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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똑같은 고민만 되풀이하는가

오하라 게이코 지음 | 거름
1.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다면



연초마다 똑같은 결심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새해가 되면 늘 빼놓지 않고 '올해는 반드시'라면서 새로운 결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여기에서는 젊은 시절 제 잘못된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비만을 불행의 원인으로 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살을 빼서 날씬해지면 틀림없이 행복해 질 수 있어."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먹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거꾸로 먹지 않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과일로 때우고, 저녁은 요구르트와 과일을 먹는 식으로 했더니 눈 깜짝할 새 감량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삶의 보람이 되었습니다. 다이어트는 더욱 과격해졌습니다. 절식이 쾌감으로 변했습니다. 이른바 '거식증' 직전의 상태였지요.

그럴 때 얼굴 전체에 작은 뾰루지가 생겨났습니다. 과격한 다이어트가 원인이었지요. 결국 제 다이어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만일 "살을 뺀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라고 주위에서 아무리 충고를 했다해도 실패하기 전에는 납득하지 않았겠지요. 이 체험으로 삶에 대한 저의 오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살이 쪘다 해도 건강한 나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우울할 때나의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나무들의 세계에 몸을 두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과 몸이 피곤해져 있을 때는 되도록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 가도록 해라."

붉게 물든 단풍잎의 아름다움에는 벚꽃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녹아 사라지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진정한 부드러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요. 진정한 부드러움이란 무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 아름다움입니다. 인간관계로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에게 녹아들어 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아함도, 편안함도 "나는 대단해."라고 우쭐해 있거나 자신을 과장하거나 과시할 때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뒤얽히는 인간관계로 마음이 아플 때 평온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빗방울입니다. 조용히 창가에 서서 빗방울을 바라볼 때 빗방울의 맑음이 마음의 집착을 끊어주게 되며 천박한 인간의 욕망을 부끄럽게 느끼게 합니다. 이 빗방울이 가진 맑음이 행복의 잣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분량'을 제대로 자각하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할 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과거의 영광도, 발자욱도 버려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결단으로부터 새로워진 지금이라는 시간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날아오를 수 있는 마음은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났을 때 가능해집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만일 그랬더라면…"이라고 후회만 하게 되는 것은 집착이나 미련에서 생깁니다.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해결의 길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이 보이게 되고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부언하면 크게 날갯짓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을 남기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자유롭게 해방될 때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2. 목적이 보이지 않는 고민



원인이 보이지 않는 고민이 계속될 때




나의 20대는 이상만 높았을 뿐 실제 생활에서는 무슨 일이나 작심삼일로 끝나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력이 동반되지 않는 삶은 무엇을 해도 불만으로 끝납니다. 그런 마음의 불만이 갈등이 되고 초조감이 됩니다. 숨을 쉬는 것마저 괴로워할 만큼 극한의 괴로움에 시달리던 나는 도서관에 다니는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암흑 같던, 지옥과 같았던 청춘의 한 시기를 내 자신의 전환기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기에 현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움직여라.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라. 그리고 계속하라. 그런 다음에 하늘에 맡기면 된다. 맑은 날이면 맑은 대로, 흐린 날이면 흐린 대로."라고 말합니다.

서로 마음이 닿는 관계를 원할 때



흙과 물이 있어도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없으면 자랄 수 없습니다. 사랑은 태양과 똑같은 에너지를 인간들에게 쏟아 부어 줍니다. 바닷가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어부 부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마디 말이 없지만 은은하게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아내가 끓여 준 차를 말없이 마시는 남편, 아무 말 없어도 거기에는 신뢰의 끈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르는 에너지와 보호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랑은 상처받은 마음을 낫게 해 줍니다.

3. 인간관계가 뒤얽혔을 때의 괴로움



마음이 약해 거절하지 못할 때




"이건 하기 싫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고민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일이라도 그것을 할 수 없는 마음 약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경우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자신감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절대로 자기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부터 그럭저럭 할 수 있을 법한 방법까지 생각한 후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해야 할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약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참아 왔다면 꼭 용기를 내서 자기 의사를 아주 조금만 상대방에게 전해 보십시오. 아주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났을 때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나면 사람은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어째서", "왜", '설마"하면서 몇 번이고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확인합니다. 다음에 찾아드는 생각은 "어떻게 하지", "어떻게든 해야 할텐데"라는 것입니다.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그 후에 찾아드는 것은 우울, 불안, 고통, 두려움의 감정입니다. 그 때, 지금까지의 나날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나를 깨닫게 됩니다.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이젠 글렀어."라면서 모두 다 내던져 버리고 싶어지는 때가 바로 그럴 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삶입니다. 설마 하던 일도 살아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그 때 그 사건이 있었던 까닭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노라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확실히 당시에는 죽을 정도로 괴롭겠지요. 힘들어하며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뭐든 다 팽개치고 그대로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이런 위기에 빠졌을 때 진정한 자기가 보이게 됩니다. 아무 일도 없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당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하는 여유로 도전하십시오. 이것이 자신의 생의 한 이정표라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일을 체험하면 분명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엄청나게 고통을 겪고 더 이상은 참아낼 수 없다고 느낄 만큼 견뎌내고 나면 거기에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연애를 하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추구하고 있는 것, 예를 들어 부자, 엘리트, 미인 등의 조건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서 추구하던 가치가 없어졌을 때 그 사람에게 느끼는 '매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자기를 충족시키는 사랑이므로 아무리 격렬하고 강했다해도 자기를 충족시켜 주지 않게 되면 급격하게 냉담해지고 맙니다. 사랑이란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지요.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관계가 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결점이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상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상대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결점이 있음을 알고 있다면 멋진 사랑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4. 노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초조함



