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현명하게 꾸짖거나 칭찬하는 부모의 지혜
이누이 다카시 지음 | 아침나라
1. 감정적으로 꾸짖지 말라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꾸짖자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 기말 시험에서 영어를 60점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에서 중간 정도는 되는 성적이었는데도 어머니는 '80점도 못 받으면 대학도 못 간다는 걸 알아?'하며 화를 냈다. "인생 망치고 싶으면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 이 얼마나 당치도 않은 말인가? 아이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건만 어머니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인생 망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니' 부모로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다. 이런 투로 꾸짖는 것은 난폭하며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이는 어머니만은 알아주었으면 했는데, 선생님처럼 숫자로 표현된 결과밖에 보지 않는다며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점수로 평가하는 세상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왔을 때만큼 아이가 어머니를 필요로 할 때가 없다.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타깝구나. 그만큼 했으니까 이 정도 점수라도 받은 거야. 잘했다" 하며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앞의 어머니처럼 꾸짖으면 단순히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아이를 격려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발심을 유발하고, '어차피 공부해도 엄마가 바라는 만큼의 성적을 받을 수 없어'라며 포기하게 되어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 결과적으로 부모가 정말 꾸짖고 싶었던 핵심은 완전히 희미해진다.
2. 버릇과 실패는 꾸짖지 말라
아이의 '버릇'을 꾸짖지 말자초등학교 3학년인 남자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얌전한 편인데 성격이나 동작이 너무 느려서 1, 2학년 때 어머니는 꾸짖고 다독거리기를 매일 같이 계속했다. 3학년이 되면서 아무리 꾸짖어도 소용이 없자 아이 스스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본인이 자각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이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가지 버릇이 고쳐질 때쯤이면 다른 버릇이 생겨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지속된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매일 같이 아이의 이상한 버릇을 본다면 걱정이 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버릇이란 본인이 하려고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 중에 나온다. 그러므로 일일이 꾸짖으면 반대로 주위를 의식하게 되어 평소의 버릇이 나오게 되므로 꾸짖는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어머니는 아이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려 그 점을 지나치게 간섭하면 안된다. 그 때문에 아이에게 자신감이 사라지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이상한 버릇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요구나 욕구는 확실히 말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의식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감정이나 행동에 제동을 거는, 즉 제어가 가능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 자신도 고칠 수 없는 버릇은 말로 지적하거나 꾸짖어서 의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패의 결과만을 보고 꾸짖지 말자아동 심리학자인 피아제는 '아이는 8세까지는 결과론이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A라는 아이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 접시를 운반하다가 발을 삐끗하여 접시를 10장 깨뜨렸다. B는 어머니가 항상 음식을 몰래 집어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음에도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선반에서 과자를 꺼내려다가 접시 한 장을 깨뜨렸다. 여기서 'A와 B 중 누가 더 잘못했을까요?'하고 아이들에게 물으면, 유아기의 아이들은 'A가 더 잘못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접시를 10장이나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결과론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차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단계에 사고가 미치게 된다. 피아제는 여기에 한 가지 코멘트를 덧붙였다. 그러나 그 발달이 늦어지는 원인은 어머니가 종종 자신이 받은 물질적인 손해의 대소에 따라 아이를 심하게 꾸짖기 때문이다.
아이가 모처럼 좋은 일을 하려다 실패했을 때는 적어도 어머니만큼은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아이 스스로도 실패했을 때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아이의 상처 입은 마음도 모른 채 꾸짖는 행위는 어머니가 아이의 선의를 믿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어머니가 자신의 선의를 받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모든 일을 악의로 받아들인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부모가 '사실은 네가 일부러 한 게 아니지? 손이 미끄러져서 그랬던 거야'하고 말해 주면 일부러 한 짓과 일부러 한 짓이 아닌 것의 차이, 그리고 화를 내어도 될 일과 화내지 않아도 될 일을 아이도 터득한다. 항상 아이의 선의를 믿고 기본적으로 그것을 격려하는 자세를 가지고 아이를 대하도록 하자.
