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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중 지음 | 열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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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중 지음
열매출판사/2002년 8월/344쪽/9,000원
기도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행위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에 두고 있다. 이고득락이란 말 그대로 ‘괴로움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온갖 문제에 당면하면서 아픔, 괴로움, 불행이라는 고통을 받고 있다. 다종다양한 우리의 현실에서 당면하는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사명이자 목적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바로 삶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현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불교 공부를 하고 살아가는 것이 불교적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알고 이해한다고 해서 불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교적인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부처님의 근본 뜻을 잘 해석해서 선근(善根)이 성숙하게 만들고, 스스로 마음을 잘 보호하여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삶의 장애를 이겨 내느냐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스스로 범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고쳐서 보다 더 바람직한 삶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 불교적인 삶이라 할 수 있다.
기도는 불교적인 삶을 위한 닦음의 과정이다. 삶의 실상을 바로 깨닫고 거기에 대한 올바른 삶을 찾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있어 필연적인 수행 과정이 바로 기도다. 기도를 하다보면 저절로 신심이 생기고 저절로 신행(信行)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기도는 불교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다스리는 과정이자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환희심을 갖고 삶의 지혜를 열어가는 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도를 단순히 개인의 소망을 성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보지 않고 수행으로 보았을 때 기도는 참선, 간경, 염불, 독경, 사경, 절과 다를 바 없는 수행 방법이다. 큰 범주로 생각하면 이러한 수행 방법이 모두 기도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므로 훌륭한 공덕을 쌓는 모든 방법을 기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도를 성취하는 방법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시작한 기도라 할지라도 기도를 하다보면 저절로 자신의 수행을 쌓아가고 인격을 완성해 가는 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최종목표는 수행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굳은 믿음으로 기도를 하되 기원하는 바가 순수하고 진실해야 한다. 반드시 성취한다는 궁극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기도를 성취하는 바탕이라 하겠다. 기도하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 그것이 한마디로 기도를 성취하는 비결이다.
우선 참회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참회(懺悔)라는 것은 무조건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면에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즉 자신이 꼭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현재 자신이 갖고있는 탐․진․치(貪瞋癡)의 마음을 비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아주 작은 것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복이 들어갈 수 없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발원이다. 세속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소원과 발원은 다르다. 발원은 스스로 보리심을 내는 것을 말한다. 보리심으로 큰 뜻을 세워 원하는 것이 발원이다. 이것은 소원보다는 스스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들고 다닌 마음을 놓아버리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얼마 후였다. 전쟁에 대한 충격이 조금씩 안정되어 갈 즈음이었으나 아직 여기 저기서 반란군이 나온다는 등 사회적,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당시 인천에서 양조장을 크게 하던 김은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업은 잘 되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서늘하기만 하여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산놀이를 갔다.
푸른 산에서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마시며 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산마루 깊은 골짜기에 무심도인(無心道人)이 산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들이 객기가 발동했다. “자, 우리 먹을 것 먹고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그 무심도인이나 한번 만나러 가세.” 여러 친구들이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점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얼마쯤 가다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옆에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남루한 노인이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근방에 절이 있다는데 혹시 아십니까? 도인이 사는 곳이 있다던데요?” “도인? 쓸데없는 수작 말고 어서 떠나. 여긴 날이 저물면 반란군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니까.” 그리고는 노인은 다시 장작만 패는 것이었다.
다시 마을로 내려온 친구들은 도인 얘기를 해 준 사람에게 아무리 찾아도 절도 도인도 없었다고 했다. “아하, 바로 그 노인이 도인인데 그냥 왔구먼. 도대체 이 사람들이 도안(道眼)이 있어야 도인을 알아보지.” 그 말에 친구들은 아쉬움에 술을 한 잔 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들 바빴다. 그러나 김은복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왕복 십리나 되는 길을 홀로 나섰다. 산중의 밤은 더 깊게만 느껴졌다. 스님은 이미 저녁공양을 들고 선좌(禪坐)에 앉아 계셨다. 김은복은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한 말씀 일러 달라고 애원했다. “이 미친놈아, 놓아버려!” 도대체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것인가? 김은복은 집에 와서도 이 생각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밤낮 없이 석 달을 생각만 하던 끝에 마침내 한 도리를 얻었다. “바로 그것이야! 그래 놓아버려야지. 이놈의 세상 살아도 산 것이 아니야!” 그는 혼자 껄껄 웃었다.
