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한의 살림하는 남편일기
김전한 지음 | R&D Book
출발나는 현재 주부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대략 5할 대의 주부다. 아내가 2할 정도이고 나머지 3할은 장모님 몫이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순전히 내 식대로 해석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아내 몰래 쓰고 있다. 훗날 아내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몫이 2할뿐이라는 것에 뚱할지도 모르겠다. 장모님은 당신 몫이 3할이라는 곳에 어쩌면 서운해하실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최소한 하루 8시간 정도 우리 아들 녀석과 놀아줘야 한다는 건 3할이 아니라 주부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모자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5할 대이긴 하지만 나는 전업주부에 가깝다. 그건 투자하는 시간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습관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내일 아침은 뭘 해 먹지? 감자볶음이나 할까? 가만 양파가 떨어졌는데 냉동실에 쌓아 둔 재료들 중에 뭐 없더라? 화장실 바닥청소는 언제 했더라? 이번 주 안에는 사람을 빨래들 일괄처리해야 되는데, 아이 방도 새로 정리해야 되는데….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이런 쫀쫀한 생각들이 내 잠자리를 마구 뛰어다닌다.
나의 주된 일은 주부가 아니라 글쓰기이다. 그런데 머릿속에 있어야 할 글쓰기 구상은 살림살이 걱정에 점령당해 버렸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참한 주부가 되겠다고 결혼을 꿈꾸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이렇게나 자연스러워졌을까? 5년 전, 1997년의 겨울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극의 탄생한때는 내게도 야무진 꿈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빈곤한 나의 식생활은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감. 자취를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혼자 먹는 1인분의 식사를 위하여 투자하는 돈과 시간의 비효율성. 그래서 대개 빵과 우유로 때우거나 그도 아니면 거의가 매식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야말로 '가정식 백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그 가정식 백반을 당연히 여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믿음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그 일을 누구도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왁자지껄, 우여곡절, 룰루랄라의 결혼식과 신혼여행, 양가 어른들께 경과보고, 그리고 급작스런 2박 3일간 부산 모여고 홍보영화 촬영으로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부산에서 희희낙락거리며 회에다가 소주 한잔 걸쳤겠지만 아내가 차려 줄 밥상에 대한 꿈에 젖어 서울로 냅다 달렸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해물탕이 먹고 싶다고 전화로 미리 알려주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퇴근길에 사온 해물탕거리를 열심히 다듬고 있었다. 흐흐흐…바로 이거야. 내가 꿈꿔오던 결혼생활의 모습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해물탕을 마주하고 앉아서 드디어 첫 삽을, 아니 첫 숟갈을 뜨는데 '오잉, 이게 뭐야?' 이건 해물탕이 아니라 소금국에 가까웠다. 결정적으로 해물탕의 모양새를 망쳐놓은 것은 쑥갓이었다.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놓는다.
나: … 아내: 왜? 나: (여전히)… 아내: 왜, 너무 감동적이어서 목이 메여? 나: 순서! 아내: 무슨 순서? 나: 쑥갓의 역할이 뭐고? 그런데 쑥갓이 이 모양이 되도록, 그리고 해물탕 생명이 뭔지 아나? 바로 담백함 아니가, 그런데 간장, 된장을 무작시럽게 쏟아 넣고 또 말야…. 아내: 순서? 그깟 순서가 그렇게…중요해? 아무려면 어때, 첫 음식에 조잡하게…이런 타 박이나 하고…이 맛이…어때서…. 나: 조오자압? 이 맛이 어떠냐고? 이게 해물탕이가? 음식쓰레기 잡탕이제. 쑥갓을 나중에 얹는 건 초등학생도 알 일 아이가. 너 혹시 저능아 아이가? 아내: 저능아? 나: 그래, 돌고래도 니보다는 사리분별력이 있을 끼다.
