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빵 속에 담긴 작은 행복 이야기
박경희 지음 | 평단문화사
병적일 만큼 자신을 학대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명한 루즈벨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소아마비에 걸리고 맙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대고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정치가로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에겐 큰 충격이었지요. 그의 아내 엘레나가 정원 산책을 하자고 말을 건넸습니다. 비가 오고 난 뒤여서인지 정원은 깨끗하고 꽃향기도 진했습니다. 휠체어를 밀던 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뒤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꼭 오지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한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 시련은 맡은 일을 더 겸손하게 하라는 뜻일 거예요. 우리 조금만 힘을 내요." "하지만 난 불구자인데…. 그래서 당신을 더 힘들게 할 텐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한단 말이오?" 루즈벨트 대통령은 심한 열등감에 빠져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손을 꼭 잡습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그럼 내가 그 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단 말인가요?" 이 말은 열등 의식과 패배감에 젖어 있던 루즈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예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으로 미국의 대통령에 연속해서 네 번이나 당선되었죠.
우리가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말 한마디 하는 건데 그것 못하겠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짜증을 내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들은 스스로에게도 가해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속상해하다 못해 그 속에 묻혀 버려 결국은 파멸된 상태로 가는 경우도 많지요. 열등감은 병입니다. 그 병의 특효약은 칭찬과 사랑일 것입니다.우연히 전문직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통역사, 카피라이터, 기업체 사장, 요리사, 소설가 등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삶을 기초로 특별한 삶을 창출한 여성들이었어요. 그들의 오늘을 만든 건 '흔들림'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싸움을 말하는 거겠지요. '자아의 흔들림'이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지요.
한 여자분은 결혼하고 5년 동안 자신을 위해서는 투자하지 않으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 기막힌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여자 맞아? 지금 하고 있는 꼴 좀 봐!" 이 이야기를 듣고 당황해하다 결국은 자신을 되찾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전공을 다시 찾기 위해 회화반에 등록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올림픽 때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고, 지금도 일이 밀려 있다고 하더군요.
남편의 한마디가 가슴에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그 바람이 자신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이지요. 이 말을 끝내자 많은 여성들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동조하더군요. 그들은 '자아의 꿈틀거림' 때문에 삶이 바뀐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여성들은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한다는 자세도 똑같더군요. 시간을 내어 부족한 부분을 배우러 다니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성공한 여성들을 가만히 보면 일고 완벽하게, 아이를 키우는 데도 프로답게, 아내 역할도 잘 하면서 살더군요.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지면 안 되겠지만, 즐거움으로 이 모든 일들을 하다 보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자아의 흔들림은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흔들림을 에너지로 승화시킨다면 그건 가족 전체에게 행복을 주는 길 아닐까 싶어요. 늦게나마 자신의 재능을 찾아 그 길을 모색해 간다면 좋은 일이지요.루마니아 북서부 끝에 위치한 사픈차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곳은 '즐거운 묘지'라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처음에는 공동 묘지를 즐거운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상했지만 알고 보니 그 곳은 묘비명부터가 평범하지 않았어요.
"나는 불치의 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병상에 있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서 호떡을 사 들고 병문안 와 준 친구들 얼굴에 가득 찬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한결같은 애정을 보여 준 사랑하는 안나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육체의 아픔을 이길 수 있었다.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600여 개의 공동묘지에 '죽은 이의 말'이 써 있었습니다. 1인칭 화법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공동묘지 특유의 으스스한 기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이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곳의 특징이었습니다.
시픈차 마을의 공동묘지는 묘비들의 색깔도 달랐습니다. 묘비명 위에 꽂아 놓은 비둘기가 흰색이면 정상적인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검은색은 비극적인 죽음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각 묘비명마다 그 사람 생전의 별명을 적어 놓은 점도 이색적이지요. 그것은 문안하러 온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죽음의 철학을 읽는 듯한 느낌이지요.
