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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최재웅 지음 | 동아일보출판국
1. 모험 - 트레이닝 캠프와 북극



트레이닝 캠프에 도착해서 보니 다들 경력이 화려했다. 데블린은 오지 전문안내인으로 탐험을 즐기며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최근 보츠와나 나미비아 그리고 잠베지강에서 카약을 타며 한철을 보내기도 한 모험가였다. 시키기 좋아하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그는 남아공 내에서 백인이 갖는 우월성으로 인해 약간의 왕자병에 걸려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철인 3종경기 선수로 등반가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아르헨티나의 정치가로 집안이 막강했다.

제시카와 하이디는 모두 브라운 대학에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하이디는 백악관을 출입하며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어머니 덕분에 아프리카 난민구호운동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하이디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이미 많이 했다. 제시카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부모님은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녀는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이민자들의 딸로 동부의 명문인 브라운대학에 간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프랑스에서 온 르노는 개인 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틴은 그에게 모든 조언을 구하고 팀의 일도 일임한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르노는 카약 코치 및 스키 코치이기도 했다. 또 머리도 좋고 유능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빼어나게 잘 하는 팔방미인이었다. 오만하면서도 냉정해 보이는 그는 똘똘이 스머프였다. 나오키는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며 세계 최고봉을 세 개나 등정한 등반가였다. 딜런은 우리 팀에서 키가 제일 컸고 브래드 피트처럼 생겼다. 곰발바닥 같은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할 때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두 번째 헉하는 소리는 냄새 때문이었다. 백인 특유의 노린내.

곧 팀 미팅이 소집되어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마틴은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르노는 'Pole to Pole' 홈페이지 관리와 일정을 맡았고, 프레젠테이션할 단체에 가서 인사하고 우리가 도움을 받은 단체에 인사를 하는 아나운서 역할은 제시카, 메뉴를 선택하고 시장 보는 일은 메르세데스가, 회계는 하이디, 자동차 및 자전거 수리는 데블린, 통신장비와 지도 읽기는 딜런이 맡았다. 그는 산악 가이드가 되기 위해 이미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오키는 이미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어왔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고 나는 'Pole to Pole' 행사 때 밖에서 홍보와 자금조달 업무를 맡기로 했다.

생존을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캐나다 어드벤처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1급 시설인 에듀코 아카데미에서 우리는 모두 공수부대요원 같은 훈련을 받았다. 한 달 후 영구 빙설기후인 곳에서 통나무 끌기, 스키타기, 카약타기 등의 훈련을 받고 응급처치법, 체력훈련 프리젠테이션 교육, 환경과 인권에 대한 기초상식 등의 교육을 받았다. 나는 이 정도면 북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를 훈련시키던 에듀코 아카데미의 트레이너 중 한 명이 손에 동상이 걸려 썩어 들어가는 손가락을 잘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마틴이 말했다.

그리고 4월 2일, 100마일 하우스를 출발해서 에드먼턴을 경유, 레졸루트 베이에 도착해 다시 비행기로 3시간 30분을 타고 북극점까지 갔다. 우리는 자북극에서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지구 종단 신고식을 가졌다. 우리는 허리에 50Kg이 넘는 썰매를 묶고 하루 8~10시간씩 이동을 했다. 한달 동안 1100Km를 횡단해야 하는데 첫 날은 6Km, 둘째 날은 12Km로 하루에 겨우 10Km 정도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북극에서의 첫 일주일은 지옥 같았다. 자기 전에는 텐트 안에서 10분 동안 푸시업을 했다. 몸에 열이 나야지 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추웠다.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났는데 눈물은 나오자마자 얼어서 눈이 빨갛게 됐고, 오줌은 나오자마자 바닥에서 얼었다. 메르세데스는 발뒤꿈치에 큰 물집이 잡혔고, 음식물은 모두 얼어 이빨이랑 턱뼈가 아팠다. 초코바 몇 입, 치즈 한두 조각을 먹는데 5분쯤 걸렸다. 눈썹에도 얼음이 얼었으며 얼굴 근육이 당겨 웃기도 힘들었다. 대변을 보려면 삽을 들고 텐트 뒤로 가 눈을 30cm 깊이로 판 후 삽을 바로 앞에 꽂고 겉옷을 벗어 걸어 바람막이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볼일을 봐야 했다. 바람의 방향도 중요한데 뒤쪽에서 불면 대변이 나오다가 얼어 망치로 부숴야 하기 때문이었다.

