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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로저 로젠블라트 지음 | 나무생각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당신은 어제의 친구들이 적으로 변해 간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골 가게 주인, 미화원, 목사, 시누이, 하다 못해 당신이 키우는 개마저 당신 몸무게가 늘어난다고, 당신이 무감각해지고 있다고, 당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불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이 열심히 해놓은 일을 폄하하기 위해, 당신을 해칠 계략을 꾸미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바로 당신이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그리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외로움이 낫다당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당신이 정말 이상하게 굴면 세상 사람들이 적응해줄 것이다.당신은 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당신 이름만 들어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당신에게 운 좋은 일이 생기면 배아픈 강아지처럼 깽깽거리고, 당신의 성공 기사가 실린 신문을 물어뜯는 사람이다. 당신만을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 이상한 방식으로 당신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당신이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다른 많은 법칙이 그렇듯 이 법칙의 전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절대 상관하지 말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게 전부다. 당신에게 적이 있다면 그 적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아예 입도 뻥끗 못하게 죽여야 한다. 물론 당신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그 적이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점점 더 실망하게 되고, 자기 혼자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는 사실에 갈팡질팡하다가 점점 불행해질 것이다(적의 불행,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당신의 삶이 행복해질수록 적의 삶은 비참해질 것이다.



물론 적을 무시하는 대신 죽일 수도 있다. 만약 상대가 당신의 생활과 인생에 정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나는 이 방법을 강력 추천하겠다. 하지만 이때 유의할 점이 있다. 당신은 그 적을 아주 재빨리, 갑자기, 그리고 당신 존재를 알리지 않고 죽여야 한다(장거리 미사일이나 화염 방사기 등이 필요하겠지!). 이 세 가지를 지킬 자신이 없다면 죽이는 방법은 좋지 않다. 당신은 그가 죽기를 바랄 뿐 당신이 하고 있는 짓을 들키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적을 사형에 처하는 대신 적의 인생을 감금하는 은혜를 베푸는 쪽이다. 적은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다. 적은 당신에 대한 집착과 강박증 때문에 밤하늘에 대고 괜히 짖어대는 개꼴이 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로 상관하지 않는 것, 즉 상관하지 않는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적이 시샘하는 인생을 그저 더 확대시켜 가기만 하면 된다.동료나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흔히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수도 없이 통화하고, 애인도 아닌 이성과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식의 데이트도 해보고, 그렇지 않으면 만나지 않고도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면 외로운 삶도 나아지겠지 하는 반작용 충동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일단 이런 계획들을 세우기만 하면 당신은 벌써부터 허망하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해낸 이 일들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 그리고 심지어 그 삶을 만나기 전부터 여러 가지로 우울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벌써 깨닫고 있다. 군중 속에서 비참함을 느끼는 것보다는 혼자 있으면서 우울함을 느끼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슬픔이 한결 견디기 쉬워진다.'돼지는 백조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돼지는 언제나 돼지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그가 당신한테만은 비열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그가 정말 썩 괜찮은 인간의 외향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돼지는 영원히 돼지일 뿐이다. 물론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당신조차도 그 순간 그 돼지 같은 인간이 너무도 멀쩡하게 보여서 당신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할 때도 있다. 이게 심하면 당신은 돼지에게 홀딱 넘어가 은혜를 베풀려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런 식의 유혹에 빠져 곤경에 처하기 전에 나의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이것은 특별히 돼지에 관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일관성에 대한 법칙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다.



