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명진출판/2001년 2월/224쪽/10,800원
1. 나는 그림에서 사랑을 배웠다
김강용,「REALITY+IMAGE 0766, 2000
무너지지 않을까, 정말 무너지지 않을까
내 후배는 대학교 2학년 때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식장은 그 둘의 용기와 사랑을 칭송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그 둘의 집안 사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 둘은 학교 근처의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고 주된 수입원은 입시생 과외였지만 그것만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잠자는 시간을 아껴 편의점 점원, 주유소 주유원, 독서실 총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생활에 지친 몸을 서로 기댈 시간까지도 쪼개서.
그 둘을 아는 사람들은 그 억척스러움을 ‘지독한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독한 그들에게는 이제 좋은 소식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모두들 의심하지 않았다. 졸업을 코앞에 둔 남자는 대기업에 취직이 내정되어 있었고, 여자 또한 장학생으로 선정되었으므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이 불변의 진리는 그들에게 걸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먼저 날아왔다. 그녀의 친정 어머니가 혈액암이라는 진단이 나온 곳이다. 검사비와 입원비로 그때까지 모아둔 돈은 다 써버렸고, 갓 입사한 남자는 갖은 수를 다 써서 대출을 받았고 돈을 빌렸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보름을 버티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 허망함 속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는 그녀가 임신 2개월이라는 것이었다. 무리한 탓인지 조산을 했고, 아이는 그 비싼 인큐베이터 속에서 한 달여를 보냈다. 그 사이 IMF가 터졌고, 대대적인 해고 속에서 용을 다해 버티던 그녀의 남편은 일자리를 잃었다. 남은 건 빚뿐이었다. 더 이상 내몰릴 데가 없었다.
“자살 여행이랄까, 그런 생각으로 설악산에 갔었어! 그런데 막상 설악산에 올라 죽으려고 하니까 그렇게 억울하더라! 너무 억울한 거야! 그래서 그 길로 올라와 그이랑 함께 그이가 다니던 학교 앞에다 포장마차를 열었어. 낮에는 우동 팔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술 팔고. 그러다가 남편 다시 복직되고 나도 조그만 가게 하나 열고…. 그런데 말이지, 그런데도 잠이 안 와! 또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무너지지는 않을런지….”
후배와 헤어진 그날 밤 나는 어떤 불길함에 휩싸였다. 어쩌면 그 모진 삭풍을 다 이겨낸 그 둘에게 더 매섭고 더 지독한 바람이 불어올지도 모른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깊은 어둠 속에서 나의 신에게 빌었다. ‘그들의 지독한 사랑은 아름다우니, 그 아름다움은 어떤 식으로든 신께서 보상하소서! 세상의 모든 축복을 그들에게 내리소서! 신이시여! 축복하소서! 축복하소서….’
도메니크 크레타라,「연인」,1996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미리 기대하던 것과 이미 경험한 후의 느낌, 그 간격이 너무 멀어 괴로웠던 기억이 있는지? 남녀가 함께 자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주며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가슴 설레이게 하는가. 부부는 함께 맺어진 그날부터 매일 함께 잠들고, 그 함께하는 잠 속에서 서로의 어깨에 내려앉은 피로를 녹여주는데 그런 까닭에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밀란 쿤데라라는 체코의 소설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자고(sex) 싶은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함께 잠들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로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이해가 가지 않을지.
하지만 나는 정작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히려 까닭모를 슬픔을 느껴버렸다. 하나됨을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각자 다른 베개를 베고 누워 서로 다른 꿈의 세계로 떠나야만 한다는 게 너무 슬펐던 모양이다. 차라리 모두가 깨어 있는 한낮에 서로의 일과에 쫓겨 보지 못하는 것보다 나는 오히려 그 밤시간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분명히 옆에 있는데도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개체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차라리 혼자라면, 그래서 나의 막연한 짝을 꿈꾸며 잠들 수 있다면 나는 이 외로움을 버려두고 더 가볍게 꿈나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결혼을 하고 내가 얻은 건, 그래서 결국 배운 건 고독이었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없음으로 인해 느끼는 고독. 고독은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둘이 있을 때 그 상대의 존재로 인해 느끼게 된다는 것. 나는 남편을 얻고 고독을 배웠다.
