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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지음 | 도솔출판사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지음/이반 옮김

도솔/2002년 5월/288쪽/8,500원



조몬 삼나무 앞에 서다

숲에는 아무것도 아닌 보물이 끝도 없이 숨겨져 있다. 숲만이 아니다. 눈을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바다나 산은 물론 강과 들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조몬 삼나무(일본의 신석기시대부터 생존해 온 삼나무로 일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가 있다. 조몬 삼나무는 차로 갈 수 있을 만큼 간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왕복 아홉 시간이 걸리는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섬 주민들도 자주 가보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을 먹고 만나러 가면 그때마다 다른 기쁨과 메시지를 우리에게 준다. 조몬 삼나무의 시간이라 불러도 좋은 특이한 시간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올 3월에 조몬 삼나무를 만나러 갔다. 그 사이 야쿠 섬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다. 조몬 삼나무는 상당히 가파른 산비탈에 자생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이 늘어나면 나무 주위 흙이 유실되는 게 문제였다. 삼나무가 고사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된 것이 스테이지 관람법으로 산비탈에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계단에 이어 역시 나무로 이삼십 명 정도는 편히 서서 조몬 삼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스테이지를 만들었지만 이 인공 스테이지 때문에 삼나무에는 가까이 다가가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착잡한 기분으로 삼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뒤 나무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 날 조몬 삼나무에서 내가 본 것은 한쪽 뿔이 꺾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버펄로였다. 한쪽 뿔이 꺾인 채 눈물을 흘리는 버펄로라는 도형으로 조몬 삼나무가 전하려고 했던 것은 자연 전체에 대한 우리들의 존경심의 결여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들은 최근 100년간, 혹은 200년간 자연을 존중하는 사회 풍조를 잃어버린 채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용인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태양계의 이제까지의 연령은 46억 년, 앞으로의 수명은 50억 년이라고 산출이 돼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지구 위에서 생물이 생존해 갈 수 있는 시간은 아직 길다.

여기에 산다고 하는 것은 호화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어도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게는 일상 속에서 계속되는 즐거움이야말로 가장 좋고, 조몬 삼나무가 그렇게 하듯이 텃밭 한 귀퉁이에 놓은 통나무에 앉아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는 시간이야말로 참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석기문화를 즐기다

5월, 이 계절의 자연이 주는 혜택에는 수유나무 열매와 나무딸기도 있다. 우리 집에서는 5, 6년 전에 심은 것이 작년부터 마침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올해는 나무가 크게 자란 만큼 작년보다 열매가 많이 열려 우리 식구가 따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냥 빨갛기만 할 때는 시고 떫어서 손길이 가지 않지만 진홍색으로 잘 익었을 때는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울려 먹기 좋은 들 과일이 된다.

오후 2시를 지나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하는 최초의 놀이는 수유나무 열매따기다. 두 살짜리 동생과 작은 봉지를 들고 둘이서 정원의 풀숲을 헤쳐 나간다. 딸애는 작년에도 수유나무 열매따기를 해 보았기 때문에 처음이 아니지만 막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손으로 따는 나무 열매니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울지 짐작이 간다.

열흘 정도로 수유나무 열매의 계절은 끝이 났다. 나무딸기는 그것과 같이 열리기 시작했으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무딸기나 풀딸기로서 이 섬에 자생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도 다섯 종류가 있는데 요즘에 익고 달고 맛있는 것으로는 류쿠 딸기와 바라 딸기 두 종류를 들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나무 딸기는 집 주위의 풀숲을 비롯하여 어디에나 자생하고 있어 이 시기는 딸기의 계절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인 이로코이족은 일년 중 다섯 번째 달을 ‘과일이 열리기 시작하는 달’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S씨의 비파, 우리 집의 매실나무, 빗쿠리 수유나무 열매, 그리고 야생의 나무딸기 중 순수하게 석기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무딸기뿐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나무 열매로는 밤이나 호두, 상수리나무 열매, 도토리나 떡갈나무 열매 등 무수한 견과류가 확인되고 있고, 연한 과실로는 들딸기나 소귀나무나 개다래나무 등이 확인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나무 딸기를 먹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가 풍요로운 시대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시대에 그 시절의 문화가 풍요로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여기서 내가 ‘석기시대 충동’이라고 부르는 자연 회귀의 바람이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명을 균형 잡힌 모양으로 만들어 가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등산, 폭포 오르기, 캠프,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다. 그 충동을 나는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충동’으로 부르고 있다.

