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나이 들어가는 것의 아름다움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 씨앗을뿌리는사람
"남들에게 제 나이를 밝힐 수 있는 여자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내 나이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꽃다운 나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2차 대전 직후의 유행가라면 제목만 대도 끝까지 다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이쯤 이야기하면 아마도 내가 스쿠터를 새로 살 나이는 지났다는 것과 스쿠터를 사면서 얼마나 민망한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쿠터 값을 지불할 때까지도 내가 얼마나 무모한 거래를 하고 있는지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러 해 동안 나는 스쿠터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명 재촉할 일 있어?" 가족과 친구들은 겁을 주었다. 그 동안 스쿠터를 구입하는 일을 미뤄온 것도 사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친구와 함께 스쿠터 전시장 앞을 지나다 친구가 그저 구경이나 하자고 말했을 때 나는 왜 그 길로 그리도 위험한 물건을 덥썩 사들이고 말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그 작은 스쿠터는 색종이로 접은 비행기처럼 깔끔하고 말쑥했으며,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내가 스쿠터를 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 동안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몇 년 동안 스쿠터를 한 대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만일 그 기회를 놓쳤다면 그때부터 나는 이제 내 인생이 끝나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게 싫어서 좋은 일자리가 생겨도 마다하고 래프팅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회가 생겨도 보트가 뒤집힐까 두려워 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편협해지고 할 수 있는 일도 점점 줄어든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일은 임시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내가 운전면허증 발급처에 있는 금발의 젊은 아가씨에게 면허증을 건네자 그 아가씨는 별 생각 없이 면허증을 살피다 '생년월일'을 보더니만 토끼눈을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짐짓 점잔을 떨며 이렇게 말했다. "폭주족으로 등록하시기에는 나이가 좀 많으신 거 아닌가요?"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그 물건을 끌고 길에 나서자 훨씬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놀란 다람쥐처럼 신경이 곤두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속기와 브레이크 위치에 계속 신경을 썼다. 바로 그때 내 뒤로 어떤 차가 바짝 따라붙는 게 보였다. 얼른 옆길로 비켰는데 순간 자갈밭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나는 약이 올라 바닥을 쿵쿵 굴렀다. '브레이크는 어디 있지? 내가 왜 그렇게 빨리 달렸담?' 브레이크는 바닥이 아니라 손잡이에 있었다. 이튿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계속 연습했다. 나흘째 되던 날 드디어 나는 길가 풍경에 눈을 놀릴 만큼 여유로워졌다.어느 날 나는 부르릉 귀여운 소리를 내는 이 작은 물건에 좀더 자신이 붙어 강 아래로 3킬로미터나 떨어진 마을까지 모험길에 나섰다. 스쿠터를 세워놓고 먹다 남은 빵을 오리에게 주려고 강가로 내려갔다. 그런데 사내아이 둘이서 내 스쿠터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한 아이가 내 팔을 잡았다. "우리 자전거 두 대하고 할머니 스쿠터하고 바꾸실래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것 참 멋진 제안인데! 하지만 자전거 두 대는 필요 없는 걸." 그 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갈 생각도 않고 "할머니 어디 사세요? 이름이 뭐예요? 스쿠터는 얼마나 빠르죠? 값은 얼마나 되는데요?"하며 이것저것 캐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좀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나는 비로소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구나. 이 아이들은 이미 수줍음 많은 꼬마들이 아니고, 나 또한 이 아이들과 아무 상관없는 늙은 할머니가 아니로구나. 나는 신기한 장난감 주인이고 바로 그 사실이 우리 사이에 놓인 세대 차이라는 깊은 골을 뛰어넘게 만들었구나.' "할머니, 힘내세요!" 나는 비로소 내가 그들에게 친구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그 날 일을 수없이 많이 생각해 보았다. 그 스쿠터는 나를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그 스쿠터로 인해 내 인생에 불가능은 없을 것 같고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도대체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편 스쿠터가 위험하다고 가장 큰소리로 말리던 내 친구는 욕조에 넘어져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대학에 다시 다니던 미망인 친구는 젊은 학생들이 비웃는 것 같다고 하더니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우울증에 빠져 버렸다.