2주가 지나자 나와 하이디, 메르세데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쌩쌩하던 딜런과 르노, 데블린이 힘든 티를 냈다. 제시카는 여전히 악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북극탐험을 시작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수은주는 영하 30도 부근에서 올라갈 생각을 안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적인 한계를 느꼈지만 팀의 일원이라는 사명감은 더욱 강해졌다. 레졸루트 베이로의 귀환이 다가오자 여정은 더 험난해지고 바람은 시속 160Km 이상으로 불어댔다. 이 정도면 서 있기도 힘들 뿐 아니라 잘못하면 쓰레기봉지처럼 날아갈 수도 있다.

바람 때문에 3일 동안 발이 묶였지만 다행히 그 다음 날은 출발할 수 있었다. 여정의 마지막 사흘은 얼음 상태가 험해서 매우 힘들었다. 남은 거리가 너무 많아 깨진 얼음 사이를 새벽 3시에서 밤 9시까지 헤쳐나갔다. 무려 18시간 동안 36Km를 이동한 것이다. 둘째 날은 60Km를 이동했다. 발에는 물집이 생겼는데 터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해 손바닥만한 상처가 생겼다. 북극을 떠나는 마지막 날, 우리는 군데군데 솟아 있는 얼음산에 올라 투명한 블루톤의 하늘과 하늘에 맞닿아 있는 투명한 얼음산을 바라보았다.

내가 산이라 부르는 이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덩이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얼음을 녹였다 얼렸다 하면서 사람 키의 두 배 내지 세 배의 요철을 만들었다. 몇 년에 한번씩 북극을 찾는 로리는 빙질이라든지 그 밖의 상황이 올 때마다 늘 변해 있다고 했다. 만약 지구의 평균기온이 지금과 같이 5~8도씩 상승한다면 머지 않아 일년 내내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북극이 바다가 됨을 의미한다. 마지막 밤 나는 애벌레 침낭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5월 5일 저녁 7시쯤 한 달간의 북극탐험을 마치고 우리는 캐나다 레졸루트 베이에 도착했다. 마을을 향해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관찰되자 마을 주민들이 'Pole to Pole' 본부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방금 떠나온 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동안 꼼짝 않고 북쪽을 바라보며 이별을 고했다.

2. 환경 - 캐나다와 미국



북극에서 귀환한 지 일주일 뒤, 우리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 지방으로 자전거를 운반해 갔다.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와 자전거를 호위하는 두 대의 지원차량으로 이뤄졌다. 지원차량은 피기와 비스트다. 릴레이는 지원차량 한 대가 각자가 맡은 구간에 자전거와 자전거 주자를 내려주면서 간다. 그러면 그 뒤를 따르는 다른 한 대는 자신이 맡은 구간을 달린 자전거와 자전거 주자를 태우고 간다. 이 복잡한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5월 12일, 이글 플레인스라는 곳에서 마침내 유콘과 노스웨스트 테리토리의 경계점을 향해 자전거로 출발했다.

5월 16일, 나는 42Km의 자전거 릴레이를 끝낸 뒤 2개의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우리는 인구 3만 명의 유콘 주 주민 중 2만 2천 명이 살고 있는 주도 화이트 호스에 도착해 '변화를 위한 도전'이라는 주제로 300명의 10대 소년을 대상으로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걸쳐 강연을 했다. 다음 날 우리는 타크히니 온천 주변을 청소했다. 캠핑을 하던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바람에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플라스틱 수저, 미니 케첩통, 커피 크림통, 플라스틱 컵 등을 주웠다. 거기에는 고장난 냉장고, 고물차, 폐타이어 등도 있었다. 그 전에 이곳에는 다람쥐, 여우, 토끼와 나비들이 살았을 것이다.