숲에 기름오동나무의 흰 꽃이 피며 야쿠 섬은 이미 장마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얼마 동안은 계속 비가 오겠지만 야생의 나무 열매는 빗줄기 속에서도 계속 익어 가리라. 이 우기의 숲에서 검게 익어 가는 것은 그 맛이 탁월한 소귀나무 열매다. 그 나무는 한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원숭이도 다 먹지 못하고 인간에게도 충분히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들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가 차려 주는 풍요로운 밥상

7월에는 모처럼 집에 온 딸애가 바다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틀 동안 계속해서 바다에 갔다. 이틀간 세이노코(거북손)를 계속 먹었기 때문에 딸애가 먹을 것만 조금 잡고 난 뒤 오로지 ‘이소몬’이라 불리는 조개를 찾아 바닷속을 헤엄쳤다. 이소몬은 작지만 살이 대단히 맛있다. 썰물 때는 괸 물웅덩이 등에서 잡을 수 있지만 밀물 때는 헤엄을 치면서 물 속이 바위 틈 따위에 붙어 있는 것을 딴다. 하지마 이소몬은 세이노코와 달리 찾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산소 봄베(압축가스를 속에 넣고 저장․운반 등에 사용하는 고압 용기)를 부착한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잡는 일도 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스노클(잠수용 플라스틱 관)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며칠 지난 밤에는 다음 날 다시 도쿄로 돌아가야 하는 딸애를 위한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날의 경우 사 온 것은 맥주 세 통뿐이고, 뱀장어 양념 장국, 민물새우 회, 날치는 모두 우리가 잡아온 것이거나 주변 사람들이 준 것들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야식을 진정으로 풍요롭고 호화로운 야식으로 보며 기쁘게 생각한다. 민물새우 회가 있기 때문에 한층 잔치는 호화스러워졌지만 그것이 없었더라도 그 날 밤의 야식은 충분히 진수성찬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진수성찬이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석기시대 문화인 수렵과 채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핵과 석유 에너지에 의거한 우리들의 문명은 그것이 배출하는 유독물질이나 대기오염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절망적인 미래밖에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비롯하여 재생 가능 에너지나 자원에 의거하는 석기시대 문명은 우리에게 태양계가 존재하는 한 끝없이 이어져 갈 문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적어도 1만 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의 불과 200년 사이에 이렇게 지구환경이 악화된 것을 생각하면 1만 년이라는 기간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인류의 진정한 삶은 바닷가의 여울과 바위를 부모로 삼고 생육하는 세이노코처럼 지구를 어머니로 삼고 사는 인류의 오래고도 새로운 신화로 옮겨 가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옮겨 가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아웃 도어 라이프

오구니 신사에서의 세미나에서는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테라다 토쿠고로 노인과 재회했다. 이 노인은 목화를 재생하고 국산 목면 원단을 유통시키기 위해 이제까지 1억 엔 이상의 논밭 재산을 쏟아 넣어 왔다고 한다. 세상에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노인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만나뵐 때마다 목화에 사로잡힌 듯한 그 생동하는 정열에 압도당하곤 한다.

세미나가 끝나고 그 노인에게 받은 목화 열매가 여섯 개나 달린 목화 줄기를 종이봉지에 담아 들고 걷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목화, 맞지요!” 그 지방 사투리를 그대로 드러낸 억양으로 마치 매우 반가운 것을 만난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목화가 그 할머니 가슴에 아직까지 좋은 것으로, 반가운 존재로 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가고시마 역, 가고시마 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의 지하 상가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반색을 했다. 이처럼 낯모르는 사람들이 더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붙여 온 것은 목화가 과거에 얼마나 우리의 생활과 깊게 관련돼 있었는지를 여실하게 가르쳐 준다.

집에 돌아와 문헌을 조사해 보니 일본에 처음으로 목화가 들어온 것은 799년의 일로 작은 배에서 표류하던 한 인도인이 목화씨가 들어 있는 작은 병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인도인이 표류한 장소는 미가와이 하즈 군이었는데 현재는 아이치 현 니시오 시 덴지쿠마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그 천축인(인도인)을 기리는 덴지쿠 신사가 있고, 거기에는 목화씨가 들어 있던 작은 병이 지금도 사보(私寶)로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일본은 세계 최대의 목화 수입국이라고 한다. 이런 경제 시스템이 확립돼 있는 이상 이 땅의 목화를 되살리는 일에 산업으로서의 이익은 적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취미나 기쁨으로 작은 밭이나 정원, 화분에서 목화를 재배해 보는 일은 가능하다.

내년 봄이 되면 나도 노인의 꿈을 따라 목화씨를 뿌려 보리라. 모든 하천의 생태계 문화의 재생과 창조, 그리고 목화의 부활, 이것들이 아직은 조금 생경해 보이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내 소원이 되고 기쁨의 씨앗이 돼 버린 이상 나는 내가 사는 여기서 아주 작은 크기로라도 그것을 실천해 갈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땔감 구하기가 주는 즐거움

숲 속의 골짜기 땅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즐거움의 하나는 일에 정해진 스케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그래 그 일을 하자는 예정 같은 것이 얼추 생기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연히 생기는 일이 그날 하루의 일을 결정해 버리는 일도 자주 있다.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죽은 통나무를 하나를 주워 땔감을 쌓아 두는 목욕탕 처마 밑에 던지며 보니 땔감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산골짜기에는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나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먼저 산에 가기로 했다.

