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한의 살림하는 남편일기
김전한 지음 | R&D Book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지 할머니 품에 안겨 방글거리고 있는 내 아들의 시선과 만났다. 갑자기 온몸으로 몰려오는 자각, 내가 한 아이의 애비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거의 동물적인 느낌이 나를 휘감아온다. 내가 저 아이의 먹이를 물어 와야 할 애비라는 사실을 녀석은 방글거리는 눈빛으로 내게 각인시켜 준다.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된다고 녀석이 내게 말한다. 나는 수화기를 다른 쪽 귀로 옮기면서 심호흡을 한다.나는 다시 주부생활로 돌아왔다. 게다가 아이까지 딸린 주부이다. 처음 몇 달 동안 아이는 주로 잠만 잤기 때문에 시간 맞춰 우유 먹이고 난 뒤에 나는 내 방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의 눈이 나를 향해 방그레 웃으면서 반응을 보일 때부터 녀석은 서서히 저의 마각(?)을 드러냈다. 그와 더불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유 주면 쌔근쌔근 잠자는 것도 잠시 잠깐, 내가 다른 방으로 가서 책이라도 좀 볼라치면 다시 와앙 울어 제친다. 그러나 녀석의 울음 종류가 서서히 감지되면서부터 고통스럽던 마음 공간이 성취감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그 즈음이 되어서야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동네 놀이터로 나갔다.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동네로 진출할 때에서야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주부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내가 출근한 뒤 아이를 싣고 나갔을 때 놀이터엔 20대 후반, 혹은 삼십대 초반의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있다. 저이들과 섞여야 된다. 아줌마들과 나의 거리는 백여 미터, 그러나 마음 속 거리는 천리 길 만리 길이었다. 이 상황을 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제대로 된 프로주부가 될 수 없다. 마침내 벤치에 도착한다.
"어이 고놈 이뿌게도 생겼다. 몇 개월 됐어예? 우리 아이는 인제 14개월인데예."로 시작된 대화는 불과 2, 3분만에 아이를 매개로 금방 섞여질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벤치에 엉거주춤 슬며시 구렁이 담 넘어오듯 철퍼덕 엉덩이를 깐다. 어쩌구 저쩌구…. 오전 두어 시간 아줌마들과 섞여서 수다를 떨다보면 이건 그야말로 정보의 황금어장이다. 아이 키우기 전문가들로부터 생생한 현장음과 갖가지 노하우를 얻게 되었으니 남자 주부로서는 횡재의 날이었다. 그래 역시 이 능선은 넘을만한 고지였다.나: 야이, 개자식아! 감독: 뭐, 뭐라고? 뭐라 했어?
나: 야이 씹새끼야! 빨리 돈 내놔!
감독: 야아, 김작가…너 미쳤냐?
나: 미치지 않았으니 이런다. 빨리 돈 줘!정확하게 삼일 뒤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오우, 놀라와라. 한 아이의 애비가 된 후 형형해진 나의 눈빛. 두려움 없이 세상으로 내딛는 내 발길.으라찻차 유모차복동이집안살림이란게 해도 해도 끝이 없으면서 노동의 강도에 비해선 그다지 표가 나지 않는다. 반면에 집안일이란 게 마음먹기에 따라선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자기 수양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자기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심리적 청량제도 된다. 어떤 때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전날 밤 씻어 불린 쌀을 가스 불에 올리고 창문을 열고 쓸고 닦고 어질러진 아이 장난감은 녀석의 방 장난감 통에 갖다 넣고 정리하고…앗, 이건 어제도 똑같이 한 일이잖아. 오늘 오후면 아이 녀석은 또 이것을 저곳에 던져놓겠지. 그러면 내일 아침 나는 또다시 반복적으로 다시 옮겨놓고 먹은 만큼 설거지 나오고 그릇의 모양 하나 바뀌지 않고. 어제처럼 씻고 또 씻는다. 이렇게 반복되는 손놀림.
내가 무슨 시지프라고 무의미한 바위 굴리기만 끊임없이 하는가? 울컥울컥 밀려오는 짜증과 자기 연민, 사람의 무의미성이 물 묻은 손가락 사이로 간질간질 침범해 오면 급기야 우울증 비슷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땐? 어쩌지…? 뭘 어쩌겠는가. 말아야지. 나 몰라라…팽개쳐야지. 하루 이틀 집안살림 팽개친다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지 않는다. 그만한 일로 모두가 굶어서 쓰러지거나 집안이 전염병으로 덮이거나 천장이 내려앉지 않는다. 집안은 조금 어지러워지고 약간의 냄새가 나고 발바닥에 저벅저벅 먼지가 밟히는 정도이다.