나는 분, 연, 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발에 걸리는 대로 슬리퍼 끌고 현관문을 벌컥 열고 집을 나선다.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다. 도로 건너 독립문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댄다. 아, 모든 것은 순간이구나. 그 첫 숟갈을 뜨기 일 초 전, 아니 영영영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행복에 그득 차서 득의만면이었는 데 이게 뭐람. 그때 가당찮게도 니체의 책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비극의 탄생!'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니 비극은커녕 우스꽝스런 남녀의 희극에 지나지 않은 겨울날의 저녁이었다.
재능에 눈뜨다그 후 집들이를 한다고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아내는 수저가 삼인 분 이상만 되면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우왕좌왕 혼비백산이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음식은 나올 줄 모른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주방을 치워야 한다. 내 차례다. 허무감이 몰려온다. 그거 한 그릇 먹자고 난리 블루스에 아수라장이 된 싱크대를 정리해야 하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녀석과 여자 후배를 만날 일이 있었다. 인사 삼아 "언제 우리 집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더니 두 녀석들은 눈치 없이 "언제? 언제가 좋겠어?"라고 구체적으로 나온다. 아! 되도록 집으로 사람 부르지 않으려 했는데…. 나는 궁리를 한다. 포만감이 있으면서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식사는 뭘까? 그렇다, 불고기다. 이젠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후딱후딱 해서 불고기와 밥을 내어 놓았는데 후배와 친구는 맛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아내도 칭찬을 곁들인다. "이 사람, 술 좋아하고 생활도 불규칙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꼼꼼하고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설거지계의 황제재능이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쯤에서 아내의 흉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나에 비해 상황판단이 매우 빠른 편이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치면 감정적이 되기 쉬운데 비해 아내의 두뇌는 삐리릭 찌리릭하며 매우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한 마디로 나보다는 머리가 좋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머리 좋은 여자가 왜 싱크대 앞에만 서면 그 모양이 될까. 이건 정말이지 사소한 사건 같지만 나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식사 후 두 사람이 다정하게 빈 그릇들을 함께 치운다. 아내가 싱크대에 물을 튼다. 잠시 후 내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로 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야채 담았던 접시, 과일 담았던 접시와 생선 담았던 접시, 게다가 생선 구웠던 프라이팬까지 한꺼번에 물 속에 섞여 있는 게 아닌가. 마침내 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도대체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냐? 잠깐만 생각하면 될 것으로 왜 일을 이렇게 벌어. 기름 묻은 그릇과 기름기 없는 그릇 분류하라고 몇 번이라 일렀건만 도대체 왜 매번, 매번 이 모양이야!" "그런 건 설거지계의 황제께서 알아서 하면 되지!"
그렇게 하여 나는 서서히 야금야금 엉거주춤 자의타의 반반으로 주방 쪽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편하게 사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 생존전략이다. 내 복에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아내가 해 주는 가정식 백반? 목마른 놈 샘 파고 배고픈 놈 밥 짓는다고, 어쩌겠는가. 재능 있는 황제께서 해결해야지.
아닌 밤에 홍두깨그 해 봄부터 경제의 흐름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경기가 어떠니 불경기가 저쩌니 하는 말들을 자주 입에 올렸다. 마침내 한국동란 이후 최악의 재앙이라는 그 이름도 찬란한 IMF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셨다. 나라 전체가 전쟁과 같은 폭풍 속으로 몰아쳐 가는데 내가 만난 IMF는 고요함이었다. 일 하자고 걸려오는 전화는 고사하고 술 먹자고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차츰 미뤄둔 살림살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보니 가스렌지에 켜켜이 쌓여 잇는 기름때가 보인다. 세철 수세미에 퐁퐁 몇 방울 묻혀 닦는다. 기분이 상쾌해지니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위쪽 싱크대를 열어본다. 그릇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 그 놈들을 크기별로 맞춘다. 뭔가 성취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성취감도 잠시. 아내가 들어와서 한 마디 궁시렁거린다. 지난 밤 펼쳐 둔 이불을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줌마들 사이에서 흔하게 떠돌던 그 말이 온 몸으로 세포 하나하나에 저미듯 다가왔다. "집안일이란 게 그래요, 해도 해도 표 안 나고 잠시 손놓으면 단박에 아수라장되는 거예요."