3. 사소한 일을 장황하게 꾸짖지 말라
잔소리도 시간을 정해 놓고 하자어머니가 잔소리나 꾸지람을 할 때 종종 '표출'의 단계에서 그 순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서 필자가 주로 제안하는 방법은 '어머니도 하루의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잔소리 시간도 일과의 하나로 삼으면 하루 종일 끊임없이 꾸짖는 일도 사라진다. 예컨대 오후 7시부터 15분간을 잔소리하는 시간으로 정해둔다. 그리고 7시가 될 때까지 '오늘은 무슨 잔소리를 할까?' 하고 어머니는 생각해 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또한 충동적이 되지 않으며, 15분으로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한 번에 꾸짖는 것은 한 가지로 정해놓고 어머니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오늘은 숙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말하고 신발을 함부로 벗어던지는 버릇에 대해서는 내일 지적하자'하고 마음먹는 것이다. 아이도 6시 55분 정도가 되면 '이제 곧 시작되겠다'하고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잔소리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당당히 어머니의 눈을 쳐다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하루 종일 주눅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정한 경우, 하루의 잔소리가 그 날로 결말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알겠니? 알겠지'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해야지' '그럼, 됐어' 하면서 막을 내리는 듯한 설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편 그때 그 장소에서 꾸짖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타일러야 하는 경우일지라도 당장 잔소리를 하기 전에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왜 이런 짓을 했을까'를 적어도 세 번은 반문하고 나서 잔소리를 하자. 이렇게 하면 좀더 냉정하게 꾸짖을 수 있다.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도록 하자학교에 등교할 준비를 하는 아침 시간은 대부분의 어머니가 초조해한다. 그래서 무심코 꾸짖기 쉽다. 하지만 재촉한다고 해서 빨리 준비를 끝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재촉하고 거들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는 언제까지나 같은 잔소리를 반복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 당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동작이 느린 아이에게는 짧은 시간 동안 잔소리를 늘어놓기보다 조금 일찍 깨우는 편이 좋고 더불어 저녁에 잠드는 시간도 조절해 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아는 어머니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너는 언제나 꾸물대는구나. 오늘은 지각해도 좋으니까 늦은 이유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설명해라."라며 아이를 붙잡고 보내주지 않자 아이는 엉엉 울면서 학교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가정교육상 지각을 시켰으니까 양해해주세요." 이 아이의 경우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렇게 지각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저학년 때부터 자각시켜야 한다. 생활이란 되도록 즐겁게 해야 하며 공동생활에서 정해진 규칙을 모두가 즐겁게 지켜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4. 인격을 무시하며 꾸짖지 말라
아이에게 상담을 강요하지 말자아이는 성장과 더불어 부모와는 독립된 자신만의 세계를 갖기 시작하는데,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는 점점 커져간다. 그러므로 부모라고 해서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거나 알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와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아이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사람은 '우리 아이에 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부모이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아이에게 맡기는 부분은 늘어난다. 아이는 점점 자신의 재량으로 이것은 어머니와 의논해야 하는 일이고 이것은 아버지와 상담해야 하는 일이라고 정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가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상담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기다려야만 한다. 아이의 마음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아이가 부모와 의논하지 않거나 혹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꾸짖기 전에 부모는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으면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신뢰하고 맡겨두어야 한다. 신뢰관계는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쌓아나가야 한다.
자유와 방임을 착각하지 말자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의 기본적인 소망이며 동경이지만, 이 '자유'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하철 안에서 아이가 마음대로 달리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다른 승객이 주의를 줄 때만 "그것 봐. 혼났잖아." 하며 아이를 꾸짖는 어머니를 자주 본다. 이것은 아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방임을 던져주는 것이다. "조금만 스테레오 볼륨을 낮춰라." 혹은 "어질러 놓았으면 정리해라."하고 꾸짖는 목적은 좁은 집 안에서 식구들이 최대한의 자유를 공유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꾸짖으면 조금 큰 아이라면 '왜?'하고 반문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할 때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이런 방법도 있잖아'하고 아이가 물을 경우 그것이 옳으면 부모는 솔직히 인정해 주자. 오로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꾸짖으면 아이는 인격을 무시당한 것처럼 느끼고 부모에게 솔직히 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항하고 싶어진다.
'크게 다쳐봐야 왜 그래서는 안 되는지 알 것이다'라고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방임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에게는 꾸짖을 일을 포함해서 최소한의 조언을 할 의무가 있다. 교육이란 전인류가 지금까지 획득해 온 최고의 지식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불의 위험성이나 화상의 통증을 말로 설명하고 나서 성냥으로 장난쳐서는 안 된다, 다리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무턱대고 행동하고 요행으로 올바른 방법을 찾는 일은 교육이 아니다.