크고 좋은 통나무 토막을 얻는다는 것은 숲의 주민으로서는 마치 큰 재산을 손에 넣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에 갈 때는 늘 좋은 통나무 도막이 눈에 띄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단단하고 화력이 강한 조롱나무나 떡갈나무 종류가 최상의 땔감이다. 오늘 구한 땔감의 대부분인 삼나무는 탈 때 탁탁 터지고 화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에 최고는 아니지만 잘 탄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무에 앞서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에 그런 대로 만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컷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차에 가득 땔감을 싣고 났을 때였다. 문득 길이 1미터 정도 직영 40~50 센티미터 정도의 훌륭한 통나무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나무였다. 의자로 삼으려면 적당한 길이로 톱질을 하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없는 길이였다. 보면 볼수록 집안에 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나 혼자서는 운반할 수 없었으므로 다른 날에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다만 거기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알아 두는 것만으로, 가을 햇살을 충분히 받았다고 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바다에서 땔감을 구한다는 것 자체를 기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밤낮없이 바다 물결에 떠밀려 오는 나무의 양은 상당하다. 그래서 섬 사람에게는 바닷가가 옛날부터 산과 같거나 그 이상으로 땔감 구하기가 좋은 장소였다.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나서 적당한 곳을 찾아 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나무만 모아 천천히 차까지 나른다.

좋은 땔감을 때면 자연스레 불길도 좋다. 또한 이상하게도 좋은 기분으로 불을 때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좋은 불길이 생긴다. 그 날은 삼나무이기는 해도 손수 골라 온 좋은 땔감으로 그리고 좋은 기분으로 불을 지폈기 때문에 흔히 볼 수 없는 불길이 조용히 타올랐다. 겨우 목욕물을 데우는 일뿐이기는 하지만 그런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생은 완벽한 것으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는 듯 느껴지곤 한다.토란

그 날 오후 나는 삽을 메고 토란 밭에 갔다. 토란 밭이라지만 진짜 토란 밭은 아니다. 작년에 캐고 남긴 새끼 토란이 절로 15~20그루쯤 자라고 있는 밭일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밭은 방치된 잡초지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우리 밭은 좋게 말하면 자연농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 하고 내버려 놓은 밭 같다. 나는 때로 작물 주위의 풀을 낫으로 벤 다음 벤 풀을 작물 주위에 덮어 주거나 목욕탕 아궁이에서 생기는 나뭇재를 퍼다 뿌리며, 나날이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를 차례대로 밭에 파묻어 가는 정도의 일 밖에는 하지 않는다.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벤 잡초를 작물의 부근에 덮어 주면 그것이 자연히 썩어서 비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풀 두고 가꾸기’라고 부르고 있다.

토란을 전쟁 때 내가 가 있던 어느 시골에서는 새끼 토란이라 했다. 새끼 토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 봄에 심는 씨앗 토란(새끼 토란)은 가을과 겨울을 거쳐 어른 토란으로 자라 그 주위에 수많은 새끼 토란을 새끼친다. 어른 토란은 주먹보다 크지만 아리고 딱딱하여 먹지 않고 버린다. 우리가 토란이라 부르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그 새끼 토란이다.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토란의 세계에서도 새끼 토란이 제 몫을 할 만큼 자라면 어른 토란은 쓸모가 없는 물건으로서 용서 없이 그리고 주저 없이 밭 구석에 버린다. 버린 어른 토란은 그대로 썩는 것도 있지만 반 이상은 흙 속에 묻힌 것도 아닌데 밭 구석에서 뿌리를 내리고 크고 당당하게 잎을 피워 옆에서 언뜻 보면 밭 가운데의 토란보다 더 나아 보이는 일조차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토란은 더 이상 새끼 토란을 만들 힘이 없어 파 보면 자신만 더욱 굵게 자랐을 뿐 새끼 토란은 하나나 둘밖에 붙어 있지 않다.



우수

이 섬에서는 12월이나 1월에도 쑥을 딸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역시 우수(음력으로 2월 18일, 19일) 무렵부터다. 우리가 쑥수제비를 먹고 싶어하는 날은 맑게 갠 따뜻한 날이 아니라 기온이 뚝 떨어져 한겨울로 다시 돌아온 게 아닐까 싶게 북서풍이 휭휭 거칠게 부는 쌀쌀한 날이다.

그런 날은 배도 비행기도 뜨지 못하고, 신문도 우편물도 오지 않는다.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날에는 쑥수제비가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누군가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입에 올리면 그것으로 결정이다. 쑥경단을 만들고 그것을 된장을 푼 뜨거운 국물에 넣어 수제비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쑥 뜯기는 대개 아이들의 놀이 겸 일이다. 쑥은 털머위보다 더 흔하게 어디에서나 자생하고 있고, 아이들도 쑥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나가서 쑥을 좀 뜯어 올래?”라고 부탁을 하면 세 살과 다섯 살 난 두 꼬마가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몸을 구부리고 바람 속으로 뛰어나간다. 아이들은 자기들도 도움이 된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또 쑥수제비를 좋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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