나는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모험을 피하는 게 아닐까 자문해 본다. 개리슨 케일러가 지적했듯 우리는 늙어가면서 점점 더 푼수가 될 수도 있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예'라고 긍정의 답을 하기 위해 노력하자. 물론 '예'라는 답이 늘 안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할아버지는 날 사랑하지 않아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어린 소녀는 중얼거렸다. 소녀의 아랫입술은 떨렸고, 텅 빈 눈길은 아래로 향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구겨지고 흙 묻은 옷, 거칠게 튼 손과 들쭉날쭉한 손톱들은 모두 그 아이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등이 약간 굽기는 했지만 키가 크고 당당한 풍모의 팔순 노인 버나드 래포포트는 그 작은 여자아이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아이들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자원봉사자 1천 명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노인은 아이를 위로해 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가난과 무관심으로 생긴 상처가 아이의 아름다움을 앗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으리라.버나드 래포포트에게는 가난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도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 볼셰비키의 아들이던 자신을 행운의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래포포트 부모님의 교육열과 근면함이 결실을 맺어 래포포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고, 1942년 지금의 아내 오드리와 결혼해 지금까지 55년이 넘는 긴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래포포트는 처갓집에 빌린 2만 5천 달러로 보험회사를 차렸다. 그는 사업 수완이 뛰어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업 성공으로 래포포트는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넉넉하게 베풀수 있다'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랜 세월 그와 오드리는 값진 일들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희사하였으며, 1977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훌륭한 박애주의자 25인에 속하게 되었다.



손주들을 둔 후로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래포포트는 그 가련한 어린 소녀와 다른 가난의 희생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자기 고향에 사는 몹시 가난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다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중 약 1천여 명이 자기 학년에 비해 읽기 능력이 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래포포트는 그 아이들에게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읽기를 가르칠 개인교사 1천 명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1천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이 철저한 자원봉사단체 이름은 '와코 원 사우전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그 나이가 되면 은퇴하지만 래포포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회사 지점을 방문하기 위해 일 주일에도 몇 번씩 미국 전역을 종횡으로 누비고 다닌다. 래포포트는 아직도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한 시간씩 내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백만 달러는 될 겁니다. 아이들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을 심어 주는 일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들 각자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래포포트는 한 소년과 한 학기를 마쳐가고 있다. 그 3학년 학생은 막 읽기 공부를 끝낸 두 권의 책을 소중하게 품고 있었다. 래포포트는 소년의 어깨를 팔로 감싸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이 어린 소년은 절망에 빠져 낙심한 그 소녀와 비슷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키도 크고 자신감도 넘쳤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 냈다는 보람에 들떠 있었다. "저도 아저씨를 사랑해요." 흡족한 대답을 듣고 마음이 흐뭇해진 래포포트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그래 이 아이의 미소는 백만 불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야!'60년 전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내 남동생은 여섯 살이었고 나는 여덟 살이었다. 나는 늘 '왕언니'였고, 남동생은 항상 '아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아기가 생겼다. 막내 동생이 태어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아기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아기를 안아 주고 돌보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남동생은 전혀 달랐다. 아기를 보고도 본체만체 지나가고 저녁이면 자기 방에서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내가 동생 방에 들어가 말을 걸며 같이 놀자고 해도 먼 산만 바라보았다. "왜 그런 다 큰 아기를 봐야 돼?"



그 날 밤 할아버지께서 아기를 보러 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아기를 안고 남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아기가 꼭 우유를 먹여 키우는 새끼 양 같구나. 난 그 새끼 양을 돌봐주고 우유도 종종 줘야 한단다. 내가 그런 것처럼 엄마도 아기에게 그렇게 해야 되는 거야." " 칫, 차라리 새끼 양이 낫겠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그럼 네가 새끼 양이 더 좋다고 하면 아기하고 바꿔줄 수도 있어. 생각할 시간을 하루 주마. 내일 아침에도 바꾸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꾸나."

