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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사는 10가지 작은 원칙

아서 칼리안드로 지음 | 시아출판사
행복한 삶을 사는 10가지 작은 원칙

아서 칼리안드로․배리 렌슨 지음/이기문 옮김

시아출판사/2002년 6월/320쪽/9,500원



Ⅰ 미래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한 삶은 내 안에 있다

1985년 5월, 우리 교회는 네덜란드 해방 40주년 기념 예배를 주관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영사관의 요청으로 열게 된 그 일요 예배는 나에게 매우 감격스런 일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수막을 달아 주었고 성가대는 축가를 불러 주었다. 그 자리에는 많은 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했을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는 점령당한 네덜란드에 식량을 공수해 주었던 미국인 조종사들과 그것을 받아 생활했던 네덜란드 농부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자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하는 광경은 내 기억 속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예배가 끝난 후 축하 오찬이 열렸다. 그때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인상에 남았다. 그는 매우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진 주름에서 고된 인생의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10대였을 때 그는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 가스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 순간 그것이 자기 가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혼자 살아 남았고 전쟁이 끝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입고 있는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때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당시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후회와 증오로 가득 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난 행복해지기로 했죠. 하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단 하루도, 그 당시 4년간의 악몽과 끔찍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고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눈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가 삶의 부정적인 면은 완전히 도외시한 채 가식적으로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팔리애너(pollyanna : 맹목적인 낙천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긍정적인 삶을 선택한 현실주의자며,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존경해야 할 부분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절망적인 인생을 살 수도, 희망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인생의 암흑기에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마음가짐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선택권 또한 자신한테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주어진 여건에 상관없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알아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심오한 삶의 원칙이다.



Ⅱ 마음 속에서 의지를 끌어내라

지금 해야 할 일만 생각하라

내게 닥친 일이나 문제로 인해 무력감이 느껴질 때면 나는 세계적인 의학계의 거장 윌리엄 오슬러의 말을 떠올린다. 1909년 예일대학교에서 있었던 ‘삶의 방식’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오직 그 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라.” 다른 걱정거리는 모두 닫아 버리고 오직 그 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한다면 정신적 고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하루 일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의 말은 미래에 대한 근심을 떨쳐 버리고 그 날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있다.

성당을 방문한 한 관광객이 성당 안 넓은 벽에 모자이크 작업을 하고 있던 예술가에게 물었다. “벽이 이렇게 넓은데 언제 다 완성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예술가는 “하루하루 꾸준히 하면 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날 완성할 수 있는 부분까지 선을 그어 표시하고 그 외의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의 작업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모자이크는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도 넓은 벽과 같다. 우리는 완성해야 할 넓은 벽을 바라보며 걱정할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훌륭하고 독특한 내용으로 채워 나갈 수도 있다.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날그날 주어진 일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걱정거리는 한결 줄어들 것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지금 당장 시작하라.”



Ⅲ 친절이 인생을 바꾼다

공감대를 형성하라

몇 년 전 비서가 회의 중인 나를 불렀다. 잔뜩 화가 난 남자가 교회 로비에서 목사인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회의가 끝나는 대로 내려갈게요. 만약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하면 다시 불러 줘요.”하고 말했다. 나는 비서가 다시 나를 부르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부르러 오지 않아 나는 다른 일을 계속 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비서가 돌아왔다. 나는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안정을 되찾았어요. 이제 목사님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대요.” 비서가 화가 난 남자를 안정시킨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제가 그를 만나 보기로 결심했어요. 로비로 내려가면서 내 자신에게 침착하자고 수없이 되뇌었어요. 저는 그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는 정말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지요. 저는 그 남자 옆에 가만히 앉아서 가능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단지 그의 심정을 함께 느껴 보려고 했어요.” 그의 침묵은 남자로 하여금 조금씩 안정을 되찾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비서는 그를 위로하거나, 해명하는 말을 많이 하거나, 그에게 화가 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도 남자를 진정시킨 것이다.

공감은 친절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말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물론 어느 한순간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특히 상대방이 고통받고 있거나, 무조건 싸우려고 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그저 단순히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놀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Ⅳ 마음 속의 고요함을 끌어내라

잠자는 창의력을 깨우라

단지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무언가 이전에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고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는가?