그레고리 라디오나우, 「태풍 속에서」, 1997
황혼이 다가오면 투명해지는 사랑
종종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깨끗하게 늙은 노부부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들은 바로는 몇 년 전에 나이 마흔에 가까운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뒤 작년인가 손주와 며느리마저 미국으로 보내고 이곳으로 이사와서 두 분만 단촐하게 산다고 한다. 스칠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여태까지 나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언젠가 눈인사를 슬며시 건넸다가 노부부의 너무 맑은 눈동자에 내가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노부부를 볼 때마다 두서없는 상념에 잠긴다. 얼마나 절절하게 슬픔을 살아내야 그 슬픔이 저렇게 투명해질 수 있는지, 그 슬픔을 어떤 마음으로 서로 보듬어 안고 달래주어야 저렇듯 서로의 마음이 온전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이 투명한 마음은 분명 사랑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랑에는 꽃과 햇살이 가득한 젊은 날의 호사스러움은 없지만 죽음까지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황혼녘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처럼 죽음이 밀려와도 서로 손을 잡고 가볍고 투명하게 그 죽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젊은 날의 열정적인 사랑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 사랑은 지나온 사람에 대한 사랑을 투명하게 완성시킨다.
2.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화가 이야기
설악에 깃든 화가, 김종학
김종학, 「들풀의 향연」, 1998
설악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설악만을 그리기 위해 아예 설악에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있다. 설악에 아주 깃들어 버렸다. 세상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그러고도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쫓기는 바쁜 세상에 때때로 엄습해 오는 허무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종학이란 화가는 얼마나 부러운 사람인가. 아니 무섭기까지 하다. 설악산에 집을 짓고 설악의 나무와 풀들, 능선가 동해의 푸른 물을 바라보며 그 곳의 풍경만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으니. 무섭다고? 그래, 설악을 향한 김종학의 치열한 추구와 절망은 그러지 못하는 내겐 차라리 무섭다.
그러나 선생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모습은 당연한 귀결이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수상도 하고 호평도 받던 때, 문득 일본 사람이 받아들인 서구의 미술을 내가 재탕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 한 일본 화상이 해 주었다는 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너희 산야에서 그림이 나온다.” 한국으로 돌아온 선생의 가정사가 어려워 좌절을 이기고자 들어간 곳이 설악이라고 한다. 좌절의 마음이 깊어져 설악의 폭포에 몸을 던지려고도 했다. 하지만 설악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고 새로운 삶의 의욕도 생기더란다.
그렇게 그는 운명적으로 설악을 만났고, 운명적으로 설악을 사랑했다. 등산로를 따라가며 손쉽게 그림을 그리면 이런 그림은 나올 수 없다. 저렇게 온갖 들풀이 잔치를 벌이는 풍경은 샛길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설악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만남을 풀어내듯 화폭에 쏟아내며 모습을 들어낸 그림이 바로 이 원시적 수풀림 같은 설악 풍경이다. 산을 사랑하지 않고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시들어 가는 들풀에서 이런 생명력을 잡아낼 수 있을까.
가장 한국적인 수묵의 화가, 김호석
화려한 색과 자유분방한 붓질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수묵으로 그려진 우리의 전통 회화는 자못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정신과 의미를 모르고 넘기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한국적인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우리는 너무 둔감했던 게 아니었을까.
김호석, 「속꽃」, 1996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 김호석을 주목하게 되는 건 그가 수묵화가의 차원을 넘어 한국의 정신적 맥을 이어나가는 작가라는 점 때문이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올해의 작가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그 작품도 작품이지만 A&C예술영화TV에서 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그의 작품세계에 탄성을 금치 못했다. 조선의 인물화 정신을 잇기 위해 그가 기울이는 노력은 내게 참으로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왔다.
서구의 초상화가 인물을 미화시켜 멋있게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또한 중국의 초상화가 주변을 다소 호사스럽고 자유롭게 그리고, 일본의 초상화가 과장되게 치장되었다면 한국의 인물화 정신은 그 사람의 외모뿐 아니라 교양과 인품, 정신세계까지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가까운 일본 및 중국의 전통과 우리의 전통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런 우리의 인물화 전통을 잇기 위해 김호석은 성철 스님을 그릴 때는 스님의 생가터 흙을 물감 삼아 살색을 표현했으며, 만해 한용운을 그릴 때에는 그의 외동딸인 한영숙 씨를 찾아가 고인의 흔적을 더듬기도 했다.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 내려는 그의 예술관이 이런 모든 노력의 근원이다.
또한 그는 조선 후기 이후 사라진 배채기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자의 뒷면에 거듭 반복해 칠하면서 앞면에 색이 우러나게 하는 우리의 정신이 깃든 전통기법이다. 더구나 그는 고유한지연구소가 개발한 우리의 전통 한지만을 고집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기법이 소수의 사대부를 위해서만 쓰여졌지만 그는 이 기법을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에서 가장 큰 미덕은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서민들의 일상적 삶이 따뜻한 시선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우리의 인물화 정신을 계승하고, 기법으로는 전통의 배채기법을 되살려낸 그의 꿈은 우리 과거의 전통이 모두에게 살아 숨쉬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을 이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는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이고, 그래서 가장 세계적인 작가가 아니겠는가.