어떤 문제가 신경 쓰일 때




"이 꽃이 걱정된다." 싶을 때 사람들은 걱정되는 그 문제에 대처합니다. 말라죽을 것 같아 걱정될 때는 물을 줍니다. 성장이 멎을 것이 걱정되면 분갈이를 해 줍니다. 그러나 "그 꽃이 신경 쓰인다."고 할 때엔 신경 쓰이면서도 대처는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역시'라는 결과가 적중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머리에 떠오를 때 그 생각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일종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거나 분주하게 되면 느낌이 둔해지고 중요한 일을 깨닫지 못한 채 지나치게 됩니다. 그 결과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 때 해두었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무언가 문제점이 떠올랐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문제점으로 인식되는 한 적절한 대처를 하게 되므로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심각한 상황으로 변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러나 '신경 쓰인다'고만 할 때는 어떨까요? 이럴 경우는 "아마도 괜찮겠지."라고 판단하게 되지요. 이 결과는 큰 문제로 대두되게 되고 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불씨에 대처하는 방법은, 곧 '신경 쓰인다'로 생각될 때 그것을 문제의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문제로 인식하게 되면 틀림없이 대처하게 될 테니까요.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애를 쓰는데도 소위,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청춘시절은 운이 따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의존과 어리광에서 나온 안이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안이한 삶이란 바로 오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찰나적인 가치관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찰나적인 가치관에서는 시간관념이나 시간에 대한 인식이 '아주 느슨'합니다. "운은 시간을 소중하게 쓰려는 마음이 없으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쓰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젊은 시절, 시간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24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확실한 형태로 보인다면 지금같이 나태한 삶을 살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려면 시간을 어떤 형태로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나의 경우에 시간을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은 옷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면 시간 3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제작시간으로 삼아 계속해서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1개월 동안 오로지 재봉틀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한달 동안 만든 옷은 240벌이나 되었습니다. 이 240벌의 옷을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던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목숨에 대해서, 공기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오만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깨닫게 된 순간부터 달라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때부터 무언가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사는 것이 수월해집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면 되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별 볼일 없어 보일 때



야외용 드레스 비슷한 것을 240벌 만든 다음 저는 비로소 가게를 열었습니다. 당시 K쇼핑센터에 상담을 하러 간 차에 공짜나 다름없는 금액으로 점포를 빌린 것입니다. 그 빌딩이 다음 해 해체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식 선반이나 쇼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쇼 윈도우 장식은 볏단으로 했습니다. 온통 짚을 깐 다음 거기에 드레스를 자연스럽게 놓았습니다. 그리고 검은 색 켄트지로 미인의 옆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검은 미인의 얼굴에 유리나 금으로 된 버튼을 붙여서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옷을 입히고 낚싯줄로 천장에 매달았습니다. 짚단 냄새,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핸드 매이드 마네킹. 이 디스플레이는 당시로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습니다. 늘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리고 드레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 팔렸습니다. 빌딩 임원이 좀 더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안에 그 부근의 가게들은 모두 디스플레이에 짚단과 검은 얼굴의 마네킹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제 인생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별 볼일 없는 나이지만 하면 할 수 있다." 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을 때



아무리 사랑해도 뜻을 이룰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애를 썼는데도 허사가 되고 말 때도 있습니다. 희생적으로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천되고 마는 경우, 동료라고 믿고 협력했는데 배신당하고만 경우 등 노력해도 뜻을 이룰 수 없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미움과 분노를 갖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믿을 수 없어.", "나는 바보였어." 멍하니 멈추어 선 채 잠시 시간이 멈추어 버립니다. 그러나 증오와 원한은 결국 자신마저 파멸시키게 됩니다.

승부, 곧 이기고 지는 것은 자신과 상대의 쌍방적인 결론으로 결과는 훨씬 나중에 가서야 보이게 됩니다. 현재 성취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 전체에서 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후의 선택, 태도, 행동에 따라 미래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당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반면, '자신의 의사 또는 신념에 대해 졌다.'고 생각할 때는 지친 것입니다. 잠시 마음과 몸을 휴식하는 가운데 다시 생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선택과 자신이 취할 태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결과에 집착하면 행복을 거머쥐지 못합니다. "그 때는 정말 괴로웠지만 지금 와서 보니 정말 잘 된 일이었어."라고 할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명품으로 나를 치장하고 싶 때



열 아홉 살 때 처음으로 배 여행을 했습니다. 목적은 동경하는 루이비통 핸드백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루이비통 핸드백이 있으면 내가 달라지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자기 무가치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지요.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해 고갈되어 있는 마음을 명품 브랜드 같은 것으로 메우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황된 것에 몰두하게 되면 자신의 좋은 면까지 빼앗기고 맙니다. 젊음이라든가 풋풋함 같은 것들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은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핸드백은 들고 다니지 말아라. 네게는 안 어울려. 좀 더 너 자신을 갈고 닦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웃음거리가 돼." 이 말에 나는 굉장히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본질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만일 그대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었더라면 허영의 세계에 빠져서 비참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태뿐인 마음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라면 다시 한번 지금의 생활을 검토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리하게 기를 쓰고 있거나 채워지지 않는 자신을 다른 것으로 대신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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