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기에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유진규 지음 | 중앙M&B
1. 마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내가 마임을 선택한 이유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환경미화심사가 있었다. 미화부장이었던 나는 청소를 마친 뒤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남아 심사를 해 줄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선생님 세 분이 들어오셨다. 교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던 선생님 중 한 분이 갑자기 뒷칠판에 결려 있던 그림들 중 한 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아이의 그림 좀 봐요. 다른 아이들의 그림은 비슷비슷한데 저 아이의 그림은 무언가 다르지요? 그림이란 저렇게 그려야 해요. 똑같으면 안 돼요."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무슨 커다란 비밀을 몰래 들은 것 같았다. 똑같으면 안 된다, 남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은 그때부터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서 나만이 갖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결국은 그것은 '나답다', '유진규답다'라는 말일 텐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그 의문은 학창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런 채로 대학에 입학했다.
점점 초조해지는 가운데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연극이었다. 처음엔 별뜻 없이 시작했지만 생각 외로 무척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내 몸짓을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내뱉고, 지르는 그 기쁨이 나를 살게 했다. 그래서 나는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의학과를 미련 없이 중퇴, 극단 '에저또'에 입단했다.
그런데 극단 에저또는 그때 실험적인 시도들을 참 많이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마임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마임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방태수 선생 밑에서 마임의 기초를 배웠지만 본격적인 마임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김성구 등의 친구와 함께 프랑스문화원이나 도서관에 있는 마임자료와 비디오들을 보며 마임을 습득해 나갔다. 참 신기한 건 누가 나에게 배우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 시간들이 힘들기는커녕 더 알고,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마임의 마력에 빠져들면서 나는 어느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연극과 마임 중 어느 것을 할 것이냐?
이런저런 고민 속에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던 어느 밤이었다. 문득 어슴푸레 한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두컴컴한 좌석들 사이로 난 계단에 앉아 있는 한 소년.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며 그 속에 그냥 빠져들어갔던 그 소년은 다름 아닌 고3 때 세계적인 마임배우 롤프 샤레의 공연을 보던 나의 모습이었다. 하얀 조명 아래 검은 타이즈를 입은 한 배우가 말없이 몸을 비틀고, 꺾고, 흔들었다. 그리고 몸뚱어리 하나로 집을 짓고, 잠을 자고, 울고, 웃었다. 놀랍고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그때 일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느꼈던 것처럼 다시금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답다', '유진규답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 보내온 세월들이 떠오르며 그 해답이 롤프 샤레의 공연을 숨죽여보던 그 소년에게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희미하던 빛이 밝아지면서 그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느낌. 나는 미련 없이 연극을 포기하고 마임을 택했다. 그리고 1976년,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최초의 마임 <육체표현>을 무대에 올렸다.
지금도 나는 계속해서 나답게 살기를 바라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유럽식의 마임에서 벗어나 지금 내가 '몸짓'이라고 부르는 한국적 마임 세계를 추구하게 된 것도 그 고민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남의 것은 남의 것일 뿐이니까. 이제 진정 '내것'을 향해 딴데로 시선 안 돌리고 들어가야 할 때라고 느끼니까.