수신제가(修身齊家)영화 <파고>를 보고 난 뒤에는 집안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가라앉았다. 빨래도 하고 시선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먼지도 닦아 내고 책장 정리도 해 보고, 이름하여 수신제가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한다. 아니 집안을 가지런히 하면 저절로 내 몸이 닦인다. 옛 선인들께서 말씀하신 '제가'라 함은 집안을 가지런히 통치한다는 의미였겠지만 내게 있어서 '제가'는 '살림살이에 가지런히 접근해 본다'로 바뀌었다. 집안일 하다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이 바로 수신이었다. 수신제가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나는 본격적으로 적극적인 마음으로 주부생활을 시작했다. 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로 나갈 수 있을까?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 흔히 토해내는 넋두리가 있다. "야아, 띠바…난들 꿈이 없었겠어? 뭔가 창의적인 일, 뭔가 보람되고 내 존재를 훗날까지 확인시킬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되는 일, 이놈의 하얀 와이셔츠가 아니라 노란 쫄티 입고 샌들 찍찍 끌고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겠어. 허지만 어쩌겠냐.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 나 좋을 짓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대개의 남성들은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하루하루 시들어간다는 게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가족 부양을 하다보면 인간인 이상 피부양자들에게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린다. 너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나의 모든 꿈을 접었다. 그러니 내가 아내 위에 군림하는 것은 너무다 당연하다. 그 정도의 권리 보장도 되지 않는다면 우리네 인생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그런데 이 말은 참으로 무책임한 주장처럼 들리겠지만 '남성들이여!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나?'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남자라면 당연히 먹이사냥에만 나가야 된다는 것을 누가 강요하였는가?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 남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오래된 헛소문을 믿고 있었던 건 아닌가? 고작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위치를 포기하지 못하여 자시의 꿈을 너무나 쉽게 포기한 건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은 희생자라고 은근히 볼멘소리 하면서 그러한 삶의 불만으로 가족에게 군림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건 아닌가?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회적인 일로부터 소외를 받고 난 뒤 내 꿈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의 현실은 매우 쫀쫀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오늘 저녁거리로 무얼 사지? 최소한의 용돈으로 하루 버티기. 두 식구가 먹는 음식 어떻게 하면 버리지 않고 정확한 양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먹이사냥을 나가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워 가겠다면 이쯤의 쫀쫀함은 사람 사는 일상의 재미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몇 푼의 돈을 주면 언제나 "옛썰!"하고 달려가 써주는 잡문이 아닌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이라는 장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파하하하하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초승달이 만월로 차오르듯 어김없이 아내의 배는 점점 차올랐다. 결론은 내가 육아를 해야 한다. 이런저런 육아책을 뒤적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마음을 그렇게 먹고 보니 까짓것 못할 것도 없지 싶었다. 영화 쪽 일하는 친구 중에 애를 둘이나 키워낸 아줌마가 있다. 일하면서 그것도 혼자서. 한 동네 살아서 가끔 그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나는 그녀에게 큰 소리를 쳤다.
나: 아이? 당연히 내가 키워야지. 못할 게 뭐 있겠나, 기왕지사 주부생활하기로 한 거 제 대로 해야 안 되겠나. 신생아는 잠자는 시간이 많다믄서? 아이 잠 잘 때 책보고 글 쓰면 되지, 뭐. 여친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파하하하! 어이 김씨 아자씨! 정신 차리시 게. 뭐? 아이 재워놓고 책보고 글쓴다고? 파하하하!