누구에게나 죽음은 견인되어 가는 자동차처럼, 홀연히 다가옵니다.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조금이나마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될 것 같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되는 대로 '나의 묘비명에 쓰일 문구'도 써놓을 예정입니다. 내 묘비명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생전의 내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겠지요.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내 묘비명 앞에 언제나 싱싱한 꽃들이 놓여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죽어서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살아야겠지요.무료 '염' 봉사5장 삶에 지친 영혼에게 책 한 권을…
책 읽어주는 사람 - 북텔러불과 30년 전만 해도 내복을 안 입은 사람들이 드물었지요. 시골의 겨울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은 사랑방에서 마실 온 동네 사람들과 새끼를 꼬든지 내기 장기를 두었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은 화롯가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 꼭 해야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를 잡는 일입니다.
제일 따뜻한 아랫목에는 어른들이 앉고,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윗목에는 아이들이 앉습니다. 자리 배치가 적당히 되고 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복을 훌러덩 벗지요. 기어가는 이를 잡아 화로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를 잡은 다음, 내복 솔기마다 들러붙는 서캐 잡느라 정신 없었지요. 그때는 대부분 빨간 내복을 입었어요. 지금처럼 얇은 것이 아니라 모포자루 같이 두꺼운 걸로 말입니다. 내복을 입으면 연료비가 10%는 절약된다고 하더군요. 수치로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생물학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밤마다 화롯가에서 이를 잡던 시대가 더 행복했습니다. 지금 우리 몸은 너무 독한 세제를 쓰고, 농약이며 방부제 등을 먹어서 이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건 억지 주장이 아닙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함은 주었지만, 진짜 소중한 것들은 다 빼앗아 갔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빨간 내복을 입은 당시를 생각하면, 모든 게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덧칠한 게 아무것도 없었던 거지요. 겉모양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마음도 순박했지요. 빨간 내복을 입고 다시 화롯가에 앉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요.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기에 자유를 더 갈망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제 속에서 누리는 자유의 기쁨이 더 큰 것이지, 무한한 자유는 이미 의미가 없습니다. 절제는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좀더 차원 높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참는 것이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입니다.
'생각'을 절제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생각까지 절제해야 한다는 건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생각의 주머니는 무한대라 생각해야 할 것만 생각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음란한 것, 증오심, 미움, 도망치고 싶은 마음,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 일하지 말고 실컷 놀러 다니고 싶다는 욕망, 쉽게 돈 벌고 싶은 마음…. 이런 생각들은 아예 애초부터 생각을 안 하는 버릇을 갖는 것, 바로 이것이 '생각의 절제'겠지요.
요즘 청소년 범죄를 일으킨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냥 심심해서 그랬어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별 생각 없이 때렸어요." "전 생각 같은 것 골치 아파서 안 해요. 그냥 사는 거죠." 생각을 안 한다는 건 생각을 절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뜻이지요. 정작 생각하며 살아야 할 때 생각을 저버리고 마음대로 행동하는가 하면,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피곤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올바른 생각 속에서 참된 행복이 잉태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굴만 보아도 압니다.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지만, 생각처럼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없습니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길은 달라질 것입니다.가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 '북텔러'라는 직업도 포함되지요. 북텔러란 말 그대로 '책 읽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책을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 거지요. 요즘은 '북텔러'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중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프랑스 작가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소설이 있지요. 서른네 살 마리 콩스탕스가 친구의 권유로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처음 이 착안을 하면서 불구자, 환자, 노인 정년퇴직자, 독신자 등등을 고객으로 생각했지요. 북텔러는 지금도 그런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너무 바빠 1년에 책 한 권 읽기 쉽지 않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족 얼굴 보는 시간보다 많은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평소에 읽고 싶던 책을 낭랑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내용이나 감동을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직접 읽는 것보다 못하더라도 말이에요. 이미 베스트셀러 중에 몇 권은 오디오 북으로 나와 있더군요. 반응이 꽤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오디오 북은 아무래도 시각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햇살 한 번 볼 수 없는 환자나 장애인들에게 감미롭고 편안한 목소리로 책 한 권을 듣게 한다는 것, 그것처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터닝 포인트98년 8월 18일에서 22일까지 북한을 다녀온 이야기를 할게요. 남편 사십구제 마치고 갔지요. 허탈감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마침 내 나라 내 동포에게 빵을 건네기 위해 북한에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사명감도 느껴지고 가슴이 설레기도 하더군요.