한 남자가 정신병자 수용소를 찾아갔는데 환자 하나가 느닷없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그 환자는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이 수용소에 갇힌 이유를 아주 찬찬히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이것은 관료주의의 실수이며, 누군가 아주 큰 실수를 했기 때문에 너무나 멀쩡한 자신이 10년 이상을 억울하게 정신병자 수용소에 갇혀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던 방문자는 점점 동정심이 일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정말로 건전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희생을 당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풀려나는 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오겠습니다."하고 남자는 그 환자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이렇게 말한 환자는 방문객을 문 앞까지 바래다주더니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계단으로 밀어뜨리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야, 다음 주 화요일이야! 잊지 말아!"나이를 먹는다는 것에는 그 자체에 아주 많은 잘못과 실수를 순환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질은 점점 극심한 자기 억압이 되고 말 뿐이다. 하지만 인간을 결함이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그리하여 자신이 어긋난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을 멈춘다면 인생은 어쩌면 견딜 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고귀한 덕성으로 높이 칭송되어 왔던 '충성'은 절대 완전 성취가 불가능하다. 조만간 그리고 대의명분이 있는 거창한 일이든 아니면 아주 하찮은 일이든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충성이라는 것이 원래 우리 인간의 구조에서는 이익을 남겨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충성'은 우정과는 달리 눈에 띄는 방식으로 충성을 명령하거나 또는 선언·표명하기를 요구하게 마련이며, 그 결과 불성실과 부정직함을 불러오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충성에는 '무조건적'이라는 암묵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배신할 가능성이 많은가? 첫째, 자신이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느끼고, 이 점에 대해서 스스로 떠벌리고 다니는 인간들이다. 만약 카이사르가 이따금 카시우스의 마음을 풀어주었다면 그는 오늘날까지 살아 있을지 모른다. 둘째,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셋째, 신문에 칼럼을 쓰는 작자들! 넷째,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 다섯째, 관광지 안내서를 뒤적거리고 메르세데스 자동차 전시장에서 눈요기나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종자들. 여섯째, 이름에 모음이 하나라도 들어가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일곱째,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



충성은 아주 고결하고 숭고한 인간 행위의 표준인 만큼 그 말 속에는 또한 아주 많은 두려움과 자기 의혹과 기회주의와 야심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또한 거기에 고착되기를 기대하는 판에 박은 생각을 주입시킬 때가 흔하다. 그리고 대다수 배신자들의 인생이 그렇게 흥미롭게 변하게 되는 이유 역시 이렇듯 목표 달성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칙으로 돌아와서 미덕을 추구하라. 하지만 도덕군자가 되려는 꽉 막힌 생각으로 땀을 흘리진 말라. 도덕적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체만으로 당신의 인격과 덕성을 높일 수 있다. 때로 당신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죄를 통해 당신이 옳은 길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프로이트 이후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믿으며 살아 왔다. 문제는 그 결과 이 말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비참하고 비정한 족쇄로 작용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의 자기 실험 혹은 자기 반성은 좋은 일일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자기 반성이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에 정확한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것이어야지 결코 다른 것으로까지 밀려나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따른다. 당신이 매일 밤낮을 자기 비난으로 채운다 해도 결국 당신 자신이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이런 법칙은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가 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만약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라면 2분 동안 자기 반성을 할 것이고, 자신에게 정직하고 싶지 않다면 5분 동안 자기 반성을 한 다음 당신 방식대로 진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싫다면 다시 말해 자기 반성 같은 것에 매달리고 싶지 않으면 생각을 외부로 옮겨라. 달리기를 하라. 꽃병을 만들라. 책을 읽어라. 그렇다. 책 속에는 비참한 인생의 실험이 수없이 많이 들어 있다. 책에서 펼쳐지는 인생 실험을 즐겨라.적은 무시하라. 아니면 확실하게 죽여버려라원판 불변의 법칙미덕을 좇되, 그것에 목숨을 걸지는 말라굳이 내가 이 법칙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지당한 말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행복한 인생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이런 믿음에 근거하여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그들은 가정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성형수술로 자신의 얼굴도 바꾸고, 심지어 국적도 바꾼다. 아무튼 모든 것을 바꾼다. 이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바꾸는 이유는 무언가 대단하고 실질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5분도 못 가는 행복을 회상하고 그 순간을 마치 영원불멸한 것처럼 반복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이 5분이 진짜 5분이나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설득하려 든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혼돈, 의심, 두려움, 비참함, 혼란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오는 혼란을 법치그이 예외 조항이라고 제멋대로 바꾸어 버린다. 행복, 물론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5분 이상 행복했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 때뿐이다.나는 사교 면에 있어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구제불능이다.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될 만큼 얼마 되지 않는 칵테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입을 다물고 있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으면 명상을 해야 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가 점점 이상해지는 분위기에 기가 죽어 불가피하게 자리를 뜨고 마는 사람이다.