당신도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한번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느냐?"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길을 가봐야 소용없는 길이다. 어떠한 길도 다만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므로 당신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2. 내 친구, 침묵 이야기
사랑을 꼭 말로 해야 아나요여기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이 순간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기회.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사랑을 표현하겠는가. "사랑한다."고 무조건 소리부터 지를까, 아니면 온 마음을 담은 편지를 건넬까. 그도 아니면 아무 말없이 달려가 안아 버릴까. 보다 확실한 전달법으로 손을 덥석 부여잡고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건 어떨까. 아마도 그 중엔 그 어떤 말이나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그저 벅찬 마음에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은 너무나 많다. 누구나 한번쯤은 귀에 들리는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특히나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벙어리인 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키우기 위해 매일 일을 하느라 간 단한 수화조차 배울 시간이 없었다. 그 모습이 늘 안타깝고 애틋했던 아들은 다 장성하여 어머니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며칠을 고민하던 아들은 어머니에 게 수화를 가르쳐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두 팔을 벌려 하늘의 새를 설명하고, 어머니가 제 일 좋아하시는 사과를, 또 어느 추운 겨울 어머니가 손수 떠주신 따뜻한 털모자를 설명했 다. 어머니는 아들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늦은 나이에도 아주 열심히 수화를 배우고 익혔 다. 늦은 밤까지 스탠드 불을 켜놓고 앉아 그날 배운 것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기를 얼 마나 했을까. 어느 날 문득 아들은 어머니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르쳐드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새나 사과처럼 몸짓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들은 너 무나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어머니 눈을 바라보며 온갖 몸짓을 다했지만 결코 사랑을 설 명할 수는 없었고 답답한 나머지 아들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어 머니가 가만히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안타깝게 흘리는 눈물을 보며 자신에게 가르쳐주려던 말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너무나 많은 말들이 난무하는 모습이다.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훌륭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여기저기서 불필요하게 쏟아지는 말들로 인해 그 무게와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삶의 순간순간에서 보면 백 마디 말보다 단 한번의 침묵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말이 필요없다. 수줍어 고개를 돌리거나 추운 겨울 손잡고 거리를 걸을 때, 혹은 내 몸을 스치듯 지나는 손길 하나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굳이 말로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때론 침묵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강하고 진실되게 전할 수 있다.
나는 본질적인 말은 침묵과 하나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침묵은 진실된 말을 위한 토대이며, 때론 말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침묵에서 태어난 말은 그만의 무게를 갖는다. 침묵이 전제되었을 때 말은 비로소 강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말이 없는 침묵은 그저 무(無)일 뿐 그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침묵이 없는 말은 무게를 갖지 못하여 입 밖을 떠나는 즉시 사라지는 허상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도 어두운 공간에 홀로 앉아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본다. 침묵이라는 넓은 바다에 잔잔히 파장을 이루는 말 한 마디를 떠올린다. 침묵 안에 존재하는 말, 말을 안고 있는 침묵은 하나의 몸짓이 되고 언어가 되어 내 몸 밖으로 나온다. 말과 침묵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작은 울림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3. 내 삶의 속도는 내가 정한다
내 생애 가장 특별한 하루죽음은 언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알 수 없기에 삶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다. 두려운 만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길 꺼린다.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는 아주 당연한 통과의례임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스스로 잘 죽는다고 자위할 수만 있다면 살아온 삶에 대해서도 잘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잘 죽음'은 아무런 흔적 없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다. 육체적인 깨끗함이 아니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울지도, 웃지도, 욕하지도 않는, 그저 떠나고 그걸로 모든 것이 족한 그런 죽임이다. 눈물이 날 정도의 애틋함이든, 비웃을 정도의 싸늘함이든, 욕할 정도의 분노든 그 어떤 흔적도 있어선 안 된다. 그것은 철저히 홀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홀로 된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가 오십줄에 들어서면서부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이 '깨끗한' 사라짐이었으면 하지만 산다는 건 그 반대로 나 자신을 자꾸만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로 인한 온갖 종류의 감정과 미련, 삶의 집착들이 거머리처럼 들러붙는다. 세월이 갈수록 두껍고 견고해져 종국엔 살갗의 일부인 양 느껴진다. 그러면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많다는 게 끔찍해진다.
나는 그렇게 더렵혀지지 않기 위해 매순간 끝없는 나와의 싸움을 벌여왔다. 내 발목을 잡고 처음부터 내 몸이었던 양 떨어져 나가지 않는 그것들을 앞에 두고 벗는 훈련을 계속 해 온 것이다. 그러나 벗는 것이 살갗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부둥켜 안고만 싶을 때도 있다. 결국 그것들이 오늘의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을 더럽힌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내 인생의 독이다. 또한 그로 인해 내 생의 마지막 날 깨끗한 죽음, 깨끗한 사라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은 지금부터다." 하루의 시작이 곧 인생의 시작인 거다.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나고 매일 죽는다. 아침에 태어나 밤에 죽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제 내 몸에 붙어 있던 온갖 종류의 집착과 소유의 끈들이 어제가 끝남과 동시에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하루가 끝나고 찾아 드는 어둠은 내게 있어 작은 죽음이다. 어제의 삶으로부터 깨끗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죽음.
