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마음 안에 있다
폴 브레너 지음 | 북라인
침술의 과학성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 있던 나는 내가 가진 과학적 지식으로 침술의 코를 한번 납작하게 눌러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종의 '더블 블라인드 실험(double blind study : 실험자와 피실험자 모두 약이 진짜 약인지 위약(偉藥)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을 계획했다. 나는 피실험자로 나선 두 사람에게 전기저항계로 상대방의 몸을 짚어 가며 전기저항이 떨어지는 부분에는 펜으로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일렀다. 두세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의 몸은 온통 점박이 문신 투성이로 변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두 젊은이의 몸에 표시된 점의 위치는 4,500년 전 중국의 내과 의학 침술 자료에 있는 것과 일치했다. 20세기 후반을 살고 있는 한 의사가 그 까마득한 옛날에 지혜롭고 박식한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늘 내 자신을 뛰어난 지식인으로 알고 살았다. 나는 의대에서 알아야 할 모든 내용, 아니 그 이상을 숙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의과 대학을 졸업하던 순간 나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안다'는 사실에 더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도 오만한 지식인이었던 나였지만 온몸에 점으로 문신을 한 두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내가 그렇게도 대단하게 여겨 오던 기존 지식에 대한 회의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나는 건강과 치료에 관해 현대 의학이 가르쳐 준 지식,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눈을 떴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나는 그 무엇의 정체를 풀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 첫 단계로 나는 광적으로 침술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을 보이면 그 즉시 침을 놓아주었다. 그 덕분인지 우리 가족은 그후 몇 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말 그대로 건강 가족이 되었다. 자신을 얻은 나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과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서서히 침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산부인과에만 국한되어 있던 내 좁은 시야를 깨치고 인간의 팔, 다리, 두통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무엇보다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의 정신 세계에 관심을 갖는 의사가 되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침술을 행한 결과 마지못해 침을 맞은 환자의 경우는 35% 정도가 효과를 보았고, 적극적으로 침을 맞은 환자의 경우는 80% 이상이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냈다. 서양 의학에 대비한 침술의 효과를 알릴 취지에서 우리는 기존의 서양 치료법으로 별 차도를 보이지 않던 환자들을 침술 치료의 주 대상으로 삼아 치료한 결과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보았다.
침술 치료가 통증을 억제하는 뇌하수체 호르몬의 하나인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1980년 이후의 일이다. 신경학자들과 신경외과 의사들이 환자의 통증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기 자극 요법을 시행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전기 자극이라는 이 새로운 치료법이 전통적 침술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랴? 하지만 의학계는 자기네들이 직접 발명했다면서 그 공을 차지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알고 보면 현대 의학계가 뻔뻔스럽게도 자기 고유의 것으로 주장하고 나서는 그 '발명 특허권'은 그밖에도 많다. 심장 질환 치료나 예방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은 그렇다고 쳐도 운동이나 식이 요법 혹은 명상까지 고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침술의 효능을 입증하는 과정에서도 현대 서양 의학은 침술이 다져온 4,0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뻔뻔스럽게 강탈하고 있는 셈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의사들은 플라시보 요법(약물활성이 없는 가짜 약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일종의 신념 치료)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은 꾀병 환자로 몰아붙여 병원 밖으로 쫓아 버렸다. 그러나 침술 의학에 눈을 뜬 이후로 나는 그 '꾀병 환자'들에게 우리 의사들이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통해 플라시보 요법이 효능을 발휘하는 원리를 제대로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약 한 첩 쓰지 않고도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자가 치료법을 환자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얼마나 획기적인 발견이 될 것인가?수련의 과정에 있을 때 한 10대 산모가 분만 도중 심장이 멎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같은 분만실에 있던 동료 레지던트와 함께 나는 서둘러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다. 다행히 그 10대 산모는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산모의 심장이 다시 멈추자 나는 다시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고, 고맙게도 그녀는 또 살아나 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상태가 위중한 환자를 살려내려 여기 저기 수술방마다 불려 다녔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전문의가 되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섯 아이를 둔 어떤 산모의 자궁 절제술을 집도했는데 수술 도중 멎어버린 산모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 못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았던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다.
