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어때서
김상준 지음 | 코드
1. 내 사랑도 내 마음도 변한다. 그게 뭐 어때서
나에겐 배신의 피가 흐른다.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기대한다. 그리고 사랑할 때는 정말 자신의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사랑이 점차 식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된다. 또한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사랑이 식었다고 하며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 때 사랑이 식어버린 쪽이나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나 모두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인간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상대방을 다시 사랑하려고 해도 별로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는 배신의 피가 흐르고 있어 이렇게도 마음이 빨리 변하는 것일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대사로 사랑의 속성을 인정하지 못해 괴로운 마음을 표현한 말로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 분)는 어느 겨울 강릉 방송국 라디오 PD인 은수(이영애 분)를 만나게 된다. 둘 사이엔 사랑이 싹트게 되고, 상우가 강릉에 내려오면 은수의 집에서 동거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둘이 처음 만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서 은수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느닷없이 은수는 상우에게 한 달 동안 만나지 말자고 한다. 은수의 사랑은 사실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식고 만다. 물론 상우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잃기만 하는 법은 없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상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생물학적인 작용이든 아니면 인간의 변덕스런 면 때문이든 본질적으로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은수의 탓도 상우의 탓도 아니다.
켈틱 족에 내려오는 신화에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가 있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이졸데 공주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고, 둘은 불륜의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결국 트리스탄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고, 이졸데의 품안에서 죽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전설을 보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3년간 사랑의 열정을 지속시키는 묘약을 나눠 마신다는 대목이 나온다. 사랑을 불러 일으키거나 사랑을 지속시키는 약물이 있다는 것일까?
인간의 뇌에는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물질이 존재한다고 밝혀졌다. 사랑에 빠지면 기분이 들뜨고, 낭만적인 사랑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암페타민(amphetamine:마약인 필로폰과 친척 관계)의 일종인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PEA) 분비 때문이다. PEA라는 물질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를 좀더 오래 붙들어 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일정 기간 후에는 그 동안 뇌에서 많이 분비되던 PEA의 분비가 떨어지게 된다. PEA의 분비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분비된 PEA에 대해 뇌가 내성을 보이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사랑의 열정은 조금씩 식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뇌에서 PEA의 바통을 이어받은 물질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마약인 모르핀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엔돌핀의 분비로 인해 둘 사이의 관계는 편안하고, 안정되게 유지된다. PEA가 분비되는 기간은 18개월에서 3년 정도로, 만약 규칙적으로 만날 경우에는 2~3년 정도까지 지속된다. 사람들은 이런 기간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먹었던 사랑의 묘약의 시한을 3년으로 잡은 것이 아닐까?
위에 언급한 대로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이런 생물학적인 작용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사랑이 식는다고 해서 자신의 성격에 결함이 있거나 배신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사랑이 식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동안 둘이 쌓아왔던 인생의 동반자라는 신뢰감과 좋은 감정들이 연인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항상 생물학적인 작용 이상의 것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
도대체 맞지 않는 그대와 나예전에는 부부 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주로 부인만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즈음에는 부부가 함께 상담하는 비율이 많이 늘었다. 10명 중 3명 정도는 남편도 함께 치료를 받는 편이다. 실제로 부부의 문제는 한쪽의 일방적인 문제로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상담을 해야만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고, 치료가 쉽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문제는 성격 차이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중심을 자신으로 잡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성격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배우자나 연인이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을 커다란 결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서로 성격이 다르니 맞지 않는 부분이 당연히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방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우리 사회처럼 집단주의가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는 나와 남이 다르면 그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사람들 사이에 시각의 차이가 없다면 아마도 세상은 모두 똑같은 사람들로만 채워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직업, 선호하는 취미, 가지고 싶은 물건, 입고 싶은 옷, 사귀고 싶은 사람, 인생의 가치관 등 변수들의 조합으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경향을 성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좋고 싫은 것을 결정하는 데는 일단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기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덧붙여 환경적으로 영향받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각자 다른 변수를 가진 사람들의 만남에서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이혼이나 이별을 할 때 흔히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이유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은 되도록 자신의 성격에 상대방의 성격을 끼워 맞추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도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애정이 없거나,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라며 화를 낸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의 갈등에서 상담의 해결점은 대부분 상대방의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배우자나 애인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나 정상이다. 사랑한다면 상대의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2. 누가 뭐래도 나는 남과 다르다. 그게 뭐 어때서
나쁜 여자로 사는 법영화에서도 나쁜 여자는 많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나쁜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선택해서 분석해 보면, 어떤 조건에 있는 여성이 사회에서 말하는 '아주 나쁜 여자'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영화 <해피엔드>의 제목만을 보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남성의 입장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가치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해피엔드로 끝난 영화이다.