한국전쟁 당시 두 아들과 부인이 함께 피난을 나오다가 폭격을 만나 두 아들과 아내가 한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애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타는 마음 때문에 김은복은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망상, 삶에 대한 모든 집착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스승을 찾아 산에 올랐으나 스승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빈집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명예, 재산, 권력, 지식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며 살고 있다. 놓아버리자, 놓아버려라. 놓아버려야 산다. 일심천하도 놓아버리고 인간세상, 천당극락도 다 놓아버려라. 모든 것을 놓아버릴 때 법륜이 구르는 세상을 맞으리라.
사형수를 살린 교도관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생명을 건지게 되면 그처럼 감사하고 기이한 일이 없을 것이다. 곧 사형이 집행될 사형수가 한 교도관과의 인연으로 살아난 일이 있다. 대전교도소 소장이자 불교교정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한 오희창 소장에 의해 사형수 양동수가 살아나게 된 기막힌 인연이 그것이다.
양동수는 평범한 운전기사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들뜬 분위기로 친구와 술을 마tu 만취한 상태로 애인의 집에 갔다가, 애인이 없는 방에 소녀가 누워 있자 욕을 보인 뒤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수가 되었다. 양동수의 노모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식을 잘못 키운 에미가 그 죄를 달게 받겠다며 교도소 가까운 곳에 사글세방을 얻어 지냈는데, 연탄 한 장 때지 않고 냉골방에서 지내면서 매일 아들을 면회했다. 주변 사람들이 식사를 대접하려 해도 자식보다 더 좋은 밥을 먹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다. 오로지 아들에게 불심을 심어주며 뒷바라지에 마지막 기력을 다하였다. 이러한 모정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노모가 죽기 전에 양동수가 사형되지 않도록 해보자는 뜻에서 구명운동을 펼쳤다.
구명운동에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있을 때 MBC 라디오 <법창야화> 팀이 사연을 드라마로 엮어 보겠다고하였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드라마가 진행 중일 때 사형이 집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이에 법무부 장관은 임기 중에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두 번째 문제는 제작팀이 직접 양동수를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증언과 사실에 입각한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면회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제작팀이 대구 교도소로 가서 교도소 소장에게 부탁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하지만 이 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지 않으면 자결할 것 같은 노모를 생각하니 그만둘 수도 없었다. 다시 제작팀과 교도소를 찾았다. 나는 그 당시 구치과장 오희창 씨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오 과장님, 바깥에 서울 신도들이 내가 사형수들을 교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스님, 저 사람들은 신도가 아니라 드라마 제작팀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간부회의에서 외부인은 일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노모의 한을 씻어드리기 위해서이니 제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 과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직원을 불러 말했다. “자네는 바깥에 계신 분을 모시고 오게. 그들은 나를 면담하러 온 것일세. 그리고 스님, 제작팀은 나를 만나러 오신 손님이니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스님은 저 옆자리에서 양동수를 교화하시는 것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나는 그의 자비심과 기지, 그리고 용단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극한 불심으로 아들 대신 참회기도를 하였던 노모도 돌아가셨다. 양동수는 구명운동을 통해 사형을 면하면서 18년간의 수감생활을 참회정진으로 보냈다. 불교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법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가 수감생활 막바지에 오희창 과장이 소장으로 진급되어 대전 교도소로 자리를 옮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인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대전교도소 교무과에서 나는 오 소장을 만났다. 그도 양동수를 면회하러 왔다고 했다. 교도소 소장이 교무과에서 재소자를 만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 의아했다. 그때 양동수가 들어왔다. 거기서 나는 놀라운 소식을 하나 더 접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양동수 자네의 가석방 신청을 올릴 예정이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도와서 옥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임을 명심하게.” 이는 양동수가 2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오 소장의 말에 나 역시 감격에 겨워 양동수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 그리고 네 신심에 감복하신 부처님의 가피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오 소장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훌륭하게 살아라.” “예, 명심하겠습니다.”한 사형수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한 오희창 소장은 퇴직 후 군 포교에 힘을 기울인다고 하였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퍼진다.” 『법구경』 구절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병든 이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펴노라면 그 안에서 여러 형태의 화신으로 나투시는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일이 많다. 제주도 장애인 재활원에서 법회할 때였다. 