그렇게 밤새 죽어 있다가 새벽 먼동이 틀 때면 나는 다시 탄생한다. 새로 태어났기에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제의 나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흔적을 남김 없이 지워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맞는 것이다. 새 인생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를 이루는 모든 것, 내 주변의 모든 것 또한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업고 갈 과거가 없으니 모든 것이 홀가분하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삶. 이런 하루들이 모여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이룰 수만 있다면 결국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울지도, 웃지도, 욕하지도 않는, 아무 집착 없이 그저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깨끗한 사라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오늘 나의 하루는 생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내일 아침이면 오늘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내게 주어진 삶은 오늘 하루뿐인 거다. 그래서 내겐 오늘 하루가 '내 생애 가장 특별한 하루'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특별한 날, 오늘.
4. 생활의 발견
어느 식당 할아버지의 '간판 내리기'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식당을 경영한다. 보통 식당이라면 그 날 장사를 셔터 올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좀 다르다. 하루 장사를 그냥 문 여는 것이 아니라 간판을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 우연히 할아버지가 간판을 다는 걸 보며 '새로 생긴 식당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낮에 봤던 간판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이 건물이 맞는데 도대체 식당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며칠 뒤 그곳을 다시 지나는데 전에 봤던 그 간판이 눈에 띄었다. 간판을 고치려고 잠깐 떼어냈었나? 그러나 몇 시간 뒤 어김없이 사라진 간판. 이쯤 되면 내 머리를 의심할 밖에.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간판이 올려져 있는 시간에 맞춰 그 식당을 찾았다. 작지만 깔끔한 내부. 가정식 백반에 딸려 나온 반찬이 열 가지가 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식당 주인 할아버지는 매일 영업을 시작할 때 간판을 올렸다가 영업이 끝나면 내린다. 간판이 올라 있는 시간은 할아버지가 준비를 다 끝내고 손님을 맞아들이는 식사시간대. 그냥 시간에 맞춰 간판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대접할 준비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고서는 절대 간판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밥을 파는 집에서 그 밥이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떻게 밥 파는 집이라고 간판을 올릴 수가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뿐만이 아니었다. 준비한 반찬 중 한 가지만 떨어져도 할아버지는 주저치 않고 간판을 내렸다. 밥값만큼 대접이 안 되는데 어떻게 돈을 받고 장사를 하냐며….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네 식당 간판은 보통 간판이 아니다. 손님들에게 할아버지 대신 "준비 다 되었으니 식사하러 오세요."라는 말까지 건네는 간판이니까. 나는 그 할아버지네 식당에서 나오면서 아주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꼈다. 그 어렸을 적 어머니가 차려준 꽁보리밥에 김치 이후 처음으로 '참 잘 먹었다'는 느낌. 배가 불러서 행복하다는 원시적(?)인 만족감에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아마 오늘도 그 할아버지는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간판을 올리고 내리시겠지?
진실을 알 수 없는 이유인도에 갔을 때 힌두교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원에 들어가려는 순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약장수가 꼬마 한 명을 데리고 막 마술을 보여주려던 참이었다. 약장수는 커다란 자루에 꼬마를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쿡 쑤셨다. 구경꾼들 틈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약장수는 계속해서 칼을 꽂았다. 자루에선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리고, 아빠 손을 잡고 구경하던 어린애 중엔 우는 아이도 있었다.
약장수의 손놀림은 너무나 능수능란했다. 사람들이 못 믿겠다는 표정을 보이자 약장수는 자루를 열고는 피 흘리는 소년의 얼굴을 살짝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루를 다시 동여매고는 기합까지 넣어가며 남은 칼을 꽂았다. 어느새 자루에서는 핏자국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그가 지금 하는 게 속임수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 이러다 아이가 죽는 게 아닐까, 말려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웅성거리지도 않았다. 그냥 넋을 잃고 약장수 손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는 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때 문득 왼쪽 얼굴이 따가웠다. 시각에 집중되던 감각이 평정을 되찾아 내 촉각을 자극한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 나라에서 봤던 해보다 적어도 열 배는 되는 큰 불덩어리였다. 태양이 서쪽 하늘에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아, 해가 지고 있구나. 이제 밤이 오겠구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같이 떠올라 세상을 밝히고 저녁이면 땅 속으로 숨어드는 태양. 수억 년간 그랬던 것처럼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을 알리며 다시 떠오를 태양.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세상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거대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