북한 땅을 직접 밟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어요. 우리 일행이 머문 곳은 북한에서 가장 고급스럽다는 고려호텔이었어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창 밖으로 평양 거리를 내려다보았어요.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반듯했습니다. 평온했지만 제복을 입은 교통관들과 여성들의 단정한 옷차림 등을 보면서, 현재 내가 어디 서 있는가를 실감하겠더군요.
다음날부터 업무가 시작되었지요.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유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온몸을 조여오는 것 같았습니다. 가기 전에 이미 들었던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캐 먹는 아이들, 소나무 송진을 빨아먹는 주민들, 목숨 걸고 압록강을 건너가는 북한 동포들…. 이 말들이 사실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배고파서 누워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아이 곁으로 갔습니다. 그 아이 손을 잡는 순간, 내 가슴에 불덩이 한 뭉치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좀 잘 살게 되었다고 얼마나 흥청망청 먹을 것을 버리며 살아왔나. 아프리카 난민 아이들과는 또 다른 가엾은 아이들, 이들이 누구인가? 이념 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배고파 눈조차 뜰 수 없는 저 아이들을 외면한다는 것 자체가 죄악 아닌가. 도와줘야 한다. 도와야 한다는 데는 어떤 조건이 붙을 수 없다'
지금도 월드비전에서 세워준 국수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전쟁 식량으로 쓰일 것을 막기 위해 젖은 국수만을 뽑아내고 있지요. 당장 아이들에게 먹을 것만 생산하는 것도 바쁜 처지라고 하니 우리가 도와주는 물자가 엉뚱한 데 쓰이는 건 아닌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굶주린 아이들을 만나 보았지만, 북한 아이들만큼 가슴 아팠던 적은 없습니다. 저들은 내 민족, 내 아이들이니까요.작년에 케냐와 우간다, 인도에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케냐는 심한 가뭄 때문에 그들은 월드비전에서 제공하는 구호물자에만 의존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간다는 수단과 국경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물로 바쳐지는 나라였어요. 우간다 반군들은 소년소녀들을 납치해 가고 있었습니다. 소년들에게는 총싸움을 시키고, 소녀들은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고 하더군요.
인도에 가서 본 모습들은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인도는 첫째 아이는 여자든 남자든 키운다고 해요. 그런데 둘째부터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사흘을 그대로 방치해 둡니다. 그런 후에 독초로 수프를 만들어서 먹입니다. 5분에서 10분이 지나면 여자아이는 죽고 맙니다. 인도는 여자들이 결혼하려면 지참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흘만에 죽이는 이유는 정들면 죽이기 힘들기 때문이라니 끔찍합니다. 모두가 가난 때문입니다. 월드비전에서 할 일은 여자아이를 낳은 집을 찾아가 염소 한 마리를 사주는 것이었지요. 일년이 지나면 송아지 한 마리를 또 사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말입니다. 저도 12명의 여자아이 몫의 염소를 사주었습니다.
인도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가 지은 빚 50불을 갚기 위해 평생 노예가 되었습니다. 밧줄 공장에서 새끼줄 꼬는 일과 잎담배를 나르는 일을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합니다.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고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 자리에서 50불을 갚아주었더니 그 어머니가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50불은 아이들 간식비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일지도 모릅니다. 그 돈 때문에 한 어린 영혼이 평생 노예처럼 살 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과는 하루 빨리 결연을 맺어서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이 모두 2천 불이었는데 몽땅 내놓았습니다. 그 돈이면 40명의 아이들을 풀어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럴 수 있었던 건 나만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들려오던 "도와줘야 한다."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지요. 고통당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어찌 외면할 수 있나요.냄새 풍기며 한 끼의 식사를 얻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는 모습,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노숙자, 대학로는 노숙자들의 집결소 같습니다. 저들도 한 때는 어엿한 직장인이며 가장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쪽방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한 사람 발뻗고 누우면 꼼짝도 할 수 없는 방, 그 방마저도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가 없어 대학로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