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최재웅 지음 | 동아일보출판국
국경을 지나 자전거로 3시간 정도 이동해서 산타아나라는 고도가 꽤 높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 이후 일주일간은 그야말로 '지옥의 랠리'였다. 그 동안 우리는 하루 12~16시간씩 자전거 릴레이로 푸에르토 발라르토에서 마자닐라까지 갔다. 섭씨 40도는 보통이고 어떤 날은 43도까지 기록했다. 온도 상으로는 피닉스가 더 높았지만 습도가 높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였다. 지독한 더위로 우리는 더블 릴레이, 즉 아침, 저녁으로 나눠 타야만 했다.
니카라과 국경의 길은 비포장에다 아주 좁은 길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루이스 로버트 씨를 만났는데 그는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10여 년 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마을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펼치자 이에 감동한 마을 청년들이 합세해 지금은 마을 발전을 위한 작은 단체를 꾸리고 있었다. 단체의 구심점은 마을회관인데 방 3개로, 한쪽은 회의실, 한쪽은 도서관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카라과는 화산분출과 홍수, 홍수에 따르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마을 사람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코스타리카에서의 첫 날은 흥분의 연속이었다. 정글을 지날 때 황색, 녹색, 적색으로 빛나는 새들이 지저귀었고, 계곡은 안개로 덮여 산꼭대기만 보였다. 첫날 우리는 개인당 70Km씩 달려 산호세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음 날 산호세에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쿠르데일레라 탈라말랑카 협곡에 도착하여 해발 3,819m의 치로치리포산에 오르기 위해 산그라도에서 등산을 했다.
우리는 파나마의 평화대학에서 강연할 기회를 가졌다. 평화대학은 유엔이 만든 것으로 교육을 받기 힘든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확대함과 동시에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다. 그곳에서는 컴퓨터, 농업기술 등 그 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평화대학은 작고 초라한 시골학교였다. 그러나 그 시골학교의 교장 물러 박사는 전 유엔 사무부총장으로 과거 40년 간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감동 자체였고, 우리는 산호세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평화와 세계시민정신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파나마에서 에콰도르로 가기 위해 배 여행 준비를 했다. 배 여행은 내전 중인 콜롬비아를 피해가기 위해 내려진 선택이었다. 프리덤호는 20m 정도의 돛대가 달린 아담한 보트로 당분간 우리들의 집이 되었다. 피기와 비스트는 따로 에콰도르로 보내질 것이고, 우리는 바로 에콰도르의 에스메랄다 항구로 간다. 낮에는 돌고래가 노니는 옆에서 수영을 즐기고, 밤이 되면 안개 때문에 4조로 나누어 두 시간씩 보초를 섰다. 항해 마지막 날, 소변을 보러 나갔을 때 유성이 하나 뚝 떨어졌다. 마치 이글이글 타는 불덩어리 같았는데 눈깜짝하는 순간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프리덤호에서 내려 에콰도르의 입국수속을 마친 뒤 우리는 에스메랄다 해군고등학교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피기와 비스트를 찾기 위해 에스메랄다에서 과야킬까지 우리는 버스를 탔다. 하이디, 딜런, 제시카는 피기와 비스트를 찾으러 갔지만 일이 꼬여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 날 팀은 반으로 나뉘어 세관으로 자동차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역시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 다음 날 캐나다 대사관으로 서류를 만들어 찾아갔으나 이 서류도 통하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딜런과 하이디, 제시카는 세 번째로 세관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결국 8일 만에 우리는 피기와 비스트를 찾게 되었다.
10월의 첫째 날, 우리는 루미코차생태기금에서 온 아르만도 루이즈와 거손 아리아스와 며칠 동안 에콰도르 습지지구인 카얌베코카 보호지구를 탐사했다. 그 다음 날, 우리는 일찍 일어나 루미코차생태기금에서 내준 픽업트럭을 타고 두 시간을 달려 테나에 도착했다. 테나는 아마존강을 관광하기에 좋은 도시다. 우리는 아마존의 지류인 나포강에서 카누를 타고 내려갔다. 가는 길에 소나기가 퍼부어 플라스틱 판을 덮어 써야 했다. 빗방울이 매우 커서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 크기는 눈에 보일 정도였다.
페루 해안은 사막과도 같아 차도 사람도 자전거도 힘들었다. 사막과 모래언덕을 끊임없이 지났지만 끝이 나질 않았다. 바람 때문에 모래가 눈으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고도 자체만으로도 고산병을 유발한다. 3749m로 오히려 산봉우리 끝에 세워진 마추픽추가 고도상으로는 더 낮다. 고산병으로 인해 모두들 두통을 앓았다. 그러나 우리는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트레킹을 하였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둘째 날, 하이디와 메르세데스는 고산병으로 심하게 아파 하이킹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는 14시간동안 산을 오르면서 잉카유적을 지났다.우리는 아르헨티나 국경에 도착했고 메르세데스는 눈물을 흘렸다. 아르헨티나 경치는 남부 캘리포니아와 흡사했다. 이곳은 남미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부자 나라다. 한때 유럽의 식민지여서 그런지 유럽 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리고 우리는 메르세데스의 집에 갔는데 그녀의 집은 저택이었다. 풀장이 있고 잔디밭이 펼쳐진 영화에서나 나오는 집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인터뷰를 하느라 북새통을 떨었다. 환경청 세미나실에서 전국에서 온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의 인터뷰를 받았다. 인터뷰 후에는 국회에 들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원의원인 비야베르데 씨와 만났다.