청소를 끝내고 팀미팅을 하는 동안 내 머리는 좀 복잡해졌다. 며칠 뒤면 캠핑차들이 이곳에다 또 쓰레기를 버리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인스턴트화되는 빠른 생활과 자연주의적으로 사는 느린 생활, 자연과 도시, 인간과 짐승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있는 극단적인 두 생활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

자전거 여행을 한 지 2주 정도가 지나자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연일 새벽 4시에 기상해 5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가 훈련을 받던 100마일 하우스로 가는 날은 무려 810Km를 가야 했으므로 개인당 90Km씩이 배당되었다. 90Km라면 강남에서 일산까지 왕복하는 거리다. 가다 보니 곧 로키가 숨기고 있던 비경들을 드러냈고, 우리는 다음 날 오전에 펨버튼초등학교와 휘슬러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벤쿠버로 가기 위해 99번 고속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이동했다. 라이온스 베이에서 두 팀으로 나눠 7명은 카누를 타고 2명은 자동차를 운전하여 이동했다. 벤쿠버에서 우리는 해변을 살리자는 단체와 함께 해변에서 몇 시간 동안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곳은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기에 깨끗했다. 벤쿠버 시민은 두 명에 한 명 꼴로 자연보호단체에 가입해 있는데 대부분의 자연보호 단체들은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우리 모두가 공원을 빠져 나올 때 도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도시 열기의 주범은 자동차 가스이다. 편리한 것 때문에 자연의 위대함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6월 초부터는 강연으로 바쁜 날을 보냈다. 6월에 잡혀 있는 일정만 해도 20개가 훨씬 넘었다. 우리가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나무심기, 그 다음이 청소였다. 습지를 보전하자는 프로그램에 가서도 나무를 심었다. 그 외에도 쓰레기를 청소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었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생태환경센터를 방문했을 때다. 몬트리올에 있는 그곳은 원래는 석회석을 캐던 탄광이었다. 사람들은 그 엄청나게 넓은 곳을 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나무와 꽃을 심고 있는 중이었다. 예로 벤쿠버 교외에 있는 퀸 엘리자베스공원은 한때 채석장이었다가 재개발에 의해 꽃이 만발한 언덕으로 탈바꿈했다.

미국에서의 일정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이곳에서는 엄청난 인터뷰를 했다. 미국에서의 첫 프리젠테이션은 하버드대학에서였고, 그 다음은 여러 방송과의 인터뷰가 줄줄이 이어졌다. 물론 제시카와 하이디의 학교인 브라운대학도 갔다. 아무튼 우리가 방문할 단체도 유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체들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 오후에 바다와 산, 그리고 국유림의 오염을 막고자 모인 단체를 방문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서명을 정부에 보낼 것이다. 우리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증거로.

뉴욕에서는 카약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한 바퀴 돌아오는 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을 주웠다. 7월 6일, 우리는 뉴욕의 할렘가에서 저소득층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인 '사랑의 집짓기'를 위해 일손을 보탰다. 저녁 때에는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었는데 우리가 탄 밴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700명 분의 저녁을 나눠 주는 급식소 역할을 했다.

캐나다에 비해 미국의 고속도로는 상대적으로 덜 안전했다. 부상은 자전거 릴레이를 하는 동안 받게 되는 선물이다. 나는 커다란 차를 피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져 곰발바닥만한 상처를 치골 부위에 입고 아스팔트에 질질 끌리는 핏자국을 남겼고, 하이디는 엄지발톱이 빠져 응급실에 가서 7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제시카는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이 피범벅이 되었는데 제일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은 딜런이었다. 딜런은 앞이빨이 3개나 부러져 나가고 잇몸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러나 다음 날 얼굴이 퉁퉁 부은 몰골로 나타나서는 땅에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머리가 아프면서도 자전거를 탈 거라고 우겼다.