할아버지께서 떠나시고 나서 어머니는 남동생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그 동안 동생은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저귀를 가지러 갈 테니 아기를 좀 안아 주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동생은 어린 누이동생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동생이 아기 손을 잡자 아기도 동생의 손가락을 꽉 잡았다. "어, 엄마, 이것 봐요! 아기가 내 손을 잡았어요!" "그럼, 당연하지. 아기도 네가 오빠라는 걸 알고 있거든." 동생은 몇 분간 아기를 더 안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튿날 저녁에 다시 오셔서 동생을 부르셨다. "근데, 아기는 이제 새끼 양 두 마리 값은 되는데요." 할아버지는 그 약속이 깨진 데 몹시 당혹해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테니 내일 밤에 다시 얘기해 보자고 하셨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남동생은 전날의 세 배 정도는 아기를 안아주었다. 저녁이 되자 할아버지께서 오셨다. 할아버지께서 그 거래 얘기를 다시 꺼내자 남동생의 얼굴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아기는 또 하루 종일 자랐으니까 이제 양 다섯 마리 값은 될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구나.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할아버지가 거래하는 은행원하고 상의해 봐야겠는걸."



할아버지는 다시 가셨고, 남동생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함께 놀자고 했지만 동생은 다 마다하고 엄마 방에 남아 오래오래 아기를 안아 주었다. 일요일 오후 일찍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다. 동생은 이번에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치만 이제는 양 오십 마리 값은 될 거예요!"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동생을 바라보시며 고개를 흔드셨다. "그러면 거래를 못 하겠구나. 할아버지는 아기 한 명을 위해 양을 오십 마리나 내 줄 수는 없거든. 그냥 네가 데리고 있거라. 부모님이 아기 돌보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말이다." 동생은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서 환하게 웃으며 아기에게 돌아갔고, 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윙크를 하셨다.봅 버틀러는 1965년 베트남에서 지뢰 사고로 두 다리를 모두 잃고 전쟁 영웅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20년 후 그는 진정한 영웅이란 아름다운 마음이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버틀러는 애리조나 주 어느 작은 마을의 자기 집 차고에서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을 어디에선가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버틀러는 휠체어를 타고 소리가 들려오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빽빽한 관목들 때문에 그 집 뒷문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버틀러는 휠체어에서 내려 숲을 헤치고 두 팔로 기어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가야 해. 몸 좀 상하는 게 대수야!"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버틀러는 비명이 들리는 곳을 따라 그 집 수영장으로 갔다.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었으므로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 어머니는 이 광경을 보며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버틀러는 물 속에 뛰어들어 아이를 건져 올렸다. 아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이미 맥박도 호흡도 끊긴 상태였다.



버틀러는 즉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아이 어머니는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구급대원들은 다른 일로 출동한 후라서 아무도 와줄 수가 없었다. 여인은 절망에 빠져 버틀러의 어깨를 붙잡고 흐느꼈다. 버틀러는 계속 인공호흡을 하며 아이 어머니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아이의 팔이 되어 건져냈잖아요. 다 괜찮을 겁니다. 지금부턴 제가 아이의 폐가 되어주겠습니다."



잠시 후 아이가 기침을 하더니 의식을 회복하자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끌어안고 기뻐하였다. 아이 어머니는 버틀러에게 어떻게 아이가 살아나리라고 그렇게 확신했느냐고 물었다. 버틀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쟁터에서 제 다리가 떨어져나갔을 때 저는 완전히 혼자였어요. 도와줄 사람이곤 어린 베트남 소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요. 그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저를 끌고 마을로 가려고 끙끙대며 서툰 영어지만 이렇게 말했어요. '괜찮을 거예요. 아저씨는 살 수 있어요. 제가 아저씨 다리가 될게요. 자, 같이 힘내요.'라고 말이죠. 오늘은 제가 그 소녀에게 진 빚을 갚은 것뿐입니다."17년 전 여름, 뮤리얼과 나는 황혼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 뮤리얼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늘 한밤중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씩 새벽이 언제 다시 올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치매가 그렇게 이른 나이에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며 고통이 얼마나 길지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내 아내 뮤리얼은 말을 잃었어도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아내의 온화하고 사랑스런 모습이 몹시도 그리워질 것이다. 그렇다. 물론 성가실 때도 있지만 자주 그런 건 아니다. 아내에게 화를 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뿐이다. 그런데 나도 완전히 이성을 잃어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아직 거동은 할 수 있어서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에 나는 바로 그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내가 화장실 앞에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서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금새 알아채고 얼른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오물을 닦아주려 했다. 그런데 아내가 몹시 민망해하며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