의학이란 때로 의사들에게 노화나 노쇠의 진전을 막을 뿐 아니라 죽어가는 목숨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산모가 죽기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절망에 대한 교훈을 제대로 배웠어야 했다. 아버지의 심장이 멎던 그 순간, 세상의 시간도 멎은 듯 느껴졌다. 아버지는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나도 허망하게 그렇게 가시고 말았다. 그때 내가 한 일이란 의사를 찾아 복도를 헤매다니던 게 고작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남은 가족들은 무기력함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한 의사들 또한 그런 가족들 못지 않은 무기력감과 절망감에 괴로워하기 마련이다. 내가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내는 과정에 죽음도 절망도 모두 지나칠 수 없는 필수적인 통과 의례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던 그때, 나는 내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부처를 만났던 셈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던 절망감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았어야 했다.
오늘날 의사들은 치료나 수술에 앞서 환자에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세세히 설명하기는 한다. 표면상의 이유는 의학계의 '미란다 원칙' 때문이지만 그 이면의 진짜 이유는 환자의 알 권리를 배려해서라기보다는 혹시라도 의료 과실이 발생할 경우 법적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전문의가 되고 몇 년 간, 나는 암환자가 죽어갈 때나 기형아가 태어날 때면 심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유전적 결함을 안고 태어나는 신생아는 그 부모는 물론 내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을 가져다 주었다. 아무리 의사인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내 무력감을 달랠 수는 없었다.
과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개발되는 현대 사회에서 누가 절망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과학은 죽음, 질병, 실패로부터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지만 분명 그 테크놀로지도 이루지 못한 약속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력하게 새로운 의학적 돌파구가 발견되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결국 테크놀로지는 아니라고 본다. 의사들은 기다림에 지쳤고, 환자들은 배신감에 낙담한다. 이 모든 것이 희망이라는 구원을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찾은 결과이리라.3. 삶의 은유
위기를 기뻐하며 맞으라4. 내면의 그림자에 맞서라
정직한 만큼 건강할지니5. 불치병으로부터 얻는 지혜
인정하는 순간 평화가 온다6. 균형 잡힌 건강
건강의 새로운 정의7. 내 마음 안의 부처미국에서의 의학은 방어적인 개념일 뿐 '예술'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의사들은 오진과 의료 과실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료 경력, 의료 기록, 변호사를 두려워해서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서양 의사 중 한 사람인 나는 과테말라에서 내 의지대로, 즉 자발적으로 의료를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샌디에이고로 돌아가 기존의 의학 세계에 다시 몸을 담을 것인지, 완전히 새로운 다른 의학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과테말라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받아들여지는 행복한 경험을 했다. 과테말라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과테말라에서 자유를 경험하던 중에 나는 소설 속에 나오는 거룩한 신부님의 전형과도 같은 한 신부를 만났었다. 영어에도 능통했던 그 신부가 하루는 지진 피해가 심각한 마을을 돌아보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며 내 의사를 물었다. 나는 흔쾌히 그의 낡은 회색 폭스바겐에 올라탔다. 지진으로 도로가 패인 곳에 이를 때마다 그는 잠깐 차를 멈추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아디오스(Adios : '안녕', '잘 가시오'라는 뜻의 스페인어)"라고 말하곤 했다. 신부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도 자주 차를 세웠다. 그를 보고 다가오는 주민들에게 그는 일일이 가족들의 안부와 불편함은 없는지 물었다. 인디언들은 그런 신부의 모습만 보고도 상처가 낫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길에서 만난 인디언들 중 어깨에 심한 타박상을 입어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침을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침이 될 만한 못을 구해 환자의 피부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침점을 조심스럽게 자극했다. 그 창의적인 즉석 침술이 끝나자 환자는 다친 팔을 크게 한 번 휘둘러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팔을 쓸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표시인 듯 이가 하나도 없는 입을 벌려 환하게 웃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다른 주민들도 내 등을 두드리면서 공을 치하해 주었다.
과테말라를 떠날 채비를 하다가 문득 과테말라 사람들이 가진 유일하고도 귀중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가시지 않던 미소가 생각났다. 끔찍한 대재난 속에서도 과테말라인들은 웃고 있었다. 또 자신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면서 자신들을 치료해 주러 온 사람을 오히려 치료해 주는 기적을 행사했다.