그 다음 날 오전 9시에 근처의 초등학교 7학년 대상으로 강연이 있었다. 딜런은 작은 힘을 모아 전진하자는 주제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딜런의 스페인어는 한참을 더듬는 한심한 수준이었지만 모두들 감동해서 교문 밖까지 우리를 따라오며 사인해 달라고 줄을 섰다. 나는 그 작은 불씨가 결코 사그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타는 모닥불이 되리란 것을 안다. 그 희망의 불은 그렇게 살아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치폴레티 시민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도.
푼타아레나스로 가기 위해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 20Km는 그 어떤 날보다 힘들었다. 바람이 너무 세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자전거가 날아갈 것 같았다. 달리는 동안에는 흙먼지가 눈에 자꾸 들어와서 눈물이 났고, 코로 들이마시는 흙먼지만으로도 그 양이 엄청나서 입안에 모래를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길은 여행 중 가장 나의 의지를 시험한 곳이었다. 페달을 밟으면서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사무치게 느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곤 나와 메마른 풀들뿐. 간혹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울면서 페달을 밟기도 했다.
치폴레티를 떠난 후 12일 동안 줄곧 불만과 고통에 찬 시선으로 지평선을 보며 달린 끝에 우리는 드디어 대양에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린 것은 대륙을 돌아온 대서양과 태평양의 물, 검푸른 대양이었다. 마틴을 포함해 모두들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매우 추운 날씨였지만 몸에서는 열기가 솟았다.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북미·중미·남미를 통과하며 무려 3만Km를 달린 것이다. 자전거 여행도 끝이 난 것이다. 그 날 밤늦게까지 잠이 안 와 나는 밖으로 나가 우리가 지나온 파타고니아 쪽을 바라보았다.남극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푼타아레나스에서 머무른 지 8일째 되던 날이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날아올랐다. 우리에게 남은 날은 24일밖에 없었다. 6시간 반을 비행한 끝에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패트리어트힐에 내려앉았다. '여기가 남극대륙인가'하는 감흥도 받기 전에 마틴은 우리를 호출했다. 스키를 타본 지 6개 월이 넘었으므로 스키타는 감각을 익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썰매에 얹어서 북극에서처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썰매가 너무 약해서 부러지기 시작했다. 북극과는 달리 놀이동산용 눈썰매 같은 썰매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비행기가 와서 중간 기착지까지 태워다 줄 줄 알았는데 비행기는 오지 않았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남극점에서 400~500Km 떨어진 시얼마운틴이란 곳으로 비행기로 간 다음 거기서 남극점까지 스키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행기 회사에서는 5인승 경비행기밖에 없으며 시얼마운틴에서 픽업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남극점에 갔다가 다시 시얼마운틴으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라는 것은 두 배의 거리를 같은 시간 안에 갔다오라는 것으로 이는 한 마디로 불가능했다. 덕분에 우리의 대장 마틴은 전화도 없는 이곳에서 항공기 회사랑 이메일로 싸우느라 고생을 했다.
마틴과 비행기 회사 간의 싸움에 진전이 없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극을 탐험할 수 있는 3~4개 월간의 짧은 여름도 다 가고 있고, 특히 남극은 일기가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일기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5인승 경비행기를 5번에 걸쳐 나눠 타고 가, 그 비행기로 우리 모두와 짐을 옮겨 놓으려면 다섯 번을 왕복해야 한다. 한번 왕복 비행시간만 해도 5시간으로 준비하고 타고 내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25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 모두와 짐을 한 곳에 옮겨 놓는데 실제로 3일이 걸렸다.
11일에 출발한다 해도 모두가 한 곳에 모이려면 빨라야 13일로 행군은 14일께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남은 시간은 16~17일. 그럼 그 동안 450~500Km, 하루 평균 30Km를 가야 한다는 계산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비행기가 왔다. 그러나 88도 부근에 있는 목적지까지 한번에 간 게 아니라 두 번에 나누어서 갔다. 이륙을 시도해 보니 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비행기가 날지 못했다. 팀을 반으로 나눠 한 팀을 중간 지점에서 떨구고, 나머지 반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고는 다시 돌아와서 남은 반을 데리고 가는 식이었다. 우리 모두가 목적지에서 텐트를 친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그 다음 날인 19일부터 우리는 바로 스키투어를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동상에 걸린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 하이디, 나오키가 차례로 뺨에 물집이 생겼다. 바람이 왼쪽에서 불도록 기압이 배치되었는지 다들 왼쪽 뺨에 동상을 입었다. 게다가 감기까지 번지고 있었다. 또,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두통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첫 날 우리가 텐트를 친 곳은 고도 3000m 가 넘는 곳이었다. 얼음판 위에서 고산병에 걸린 것이다.