아무튼 당신이 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 떼로 몰려다니며 사람을 사귀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법칙의 앞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처럼 사람 모이는 자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인데 파티에 어쩔 수 없이 꼭 참석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면 다음 규칙을 따르라.

먼저 공시된 시간에 정확히 파티장에 도착한다. 당신 이외에 찾아온 손님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곧장 초대한 주인에게 다가가라. 주인에게 당신이 거기 참석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다면 주인과 열렬하게 악수를 나눠라. 그리고 준비한 재미난 유머를 과도하게 보여줘라. 요란스럽고 인상적인 옷차림을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열심히 미소를 짓고, 고개도 실컷 끄덕거려 주고, 여러 가지 따뜻하면서도 엄청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슬슬 뒤로 물러나라. 당신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뒤로 밀려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뒤를 돌아 문을 나오면 그만이다. 이렇게 하는 데 20분이면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가 <동물의 세계>를 볼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자기 반성은 적당하게 해야 오래 산다묵묵하게 그리고 꾸준히! 이것이 경주에서 이기는 비결이다공적 석상에서건 사적인 자리에서건 상대방의 생김새를 가지고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말 어떤 사람을 묵사발로 만들어주고 싶다면 상대방의 용모가 아니라 그의 아이디어나 생각을 공격하라. 냉정을 잃어서도, 절대로 한 순간 흥분하거나 감정의 동요를 보여서도 안 된다. 또 상대방이 던진 비난을 정직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공격자가 퍼부었던 말을 다시 인용할 필요가 있을 때 어떤 부분을 생략하거나 상대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만들지 말라. 또한 속마음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음흉스러울 정도로 관대함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공격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공격당하는 사람 못지 않게 공격자 역시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신이 복수심 때문에 악당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당신은 고귀한 사람이며, 악당은 고귀한 사람에 의해 공격을 당했다고 결론을 내려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적을 공격할 때 용모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물고 늘어지라는 이 법칙을 죽어도 배우지 못하는 무리들이 있다. 놀랍게도 작가들이 바로 그런 족속이다. 작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공격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면 안 되는가를 단번에 깨닫게 된다. "존 어빙은 톰 울프를 향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거기에 대하여 울프는 이전에 자신을 먼저 공격했던 적이 있는 노만 메일러와 존 업다이크까지 한꺼번에 묶어서 어빙에게 "장편작가 중에서 쓸어버려야 할 사람"이라는 비난으로 응수했다. 이런 일은 차고 넘친다.문제의 핵심을 찔러라칵테일 파티에 가지 말라. 부득이 가야 할 경우라면 20분 이상 어정거리지 말라행복한 인생은 길어봤자 5분이다.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좋은 고집을 키워라. 물론 당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습관이나 행위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불편하게 보이거나 터무니없이 불합리하게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습관 또는 행위를 버리지 않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당신을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합리를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적응하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나는 원고를 쓸 때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하지 않는다. 나는 노란색 노트에 글을 쓴 다음 그것을 다시 전동식 타이프라이터로 옮긴다. 물론 나와 그리고 열두 명 남짓 되는 이상한 글쟁이들이 없다면 타이프라이터 리본 시장은 문을 닫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젠 정말 좋건 싫건 워드 프로세서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재수없게도 내 작품을 맡게 된 사람들의 인생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잘 알면서 내가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은 모든 일을 내 식으로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세상 사람들이 내 방식에 맞춰 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잇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충분히 이상하고 낯설게 군다면 세상 사람들이 내 쪽에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사실 내가 상대하는 편집장들은 나의 글쓰기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따져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결코 자신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들 쪽에서 나의 기벽에 적응하는 쪽이 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심한 괴벽을 키우진 말라. 만약 당신이 손대지 못할 정도로 심한 '괴짜'가 되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다루기 힘든 사람, 영영 상대하지 못할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리고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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