하루는 사무장이 한사코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보살이 있다는 것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보살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순간 비구니인데 사정이 있어 사복을 입었는가 싶을 정도로 모자 겉으로 나와 있어야 할 머리카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스님께서 설법하시는 동안 내내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뇌종양을 앓고 있습니다.” 사정 얘기를 들어보니 그 보살은 장사를 하다가 빚을 지게 되자 사기로 몰려 구치소에 들어갔으며, 구치소에서 항상 기도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감옥에 있는 동안 열심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서 나를 미워한 사람들이 미움을 풀기를 기도하고, 나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이 석방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한 사람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였다는 보살의 마음에 신뢰감이 들었다. 기구한 운명을 갖고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 보살은 모자를 벗더니 “스님, 소원이 있습니다. 스님 손으로 제 머리를 만져 주십시오.”하는 것이었다. 당돌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당당하게 머리를 손으로 만져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여인은 내가 머리를 만져 주면 그 자리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선뜻 그럴 수 없었다. 순간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여인의 머리에 내 손을 얹고 기도했다.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여인의 몸보다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여인은 아주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 저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절망의 순간을 맞이한 여인이 착하게 살겠다니 갑자기 가슴이 미어져 왔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 줄 수 없었고, 여인은 방문을 나섰다.
부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릴 만도 하건만,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스님에게 애원할 만도 하건만 그녀는 아주 의연하게 내 기도를 듣고는 착하게 살겠다고 했다. 그 모습에서 이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저토록 초연한 모습일 수 있을 것인가 싶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법회를 위해 수고하는 여러 보살님들과 거사님들께 말했다. “저런 분이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을 잘 모셔라.” 나는 법회를 열고 있는 사람보다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한 신심으로 법회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이 곧 부처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부처님께 편지를 쓰다
부처님께서는 선남자 선여인이 집에 살면서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 같이 괴로워하며, 일을 할 때에는 뜻을 모아 같이 하는 것이 가족이라 하셨다. 즉 가족간에 서로가 화합하고, 신뢰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가운데 행복을 일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기고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보면 신뢰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40대 초반의 보살이 두 남매를 데리고 자비사를 찾아왔다. 그 보살은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더니 남편이 난폭해져 더는 못살겠다는 말부터 하는 것이었다. 자상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였던 사람이 급변했을 때는 무엇인가 원인이 있었을 터인데 그 원인을 캐묻기도 어려울 만큼 그 보살은 심신이 지쳐 있었고, 아이들도 매우 우울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런 남편과 살아봤자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흔히 사람들은 부부가 육체적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본래는 정신적으로 맺어진 관계의 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살님이 생각할 때는 처음부터 꾸준히 남편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고 하시는데 꼼꼼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결혼해서 남편을 기다렸던 마음과 지금 마음이 같은지를.” 남편이 아내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른 것은 스스로 가정을 파괴시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남편을 가족의 일원에서 빼놓는 것으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그런 남편과는 일찍 헤어지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헤어져 서로 잘 된 사람도 별로 없다. 이것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 보살에게 가족과 남편을 위해 업장소멸 기도를 시작하라고 했다. “보살님,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무조건 부처님께 편지를 쓰세요. 부처님께 편지를 썼으면 낭독하시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없이 염송하세요. 그리고 기도를 마칠 무렵이면 반드시 처음에 존경하고 사랑했던 남편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시고 ‘아직도 남편은 훌륭한 사람입니다’를 속으로 되뇌세요.” 그 보살은 그런 정도의 기도로 과연 파탄지경에 빠진 가정이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갔는데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왔다. “요즘도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나요?” “그런데 스님, 이제는 남편의 폭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남편을 미워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남편과 인연 맺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부처님께 편지를 쓰세요. 그리고 그것을 낭독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