5. 친구나 형제와 비교해서 꾸짖지 말라
아이의 우정에 개입하지 말자부모의 입장에선 집으로 놀러오는 친구들 중에서도 와줬으면 하는 아이와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다. 이렇게 느끼는 데는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그 마음을 나타내어 환영할 수 없는 친구가 오면 되도록 밖에서 놀게 한다든지 일부러 냉담하게 대한다든지 '조용히 하거라'하며 엄하게 꾸짖는 일은 좋지 않다. 이런 행동은 상대 아이를 상처 입힐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가치관으로 아이의 친구까지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아이에게 상처 입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들끼리의 일은 아이에게 맡긴다는 각오를 하자. 그러나 아이들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으면 '우리 아이가 아니니까'하며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꾸짖는 것이 인생 선배로서의 의무이다.
흔히 부모는 아이의 친구에 대해 '그 아이는 난폭하니까 놀아서는 안 돼' 혹은 '나쁜 아이니까 같이 놀지 마'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친구라도 혼자 노는 것보다 함께 노는 편이 좋으며 어머니가 놀아주는 것보다 좋다. 나쁜 친구와 놀면 나쁜 영향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가 많은데, 아이에게는 타고난 재능과 개성이 있는데도 친구를 선택하는 단계가 되어 갑자기 외부의 영향으로 완전히 변하는 존재처럼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인간은 본래부터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인간의 발달은 주위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자신의 내부에 받아들이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는다든지 혹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 한 사람의 인간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어머니와 아이(자신)의 관계,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 형과 동생의 관계, 아버지·어머니와 아이의 관계 등 '관계'가 아이의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어머니들에게 '아이의 친구에 관한 험담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친구의 결점만을 찾게 하는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어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친구의 영향을 논하기에 앞서 재조명해야 할 점은 부모들의 부부관계이다.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면 아이가 어떤 친구와 사귀든 나무랄 필요는 없다.
6. 가족 구성원이 꾸짖는 법을 통일하라
기본 원칙을 세우자다음은 시골 농가의 어느 주부에게서 받은 편지이다. 그녀는 세 살과 한 살 난 아이를 가진 20대 어머니로 샐러리맨인 남편과 정년퇴직한 시아버지, 그리고 신경통을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 일은 참는다 해도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어요. 위의 아 이가 장난이 심해서 꾸짖으면 시부모님은 저를 나무랍니다. 내가 아이를 꾸짖을 때는 내 버려두든지 거들어주든지 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나도 시부모님한테 혼나는 건 싫어서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가 나쁜 짓을 해도 아무 말 않습니다. 마치 제가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아이는 제 아빠를 닮아 버릇이 없고 고집도 세서 걱정이에요. 요즘은 내가 꾸 짖으면 꼭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달려갑니다. 내 아이를 내가 키운다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점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 이런 고민은 많든 적든 어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남편에게도 외면당하고 아이와 조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어머니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첫 번째 원인은 아이의 교육에 대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포함한 온 가족이 통일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데 있다. 어머니가 꾸짖는 기준과 조부모가 생각하는 교육의 기준이 다르면 아이가 혼란에 빠지고 버릇이 나빠지며 누군가 꾸짖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의 품으로 달려가는 결과를 불러온다.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는 아이 앞에서 가정교육 방침에 대한 어른들의 의견불일치를 보여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없는 곳에서 어른들 간의 의견조정을 끝내야 한다.
이런 경우, 요즘의 육아상식은 어머니가 가장 열심히 공부하므로 어머니가 80점 정도, 아버지가 60점, 할머니가 45점 정도의 기준을 세운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 현저한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는 45점이라는 최저기준을 세운 할머니가 찬성할 수 있는 선에 맞추는 것에서 출발하면 무난하다. 방침을 최저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금지를 어른 세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이외의 일은 엄하게 꾸짖지 않기로 한다. 너무 범위가 확대되면 같은 일이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주의를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에게 혼동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이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는 행동을 몇 가지 정해놓고 어떻게 꾸짖을지 방침을 통일시키는 게 중요하다.
7. 칭찬하고 격려하라
어설프게 칭찬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