자파타 목장을 떠나 우리는 뉴멕시코 주의 주도 산타페를 가기 위해 서쪽으로 달렸다. 자파타를 떠나온 지 5시간만에 콜로라도 주와 뉴멕시코 주의 경계에 다다랐다. 풍경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모래의 구릉이 나타난 것이다. 사방은 온통 모래였다. 이곳의 온도는 38~40도로 무척 더웠다. 우리는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사막인 첼리캐니언과 그랜드캐니언을 지나야 했다. 산타페를 떠나 애리조나 주로 들어가자 땅은 불타는 홍색을 띄고 머리 위에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

섭씨 43도가 되자 아스팔트가 자전거 바퀴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다. 모두들 벌겋게 익어있었는데 악명 높은 모하비사막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곳은 48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에 출발하는 방향으로 릴레이를 했다. 다들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 반에 출발했다. 그리하여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는데 피닉스를 지날 때에는 46도였다. 캐나다·미국 여행을 끝내고 멕시코로 들어가는 관문은 황열병 주사를 맞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수많은 풍토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멕시코부터 일 주일에 두 번씩 말라리아약을 먹어야 했다.

그 날 오후, 우리는 물 문제 참여연대의 로버트 클라인과 그의 부인인 매릴린의 초대를 받았다. 그는 오염되지 않은 물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 질 것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나일강과 갠지스강, 황하강도 이미 오염되었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년 안에 그 곳의 물들을 못 먹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3차대전 시나리오를 말했다. 이 시나리오는 요르단강의 물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시리아의 댐을 폭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리아가 댐을 만들어 요르단강의 물을 다 끌어가 버리는 바람에 이스라엘쪽으로 물이 흘러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미국무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위대한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은 힘든 여행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나는 물 문제 참여연대의 클라인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들의 행동은 영웅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클라인처럼 물을 살리는데 앞장서고 싶다.

3. 인권 - 중부 아메리카와 남부 아메리카



국경을 지나 자전거로 3시간 정도 이동해서 산타아나라는 고도가 꽤 높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 이후 일주일간은 그야말로 '지옥의 랠리'였다. 그 동안 우리는 하루 12~16시간씩 자전거 릴레이로 푸에르토 발라르토에서 마자닐라까지 갔다. 섭씨 40도는 보통이고 어떤 날은 43도까지 기록했다. 온도 상으로는 피닉스가 더 높았지만 습도가 높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였다. 지독한 더위로 우리는 더블 릴레이, 즉 아침, 저녁으로 나눠 타야만 했다.

니카라과 국경의 길은 비포장에다 아주 좁은 길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루이스 로버트 씨를 만났는데 그는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10여 년 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마을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펼치자 이에 감동한 마을 청년들이 합세해 지금은 마을 발전을 위한 작은 단체를 꾸리고 있었다. 단체의 구심점은 마을회관인데 방 3개로, 한쪽은 회의실, 한쪽은 도서관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카라과는 화산분출과 홍수, 홍수에 따르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마을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코스타리카에서의 첫 날은 흥분의 연속이었다. 정글을 지날 때 황색, 녹색, 적색으로 빛나는 새들이 지저귀었고, 계곡은 안개로 덮여 산꼭대기만 보였다. 첫날 우리는 개인당 70Km씩 달려 산호세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 날 산호세에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쿠르데일레라 탈라말랑카 협곡에 도착하여 해발 3,819m의 치로치리포산에 오르기 위해 산그라도에서 등산을 했다.

우리는 파나마의 평화대학에서 강연할 기회를 가졌다. 평화대학은 유엔이 만든 것으로 교육을 받기 힘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함과 동시에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그곳에서는 컴퓨터, 농업기술 등 그 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평화대학은 작고 초라한 시골학교였다. 그러나 그 시골학교의 교장 물러 박사는 전 유엔 사무부총장으로 과거 40년 간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감동 자체였고, 우리는 산호세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평화와 세계시민정신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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