창의력은 단지 예술가나 작가 혹은 천재들에게만 국한된 단어가 아니다. 누구나 창의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달려온 아이에게 적당한 대답을 해 주거나 직장에서 팀을 격려해야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문제들과 수없이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그때마다 당신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간단하지만 효과가 뛰어난 나만의 비법을 알려 주려고 한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침묵’이다.

나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그 ‘창의력’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예배를 위해 설교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설교 문안을 작성하면서 많이 좌절했고 내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그 일은 내게 있어 정말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글자라도 빨리 써야 하는 상황에 닥쳤는데도 한참 동안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설교 문안을 작성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글을 쓰다가 멈추기 일쑤였다. 커피를 마시고 전화를 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심지어 산책을 나가고는 했다. 이런 나의 모습에서 글 쓰는 일을 외면한 채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토록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 왜 오래도록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마음만 심란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빈둥대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잠시 손을 놓고 잠자는 창의력을 깨우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머리를 식히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한다. 잠시 쉬고 나면 새로운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글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쓴 글 중에서 논리에 맞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 고치기도 한다.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음악을 틀어 놓거나 텔레비전, 라디오 등이 켜져 있으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는 잠시 침묵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라. 당신의 창의력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분위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Ⅴ 지난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

비극도 삶의 한 부분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뿌려 놓은 앙금을 없애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살아오면서 비극적인 일을 전혀 겪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극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비극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비극은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또한 비극은 당신이 고립되거나 고통을 당한다는 뜻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부모로부터, 정해진 장소에 태어난다. 비극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스물한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가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에도 내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마지막 키스를 나눴고 대기실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나는 이 끔찍한 일들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안 어디에선가 이런 말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삶의 일부분이야.’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비극은 피할 틈을 주지 않고 찾아오는 인생의 수많은 경험 중 하나다. 그런데 한 번의 비극적인 일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와 반대로 비극을 맞이했을 때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다시 힘을 얻고 나쁜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도 있다.

비극을 경험하고 나서 한층 성숙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내게 폴라라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는 유능한 작가이자 연설가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불운을 겪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상담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교통사고로 남편과 세 살된 딸을 잃은 경험이 있다.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나서 폴라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만약 그가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묻자 폴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마 못 했을 거야.”

인간이 비극을 겪지 않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극은 우리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미친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따라서 인생을 더 알차고, 강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기 자신을 건강한 영혼을 지닌 강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신약성서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쓴 편지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고된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굳은 신앙심으로 항상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불행이나 손실, 나아가 비극도 언젠가는 ‘선’을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것은 비극을 이겨내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희망이라는 말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은 인생의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최악의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좋은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인들과 크리스천들이 갖고 있는 신앙 메시지의 전부다. 유대인들은 오랜 옛날 애굽의 노예로 살면서 불행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구원받았다. 성서의 가장 큰 비극인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도 결국에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役事)다. 어둠의 동굴을 통과하면 빛이 보이는 것처럼 비극을 이겨내면 기쁨이 있다.

우리는 모두 비극을 겪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희망의 빛이 보이는 길로 걸어갈 것인지 어두운 절망의 수렁에 빠질지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다. 어렵겠지만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비극은 더 강하고 알찬 인생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신은 희생자가 아닌 승리자의 운명을 선택할 수가 있다.



Ⅵ 편견을 멀리하라

편견에 예외를 두지 말라

내가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편견이 하나 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도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편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성향으로 인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며 심지어 때리거나 죽이기까지 한다. “나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동성연애자들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냐?”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다.

수년 간 나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감춰 왔다. 나는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들이 처한 사회적인 상황을 특별히 주시한 적도 없었다. 나는 동성연애자들이 도덕적인 선택권이 있는데도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친절하게 그들을 대했고 친한 척 행동했지만 사실 거리를 두고 있었고, 특히 지금 후회되는 것은 그들을 조롱하는 유머를 거리낌없이 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 잘못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앨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목회일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던 한 사람이 자기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부터 나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상한 심성과 영성을 지녔고, 책임감이 강하며, 내가 무척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봤지만 좀처럼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고통과 고립, 두려움, 절망, 그리고 외로움이란 단어로 짜여진 천 조각 같아요.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었죠.”

당신도 동성연애자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내가 이탈리아계 백인, 그리고 이성애자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키가 크고, 머리색이 빨갛고, 음악적인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소질을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 우리가 그런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 역시 개인적인 선택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동성연애자들을 거부하고 그들을 마치 천민처럼 대하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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