요사이 서구 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점점 가족의 해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가족의 해체는 불가피하게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가부장제의 위기에까지 이르러, 아버지나 남편만이 가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가장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가부장제의 붕괴를 그냥 두고 볼 남성들이 아니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가부장제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고, 남성들의 권리가 지나치게 많은 사회에서는 더욱 이에 대한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해피엔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있는 남성들의 반격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이 영화에서 민기가 간음을 저지른 아내인 보라를 살인하게 되는 영화 속 장치를 살펴보자. 민기의 아내는 간음을 저지른다. 이것만으로는 살인을 하기에 부족하다. 왜냐하면 사실 간음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민기의 살인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다른 정황을 깔아놓기 시작한다. 민기는 여성보다 더욱 여성스러울 정도로 살림을 잘한다. 게다가 영화의 초반부에 그는 아내 대신 아기를 놀이방에서 데려오는 등 가정에 매우 충실한 남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결점이라면 실직자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반면 보라는 영어 학원을 하는 커리어 우먼이며, 실직한 남편을 구박까지 한다. 둘의 대비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의 살의를 조금씩 이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민기가 아내의 간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아기에게 있다. 아기에게 수면제까지 먹이고 정부와 놀아나는 아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기는 바로 민기가 가지고 있는 순수성을 상징하며,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고, 또한 그의 살인을 정당화시키는 마지막 장치인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좋은 아내와 좋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여성은 죽어도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영화는 사실 가부장제 하에서 흔들리는 부권을 고민하는 남성들의 복수극인 것이다.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남성들이 흔들리고 있지만 차분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대상은 바로 가정을 버리는 여성, 간음하는 여성, 그리고 자식을 돌보지 않는 여성, 그리고 남편보다 좋은 직장을 다니며 남성을 무시하는 여성들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남녀를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어떤 남편이 아내 이외에 다른 여성을 만나고,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자신이 더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아내를 구박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에 분노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다면 영화 <해피엔드>에 비해 뭔가 살인의 동기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은연중에 여성에게 더 많은 도덕성과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떠맡기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도 남성과 여성에 대한 기준은 다르게 적용된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남성에게는 좋은 덕목이 여성에게는 아주 나쁜 덕목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아무리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파워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나쁜 여자'라는 판단은 편견에 의해 많이 치우쳐 있으며, 이로 인해 여성은 여전히 불이익을 받고 있다. 나쁜 여자라는 주변의 평가는 대개 독립적이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여성을 일컫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회의 가치 기준에서도 이런 나쁜 여자들이 많아지게 되면, 더 이상 나쁜 여자라는 평가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나쁜 여자라는 평판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신을 멈추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우리 사회는 나쁜 여자라는 평가를 받는 여성만이 성공할 수 있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싫어. 느낌대로 살 거야과연 느낌이나 직관을 믿는 것은 과학 시대에 걸맞지 않는 비합리적이며 미신에 젖은 행동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 1993년 처음 TV에 등장했을 때 소수의 열광적인 팬들이 숭배하는 컬트 드라마로 분류됐다. 하지만 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는 꾸준히 높아졌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로 명확한 결말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아리송한 결말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일단 어떤 대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어야 그 대상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무의식적인 투사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고 인과 관계를 지나치게 밝혀 버림으로써 인간의 무의식적인 상상력은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상상의 나래를 펴는 만족감을 을 통해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두 사람의 역할과 상반된 성향 때문이다. 의학을 전공했으며,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스컬리(질리안 앤더슨 분)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을 하는 멀더(데이빗 듀코브니 분)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사건 해결에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멀더가 사용하는 직관이 항상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컬리의 이성적인 판단은 항상 멀더의 판단력에 과학적인 근거만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성이 직관의 시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사고 체계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직관적인 판단을 하고 나서 이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기 위해 이성적인 근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왜 멀더와 스컬리는 로맨스에 빠지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사고 체계에서 이성과 직관은 서로 모자란 점에 대해 계속 견제하고 비판을 가함으로써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성과 직관이 밀월 관계에 빠지게 되면, 이 균형은 깨지고 만다. 직관이나 이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서로가 가진 장점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현대처럼 느낌이나 직관이 천대를 받고, 이런 기능에 대해 관심이 없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사실 과학적인 사고는 100여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을 뿐, 그 이전의 수많은 시간 동안 직관과 느낌은 인간의 사고 체계에서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 상태와 자신의 내면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를 통해 인생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느낌이나 직관은 자주 사용하고 믿는 자의 몫이다. 이제 이성과 느낌, 직관 사이에 균형을 가져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느낌이나 직관은 이성에 뒤지지 않는 판단 도구라는 점이다.
3. 세상과 인생은 불공평하다. 그게 뭐 어때서
내가 변하는 것이 싫은 사람들
이 글은 지금 책을 보는 사람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주제이다. 이것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다 보면 자신을 주변의 희생자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모든 문제를 주변 사람들에게 돌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소집단이든 직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든 항상 그 집단에서 기능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그 사람이 제대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것을 은연중에 방해하고, 그 사람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조종하는 수가 있다.
알코올 중독인 주부가 있었는데 한 달 이상 금주했다. 그런데 남편이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녀가 의지력이 약하니 곧 술을 다시 먹을 거라고 빈정대며 이상하게 집안일에 대해 트집을 잡고, 싸움을 걸어 오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은 좋은 쪽으로 변하려 하는데 왜 남편은 그걸 원치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경우 남편은 아내가 술을 자주 먹게 됨으로써 도덕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는 아내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약점 때문에 남편이 잘못을 하더라도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의식적으로는 아내가 술을 끊고, 살림을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내가 술로 인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기를 바라는 심정도 있다. 그래서 아내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며, 술을 끊은 기간 내내 비아냥거리게 된다. 이런 남편의 반응 때문에 '내가 지금 좋아지고 있는데, 왜 남편은 이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아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