분만실에서의 소동출산예정일을 거의 3주일 앞두고부터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밤 배 안에서 오는 신호가 심상찮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기실에서 꼬박 하루를 버티는데 배 안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결국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틀림없다는 아내의 말을 믿고 하루 입원해서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별일이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보니 아내가 아랫배 아프다 해도 처음처럼 그렇게 긴장도 되지 않고 그러려니 싶었다. 아내는 내게 외출이라도 좀 하고 오라 하였다. 나는 찬바람 맞으며 평창동 언덕길을 휘휘 내려와 신촌으로 나갔다. 영화보고 나오는데 매표구 앞에서 시나리오 쓰는 후배를 만났다.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하면서 시작된 초저녁 술자리가 전철 끊기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열두 시가 넘어가고 새벽 한 시쯤 되어서야 아차 싶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술이 확 깨어버렸다. 집에 아무도 없지 않은가. 부랴부랴 동국대 앞 제일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아내는 벌써 분만실로 들어가 있었다. 가족분만실 침상에 아내가 누워있고 곁에는 소파가 있었다. 아직 아이가 나오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나는 피잉 머리가 돌면서 소파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아내는 밤새도록 끙끙거리며 진통을 했지만 나는 소파에 뻗어서 코를 드르렁 골며 이까지 부드득 갈아가며 잘도 잤다.
아침이 되자 의료진들이 출산장비를 싣고 밀려 들어왔다. 그제서야 나도 잠에서 부시시 깨어났다.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탯줄을 끊고 나니 아이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이었다. 대개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다음 장면, 감동에 가득 찬 남편은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여보 수고했어!"라는 풍경을 연출해야 할 텐데 전날 밤의 숙취로 탯줄을 끊자마자 나는 소파에 푹 쓰러져 버렸다. 손을 씻고 있던 의사 선생이 한 마디를 걸쳤다. "애 아빠께서 꽤나 노심초사했나 봐요."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옮기고 난 뒤 아내의 한 마디, "특급호텔비 지불하고 잘 잤어?"
형형한 눈빛오랜만에 시나리오 주문이 들어왔다. 거의 일년 동안 그쪽 동네와 인연 끊고 살다가 다시 나가게 되었다. 마치 문화혁명 때 저 먼 변방으로 쫓겨났던 북경인이 다시 중앙당에 소환받아 가는 기분이었다. 맨날 아이 기저귀 갈던 손, 아이 젖병 씻던 손으로 노트북 두드려보니 조금은 내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원고를 넘겨주었는데 어째 원고료가 감감 무소식이다. 애초에 계약서 쓰지 않은 게 화근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이 작업 때문에 엄마까지 상경하고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돈 줄 사람이 자꾸 내 전화를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하겠다는 사람이 직접 제작도 하겠다고 했으니 결국 감독에게 돈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구좌번호를 불러주고 일주일 뒤 떨리는 심정으로 통장을 확인해 보면 돈이 들어와 있기는커녕 비참한 액수의 내 잔고 숫자만 있다. 다시 전화를 건다. 삼일 뒤에 전화하란다. 삼일 뒤에 전화한다. "아, 미안하다. 한 열흘만 기다려 줘!" 나의 대답은 온순하다. "네!" 다시 열흘 뒤 전화를 한다. 다음 주 초에나 다시 한번 연락하란다. 다음 주 초가 된다. 집 거실에서 아이 우유 먹이다가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아이는 할머니에게 넘겨주고 전화를 건다.
나: 저 김입니다. 감독: 아, 김작가! 나 지금 운전 중인데 좀 있다 전화해. 나: 약속된 주 촌데요. 감독: 아 왜 그러나. 나 지금 운전 중이라니까. 나: 그러니 빨리 끊으셔야죠. 그게 지금이 주 초라니까요. 감독: 아 이 사람아, 나도 사회적인 크레딧이 있는데 당신 돈 떼어먹을까봐 이러나?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지 할머니 품에 안겨 방글거리고 있는 내 아들의 시선과 만났다. 갑자기 온몸으로 몰려오는 자각, 내가 한 아이의 애비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거의 동물적인 느낌이 나를 휘감아온다. 내가 저 아이의 먹이를 물어 와야 할 애비라는 사실을 녀석은 방글거리는 눈빛으로 내게 각인시켜 준다. 이대로 물러나면 안 된다고 녀석이 내게 말한다. 나는 수화기를 다른 쪽 귀로 옮기면서 심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