깨우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려면 이쯤에서 추격을 중단해야만 했다.
호랑이는 밤 사이에 시체의 남은 부분을 모두 먹어치울 것이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암벽 지역에 은신할 것이다. 그럴 경우 놈에게 몰래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만일 충분한 인원만 동원할 수 있다면, '호랑이 몰이'가 놈을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타실다르는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일 아침 10시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소녀가 사고를 당했던 나무 밑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사람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식인 동물에 대한 공포가 지역 전체에 깊게 스며들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을 모르려면 아마도 부탁 이상의 그 무엇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정각 10시가 되자 타실다르와 한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 뒤로 2명, 3명, 10명…. 정오에는 298명이 모였다.
우리는 계곡 위쪽 끝을 가로질러 반대편 산에 도착했다. 경사가 급격히 심해지는 지점에 이르자 얇은 가죽신을 신고 있던 타실다르가 신음을 내뱉으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가 물집 잡힌 발을 주무르기 위해 신발을 벗는 순간, 성질 급한 몰이꾼들이 내 신호를 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혀를 차며 산을 달려 내려가던 나는 골짜기 입구 근처에 작은 풀밭이 있음을 발견했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일단 그곳에 앉아서 호랑이의 출현을 기다리기로 했다. 5∼6m 높이로 자란 무성한 잡풀들이 내 몸을 숨겨주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호랑이가 나를 못 볼 가능성은 충분했다.
산등성이는 총소리와 요란한 북소리, 수백 명의 고함 소리로 인해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음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순간, 전방 300m 지점의 좁은 골짜기 사이에서 호랑이가 풀이 우거진 비탈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소나무 밑에 있던 타실다르가 재빨리 산탄총 두 발을 쏘았고, 총성에 놀란 호랑이는 급히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놈이 순식간에 빽빽한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걸 보면서 나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총 한 발을 쏘았다.
세 발의 총소리를 들은 산등성이의 몰이꾼들은 당연히 호랑이가 사살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총알을 완전히 바닥낸 다음 들뜬 기색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그때 전방 왼쪽에서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더니 시냇물을 단번에 건너 골짜기 쪽으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0.5 구경 변형 코르다이트 라이플 총을 발사했고, 총알은 정확히 놈의 등줄기를 파고들었다. 호랑이는 고개를 숙이면서 나를 향해 몸을 반쯤 돌렸다. 불과 30m도 안 되는 사정거리 내에서 놈의 어깨가 뚜렷이 노출되었다. 두 번째 총알을 발사하자 호랑이는 잠시 움찔했지만 귀를 납작하게 내리고 이를 드러낸 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즉시 세 번째 총알을 발사해야 했지만 내겐 더 이상의 탄약이 남아 있지 않았다.히말라야에 있는 우리의 여름 별장에서 30km 떨어진 곳에는 높이가 약 3km에 이르는 산등성이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등성이의 동쪽 끝에서 위로 올라가면 귀리를 심어 놓은 구릉지대가 나오고, 그곳의 바위 절벽에서는 코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어느 날, 산등성이의 북쪽 사면에 있는 마을의 여자들이 귀리를 수확하고 있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들이 앞다투어 달아나는 와중에 노파 한 명이 발을 헛디뎌 가파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비명 소리에 놀란 호랑이는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고, 한참 만에 겨우 평정을 되찾은 여자들은 즉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절벽 중간의 좁은 바위 턱에 쓰러져 있는 노파가 발견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노파는 온몸에 골절상을 입어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구조 방법을 의논하던 여자들은 마을로 가서 남자들을 불러오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지키고 있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파는 제발 자기를 혼자 남겨 두지 말라고 애원했고, 결국 마음이 약해진 16세 소녀가 혼자서 현장에 남기로 했다.
노파가 누워 있는 바위 턱 근처에는 안쪽으로 약간 함몰된 지점이 있었다.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노파는 자기를 그리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고, 소녀는 어렵고 위험한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노파가 옮겨진 곳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소녀는 입구에서 노파를 바라보며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뭔가 속삭이던 노파가 갑자기 눈을 치켜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움찔 놀라며 고개를 돌리던 소녀의 얼굴이 극도의 공포로 인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어깨 너머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