그래도 그런 엿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그저 나 몰라라 나자빠지는 수밖에 없다. 주부의 마음에 쌓인 언짢은 먼지부터 털어 내는 게 급한 일이다. 그건 남자 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주부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주부들이여, 기분 꿀꿀해지면 집어치워라. 하지 말고 개기자.지난 해 가을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한달 동안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돌아온 바로 그 날 밤, 주체할 수 없는 엄청난 분기탱천함으로 아내와 합궁을 하였다. 흐흐흐…바로 그 날 밤 둘째 녀석이 우리 가정으로 들어왔다. 울 엄마는 둘째 녀석을 복동이라 부른다. 녀석이 세상에 오면서 집 장만하여 이사도 하였고, 난 그 즈음에 첫 소설책도 출판하게 되었다. 울 엄마는 그 모든 게 둘째 아들이 복을 싸안고 우리 가정으로 온 덕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나도 그렇게 믿고 아내도 동의를 한다.
내가 집에 들어앉은 지도 어언 4년이 넘어서고 있다. 『주역』 둔괘(遯卦)의 가르침처럼 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내 꿈의 자리를 옮겨가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가 있었고 대신 아내는 경제적인 문제를 책임져 주었다. 그렇게 내 자신의 에너지를 키우다 보니 요즘은 몇 군데 글 쓸 수 있는 지면도 확보되었고, 시나리오 창작강의도 하고, 또 주문받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내 오리지널 작품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일련의 상황이 가능한 것은 처가 가까이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 주부 운운하지만 사실 상당 부분 장모님의 도움없이 어찌 주부생활과 글 작업을 병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차츰 수입도 아내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내가 아내보다 경제적인 수입이 많아졌다고 해서 나의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집안생활을 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다. 다른 남성작가들이 가질 수 없는 또 하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줌마들의 팔뚝이 왜 굵어지는지, 식탁에 남은 음식들 버리기 아깝다고 주워 먹다보니 아줌마들 살찌는 게 당연한 노릇이라는 것도, 아줌마들 전화기 붙들고 장시간 수다 떤다고 욕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한국의 아줌마들 버스 타면 자리 쟁탈전에 혈안이 되었다고 폄하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가사노동은 도저히 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난이도 높고 강도 센 일이라는 것,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글의 기교보다는 내가 쓰는 글이 누구를 위해 봉사할 것인가 고민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하여, 사랑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소중하다는 그 진부한 금언이 아이 키우면서 가슴 절절히 와 닿을 때, 바깥 생활로만 떠돌 때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 숱한 인간적인 성숙들. 그것은 모두 주부생활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보너스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목도 채 가누지 못하는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사실 육체적으로 힘든 아득함이 없었던 건 아니다. 뭐랄까 군 생활 다 끝낸 제대 말년의 육군 병장이 다시 신병 훈련소 들어가라는 명령받았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제 첫째 녀석 어느 정도 키워서 얘기도 통할 정도가 되었는데 다시 밤잠 설치며 우유 먹여야 하는 되돌이표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첫째 녀석 때 잘 모르고 어리버리 했던 것을 교훈 삼아 이제는 좀더 제대로 키울 수가 있겠구나 싶은 자신감도 생겼다.
게다가 이 녀석은 우리 집에 복을 넝쿨넝쿨 싸안고 들어온 녀석이 아닌가. 우리에게 딸아이가 없다는 것이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이제 제대로 꽉 찬 가족 구성원이 되어 있지 않은가. 안방에 이불 두 채 펼쳐 놓고 큰놈은 내 옆에 작은놈은 제 엄마 곁에 눕히고 누워 있노라면 나도 몰래 새어나오는 바보 같은 웃음소리, 히히히….트릭을 부리다쇼핑이란 무엇인가기분이 꿀꿀해질 때드디어 녀석이 트릭을 부린다. 말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굴린다는 뜻이다. 반가움과 두려움과 설렘이 엉키는 묘한 순간이다. 녀석과 골목 산책을 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면 녀석은 늘 젤리를 사달라고 조른다. 나는 하루에 꼭 두 개씩만 사 준다. 그러던 어느 날 할인매장에 가니 88개들이 한 통이 5000원이라 한다. 한 통을 샀다. 그 투명 플라스틱 통을 가슴에 안고 녀석은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다.
"너, 이것을 하루에 딱 두 개만 먹어야 된다. 아침에 하나 저녁에 하나. 알았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녀석은 당장 젤리를 꺼내달라고 한다. 녀석은 젤리 하나를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삼켜버리고는 또 하나 달란다. "아까 분명히 약속했지? 하루에 두 개만 먹겠다고. 이제 하나 먹었으니 이따가 밤이 되면 또 하나 먹자." 녀석은 가만히 있는다.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러다가 히죽 웃으면 입술을 연다. "두 개씩 먹기로 했잖아!"를 반복하여 강조하면서 또 달라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녀석의 논리는 대충 이러한 것 같다. 내 주장은 하루에 두 개를 먹자였고 녀석의 주장은 한 번 먹을 때마다 두 개씩 먹기로 약속했다는 논리인 것 같다. 녀석은 억울하다는 표정 연기를 한다. 우리는 와하하 웃을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아이가 처음 기기 시작할 때, 처음 일어서서 걷기 시작할 때, 처음 말문을 열고 맘마 빠빠라고 발음할 때 이상의 놀라움이었다. 태어나고 31개월 째 되는 어느 일요일 오후에는 녀석은 드디어 복잡하고 복잡한 속임수의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문갑을 새로 사야 한다. 며칠 동안 아내와 고민한다. 하도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안목만 잔뜩 높아져서 고급 제품과 일반 제품이 한 눈에 구분된다. 문갑 하나 사는데 집 한 채 사는 정도의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포기해 버렸다. 몇 번 왔다갔다 하다보니 아내는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모처럼의 휴일날 그냥 쉬고 싶은데 자꾸 그거 사러 가자니 차라리 없이 살자는 식이다.