과테말라 여행을 통해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물, 또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현재의 내 자리를 파악하는 데 실마리가 될 은유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때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그럴 때는 쉽게 생각하자. 신발이 맞으면 신고, 맞지 않으면 맞는 사람을 위해 남겨 두면 된다!
우리네 삶은 대탐험과도 같은 길이다. 우리는 누구 한 사람 예외없이 자기 내면의, 또 외면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태어난 존재다. 또 순간 순간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도 갖고 태어난 존재다. 이 기회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자기 나름의 진실, 삶의 지침, 확실성을 제대로 발견하는 길은 지성과 육체를 통한 '앎'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가능하다. 기억하라. 건강이라는 정상을 향해 부단한 행진을 계속하는 여정에 있어 우리 삶에 주어진 순간 순간들은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언젠가 8년 동안 뉴기니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이 들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다친 다리가 심하게 감염되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결국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뉴기니를 떠날 때가 되자 마지막 날 밤에 그는 자신을 돌보아준 데에 대한 보답으로 원주민들 모두에게 즉석 사진을 찍어 선물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건네주는데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그 원주민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건 조금 전의 나군요."
그는 물론 다른 원주민들 모두 상대성 이론을 알 리가 만무하다. 대신 그들은 인간의 삶을 시공의 연속체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매순간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삶에 있어 변형이란 1초, 1초마다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미지의 불확실성까지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자기 비하나 비교가 아닌 자기 평화와 자기 발견을 통해 자기 마음 속 어두운 그림자를 다 찾아내야 한다. 또 자기가 비난하고 책망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부인하고 살아온 모든 것들도 자기 것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칼 융은 우리가 부인하고 살아온 내 안의 모든 것들을 그림자라고 불렀다. 변형은 변화다. 하지만 대상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이 세상에 내가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무도 없다. 그저 변화될 필요가 있는 내 자신만 있을 뿐이다.
자기 실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의 문도 열린다. 어제의 내가 죽는 순간, 나는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로 부활한다. 우리 마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 뒤에는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그 날만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부처가 있음을 잊지 말라. 삶이라는 범우주적인 진리, 그것은 한낱 인간인 우리로서는 그 개념조차 파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진리는 정지 상태의 명사형이 아니라 진행 상태의 동사라는 사실이다. 그 진리는 우리가 쟁취해야 할 구체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것만 이해하고 있어도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고착 상태에서 의식이라는 유동적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다. 의식하지 못하고 무의식 속에서 사는 삶은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막 40대에 접어든 미니가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었다. 몸무게는 기껏해야 30kg이 채 안 되어 보였고, 악성 임파육종으로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 동안 전 화학 치료에다 방사선 치료는 물론 수술까지 받았어요. 그뿐인가요? 몸에 좋다는 건 뭐든 다 찾아 먹었어요. 갯보리까지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어요. 그 덕에 위장만 탈이 나서 1년 넘게 고생을 했지요. 아무튼 전 남들이 먹으라는 것만 먹었고 먹지 말라는 건 입에 대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제 스스로 달팽이 요리를 먹었어요. 아, 얼마나 맛이 있던지요. 지난 1년간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봤어요. 도대체 전 제가 먹고 싶어하는 걸 왜 그렇게 오래 참았을까요? 도대체 전 제가 원하는 삶을 위해 왜 그렇게 오래 참았을까요? 전 아이들도, 이혼한 전 남편도 사랑해요. 근데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요? 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지는지…."
"그저 더 많은 것만 바라던 저의 그릇된 욕망이 남편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아 버린 거예요.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에 남편을 용서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어요. 중요하게 여기며 살던 것들도 알고 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이젠 제가 가진 것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제가 가지지 못한 것도 인정하는 마음,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 것 같아요."
거의 8년이나 되는 세월을 유방암과 싸워야 했던 서른여덟 살의 크리스티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전 지금에야 내게 뭐가 최선인가를 놓고 의사가 하는 말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전 암에 걸렸고, 벌써 7년 이상 투병 생활을 했어요. 제가 감당해야 할 절망만으로도 벅찬 상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