그 와중에 메르세데스가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다. 르노와 내가 아무리 말려도 메르세데스는 발가락을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남극점을 밟을 것이라고 고집했다. 남극점까지 불과 100Km도 안 남겨 놓은 상황이긴 했지만 메르세데스의 발은 한시가 급한 위험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검던 것이 푸르죽죽해지면서 퉁퉁 부어 올랐고, 나중에는 딱딱해져 감각이 마비되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열 개 모두. 밤마다 마틴은 의사와 통신을 했는데 의사는 매번 즉각 치료를 받지 않으면 발가락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메르세데스가 끝까지 간다고 고집을 부리자 르노는 화가 단단히 났다.
기상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딜런은 메르세데스를 침낭에 넣은 뒤 포장하듯 단단히 싸서 썰매에 실었고 우리는 메르세데스와 딜런의 짐을 나누었다. 10Kg의 짐이 더해졌지만 이 상황에서 나오키는 불과 5Kg만 끌어서 모두의 눈총을 받았다. 우리의 행군은 지독하게 힘들었다. 늘어난 짐의 무게도 부담스러웠지만 바람이 너무나 세게 불어 눈을 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용감한 딜런이 지쳤음을 고백했다. 용감한 그의 고백은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그의 상태가 나빴다. 문제는 상태가 나쁜 사람이 딜런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지독한 감기와 동상, 극도의 피로로 지쳐있었다.
메르세데스는 그 다음 날부터 자신의 짐을 아주 조금만 진 채 텐트 안에서 신던 발목까지 오는 털 부츠를 신고 눈길을 걸어갔다.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쳐 나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메르세데스를 좀더 보호해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메르세데스 고생 더 하게 내버려 둬야 해. 병원으로 가라고 해도 가지도 않고." 그런데도 다들 메르세데스의 짐을 들어 주었다.2. 환경 - 캐나다와 미국3. 인권 - 중부 아메리카와 남부 아메리카4. 새로운 시작 - 남극1. 모험 - 트레이닝 캠프와 북극내가 산이라 부르는 이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덩이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얼음을 녹였다 얼렸다 하면서 사람 키의 두 배 내지 세 배의 요철을 만들었다. 몇 년에 한번씩 북극을 찾는 로리는 빙질이라든지 그 밖의 상황이 올 때마다 늘 변해 있다고 했다. 만약 지구의 평균기온이 지금과 같이 5~8도씩 상승한다면 머지 않아 일년 내내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북극이 바다가 됨을 의미한다. 마지막 밤 나는 애벌레 침낭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5월 5일 저녁 7시쯤 한 달간의 북극탐험을 마치고 우리는 캐나다 레졸루트 베이에 도착했다. 마을을 향해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관찰되자 마을 주민들이 'Pole to Pole' 본부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방금 떠나온 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동안 꼼짝 않고 북쪽을 바라보며 이별을 고했다.트레이닝 캠프에 도착해서 보니 다들 경력이 화려했다. 데블린은 오지 전문안내인으로 탐험을 즐기며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최근 보츠와나 나미비아 그리고 잠베지강에서 카약을 타며 한철을 보내기도 한 모험가였다. 시키기 좋아하고 잔소리하기 좋아하는 그는 남아공 내에서 백인이 갖는 우월성으로 인해 약간의 왕자병에 걸려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철인 3종경기 선수로 등반가이기도 했고, 아버지가 아르헨티나의 정치가로 집안이 막강했다.
제시카와 하이디는 모두 브라운 대학에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하이디는 백악관을 출입하며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는 어머니 덕분에 아프리카 난민구호운동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하이디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이미 많이 했다. 제시카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 부모님은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녀는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이민자들의 딸로 동부의 명문인 브라운대학에 간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프랑스에서 온 르노는 개인 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마틴은 그에게 모든 조언을 구하고 팀의 일도 일임한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르노는 카약 코치 및 스키 코치이기도 했다. 또 머리도 좋고 유능할 뿐만 아니라 운동도 빼어나게 잘 하는 팔방미인이었다. 오만하면서도 냉정해 보이는 그는 똘똘이 스머프였다. 나오키는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며 세계 최고봉을 세 개나 등정한 등반가였다. 딜런은 우리 팀에서 키가 제일 컸고 브래드 피트처럼 생겼다. 곰발바닥 같은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할 때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두 번째 헉하는 소리는 냄새 때문이었다. 백인 특유의 노린내.
곧 팀 미팅이 소집되어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마틴은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르노는 'Pole to Pole' 홈페이지 관리와 일정을 맡았고, 프레젠테이션할 단체에 가서 인사하고 우리가 도움을 받은 단체에 인사를 하는 아나운서 역할은 제시카, 메뉴를 선택하고 시장 보는 일은 메르세데스가, 회계는 하이디, 자동차 및 자전거 수리는 데블린, 통신장비와 지도 읽기는 딜런이 맡았다. 그는 산악 가이드가 되기 위해 이미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오키는 이미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어왔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고 나는 'Pole to Pole' 행사 때 밖에서 홍보와 자금조달 업무를 맡기로 했다.생존을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캐나다 어드벤처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1급 시설인 에듀코 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