미국에서 나온 의학 보고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남녀의 뇌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여성이 쇼핑에 민감한 반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원시수렵생활에서 온 습성이라는 것인데 살아보니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남성이다. 나의 아내는 엄연히 여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환경으로 인해 그 상황이 바뀌어 있다. 나의 아내는 사실 쇼핑에 별 관심이 없다. 반면 나는 머리 속에서 처리해야 할 일 중에 쇼핑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즉 생활을 꾸려가려니 무엇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구입할까하는 생각들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대체로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부분 주부들의 쇼핑이란 부정적 의미의 소비적 쇼핑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생활용품들을 구입할까에 더 가깝다. 쇼핑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는 그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다. 살림 사는 자의 쇼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그것 역시 하나의 경제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행동양태는 달라지게 된다. 쇼핑은 성별의 본능이 아니라 역할의 본능일 따름이다.출산예정일을 거의 3주일 앞두고부터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밤 배 안에서 오는 신호가 심상찮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기실에서 꼬박 하루를 버티는데 배 안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결국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틀림없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하루 입원해서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별일이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보니 아내가 아랫배 아프다 해도 처음처럼 그렇게 긴장도 되지 않고 그러려니 싶었다. 아내는 내게 외출이라도 좀 하고 오라 하였다. 나는 찬바람 맞으며 평창동 언덕길을 휘휘 내려와 신촌으로 나갔다. 영화보고 나오는데 매표구 앞에서 시나리오 쓰는 후배를 만났다.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하면서 시작된 초저녁 술자리가 전철 끊기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열두 시가 넘어가고 새벽 한 시쯤 되어서야 아차 싶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술이 확 깨어버렸다. 집에 아무도 없지 않은가. 부랴부랴 동국대 앞 제일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아내는 벌써 분만실로 들어가 있었다. 가족분만실 침상에 아내가 누워있고 곁에는 소파가 있었다. 아직 아이가 나오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나는 피잉 머리가 돌면서 소파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아내는 밤새도록 끙끙거리며 진통을 했지만 나는 소파에 뻗어서 코를 드르렁 골며 이까지 부드득 갈아가며 잘도 잤다.
아침이 되자 의료진들이 출산장비를 싣고 밀려 들어왔다. 그제서야 나도 잠에서 부시시 깨어났다.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탯줄을 끊고 나니 아이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이었다. 대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다음 장면, 감동에 가득 찬 남편은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여보 수고했어!"라는 풍경을 연출해야 할 텐데 전날 밤의 숙취로 탯줄을 끊자마자 나는 소파에 푹 쓰러져 버렸다. 손을 씻고 있던 의사 선생이 한 마디를 걸쳤다. "애 아빠께서 꽤나 노심초사했나 봐요."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옮기고 난 뒤 아내의 한 마디, "특급호텔비 지불하고 잘 잤어?"영화 <파고>를 보고 난 뒤에는 집안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가라앉았다. 빨래도 하고 시선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먼지도 닦아 내고 책장 정리도 해 보고, 이름하여 수신제가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아니 집안을 가지런히 하면 저절로 내 몸이 닦인다. 옛 선인들께서 말씀하신 '제가'라 함은 집안을 가지런히 통치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내게 있어서 '제가'는 '살림살이에 가지런히 접근해 본다'로 바뀌었다. 집안일 하다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이 바로 수신이었다. 수신제가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나는 본격적으로 적극적인 마음으로 주부생활을 시작했다. 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나갈 수 있을까?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 흔히 토해내는 넋두리가 있다. "야아, 띠바…난들 꿈이 없었겠어? 뭔가 창의적인 일, 뭔가 보람되고 내 존재를 훗날까지 확인시킬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되는 일, 이놈의 하얀 와이셔츠가 아니라 노란 쫄티 입고 샌들 찍찍 끌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겠어. 허지만 어쩌겠냐.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 나 좋을 짓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대개의 남성들은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하루하루 시들어간다는 게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가족 부양을 하다보면 인간인 이상 피부양자들에게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린다. 너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의 모든 꿈을 접었다. 그러니 내가 아내 위에 군림하는 것은 너무다 당연하다. 그 정도의 권리 보장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네 인생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그런데 이 말은 참으로 무책임한 주장처럼 들리겠지만 '남성들이여!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나?'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남자라면 당연히 먹이사냥에만 나가야 된다는 것을 누가 강요하였는가?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남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오래된 헛소문을 믿고 있었던 건 아닌가? 고작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위치를 포기하지 못하여 자시의 꿈을 너무나 쉽게 포기한 건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은 희생자라고 은근히 볼멘소리 하면서 그러한 삶의 불만으로 가족에게 군림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