‘박해받고 싶은’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그림 관련 사이트를 찾다가 우연히 클로델에 관한 홈페이지를 찾았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해서 알려진 이야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녀는 단지 로뎅의 애인이자 제자로 유명할 뿐이다. 물론 그녀의 일대기를 스크린에 담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녀가 광기 어린 천재였고, 사랑과 질투의 화신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기억할 것이다.
사실 그녀는 로뎅의 「지옥문(The Gates of Hell)」의 실질적인 제작자(창작자)였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남긴 작품은 거의 없지만 하나같이 그녀의 천재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전부 부숴 버리거나 로뎅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는 저주를 퍼부으면서 서서히 미쳐갔을까? 그녀는 로뎅과 헤어진 후 충분히 홀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끝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코스를 선택했을까?
카미유 클로델, 「왈츠」, 1891
마침 집에 들렀다 함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보니 클로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론, 그러니까 클로델 같은 예술가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러니 그 아픔이 얼마나 지독하겠어. 끝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지. 어떻게 보면 ‘박해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는 클로델을 예술을 위한 ‘순교자’로 여겼다. 그의 말을 뭉뚱그리면 “클로델이 순교를 위해 선택한 방법이 광기였고,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힘으로써 순교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아마 예술의 순결성과 진정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어떤 두려움 때문에 그는 순교를 얘기했으리라.
그 뒤에도 얼마간 나는 클로델에게 사로잡혔다. 며칠이 지난 뒤 종로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힌 여자의 얼굴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술가는 삶보다는 작품으로 말하는 게 아닌가! 삶 자체를 박해받고 싶어하지 말고 작품을 만드는 데 온 정성을 다 쏟는 것…, 정신병원이 아닌 작업실에서 30년을 순교하는 것…, 그게 예술의 순교가 아닌가….’ 이런 생각 따위로 그녀의 얼굴을 지워보려고 했지만 마치 그녀가 저 높은 빌딩 한 곳에 갇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망상에 한동안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3.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최석운, 「돼지꿈」, 1998
일주일치의 희망
대학시절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는 복권을 사고 있다. 어떤 꿈을 꾸었든 항상 제 나름의 해몽을 해가면서 말이다. 물론 당첨의 희망은 일요일 저녁 잠깐의 설레임 뒤로 곧 사그라져버리곤 했지만…. 친구에게 그 저녁의 복권 추첨쇼가 벌이는 잔인한(?) ‘공 굴리기’는 언제나 폴폴 날리는 잿가루 같은 기분만 곱씹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번번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그가 자신의 ‘사행심’을 반성하고 복권 사기를 그만두었던 것은 아니다. 머리 나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디 그 모래알만한 당첨 확률에 진짜로 믿음과 희망을 기댈 수 있을까? 가난했던 친구가 사들인 것은 복권이 아니라 그저 일주일 동안 잠깐씩이나마 웃음짓고 살게 할 유예된 희망의, 혹은 절망의, 복표 두어 장일 뿐이었으니.
‘가져야 할 것’은 많아지는데 이상하게 ‘가진 것’은 점점 더 없어지는 세상을 산다. 사람을 ‘있고 없음’으로 구별하지 말자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TV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그런 훈계를 하고 있지만 - 하다못해 재벌집 딸과 물 배달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도 있지 않은가 - 그러나 세상은 단지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꿈과 성실함으로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아마도 그가 너무 느리던가 아니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간다.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해 왔는데 어떤 이는 지하도의 냉기 위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능력 없어서, 게을러서 그리 된 것이라고 편안히 말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는 것일까? 그 꿈의 편안한 엉덩이에 기대어 현실에선 누리지 못할 고액의 행운을 그리면서? 남들만큼, 아니 때론 남들보다 더 나은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그럼, 꼭 돈이 있어야 행복한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돈 많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더라도 세상의 어떤 이들에게서 불행만큼은 거두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없어 겪어야 하는 불행만큼은.
권숙자, 「순한 자연으로의 부활」, 1991
열일곱이 되는 K에게
너와 함께 꽃박람회를 보고 오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렸다가 몇 권의 시집을 샀다. 그리고 노곤한 몸을 소파 깊숙이 파묻고 그 시집들을 읽었다. 시인들만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 끝에 이렇게 너에게 엽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